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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일간 6400Km 주파, 간절히 꿈꾸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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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78일간 6400Km 주파, 간절히 꿈꾸면 이루어집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5/02] 홍은택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 편집장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인터넷 신문 오마이 뉴스 인터내셔널의 홍은택 편집국장을 초대했습니다.

홍은택 편집국장은 78일간 자전거로 미국대륙을 횡단했습니다. 그리고 그 험난했지만 스릴 넘치는 생생한 여정기를 신문에 연재해왔습니다.

마흔을 넘어선 나이에 철저히 나를 느껴보고 싶어서... 앞으로 해야 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 자전거 여행을 선택했던 홍은택 편집국장...

6,400킬로미터의 거리를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철저히 나를 위한 여행에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인지 78일간의 자전거 여행길을 되짚어 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오마이 뉴스 인터내셔널 홍은택 편집국장 입니다.

홍은택 편집국장은 1989년 동아일보사에 기자로 입사해 워싱턴 특파원, 노조위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2003년 미국 유학을 떠나 미주리대학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고 졸업 후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했으며 그 기록을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이라는 제목으로 한겨레 신문에 최근까지 연재했습니다. 미국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글로벌 저널리스트>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쓴 칼럼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를 책으로 펴내기도 했습니다.

박인규 : 홍은택 편집국장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안녕하세요.

박인규 : 홍은택의 아메리카자전거 여행이라는 신문 연재가 최근에 끈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 끝났죠?

홍은택 편집국장 : 47회로 4월 12일날, 지난달 끝났습니다.

박인규 : 실제로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신 건 언제부터 언제까지죠?

홍은택 편집국장 : 5월 19일부터 8월 13일까집니다.

박인규 : 작년?

홍은택 편집국장 : 예 지난해..

박인규 :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자전거 여행을 다 끝냈지만 말하자면 독자와 사회적으로는 이번 연재를 끝내면서 끝나는 거네요?

홍은택 편집국장 : 그렇습니다.

박인규 : 연재가 끝나니까 좀 후련하시겠습니다.
▲ ⓒkbs 1라디오(97.3mhz)

홍은택 편집국장 : 예. 자전거 여행을 끝낸건 지난해 8월이지만, 연재하면서 독자여러분들이 많은 격려를 보내주셔서 함께 여행을 같이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자전거로 달리는 것보다 글 쓰는 게 개인적으론 더 힘들었습니다.

박인규 : 원래 더 힘들죠.

홍은택 편집국장 : 예, 연재를 다 마치니까 비로소 자전거여행을 마쳤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박인규 : 저희도 기자생활을 해봤지만 현장 취재보다는 갔다와서 그 걸 정리하는 게 더 힘들거든요. 일단은 후련하실 것 같고 축하를 드립니다.

홍은택 편집국장 : 고맙습니다.

박인규 : 무엇보다도, 어떤 생각에서 6400km를 제가 우리나라 리수로 계산해 봤더니 16000리더라구요. 자전거로 가겠다..라고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제가 지난해 5월 10일경 졸업을 했는데요, 아깐 박사학위로 소개하셨지만 석사학위를 받았는데요, 그때까지 한 번도 놀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대학교 마치면 군대가고 군대 제대하면 입사하고, 입사하고 14년 동안 일한 뒤 또 다시 유학와서 유학하는 동시에 프로듀서로 일했거든요. 그래서 이제 일은 그만 하고 한 번 놀아보자. 그런데 어떻게 놀아볼까 생각을 했더니 제가 2004년에 <블루아메리카를 찾아서> 라는 책을 쓸 때 록키산맥을 지나간 적이 있는데, 그 록키산맥 정상까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올라오더라구요. 자전거를 타고.

박인규 : 거기까지 올라갑니까? 거기가 해발 4000m까지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홍은택 편집국장:예, 그래서 그 때 너무 놀라서.. 그때 너무 놀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한 번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서, 준비를 해서 여행을 떠나게 됐습니다.

