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브라질 최대의 도시 상파울루 시를 무법천지화시켰던 마약조직들의 무차별한 공격이 일단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나 이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브라질의 공권력을 두고 남미 전체가 술렁거리고 있다.
도시 게릴라전을 방불케 했던 무장괴한들의 무차별 공격으로 150명 이상이 사망하고 87대의 시내버스가 전소됐는가 하면 253개의 경찰서가 무장괴한들의 공격으로 파괴됐다. 그리고 15개의 은행이 괴한들의 공격을 받는 등 피해상황을 보면 한마디로 내전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브라질 전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이 무장괴한들은 '제1수도군사령부 (Primeiro Comando da Capital)'라고 불리는 마약조직 휘하 7개 조직의 무장 세력들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황당한 건 이 조직의 우두머리이자 마약조직의 대부인 카마초(Marcos Willians Herbas Camacho, 38세)가 감옥 안에서 휴대폰을 통해 작전을 지휘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번 사태를 주도한 무장 세력들은 브라질 사법부로부터 어머니날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가석방된 2000여 명의 '제1수도군사령부' 소속 조직원들로 알려져 브라질 정부 역시 이번 사태에 직적적인 책임을 피해나가기 힘든 상황이 됐다.
1주일 가까이 상파울루시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든 이번 사태의 핵심은 수감자 처우개선이었다. 그러나 브라질 국민들은 범죄자들의 감옥생활 처우개선보다는 치안관련 공무원들의 처우개선이 우선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상파울루 주정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지난해 상파울루 주정부가 치안유지를 위해 2억7000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했으나 실제로 집행된 건 1150만 달러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겨우 예정액의 5% 정도만을 집행하면서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공무원들과 교도관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범죄조직과 대항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얘기다. 오히려 그들이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아직까지 직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현지언론들은 치안을 유지해야 할 공무원들의 처우가 이 지경이다 보니 풍부한 자금과 조직, 최신 무기로 중무장한 범죄조직들의 공격을 막아내기는 애초부터 무리였다며 이를 방치한 정치권과 룰라 정부에 비난의 화살을 퍼 붓고 있다.
더욱이 공권력을 통한 사태진압에 실패한 정부는 이들 조직대표들과 협상을 벌여 사건을 무마하는 미봉책을 내놓아 비난이 가중되고 있다. 상파울루의 일부 언론들은 주정부 대표와 수감자들이 선임한 변호사, 8명의 '제1수도군사령부' 소속 수감자 대표들이 자리를 함께해 3시간에 걸친 협상을 벌인 끝에 무장괴한들의 무차별한 공격을 멈추게 했다고 보도했다.
상파울루 사태는 월드컵 시청 때문?
이 협상에서 무장괴한들의 요구조건 가운데 하나가 '모든 죄수들의 독일 월드컵 시청'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주정부 관리들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상파울루 주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모든 형무소 휴게실에 TV를 설치해 모든 수감자들이 오는 6월 독일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시청하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죄수들이 집단행동을 한 목표 중의 하나가 '월드컵 시청'이었던 것이다.
상파울루 주 소속 144개의 형무소에는 현재 14만2000여 명의 죄수들이 수감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죄수들 대부분은 강도 또는 마약밀매범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형기를 마치고 출감을 해도 60% 이상이 다시 재범을 한다는 것과 이들 모두가 이번 사태를 주도한 제1수도군사령부조직원들의 통제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상파울루 죄수들을 관리하는 건 정부가 아니라 범죄조직들이라는 얘기다.
1993년 조직된 제1수도군사령부는 마약과 무기밀매로 얻어지는 수입으로 형무소에 수감된 죄수들과 그 가족을 돌보고 있으며 심지어는 가족이 없는 일반 죄수들을 위해서도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막강한 자금력을 이용, 각계각층에 후원자들을 포진시키고 있어 정부로서도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주정부는 연방 정부가 연방교도소 건립을 서두르지 않아서라고 책임전가를 하고 있으며 연방정부는 주정부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고 서로가 책임전가를 하고 있을 뿐이다.
제1수도군사령부는 브라질 교도소만 장악한 게 아니다. 이들은 브라질 전역의 빈민가를 실질적으로 이끌면서 그곳 출신 청소년들을 마약배달원으로 고용, 매달 1500달러에서 최소 600달러 정도의 수입을 보장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최저임금이 월 120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브라질 빈민가의 청소년들은 이 범죄조직의 잔심부름(?)을 해주고 엄청난 액수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현지전문가들은 제1수도군사령부는 날이 갈수록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으며 이들은 브라질 청소년들의 장래를 망치고 있다면서 두 손을 놓고 있는 룰라 정부를 향해 비난의 톤을 높이고 있다.
오는10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룰라로서도 브라질 최대의 사회문제로 등장한 제1수도군사령부 문제를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그리고 경찰을 능가하는 무기까지 갖춘 이 조직을 제압하기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 룰라의 고민이다. 일부에서는 이들 범죄 조직과의 전쟁에 브라질 특수군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애꿎은 민간인 희생만 더 늘어날 것이라는 반대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권력을 비웃으며 공공연하게 각종 범죄와 무력충돌을 일삼는 이들 범죄 단체들을 소탕하기 위해 군을 투입, 대대적인 작전을 벌이자니 브라질 전체가 내전 상황에 빠질 게 뻔하며,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하자니 언론들과 야당의 공격이 갈수록 거세질 전망이어서 룰라 정부로서는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룰라 정부는 고심 끝에 최근 군을 투입한 전면전보다는 이 조직의 자금 줄을 묶는 작전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1수도군사령부를 지탱하는 돈줄이 막히면 조직이 와해 될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검은 돈 찾아내기를 시작으로 범죄단과 전쟁을 시작한 룰라 정부의 노력이 이 방면에서 '날고 긴다'는 조직범죄단을 상대로 어떤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두고 볼 일이다.
'아르헨 재소자들은 미니월드컵 경기 벌여'
한편 상파울루 재소자 난동문제가 남미 전체의 화제로 등장하자 몇 차례에 걸쳐 재소자 난동사태를 경험한 아르헨 정부도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더욱이 상파울루 사태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수감자들의 월드컵 시청이었다는 소식을 접한 아르헨 치안당국은 월드컵기간 중 재소자들의 불만 잠재우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중 한 가지 눈에 띄는 조치는 재소자 월드컵 경기다. 전국 형무소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대표팀을 만들어 월드컵 본선 무대와 똑같은 방식으로 축구경기를 벌이는 것이다. 참가대표팀도 독일월드컵과 똑같은 32개 팀이며 이들은 각국 대표팀 유니폼을 착용하고 경기를 한다.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팀도 있다. 아르헨 재소자들은 벌써부터 어느 나라(형무소 팀)가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나를 놓고 독일 월드컵에 버금가는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소자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당국의 고육책이 의외의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브라질 사태나 아르헨 당국의 대처방안을 보면 남미인들이 느끼는 축구에 대한 열정과 월드컵이라는 지구촌 축제에 '올인' 하는 남미사람들의 열기를 실감하게 된다. 하기야 축구 때문에 전쟁을 벌이기도 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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