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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일기' 괴담을 쓰는 FTA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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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일기' 괴담을 쓰는 FTA 정부

김민웅의 세상읽기 〈235〉

노신은 일본의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청년이었습니다.
  
  1905년 경 어느 날, 세균학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교수는 시간이 남자 당시 러-일 전쟁 기록 필름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이 러시아 밀정 노릇을 하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처형당하는 장면도 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처형 현장에 몰려든 상당수가 중국인이었고, 그들은 모두 손뼉을 치며 환호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노신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게 됩니다. 당시 중국 민족의 정신적인 혼미와 우매함에 노신은 더 이상 의학 수업에 머물러 있을 수만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의학도 노신'이 '문인 노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노신은 <외침>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그의 감회를 적고 있습니다.
  
  "그 때 이후로 나는 의학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을 뜯어고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문학예술운동을 제창하게 되었다."
  
  1918년에 나온 작품 <광인일기(狂人日記)>는 바로 그 중국인들의 정신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글입니다. <광인일기>의 주인공은 피해망상증에 걸려 있고, 주변의 모두가 다 자신을 먹어버리려 한다는 깊은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먹어버리는 역사가 만들어 낸 정신병이었습니다.
  
  노신은 작품에서 인간의 종류를 이렇게 나누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고 싶어 하는 자의 두 가지이다." 너무 오랫동안 인간을 먹는 식인(食人)의 습성에 젖어 있거나, 또는 나쁜 줄 알면서 그 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자로 분류한 것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노신은 광인일기의 주인공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마음을 돌려라. 진심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머지않아 인간을 먹는 인간은 이 세상에 살 수 없게 된다. (…)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자기 자신도 먹혀 버린다. 아무리 많이 낳는다 해도 참된 인간에게 모두 멸망당한다."
  
  미래에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지, 즉 계속 4000년 이상의 습관대로 식인(食人)의 습속으로 살아갈 것인지 노신은 중국민족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인일기의 주인공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이동생을 먹어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합니다.
  
  괴담(怪談)이 아닙니다. 먹고 먹히는 것은 대상을 구별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인간을 먹은 일이 없는 아이가 아직 있는지 모르겠다. 그 아이를 구하라."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입니다.
  
  적(敵)은 중국을 향해 목을 겨누고 있는데, 중국인들은 서로를 잡아먹느라고 정신이 없는 광인(狂人)이라는 이 매서운 경고는, 중국인들의 뒷덜미를 날카롭게 잡아챕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를 보면서 <광인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여기서 FTA는 자유무역협정을 뜻하는 Free Trade Agreement가 아니라, "치명적으로/불길한"의 의미를 가진 "Fatal"의 약자를 앞세운 FTA가 되고 마는 겁니다.
  
  서로를 잡아먹게 만드는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중에 누군가는 승전가를 부르며 괴담 같은 미소를 짓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정부(政府)는 그 때 누군가의 정부(情婦)가 되어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손뼉을 치며.
  
  *이 글은 〈프레시안〉의 편집위원인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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