박인규 : 저도 워싱턴 특파원을 해봤고, 유학가셨거나 주재원 생활 하시던 분들이 끝내고 돌아오면서 자동차로 미국횡단 하신다는 분은 많이 들었지만, 자전거로 횡단하셨다는 분은 제가 처음 들은 것 같고, 혹시 기억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인으로는 최초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홍은택 편집국장 : 미국을 횡단하신 분은 저 말고도 그 전에 몇 분 계신 걸로 알고 있구요, 제가 트랜스아메리카트레이를 횡단했는데, 그 특정한 루트를 따라서 횡단한 사람은 제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우선 나이가 작년에 하실 때 나이가 마흔 살이 넘으셨는데, 부인도 계시고 아이들도 있을 텐데 집안에서 혹시 반대하시지 않았습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예, 그래서 제가 선수를 쳐서 같이 가자고 설득을 했죠. 그랬더니 아들과 집사람이 같이 안 가겠다고 해서, 그럼 혼자 가겠다고 해서 혼자 떠났습니다.

박인규 : 같이 가자고는 했다 내가... 그런 말씀인 것 같군요.

홍은택 편집국장 : 예. 그런데 미국에서는 가족이 함께 횡단하는 예가 적지 않습니다.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신 게, 다닌 곳이 대서양 옆에 있는 버지니아에서 태평양 옆에 있는 플로렌스까지라고 말씀하셨는데, 자전거 전용도로 같은 게 있는 겁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따로 없구요, 그냥 자동차 도로를 그냥 달리는 건데 그것을 선으로 연결해 놓은 것에 불과한 거죠.

박인규 : 78일 동안에 주파하셨다고 했는데, 하루에 한 100km 가까이를 달리신 것 같은데 우선 그 78일을 계속 길에서 지낸 거 아닙니까.. 준비 같은 걸 어떻게 하셨는지.. 준비, 비용, 잠은 어디서 주무셨는지, 여러 가지고 궁금한 게 많네요.

홍은택 편집국장 : 예, 준비하는 게 간단치 않구요, 그래서 몇 개월 걸리는데요. 제가 굉장히 준비가 부족한 게 가장 중요한 준비는 체력적으로 준비를 하는 건데요.

박인규 : 건강이 중요하니까요...

홍은택 편집국장 : 예. 그런데 제가 자전거 연습을 하던 도중에 사고를 당해서 왼쪽 어깨를 다쳐서 연습을 전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겨우 치료가 됐을 때 출발을 해야 돼서 체력적인 준비가 거의 안됐구요.. 그 외에 같이 갈 사람을 구하는 문제부터 어느 루트로 할 것인지 여러 가지 준비하는 과정이 많구요, 일단 비용은 제가 책을 한 권 번역을 해서, 번역하는 돈으로 여비를 마련했는데 번역을 학교 다니느라 못해서 여행 시작하할 때부터 번역을 시작해서 중반에 번역을 끝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비용을 마련하면서 여행을 해서 저는 비록 놀기 위해서 한 여행이지만 페달을 한 페달 밟을 때마다, 하나 바퀴 돌릴 때마다 제가 번 돈으로 간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실 때 동행을 말씀하시던데, 혼자 안 가시고 같이 팀을 만들어서 가게 되는 겁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예, 그렇습니다. 동행이 있으면 서로 바람도 가려주고 또 식사 준비량도 반으로 줄고 굉장히 이로운 점이 많은데요, 저도 그 동행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여러 출발하는 팀에 합류하겠단 의사를 밝혔는데 번번이 다 거절을 당했어요.

박인규 : 왜 그렇죠?

홍은택 편집국장 : 어떻게 보면 큰 기획이니까, 사람들이 일년 전부터 이미 팀을 다 짜서 제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두 달 남기고 제가 따로 팀을 조직하기 위해서 어드벤처 사이클링 어소세이션이라는 웹사이트에 광고를 냈어요. 같이 가자고. 그래서 실제로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표명했고 팀을 짜기 직전까지 갔었죠.

박인규 : 직전이란 말은 팀을 못 짰다는 말씀인가요?

