최근 대한체육회가 순수 아마추어 바둑기사로 구성된 대한바둑협회를 준가맹 경기단체로 승인했습니다. 바둑협회가 준가맹단체로 인정받기까지 4년4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요, 외국에서는 마인드 스포츠, 두뇌스포츠라고 해서 체스를 스포츠로 인정해 성장시켜온지 오래지만, 우리의 경우는 다소 늦은 편입니다. 바둑계에서는 이번 바둑의 스포츠화를 계기로 지원도 확대되고, 바둑의 대중화를 통해 바둑 꿈나무를 보다 많이 양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큰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중앙일보 박치문 바둑전문기자를 초대해서 바둑의 스포츠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바둑의 대중화를 위해 앞으로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중앙일보 박치문 바둑전문기자입니다. 박치문 기자는 서울대 국문과 재학시절 아마추어 바둑고수로 이름을 날렸고 대학교 4학년때인 1975년부터 조선일보에 바둑해설을 연재하면서, 바둑해설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계일보를 거쳐 현재 중앙일보로 바둑담당 전문기자로 있습니다. 바둑대회 수상경력으로는 1970년 한중일 동양3국 아마기전에서 우승했고, 1980년대 전국실업연맹전에서 세차례 우승한바 있습니다. 96년 한국기원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았고, 바둑관련 저서 <요순에서 이창호까지>를 써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우선 바둑인으로서 기쁘시겠습니다. 바둑이 드디어 스포츠로 인정을 받았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박치문 기자 : 네 어쨌든 바둑과 스포츠라는 잘 매치되기 힘든 이미지. 그런 것이 이뤄지기까지 굉장히 바둑인들의 노고, 피땀. 자기들은 피와 땀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백만인 서명운동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체육회에서는 특히 체육학자들은 큰 근육을 쓰지 않는 것이 어찌 운동이냐. 큰 근육을 쓰지 않는다면 고스톱도 그럼 운동이냐 하고 비아냥도 했습니다. 그런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바둑인들이 상당히 노력을 많이 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아무튼 바둑이 스포츠로 된 것은 5000년 바둑사에 가장 이색적인 사건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보니까 2002년 1월달에 인정단체가 됐다가 이번에 준가맹단체가 됐는데요, 그걸 보면 가맹단체라는 게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되는 겁니까?
박치문 기자 : 바둑이 택견이나 공수도 등과 함께 준가맹이 됐는데, 준가맹은 결국 정가맹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봐야 되겠죠.
박인규 : 앞으로 가맹단체로 가는 게 한 번 더 남았네요.
박치문 기자 : 한 번 더 남아있습니다.
박인규 : 가맹단체가 되면 어떤 권리나 특전이 생기는 겁니까?
박치문 기자 : 그건 사실 명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지 바둑계로서는 전국체육대회나 이런 데 바둑종목이 정식으로 열리게 되면 그것이 결국 각 학교나 직장에서 바둑팀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는 거고 , 그렇게 되면 많은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고 그렇게 해서 저변이 넓어지면 바둑의 인기도 올라갈 것이 아닌가...
박인규 : 운동부가 생기듯이 대중화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에 바둑 두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얼마나 됩니까?
박치문 기자 : 한때 갤럽에서 조사할 때 바둑인구가 일천만이라고 했구요, 그 후 제가 볼 때는 각종 모든 종목이 마니아화 현상을 거치면서 바둑도 상당히 줄었을 거라고 봅니다. 현재 제가 볼 때는 한 5백만에서 7백만 정도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박인규 : 그것도 많다면 많은 건데 프로기사는 몇 분이나 됩니까?
박치문 기자 : 프로기사는 현재 206명...
