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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지릭이여, 안녕"

서길수 교수의 '알타이 답사기' 〈52〉

12시 반부터 1시간 동안 아주 느긋하게 낮밥을 먹었다. 한 여름이지만 바람 시원하고 넓게 펼쳐진 초원과 숲을 바라보며 소풍 온 초등학생 같은 기분으로 먹었다. 일부러 찾는다고 해도 어찌 이렇게 멋진 장소를 찾을 수 있겠는가?

이곳을 찾는 손님은 우리뿐이 아니었다. 제법 여러 명의 단체가 도착하여 꾸르간을 둘러본다. 고르노-알타이스크에 사는 두 가족과 이곳 울라간에 사는 친척들이 가까이 있는 호숫가에서 5일째 캠핑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유명한 빠지릭 꾸르간 관광에 나섰다는 것이다.

우리가 밥을 먹고 답사를 하는 동안 말을 타고 달려온 알타이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말을 다루고 있었다. 아이들도 2명, 3명씩 말을 타고 다니는 것을 보면 말을 타는 것이 완전히 일상생활화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디오 촬영할 수 있도록 말을 한 번 달려 달라고 했더니 두 말 없이 초원을 달리는데 정말 질풍과 같이 달린다. 알타이 후예의 기질을 한 방에 보여주는 상쾌한 말달리기다.

우리는 천천히 맨 남쪽에 있는 5호 꾸르간을 향해서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저쪽 숲 아래서 한 마리의 커다란 독수리가 양 한 마리를 통째로 해치우는 장면을 봤다. 가까이는 가지 못하고 멀리서 촬영을 하는데 독수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천천히 배를 채운다. 그리고 저 멀리서 2명, 3명, 알타이 어린이들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5호 무덤에서 꾸바레프 교수 인터뷰를 했다. 대형 꾸르간을 바라보며 옛 알타이인들의 스케일에 놀라면서, 동시에 여기저기 지천으로 널려 있는 통나무들을 보고 다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통나무들은 바로 2000년 이전 빠지릭시대 사람들이 이 무덤을 만들 때 널방을 만들면서 썼던 바로 그 통나무이기 때문이다. 발굴에서 나온 통나무를 유물만 가져가고 아무렇게나 팽개친 러시아 고고학자들의 행동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발굴한 상태 그대로라면 그 통나무로 바로 널방을 재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사실은 아직도 사용이 가능할 정도이다. 꾸르간 옆에 박물관을 지어 그 통나무로 꾸르간 내부를 재현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안내표지 하나 없는 현장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너무 부질없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무덤 한 가운데 높게 자란 이깔나무 한 그루가 마치 인간들의 철없는 행동을 다 내려다보듯이 꿋꿋하게 서 있다.
▲ (좌)무덤에서 나온 통나무들이 나뒹굴고 있다. (우)수 십 개의 발발이 선 꾸르간 ⓒ서길수

빠지릭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침에 올 때 자세하게 보지 못했던 산 아래 목장에 널려 있는 꾸르간들을 답사했다. 대형 꾸르간들이 제법 여러 군데 있고 발굴한 흔적들도 많다. 하나 특이한 것은 꾸르간마다 큰 이깔나무들이 하나씩 아주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샤먼나무라고 해서 주민들이 손을 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서 두 곳의 꾸르간을 특히 정확히 위치측정을 해 두고자 한다. 첫째 대형 꾸르간 가운데 유일하게 아직 발굴하지 않았다는 꾸르간(1273m, N50°43'696", E88°03'760")이고, 다른 하나는 발발(선돌)이 유독 많은 꾸르간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꾸르간 가운데 가장 많은 선돌이 남아 있는 꾸르간으로 거의 50개에 가까운 발발이 서 있어 인상 깊은 꾸르간(1272m, N50°43'714", E88°03'640")이다.
▲ (좌)발굴하지 않은 꾸르간(2005 헬기) (우)발발이 많은 농장 입구 꾸르간 (2005 헬기) ⓒ서길수

빠지릭 소풍을 모두 마치고 나니 오후 3시가 되었다. 우리는 빠지릭과의 아쉬운 작별을 하고 오늘의 목표인 깔박따쉬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은 아주 여유를 부리며 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차를 세워 둘러보며 소풍 가는 날의 기분을 계속 즐길 수 있었다. 우선 울라간 마을에서 잠깐 쉬어 울라간의 거리와 운동장, 상점 같은 것을 둘러보고 바로 마을 입구에 있는 돌사람(1225m, N50°37'010", E87°55'578")을 방문했다. 이곳은 꾸바레프 교수가 직접 발굴한 제사터인데 안타깝게도 돌사람의 얼굴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은 아직도 마을 입구에 당당히 서서 마을을 지키는 장승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은 참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개울과 작은 호수들이 이어지고 멀리 꾸라이산맥의 눈 덮인 산봉우리가 어울려 정말 멋진 경치를 연출한다. 몇 번이고 차를 멈추고 아름다운 경치를 카메라에 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돌아가는 길은 결국 큰 산맥을 다시 넘어가는 길인데 3시 43분 울라간 고개 마루(2081m, N50°29'972", E87°39'330")에 도착했다. 갈 때는 안개가 끼어 앞뒤를 분간할 수 없었는데 오늘은 맑게 개어 기막힌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갈 때 아쉬움이 남았던 차가껠(Chagakel)호수에서도 잠깐 쉬면서 오늘의 소풍은 계속된다.
▲ (좌)울라간마을 입구의 돌사람과 제사터 (우)울라간 고개마루(2080m)의 까이라 ⓒ서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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