홍은택 편집국장 : 그렇습니다. 잠재적인 팀원 중 한 분이 자기소개 이메일을 전체가 공유하는 이메일로 보냈는데, 척추장애인에 기억상실증이 있다고 소개하면서부터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서 결국 저 혼자 남게됐고, 저 혼자 그 분을 모시고 가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저도 그 분을 버렸죠. 그 죄값을 곧 치르게 되는데 젊은 동양에서 온 여대생 두 명이 같이 가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두 분이랑 같이 가려고 했는데 여행 나흘 전에 그 분들도 같이 못 갈 사정이 생겨서 결국은 혼자 가게 된 거죠.

박인규 : 그러면 철저히 혼자서 가신 거네요?

홍은택 편집국장 : 예.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에 하루이틀 동행한 사람은 있는데요...

박인규 : 이게 기록... 경기는 아니지만 6400km를 78일만에 자전거로 갔다...그러면 빨리 간 겁니까 늦게 간 겁니까 어떻습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보통이라고 봐야죠. 빨리 가는 사람들은 60일 정도에도 갈 수 있거든요.

박인규 : 하루에 100km씩 가는 군요.

홍은택 편집국장 : 그런데 일주일 내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없구요 하루는 쉬어줘야 됩니다. 그런 거 생각하면 하루에 100km 이상을 달려야 60일 정도에 되는데, 그러려면 그 분들은 보통 텐트를 안 치구요, 여관에서 자고 숙식도 다 식당에서...

박인규 : 아, 먹는 거나 자는 건 자기가 안하고...

홍은택 편집국장 : 예. 그렇게 해야 가능하구요, 장비를 가지고 하면. 78일이면
기록으로 보면 무난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박인규 : 저는 제일 궁금한 게, 자전거에 모든 필요한 짐을 싣고 달리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밥 먹는 거, 잠자는 건 어떻게 하셨는지...

홍은택 편집국장 : 식사도구도... 이를테면 버너, 코펠 이런 것들을 다 가져가야 되구요. 버너, 슬리핑백도 가져가야 되고, 다른 짐도 다 가져가야 되죠.

박인규 : 짐만 해도 무게가 꽤 되겠네요?

홍은택 편집국장 :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행에 대해서 잘 몰라서 준비가 부족한 것 중에 하난데, 제가 가지고 간 짐 무게가 한 40kg정도 됐어요. 그런데 보통은 30파운드가 상한선이라고 얘기하더라구요.

박인규 : 30파운면 15kg이 안 되는...

홍은택 편집국장 : 18kg입니다. 18kg에 맞춰서 짐을 싸야 되는데, 그걸 모르고 바리바리 짐을 싸고 가서 고통을 받았고, 짐을 하나둘 버리면서 제 욕심이나 그런 것들이 좀 더 간결해지고 소박해지고 그런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박인규 : 저는 홍은택국장에 비교할 순 없지만, 제가 대학교 2학년때 1976년도에 서울부터 부산까지 고물자전거로 한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7일 걸리더군요. 제 경험으로는 첫 날 한 서너 시간 갔을 때가 무지하게 힘들더라구요. 둘이 갔었는데 제가 그냥 길가에 뻗었습니다. 한참 가도 안 오니까 앞에 가던 친구가 저를 찾아왔어요. 막 화를 내고 그랬는데.. 홍은택 국장 같은 경우는 언제가 제일 힘들던가요?

홍은택 편집국장 : 저는 그전에 운동을 하던 게 있어서 그런지 첫날엔 그렇게 힘들었단 생각이 안 들구요, 그런데 미국 대륙을 가로로 잘라보면, 동부에선 애팔래치아 산맥이 제일 높구요 제일 높은 건 아무래도 서부의 록키산맥이지만요.. 그런데 길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경사각도가 굉장히 높아요. 록키산맥은 경사각이 제한이 돼서 10% 경사각 아래의 길들이기 때문에 산은 높더라도 그렇게 힘들지 않은데 애팔래치아 산맥은 그런 규정이 없을 때 만들어져서, 14%까지 올라가는 길도 많아서 길이 단지 높다 뿐 아니라 옆으로 구부러지고 그래서 그 때 굉장히 고통을 많이 받았습니다.

박인규 : 역시 오르막 길이..

홍은택 편집국장 : 그 때가 한 일주일에서 이주일 사인데요

박인규 : 계속 올라갑니까 그럼?