박인규 : 지금 대중화 말씀을 하셨지만, 그래도 바둑을 그냥 두면 됐지 왜 꼭 스포츠로 인정을 받으려고 하느냐.. 많은 분들이, 큰 근육을 안 쓰는데 스포츠로 인정받으면 뭐가 그리 좋길래.. 그런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박치문 기자 : 바로 그게 정체성의 문젠데요, 일본의 유명한 프로기사인 후지사와 슈코. 조훈현 9단의 스승이죠. 그 사람은 바둑을 예나 도나 오락이나 잡기나 승부나..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즐겨라. 그렇게 해왔던 것이 전통적인 바둑관입니다. 그러나 살다 보니까 어떤 단체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는 바둑이란 것도 사회의 한 종목으로서 연예나 스포츠 같은 것과 경쟁을 해야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런데 아무 정체성도 없이 소속된 곳도 없이 그러다 보니 지원군도 없이 독자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니까 너무 팍팍하고 힘들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딘가 방향을 정해서 들어가자. 그러면 그 지역에 소속된 나름의 지원책이 있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얻는 것들이 있지 않겠는가.
박인규 : 말하자면 예전에는 바둑을 '여기'라고 해서 혼자 시간 보내는 것으로 즐겼지만 이제는 하나의 조직화된.. 그런 것으로 만들어가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박치문 기자 : 바둑계도 궁극적으로는, 과거에는 프로기사로서, 전문기사로서 비록 가난하지만 기도정신을 추구하는 것으로 충분히 한 인간으로 존경받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사회의 흐름으로 봐도 가난한 동네에는 지원자가 없어요. 안 모입니다. 바로 그런 점이 바둑계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두려웠던 거죠. 바둑계가 지금 과거의 청렴한 입장만을 고수해서는 인재를 모을 수가 없다. 그러면 바둑은 예술적으로 방향을 정할 것이냐 스포츠 쪽으로 정할 것이냐. 예술로 정하면 그건 엘리트위주가 되는 것이고 스포츠로 정하면 그건 대중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중적인 스포츠쪽으로 발길을 잡았고, 그 이전에 이미 중국이나 수많은 동구권 국가들에서는 이미 스포츠였구요. 그런 점도 영향을 많이 미쳤고, 국제적으로 마인드스포츠라고 하는 여러가지 운동. 조직, 기구들의 활동들이 스포츠쪽으로 마음을 정하게 만든 거죠.
박인규 : 이번에 준가맹단체로 인정받은 게 프로기사들의 모임인 한국기원은 아니고 바둑협회라는 거죠?
박치문 기자 : 그렇죠. 한국기원에서 대한바둑협회라고 하는 단체를 만들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박인규 : 예전에는 중고등학교 같은 경우 바둑특기생으로 들어가기도 했는데, 요즘은 바둑을 일생의 업으로 삼아서 하겠다는 청소년들이 많이 줄고 있나요?
박치문 기자 : 그렇죠. 아무래도.. 저도 그런 얘길 많이 합니다만.. 누구나 소중한 아들이고. 그런데 바둑계가 흥성하질 못하고.. 화려하질 못하고.. 상대적으로. 그럴 경우 누가 내 귀한 아들을 바둑계로 보낼 것이냐..
박인규 : 속된 말로 바둑해서 먹고 살 수 있느냐. 그런 것들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단 말씀이시죠?
박치문 기자 : 사회의 다른 분야의 비약적인 발전에 비해서 바둑이 속도가 더딘 것 아니냐.. 그런 거죠.
박인규 : 이제 준가맹단체가 되면서 스포츠화가 점점 빨라질 수가 있겠네요.
박치문 기자 : 그렇죠. 스포츠화를 통해서 바둑계는 그런 쪽에서의 인기회복, 그리고 각종 활성화 이런 것들을 꿈꾸고 있는 겁니다.
박인규 : 보통 동양에서는 바둑, 서양은 체스. 대표적인 두뇌스포츠처럼 돼있는데 체스같은 경우는 바둑보다 스포츠화나 이런 게 상당히 앞서있는 것 같아요.
