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에는 중남미 국가들의 정치적인 미래를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두 개의 정상회담이 미주대륙 남북에서 동시에 개최됐다. 하나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부시 미 대통령과 바스께스 우루과이 대통령의 정상회담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남미 최대의 관광도시 이과수에서 열린 중남미 4개국 에너지동맹회담이었다.
거의 같은 시간에 열린 이 두 개의 정상회담에서는 아주 상반된 내용이 논의됐다.
먼저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우루과이 정상회담에서 우루과이 바스께스 대통령은 이과수의 남미정상회담을 의식한 듯 다시 한번 부시 미 대통령에게 남미공동시장의 무용론을 강조하고 미국과의 통상 확대와 미국자본의 투자유치 의지를 피력했고 했고, 부시 대통령은 우루과이에 최대한의 투자와 통상확대를 약속했다. 양국은 오는 10월 몬테비데오에서 실질적인 통상확대방안과 투자협정 등을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
남미 현지언론들은 우루과이가 남미공동시장의 정회원에서 탈퇴해 준회원 자격으로 칠레의 경우처럼 미국과 자유무역(FTA) 체결을 희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반해 아르헨티나 국경도시 이과수에 모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정상들은 에너지를 통한 동맹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모랄레스의 국유화 선언에도 불구하고 차질 없는 가스공급을 합의했다. 물론 볼리비아 정부가 요구하는 인상폭과 남미국가들이 주장하는 합당한 선의 공급가격을 절충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번 이과수 회담의 최대의 성과로는 그동안 아르헨-브라질-베네수엘라가 주축이 된 남미대륙횡단 가스관공사에 비관적이던 볼리비아를 끌어들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베네수엘라를 출발한 가스관이 브라질을 통해 아르헨, 파라과이, 볼리비아를 잇고 우루과이를 거처 최종적으로 칠레까지 연결시켜 인류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1만200Km에 달하는 대역사를 통해 중남미 통합을 앞당기겠다는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3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끝낸 후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오늘은 내가 취임 후 7년 동안 치렀던 각종 정상회담 중 가장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는 최고의 회담이었다"며 "500년 중남미 역사상 최대의 대역사에 시동이 걸렸다"고 힘주어 말했다.
차베스는 이어 모랄레스를 향해 "볼리비아 국민들을 위한 역사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치켜세우고 "마치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절규했던 잉카제국의 마지막 영웅 뚜빡 아마루가 환생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의 키르츠네르 대통령도 회담결과에 만족을 표하며 볼리비아의 가스 국유화 결정에 대해 "최고통치권자의 결정을 존중한다" 면서 "그러나 공급가 인상은 합리적이고 상호가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선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가스 국유화 조치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보였지만 "모랄레스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히고 "브라질 국영석유의 볼리비아 투자중지 조치를 반대한다"고 말해 현장의 브라질 기자단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룰라는 이어 "양국 국영 에너지회사들 간에 상호조율만 잘 된다면 투자는 계속될 것"이라면서 "투자나 가격인상 등 모든 것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해 에너지 문제로 인한 브라질 국내의 정치적인 분쟁과 책임의 소재를 양국 국영석유 운영진들에게 넘겼다.
룰라 대통령은 또 "이런 문제들이 중남미통합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며 "이번 조치를 통해 볼리비아 서민들의 생활의 질이 향상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모랄레스는 자신의 결정을 지지해준 브라질을 비롯한 아르헨, 베네수엘라 정상들에게 사의를 표하고 중남미 국가들이 서로 연합해서 서로 돕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회담 초기 브라질 정부를 향해 "페트로브라스(브라질국영석유)의 볼리비아 투자중지 발표는 (나를 향한) 명백한 협박"이라며 "오늘 회담의 성격이 볼리비아 가스국유화에 대한 것이라면 이 회담에 참석할 이유가 없다"고 강경한 자세를 보였던 모랄레스는 공동기자회견 내내 차베스의 눈치를 살피며 "모든 문제는 상호 협의해서 처리하자" 는 누그러진 태도를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번 이과수회담의 에너지자원을 통한 중남미 4국동맹이 와해 위기에 직면한 남미공동시장에 상당한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베스와 모랄레스, 룰라, 키르츠네르 등이 맺은 에너지동맹으로 인해 친미 성향을 보이고 있는 우루과이와 파라과이, 칠레 등이 적지 않은 자극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들 국가들은 당장 볼리비아나 베네수엘라가 석유와 가스공급을 중단해 버리면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날이 갈수록 맹위를 떨치고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힘이 과연 중남미에서 초대강국 미국의 영향력을 무력화시키고 중남미 통합을 앞당기게 될지는 조금 더 두고 볼 일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