홍은택 편집국장 : 그냥 올라가면 좋은데 중간에 또 내려갔다가 올라간 걸 다 까먹고 다시 시작해야 되고 그렇습니다.

박인규 : 잠은 그럼 대개 텐트를 치고 잡니까? 민가 같은데서 주무십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아주 다양한 곳에서 잘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다양한 일단 캠프 사이트가 있고 마을회관 뒤편에서 자기도 하구요, 교회에서 자기도 하고,야구장 가면 코치들이 있는 박스 있지 않습니까? 그런 데서 자기도 하고.. 소방서에 딸린 건물 안에서 자기도 하고, 아주 다양한 데서 잘 수 있는 기회가 있죠

박인규 : 다니시다 보면 잠을 자거나 밥을 지어먹거나 할 때는 미국사람들도 많이 만나셨을 텐데.. 만나신 분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분들 있으면 한두 분 소개해 주시죠.

홍은택 편집국장 : 주로 저처럼 놀면서 횡단을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훌륭한 명분을 가지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평화를 위한 자전거 미국횡단', 또는 '아프리카 빈곤 및 문맹퇴치기금 마련'을 위한...

박인규 : 말하자면 하나의 이벤트로 하시는 분들이군요?

홍은택 편집국장 : 그런 분들이 많았습니다. 1마일 가면 몇 센트씩 기부를 받고, 또는 실명 위기에 빠진 자기 누이동생을 위해서, 누이동생의 눈을 고치기 위한 기금 마련을 하기 위해서 여행하신 분들도 있구요.. 평소에는 뵙기 어려운 고결한 인품을 가지신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박인규 : 지금 말씀하신 분들은 주로 같이 자전거여행을 가시는 분들이고, 다니다 보면 78일이니까 일흔 여덟 밤을 잤을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각 지역에 사는 미국 사람들을 만났을텐데..

홍은택 편집국장 :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버지니아에 있는 애프톤이란 곳에서 뵌 '준 컬'이라고 하는 할머닌데요, 올해 84살이시구요, 이 분의 별명이 쿠키레이디입니다. 왜 그런 별명이 붙었냐면, 그 분이.. 제가 간 트랜스아메리카트레이가 1976년에 개척이 됐는데요, 그때가 미국 건국 200주년입니다. 그래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 바이크 라이더들이 미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미국을 횡단하면서 개척한 길이구요. 그 바이크라이더들 한 이천명이 이 분이 사시는 집 앞을 지나갈 때.. 이 분이 횡단하는 분들한테 물도 갖다주고 과자도 구워서 내주고 그래서 길 위의 천사라고 불리는 분입니다. 그 일을 76년부터 지금까지 한 회도 거르지 않고 삼십 년 동안 해오셨습니다.

박인규 : 자전거 여행가들의 대모라고 할 수 있겠네요? 홍은택국장도 거기서 쿠키도 좀 얻어 드시고 그랬습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예, 그런데 이 분이 최근에 건강이.. 심장발작으로 쓰러지시기도 하고 넘어져서 손목도 부러지시고 해서 이제는 더이상 과자를 못 굽고요 대신 사온 과자로 대접하고 그랬는데, 그 분이 과자만 구워 주시는 게 아니라 바이크하우스라고 해서, 집을 마련해서 무료로 사람들이 투숙하고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시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그 바이크하우스는 그야말로 자전거인들의 전당이라고 할 만큼, 지금까지 거쳐간 분들의 사진과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보내온 그림엽서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습니다.

박인규 : 여행 끝나고 나서 감사의 편지라든가 그런 걸 보내셨나요?