박치문 기자 : 서양에서는 아무래도 스포츠이전부터 체스나 이런 것에 대해 사회적 지원같은 것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올해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교육청에서 바둑을 초중고등학교 정식 학과목으로 정했어요. 체스를 그렇게 정한 이유에 대해서 기자들이 물어보자, 체스는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데 아주 유익하고, 두뇌의 모든 개발에 굉장히 유익하기 때문에 체스를 정식과목으로 하는 데 적극 찬성하고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체스는 서양의 150개국에서 이미 둬지고 있구요, 체스연맹 같은 것이 잘 조직돼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보다 먼저 스포츠 쪽으로 발길을 돌렸던 거죠.
박인규 : 올해 12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체스가 정식종목으로 됐다고 들었습니다.
박치문 기자 : 저희도 그 얘길 듣고 깜짝 놀랐어요.
박인규 : 처음인가요?
박치문 기자 : 예. 처음이죠. 체스라고 하는 마인드스포츠가 이렇게 정식종목으로 얘기가 되는 것 자체가 처음인데, 이것이 올해 12월에 과연 어떤 방식으로 치러질지 저도 굉장히 궁금합니다.
박인규 : 처음이기 때문에. 그럼 체스가 스포츠 대회에 정식종목으로 나간다면 바둑이 또 아시안게임의 정식종목이 될 수도 있겠네요.
박치문 기자 : 그렇죠. 체스나 브릿지등 몇몇 마인드스포츠가 국제경기연맹에 가입을 먼저 한 다음에 이런 일이 벌어졌거든요. 그래서 사실, 올해.. 한 두달 전에 바둑도 가맹을 했구요. 그것이 이번에 바둑의 스포츠화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그런 추세로 볼 때 바둑도 체스의 뒤를 곧 따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사실은 컴퓨터대국 이런 거 해보면 바둑이 체스보다 훨씬, 몇 차원 수가 높은 게임이라고 들었는데요..
박치문 기자 : 그렇죠. 간단한 예로 체스의 경우는 수퍼컴퓨터가 스스로 체스를 둬서 인간 고수를 이미 이겼습니다. 딥블루, 딥소트라고 하는 유명한 컴퓨터들이 인간을 꺾은 바 있는데, 바둑의 경우는 체스보다 더 많은 공을 들이는 데도 불구하고 컴퓨터가 이제 10급. 선전하기로는 8급이라고도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10급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만, 너무 실력이 늘지 않고 있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바둑의 수가 체스보다 훨씬 무궁무진하다. 그런 뜻이겠네요?
박치문 기자 : 그렇습니다. 대만에서도, 컴퓨터를 많이 개발해서 어린이 챔피언만 이겨도 수백만달러를 주겠다며 상금도 걸어놨는데 아직 미달입니다.
박인규 : 그런데 아직까지는.. 아까도 후지사와 슈코 말씀하셨지만 도로서 하시는 분도 있고, 예로서 하시는 분들도 있고, 많은 분들은 시간 죽이기. 잡기란 말도 하시고 그래서 바둑이란 게 생활이나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겠느냐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과연 이게 두뇌스포츠라면 진자 두뇌개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박치문 기자 : 지금 말씀하신 바대로, 바둑에는 바둑자체를 싫어하는 분들도 꽤 계십니다. 그러나 바둑이 과거의 잡기라고 하는 영역에서 벗어난지는 꽤 됐구요. 사실 지금도, 조남철 선생이 우리 바둑계의 개척자입니다만, 자기가 젊어서 동네를 걸어나오면, 수표교로 나오면 빨래하는 아줌마들이 빨래를 하면서 저기 노름대장 간다고 수군거리고 그랬다고 합니다. 바둑자체 를 노름으로 생각한 거예요. 놀이로. 그러나 그동안 여러 과정을 겪으면서 바둑의 우수한 것들이 드러났습니다. 바둑자체는 기억력의 게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먼저 많은 것을 기억해야 되구요, 훗날 고수가 돼서도 여전히 수많은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래서 기억력이 일단 뛰어나야 됩니다. 그런데 기억력 가지고 갈 수 있는 한도는 어느 선까지 밖에 안돼요. 그 다음 상상력과 종합사고력이 꼭 필요합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판세를 보는 눈 그런 건가요?
