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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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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29〉감통편 '정수사 구빙녀'조

『삼국유사』를 읽다 보면 감동적인 대목들을 꽤 자주 만난다. 감통편 '정수사 구빙녀(正秀師 救氷女)'조에도 그런 대목이 있다. 기사는 매우 짧다.

제 40대 애장왕 때, 중 정수(正秀)는 황룡사에 머물고 있었다. 겨울날 눈이 많이 쌓이고 날은 이미 저물었는데, 삼랑사(三郞寺)에서 돌아오던 길에 천엄사(天嚴寺) 문밖을 지나게 되었다. 그 때 한 여자 거지가 아이를 낳고 누워서 얼어 죽게 되었는데, 스님이 보고 불쌍히 여겨 그를 안아 주었더니 한참 후에 깨어났다. 이에 옷을 벗어 덮어 주고 벌거벗은 채 황룡사에 달려와서 거적으로 몸을 덮고 밤을 새웠다. 한밤중에 하늘에서 궁정 뜰로 외치는 소리가 났다. "황룡사의 중 정수를 마땅히 임금의 스승에 봉할지니라." 급히 사람을 시켜 조사하게 하니, 그 사실이 모두 왕에게 알려졌다. 왕은 위의를 갖추고 그를 대궐 안으로 맞아들여 국사(國師)를 삼았다.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정수 스님이 거지 여자와 갓 태어난 핏덩이를 감싸서 체온으로 녹여 주었다는 대목에서 내 눈에는 눈물이 핑 돈다. 얼어죽게 된 두 목숨을 살려낸 그 지극정성이 가슴 저리게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 삼랑사 터 당간지주. ⓒ김대식

경주 서천 근처에 있는 삼랑사 터에서 황룡사 터까지의 거리는 약 3km 가량 된다. 천엄사가 두 절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삼랑사와 황룡사 사이는 서라벌의 도심이었을 것이다. 정수 스님은 그렇게 두 목숨을 구해놓고는, 벌거벗은 채 눈 쌓인 도심을 가로질러 뛰어갔다는 것이다. 그 정황을 상상하노라면 이번에는 떠오르는 웃음기를 참을 수 없게 된다. 점잖은 스님께서 야밤 도심에서 스트리킹을 하다니…. 거기에다, 황룡사에 돌아와 거적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면서 밤을 새는 모습은 또 어떤가? 이렇게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정황을 담담하게 전해주는 일연의 필치에 나는 고작, 눈물이 핑 돌다가, 웃음기를 참다가 오락가락할 따름이다.

누군가가 벌거벗은 채, 눈길을 달려가는 정수 스님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거지와 그녀의 핏덩이를 구한 정수 스님의 행적이 알려졌을 터. 이야기의 뒷부분은 이 과정을 전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매스컴에서 알게 되어 요란을 떨었다고나 할까? 그런 매스컴의 호들갑 덕분에 정수 스님은 국사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일연은 '정수사 구빙녀'조에서 정수 스님의 미담을 담담하게 전해 줄 뿐 아니라, 당시 서라벌 바닥에 형성되었던, 이른바 여론을 "한밤중에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로 묘사하면서, 매스컴의 호들갑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음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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