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를 다룬 *<경제 민주주의>라는 미국 학자들의 저술을 보니 그 안에 노동이나 복지문제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주요목차만 소개해보면 ① 공공(公共) 소유(국가의 전략적 고지 확보 등) ② 투자의 민주적 통제(노동은행, 연금기금 등) ③ 노동현장의 민주화 ④ 민주적 기술(친환경 기술 등) ⑤ 대기업의 통제 ⑥ 인플레와 고용 ⑦ 복지국가 등등으로 되어 있다.
노동 현장의 민주화 편에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 노동자의 기업 소유, 협동조합 등이 포함되어 있다. 대기업의 통제편에는 반(反)독점, 규제기관, 보조금과 인센티브, 단체교섭, 노동자의 경영 참여(독일에는 공동결정제가 있으나 미국 노조는 거기에 반대하고 단체교섭을 선호), 계획 등이 항목으로 있다.(우리나라 재벌의 순환출자와 같은 문제는 미국에 없다.)
ⓒ프레시안(손문상) |
얼마 전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설교자 겸 선봉장인 김종인 박사(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전에 정부 노동연구원 원장을 지낸 최영기 박사 등을 만나 경제민주화와 노동의 관계를 이야기해 보았더니 모두들 노동문제도 큰 테두리의 경제민주화의 범위에 포함될 것이라는데 동의하는 것 같았다.
이때 이야기해두고 싶은 것은, 김종인 박사의 영향력은 역설적이게도 문재인·안철수 씨의 인기도에 달렸다는 묘한 관계이다. 문·안 후보의 인기가 올라가면 김 박사의 영향력도 더욱 커지고, 반대로 내려가면 비례해서 축소된다. 이상한 관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대통령 후보들이 거의 다 나왔으나 아직 노동분야에 관한 구체적인 공약은 안 나왔다. 우선 급한 과제인 일자리 창출과 '노동하는 빈민들'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력을 말하고 있는데, 그 일자리 창출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니 정치권력으로서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칫 공염불처럼 되기가 쉽다.
일자리 창출 말고 노동분야의 얼마간 세부적인 것으로 근간에 제기되고 있는 것은 노조 전임자 인원수 문제, 복수 노조에 있어서의 단체교섭 창구 결정 등이 있고,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 등 4대 보험에 있어서의 사각지대의 해소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를 보니 노동자의 교육·재교육을 위한 예산 할당이 큰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러한 세부적인 문제도 대단히 중요하다. 앞으로 각 진영의 공약 발표에서 보다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그러한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노동에 대한 정권의 자세라는 점을 강조해 두고 싶다. 공지영 소설가가 쓴 르포르타주 <의자놀이>(공지영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는 쌍용자동차 노사분규를 박진감 있게 다룬, 시의에 맞는 훌륭한 작품이다. 거기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명박 정권 들어 내가 느끼는 극심한 피로감은, 그들은 약자에게 조금이라도 약점이 보이면 가차 없이 팬다는 것이다. 곤죽이 될 때까지, 그것도 공개적으로 팬다는 것이다. 나는 몹시 피곤하다."
공감이다. 공감을 지나 나는 부자를 위한 정권인 MB정권을 더 나쁘게 평가하고 싶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정권은 말할 것도 없이 노동탄압정권이었다. 노동행정은 경찰행정이었고, 경찰국장·군 출신이 줄줄이 노동청장·장관이 되기도 하였다. 김영삼 정권은 87민주화운동·노동항쟁의 여파도 있고, 문민정부를 내세우기도 하였으니 얼마간 중립적이 되었다고 할까.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노동탄압적은 아니고, 약한 노동우호적이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거기에도 IMF 사태 등으로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노동법제에 있어서 세부적으로 문제점을 갖고 다툴 수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치권력이 노동을 어떻게 대하느냐이다. 정치권력은 노동의 단위사업장, 말단세부에까지 빈틈없이 작용한다. 미셸 푸코가 광기(狂氣)·감옥·성(性) 등에 있어서의 미시적 권력의 작용을 연구하였는데 더 살아서 노동문제까지 다루었더라면 싶다.