박치문 기자 : 그렇죠. 판세를 보는 눈과 힘께 일반적으로 정형화 돼 있는 수많은 형을 스스로 탈출해서 새로 창조해내는 능력 없이는 고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둑은 한 수가 놓일 때마다 상황이 계속 변합니다. 그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해서 자기 생각을 빨리빨리 바꿔야 되는데 이 때 고정관념을 갖고 있으면 고수가 절대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바둑의 적은 고정관념이고 바둑고수가 되면 절로 뇌가 유연해 진다고 할까요.. 유연성, 그리고 상황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라든가 이런 게 있을 수 있구요. 특히 어린아이들 같은 경우는, 요즘 속된 말로 집에서 너무 오냐오냐 하다 보니까 지는 걸 모르는데
박인규 : 기를 안 죽이려고... 실패를 모르죠.
박치문 기자 : 그래서 바둑한판 치면 울고 난리를 칩니다. 그러나 지는 것 패배를 승복하는 과정 속에서 뭔가 성숙함을 키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여러 가지 정신면에서 유익한 점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인들의 치매. 이건 이미 상당히 증명된 바가 있는데..,
박인규 : 실제로 연구결과가 있습니까?
박치문 기자 : 일단 고수들 중에서 치매에 걸린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걸 자랑하고 싶습니다.
박인규 : 그러고 보니까 또 그러네요. 기억력, 형세판단, 유연성, 순발력, 실패에 대한 대처.. 보통 바둑을 인생의 축도라고 말들 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상당히 일리가 있네요.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바둑의 스포츠화를 계기로 중앙일보 박치문 바둑전문기자와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얘길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서울대 다니면서 박치문이란 이름을 사실 많이 들었습니다. 국문과에 아마추어의 대단한 고수가 계시다. 말씀을 들었는데 그래서 프로가 되실 지도 모르겠다 했어요. 그런데 바둑전문해설가가 되셨어요. 어떻게 해설가가 되게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박치문 기자 : 어떻게 보면 다른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한 까닭도 있겠습니다. 제가 바둑자체는 좋아했지만 그걸 직업으로 할 생각은 없었구요, 특히 프로기사의 경우는 15살 미만에 프로가 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미 나이를 많이 먹었고, 그 나이에 프로가 돼봐야 크게 성공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저는 프로의 길을 처음부터 생각을 안 했습니다.
박인규 : 그 당시 제 기억으로는 서울대와 동경대 바둑대회 주장으로 나가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럼 해설가는 본인이 해보자 해서 하신 겁니까? 아니면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박치문 기자 : 한국기원과 대한기원이라는 단체가 일시적으로 갈라진 적이 있습니다. 대한기원에서 새로 바둑잡지를 창간을 하는데 저희 고등학교 선배가 담당자였는데 저보고 아르바이트 좀 하라고 해서 갔다가 그냥 그렇게 됐어요.
박인규 : 아르바이트 하시다가 30년째 하고 계신 거군요. 이창호 9단 하면 대한민국이 낳은 상당한 바둑천재로 알고 있는데,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박치문 기자 : 저도 처음에는 이창호 9단이 제 옆집 사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창호 9단의 할아버지는 가끔 기원에 나와서 바둑 두시고, 아버지는 전혀 바둑을 안 두는 사람이라 전혀 몰랐고. 아버지는 제 고등학교 1년인가 후배입니다.
박인규 : 실례지만 고향이 어디시죠?
박치문 기자 : 전주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창호 9단이 유명해져서 어디 사나 봤더니 바로 제 옆집에 살더라구요.