홍은택 편집국장 : 예, 저도 연하장을 보냈죠. 그랬더니 바로 답장을 주셔서 아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박인규 : 예, 좋은 사람은 어디에나 항상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매일 달릴 순 없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어야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래도 78일을 혼자서.. 16000리를 가다보면 위험한 일도 좀 있었을 것 같고 몸이 아플 수도 그런 일은 없었습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기본적으로 차량통행이 빈번한 곳에서는 아무래도 차량운전자들의 자전거에 대한 배려가 적구요, 특히 시간을 다투는 화물차 운전하시는 분들은 아주 신경질적으로 밀어붙이고 해서 아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는데. 몸은... 처음에는 엉덩이가 되게 아픈데 그 게 여행 중반까지 갔어요 굉장히 아팠는데 그 게 사라졌구요, 제가 왼쪽 어깨를 다쳤는데 왼쪽 어깨가 아프질 않고 오히려 오른 쪽 어깨가 계속 쑤시더라구요. 이건 록키산맥을 넘을 때까지 쑤셔서 고통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몸살이 걸려서 누워서 못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박인규 : 거의 철인이시군요.

홍은택 편집국장 : 자전거를 타면서 점점 강해지는데요. 우리가 흔히 하는 얘기로 뇌세포의 몇 퍼센트 밖에 못 쓰고 죽는다고 하지만, 우리가 몸의 많은 가능성을 사장하고 사는 게 아닌가.. 그래서 잘 개발을 하면.. 몸의 잠재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캔터키주에선가는 아주 무시무시한 개들한테 습격을 받았다는데 무슨 얘깁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그쪽은 한국에 비유하면 죄송한데 강원도 같은 데거든요. 그만큼 산지이고 험하고 길이 좁은데 그 분들은 개를 풀어놓고 키우기 때문에.. 개들이 지나가는 자전거들을 공격하는 재미로 사나 봐요.

박인규 : 달려듭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예 달려드는데,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습격을 당했고, 실제로는 그 것 때문에 다쳐서 여행을 중단하고 포기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박인규 : 개들을 풀어놓는 이유는 뭔가요?

홍은택 편집국장 : 일단 개들을 가둬서 키울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없기도 하구요, 개가 누굴 습격해 다치게 했다고 해서 책임을 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해요. 왜냐하면 누구의 개가 물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데 거기 사시는 분들이 주로 영국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쪽에서 온 분들인데 원래부터 굉장히 폐쇄적인 씨족사회를 이루고 살고 있는 데다가 탄광이 개발되고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그분들을 광부로 쓰고, 돈을 다 가져가고, 이 사람들한테는 가난이 대물림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외지인들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입니다.

박인규 : 다시 또 제 경험을 말하면 새발의 피지만, 일주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게 뭐냐면 돈이 안 들더라구요. 하루 종일 자전거 타니까.. 끝나고 나면 힘드니까 딴 걸 못 하겠더라구요. 그런데 78일간 다니시려면 비용이 꽤 들었을 것 같아요.

홍은택 편집국장 : 예, 생각보다 많이 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박인규 : 얼마나 듭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계산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는데, 일단 잠은 거의 돈이 안 드는 방향으로 해결하더라도 무지 많이 먹거든요.

박인규 : 체력이 많이 소모되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최소 5000칼로리 정도는 하루에 소모되기 때문에.. 5000칼로리 정도를 먹으려면 엄청나게 먹죠. 식비가 많이 드는 것 같아요.

박인규 : 최근에 보면, 걸어서 실크로드를 몇 년 동안 다닌 사람도 있고, 차로 다닌 사람도 있는데.. 그런 얘길 하더라구요. 빨리 가는 기차나 차로 보는 풍경하고 걸어가면서 보는 풍경하고 자전거로 가서 보는 풍경이 다르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미국땅을 거의 두 달 반이상 다니셨어요. 그 전에 <블루아메리카를 찾아서>라는 책이 말하자면 미국이 굉장히 살기 좋은 데라고 하는데 약간 그늘진 데도 많이 있더라 그런 요지로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 자전거 여행을 하고 다니면서, 일반 사람들이 가면 주로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같은 대도시를 가는데, 대개 시골을 다녔을 거 아니에요.. 미국 사회가 참 어떻더라.. 한 마디로 할 순 없겠지만 느끼신 게 좀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홍은택 편집국장 : 그렇죠. 미국사회도 말씀하신 것처럼 양극화 돼있구요. 양극단 중에서 소외받은 지역을 주로 여행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제가 갔던 곳이 미국의 중심부인데, 인구 천명이 넘는 마을이면 큰 도시로 받아들일 만큼 낙후된 곳이구요. 미국은 주간고속도로라고 하는 인터스테이트가 발달 된 지역 주변에는 마을이 발달돼 있지만 인터스테이트가 지나가지 않는 곳은 사용화 되고 몰락하고 한국의 농촌과 다를 바 없습니다.
▲ ⓒkbs 1라디오(97.3mhz)

박인규 : 인심은 좋던가요?