청와대가 제일 중요하고 상층 관료군이 그다음에 있다. 검찰·경찰·정보기관(KCIA)도 이면에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노동고위관료가 노동을 불온시하는 경우를 보자. 예를 들어, 지난날 민주노총의 권영길 위원장을 빨갱이라고 공언했다.(민주노총을 빨갱이로 몬 사람도 많다.) 부친이 빨치산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여부는 어떻든 우선 연좌제가 분명하다. 여담으로 말하면, 나는 그때 무시무시하게 들리는 빨치산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하였다. 좌익이 서울에 있으면 잘하면 사상가나 좌익 취급을 받는다. 지리산록에 있으면 무조건 영락없는 빨치산 취급이다. 권영길 씨의 고향은 산청이고, 산청은 지리산록이다. 그 밖의 지역에서는 그냥 좌익이나 빨갱이 호칭이다.
검찰이 노동문제의 법적 열쇠를 쥐고 있다. 그리고 대검 공안부장이 조폐공사 노조를 분쇄하려 파업을 유도하고, 제멋에 겨워 그것을 자랑하다가 큰 문제가 된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일이다.
노동투쟁은 초보적인데 경찰의 진압방법이 너무 선진화하여 공포가 엄습한다. 용산참사도 그렇고, 쌍용자동차의 경우도 테이저건 등 신식 장비도 등장한다. '민영화된 권력'인 용역들이 망나니처럼 난무한다. 이번에 신문에도 나고 국회 청문회에서도 문제가 되었지만 쌍용자동차 노사분규에서 당시의 경기도 경찰청장이 노사합의가 거의 다 되어가는데도, 상사인 경찰청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경찰을 투입하여 강제해산시킨('작살내버린'이란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예도 있다.
요즘은 잘 모르겠으나(폭로된 게 없어서) 전에는 KCIA가 노사관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정'이란 명분으로 말이다. 그 역할을 누군가가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법원도 판결의 답답한 지연이 문제이고, 가끔 기업 편향을 보인다. 서민들이 몸으로 터득한 '유전무죄·무전유죄'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인가. 언론도 그 자체가 권력이어서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대부분이 반노동적이다. 광고주와의 관계도 있을 것이다.
노동문제는 분배문제와 직결된다. 87민주화운동·노동항쟁 이후 노동에의 분배 몫은 크게 올라갔었다. 미국에서도 뉴딜 때와 그 이후는 노동에의 분배구조가 향상되었었다. 뉴딜은 다른 것도 있지만 노조활동을 정책적으로 활성화시킨 시대였다. 흔히 와그너법을 예로 든다. 그 후 레이건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노동에의 분배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저러나 현대는 신자유주의(시장 근본주의) 노조의 쇠퇴기다.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선진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10% 선에 불과하다. 정말 한심한 수준이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자주 인용하는 어구(語句)가 있다.
"마셜 맥루한이 말한 대로, '미디어가 메시지라면, 운영이 즉 정책이다'.(If as Marshall Mcluhan said, 'media is the message, then operation is the policy'.)"
60년대 후반 미국의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은 미국의 월남전 개입을 반대하여 존슨 대통령에 맞섰다. 뉴햄프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예선에서 '어린이 십자군'의 도움을 받아 크게 득표하여 존슨의 후보사퇴를 이끌어냈다.
그 후 상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교위원회에 배당 차례가 되어 교섭이 왔는데 그는 그 제의를 사양하고 별로 관심이 없어 하는 정부운영위원회인가 하는 곳을 지망하였다. 그때 "운영이 즉 정책"이라는 위에 인용한 바와 같은 명언을 말한 것이다.
우리의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노동법제에 있어서 보기에 따라서 세부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노동에 적대적이냐, 중립적이냐, 호의적이냐 하는 운영의 문제다. 노사분규에서 노동 측을 '작살낼 수도' 있고, 인내로서 참아 타협을 유도할 수도 있다. 국회의 입법이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니지만 행정부의 집행 자세 여하가 관건이란 이야기다.
앞으로 나올 후보들의 노동공약도 물론 중요하지만 후보들의 (그 배경세력을 포함하여) 본질적인 자세에 대한 판단이 더 중요하다. 공약에 현혹되어 본질을 놓칠까 봐 해두는 이야기다.
* <경제 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Martin Carnoy·Derek Shearer, 1980, M.E.Sharpe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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