박인규 : 역시 등잔 밑이 어둡군요. 이창호 기사가 아직 프로가 되기 전에 서울 올라왔을 때 한 번 바둑도 두시고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박치문 기자 : 예. 하루는 서울에 올라왔는데 서울의 유명한 한과 만드는 집 사장님이 후원도 하면서 이창호 9단을 초대해서.. 선생님도 초대하고 기념대국을 하자고 해서 많은 분들이 모였는데 제가 가서 이창호 9단을 맞아서 기념대국을 했습니다. 제가 두점을 접었는데 그땐 이겼어요.
박인규 : 박기자께서 이창호 9단한데 깔아주고?
박치문 기자 : 예. 제가 접어주고. 이겼는데, 잘 둔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불과 몇 년 후에 세계 챔피언이 될 줄은 그땐 상상도 못했습니다.
박인규 : 박기자께서도 계속 열심히 하셨으면 10단 되는 거 아닙니까? 그 실력이면.. 그러데 이창호 기사가 나에게 교훈을 준 사람이다. 그런 말씀도 하셨어요.
박치문 기자 : 예. 저는 바둑계에 와서 여러사람한테 많은 걸 배웠습니다. 저보다 나이 든 선배한데 배우기도 했습니다만 이창호 9단은 제 아들뻘인 후배인데도, 이창호 9단을 보면서 저도 인생에 대해서 꽤 많은 걸 배웠습니다.
박인규 : 어떤 면에서..
박치문 기자 : 이창호 9단은 굉장히 언행이 느리고 걷는 것도 느리고, 바둑판에서도 굉장히 느립니다.
박인규 : 전혀 반짝반짝하지 않죠.
박치문 기자 : 그렇죠. 오죽하면 선생님이었던 조훈현 9단 조차 이창호라는 아이가 재능이 있는지 의심스럽단 얘길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창호가 그렇게 말한 선생님을 정말 불과 몇 년 안되는 사이에 꺾었는데.. 조훈현 9단은 바둑판에서 무지하게 빠릅니다. 오죽하면 제비라고.. 제가 부드러운 바람 빠른 창이라는 별명도 붙여줬습니다만. 조훈현 9단은 아무튼 빠르기의 상징이고 스피드는 능률의 표시죠. 능률자체가 빠른 겁니다. 그런데 이창호는 가장 비능률적인 느린 것으로.. 빠른 것을 추상적으로가 아니고 실제승부에서 제압을 했어요.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고 굉장히 현실적인 게임인데, 이런 현실속에서 느린 것이 빠른 것을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요즘처럼 스피드시대에 느린 것도 출세할 수 있다는 암시 같기도 하고 말이죠. 그런 여러가지 교훈을 많이 주더라구요.
박인규 : 이창호 9단이 나오면서 한때 우리나라가 유명한 세게기전들을 휩쓸다시피하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예전과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박치문 기자 : 그렇죠. 이창호 9단과 조훈현 9단. 두 사제가 우리 바둑의 중심축이었구요, 이 두사람이 일구어낸 수많은 우승들이 제 머릿속에 주마등같이 스쳐지나갑니다.
박인규 : 혹시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십니까?
박치문 기자 : 특히 조훈현 9단이 잉창치배 대회에서 우승할 때. 그때는.. 대회가 열리기 전만 해도 한국바둑은 변방의 하수였어요. 일본과 중국이.. 황실이 화려하게 파티를 열면 우리는 구경꾼이었고. 우리가 시합 좀 하자고 하면 친선대회도 안해주고. 상대도 안하고. 그렇게 일본기원에서 이사라도 한 명 오면 공항에서부터 모셔다 갖은 서비스를 해도 돌아오는 건 찬밥이었습니다. 그런 판국에 대만의 잉창치라고 하는 재벌이 잉창치배 세계바둑대회라는 걸 열고..
박인규 : 그때 상금이 대단했죠?