홍은택 편집국장 : 차에서 내리면 인심이 좋은데요, 차를 타면 공격적으로 돌변하시는 분들이 제법 있어요

박인규 : 그건 무슨 말이죠?

홍은택 편집국장 : 도로는 자동차의 독점적인 소유물이지 자전거와 공유하는 공물이 아니라고 받아들이는..

박인규 : 그러니까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에 대해서 우호적이지가 않다?

홍은택 편집국장 : 예. 미국에서는 가끔 위협감을 느낄 적도로 적대적입니다. 저는 유럽을 여행 안했지만 비교해 보시는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미국에서 자동차 운전자들의 태도가 훨씬 공격적인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박인규 : 어쨌든 몸 상하시지도 않고. 78일만에 상당히 빨리 완주를 하셨는데.. 딱 끝내고 나서 개인적으로 인간적으로 버리는 걸 배웠다고 하셨지만, 어떤 걸 많이 느끼셨습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두 가지인데요. 첫째는 자기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생기더라구요
자기가 목표를 정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믿어주면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게 하나구요, 또 하나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이 꼭.. 현재가 미래를 위한 징검다리 밖에 안됐다는 생각이 많이 들구요, 그래서 실제 사는 건 미래와 과거 두 개지 현재는 살지 못하고 있다.

박인규 : 그 말씀은 지금을 철저하게 즐겨라?

홍은택 편집국장 : 예. 지금 비록 여행은 끝냈지만, 지금도 항상 여행하는 마음으로 현재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걸 느꼈습니다.

박인규 : 국내에 오셔서도 자전거를 많이 타십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예. 제가 지금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데요..그러면서 많은 것을..

박인규 : 어디서 어디까지 출퇴근 하십니까?

홍은택 편집국장 : 제가 지금 수서에 사는데, 수서에서 광화문까지 ..

박인규 : 우리나라는 자전거 타기가 상당히 위험하지 않은가요?

홍은택 편집국장 : 그렇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자동차 운전자들의 태도는 미국보다 우호적인 것 같아요. 한국사람들은 오히려 약자에 대해서는 더 배려하는 정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수서에서 광화문까지 다니시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요?

홍은택 편집국장 : 한시간이면 됩니다.

박인규 : 부럽습니다.

홍은택 편집국장 : 사회자님도 해보시면..

박인규 : 저는 일산인데 한 두시간 걸릴 것 같은데요.

홍은택 편집국장 : 더 빠릅니다. 일산에서 충정로까지는..

박인규 : 혹시 방송을 들으시고 나도 미국횡단을 자전거로 한번 해볼까 그런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미국횡단을 하려면 이거는 조심해라.. 준비해라.. 그런 충고 같은 게 혹시 있을까요?

홍은택 편집국장 : 미국 자전거 여행에 대해서 물어보신 분들이 몇 분 계신데 위험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많이 갖고 계시더라구요. 그런데 위험하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방심하시란 뜻이 아니고, 할만 하구요. 준비는 오래 걸리구요.. 그런데 준비하는 과정부터가 여행의 시작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인규 : 네.. 평소 제일 좋아하시는 말이 '혼자 꿈꾸면 백일몽이지만 여럿이 같이 꾸면 현실이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뜻인지 마지막으로 좀 말씀해 주시죠.

홍은택 편집국장 : 잘 아시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꿈꾸는 사람들이 함께 꿈꾸면서 만들어 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과거보다 지금이 훨씬 더 나아졌다고 보구요, 미래도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보는데, 그 것은 많은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꾸고, 이루기 위해서 함께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16000리도 꿈꾸고 그대로 실행하면 다 할 수 있다. 자전거 뿐만 아니라..같이 꿈을 꾸고 특히 현재를 충실히 살자.. 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홍은택 편집국장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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