박치문 기자 : 예. 윔블던대회보다 적지 않게 준다고 40만 달러를 책정했구요, 그래서 세계의 16명의 강자를 자기가 임의로 초청을 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우리나라의 조훈현 9단이에요. 한국바둑이.. 호주에서도 한 명인데 그렇게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조훈현 9단이 그 대회에 나가서.. 아주 1차전부터 악전고투 역전승의 연속 끝에.. 정말 우여곡절 끝에 결승점까지 갔는데 결승전의 상대는 중국의 유명한 네웨이핑인데, 그 사람은 세계랭킹 1위에다가 철의 수문장. 줃국정부에서 기성이란 칭호를 수여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은 덩샤오핑도 굉장히 좋아해서, 결승전 할 때 혹시 그 사람이 지루할까봐 미모의 여자.. 브릿지고수를 보내서 위로하도록 하고 그럴 정도로 배려를 했구요. 그 시합이 중국에서 열리는데, 가서 보니까 중국사람들은 네웨이핑이 이긴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고, 다만 40만금이 누구 손에 가느냐 이게 신문기사에요. 그래서 항주와 닝버에서 시합을 했는데 기차역에 도착하면 발 디딜 틈이 없어요. 기자들이 자동차 위에 놀라가 있고 난리법석.. 그런 환영과 아수라장 속에서 그 시합이 벌어졌는데 1대2로 밀리고 있다가 정말 극적으로 역전승을 하는데 그 과정을 다 설명할 순 없습니다만, 제가 그 시합을 보면서 우승하고 나며 눈물이 다 나오더라구요.
박인규 : 그때가 88년이었나요?
박치문 기자 : 89년이죠.
박인규 : 그 이후로 웬만한 세계기전을 거의 우리나라 기사들이 휩쓸다시피 했는데 올해들어서는 하나도 못 이겼다고 해요. 우리나라 프로기사 실력이 떨어진 건가요?
박치문 기자 : 그러니까요. 신기한 게 이창호 9단이 완벽한 자기 위치를 지키고 있을 때 우리가 세계대회에서 26번 연속 우승하기도 하고. 무적 중의 무적이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여섯 번 세계대회 중에서 다섯 번을 중국이 우승하고 한 번을 일본이 우승하고, 한국은 제로입니다. 왜 이렇게 갑자기 변했느냐. 이건 우선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창호 9단의 빈공백. 조훈현9단이 퇴조했고. 그리고 유창혁 9단과 서봉수 9단이라고 하는 받침대.. 두 사람이 완전히 퇴조했어요. 그 공백을 이세돌 박영훈 최철환.. 이런 젊은 강자들이 빨리 메워줘야 되는데 아직 덜 성숙하는 거. 그리고 중국이 집단연구체제를 도입해서 합숙훈련을 하면서 전국적인 인재들을 뽑아서 맹훈련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런 결과가 지금부터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하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박인규 : 우리나라의 경우 뭔가 새로운 피. 젊고 유능한 선수들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데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박치문 기자 : 과거에도 이런 식으로 해왔기 때문에 그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이제 바둑이 스포츠가 된 이상 우리 바둑계도 좀 더 프로의 문을 활짝 열어서 전국의 유능한 인재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능한 인재들이 바둑공부를 하다가 지쳐서 다른 쪽으로 달아나는 경우가 지금 숱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일이 없도록 문호를 좀 개방하는 아량과 관용이 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지금 일년에 9명 10명 정도 프로가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걸 좀 넓힐 순 없는가요?
박치문 기자 : 그걸 넓히면... 우리나라의 프로기사제도는 일본의 제도를 그대로 본받아서 일종의 도제제도 형식의 과거유산이 배어있는데요. 이것이 그렇기 때문에 프로를 되도록 조금 받아서 기존의 프로들이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말하자면 강자들을 되도록 조금 받아서 기존의 프로를 보호한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것보다는 이제는 좀 더 경쟁에 불을 붙여서 치열하게 실력대결을 펼침으로써 한국바둑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되지 않을까.
박인규 : 말하자면 소수정예보다는 이번 바둑의 스포츠화 인정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공개경쟁을 할 수 있는 체제가 돼야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박치문 기자 : 네.
박인규 : 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치문 기자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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