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코크여, 안녕**
7월 9일 새벽 2시 반, 침낭 속에서도 추위를 느껴 온도를 재보니 2.3℃, 이번 탐사에서 가장 추운 날이다. 텐트 안에서도 5~6℃인데 평소 밤의 바깥 날씨다. 아침 6시 반이 되어도 3.5℃로도 온도가 올라가지 않더니 7시가 넘어 해가 뜨자 바로 15℃로 올라간다.
아침밥을 먹고 출발 준비하는 동안 땅속에 사는 동물들을 촬영하러 주변을 찾아 나섰다. 어렵지 않게 수수리크(Suslik, Cittelus, 설치류의 한 종류로 들다람쥐의 일종)를 화면에 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쑤록(Surok, 타르바간, 설치류의 하나)은 실패했다. 쑤록은 그 뒤로도 여러 번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만큼 내가 느리거나 쑤록이 빠른 것이다. 쑤록은 중앙아시아의 풀밭에 사는 다람쥣과에 딸린 오소리와 비슷한 짐승으로 고기와 털가죽을 쓰는데 페스트를 옮긴다고 한다. 쑤록은 알타이 사람들의 중요한 사냥감이다. 10월이 되면 쑤록의 털가죽이 많이 거래된다고 한다. 주로 풀뿌리를 먹고 사는데 겨울에는 깊은 겨울잠에 빠지기 때문에 알타이의 추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온천장 옆에 오랜 세월의 기억을 안고 조용히 앉아 있는 오보와 까이라도 사진 찍기에 좋은 그림이다.
주변에 많은 꽃들이 피어 있는데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색깔이 대단히 맑다. 건너편 산처럼 가까이 보이는 베르쉬나 사닥바이(Vershina sadakbai)산은 3298m의 높은 산으로 이 설봉의 눈이 녹아 내려 흐르는 강가를 배경으로 설치한 야영지의 아침 경치는 아침 안개와 함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반대편 우리가 내려가면서 함께할 추야산맥의 눈 덮인 봉우리들도 우리로서는 평소 보기 힘든 여름 경치다.
9시 15분, 떠나기 직전 니꼴라이에게 4일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우리들이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성금을 전했다. 시골 선머슴처럼 우직하게 생긴 니꼴라이가 환하게 웃으며 "스파씨바!(고맙습니다!)"하자 우리야 말로 정말 "스파씨바!"라고 해 모두 한바탕 행복한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을 해낸 뒤 생기는 가벼운 마음 때문인지 기분 좋은 출발이다.
1시간쯤 달렸는데 뒤에 따라 와야 할 니꼴라이 차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자 꾸바레프 교수가 찾으러 되돌아간다. 그리고 차 2대가 나타난 것은 11시 반이 다 되어서다. 니꼴라이의 특수차가 고장이 났던 모양이다. 그래도 우코크 탐사를 마치고 나서 생긴 고장이라 다행이었다. 물론 러시아 운전사들은 어떤 경우라도 차를 스스로 고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럴 경우에는 답사에 차질이 생기고 목표로 했던 유적을 못 보거나 빼먹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고립된 지역에서 차량의 안녕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림 44) 특수차 운전사 니꼴라이
그림 45) 떠날 채비, 짐이 적지 않다.
1시간 이상 기다렸지만 그 시간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멀리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진 추야산맥의 눈 덮인 봉우리들, 고개 위에 호젓이 남아 있는 오보와 까이라, 그리고 수많은 쑤록의 땅굴들,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며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쑤록 촬영은 이번에도 실패였다. 쑤록은 땅굴 파는 데에 엄청난 능력을 가진 전문가다. 쑤록은 몸집이 강아지만큼 크기 때문에 굴을 크게 파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굴을 파면서 커다란 돌멩이들도 밖으로 집어 던져 잔디밭 같은 초원에 돌멩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그 부분이 좀 두툼하게 돋아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쑤록을 찍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그런 굴들이 땅 속에서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어 어디서 튀어나올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리와 냄새에 민감해서인지 차로 달릴 때는 여기저기서 뛰어다니던 쑤록이 우리가 가까이 기다리고 있을 때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림 46) 고개 마루에 있는 오보와 까이라
그림 47) 우코크를 달리는 환상의 콤비
***알타이 원주민 킵차크족의 유르타**
11시 반에 떠나 20분 쯤 달리다 꾸바레프 교수가 갑자기 왼쪽에 있는 원주민 집으로 차를 돌린다. 킵차크족의 유르타(2322m, N49°33'623", E88°13'336")라고 한다. 이번 답사에서 처음으로 알타이 사람과 대면하게 된다. 제를류-꿀(Zerlyu-kul)호수의 동쪽 끝에 자리 잡고 가축을 기르고 있는 원주민인데 호수가 있어 풍부한 수원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 알타이인들의 여름 생활은 유목민의 전통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거처는 유르타라는 천막집이고, 유르타와 함께 아주 중요한 가축들의 축사는 대부분 통나무집이다. 일반적으로 눈이 많이 오는 지역 집들의 지붕은 눈이 잘 흘러내리도록 세모꼴이어야지만 알타이의 통나무집 축사는 모두 지붕이 평평하다. 그것은 그 지붕에 가축의 똥을 말려 연료로 쓰기 때문인 것 같다.
전통적인 유목생활을 하고 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편리함도 함께 추구한다. 바로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번 방문한 킵차크족은 특이하게 3인용 오토바이를 이용하고 있었다. 꾸바레프 교수가 이 집을 소개하면서 알타이인이라고 하지 않고 킵차크족이라고 한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타이인이라고 하는데 그 알타이 원주민도 킵차크족, 카자흐족 같은 종족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킵차크족은 옛날 킵차크한국(Kipchak Khanate)의 후예들이다. 킵차크한국은 금장한국(金帳汗國)이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미국이나 유럽쪽에서도 "Golden Horde"라고도 알려져 있다. 킵차크족은 원래 킵차크대초원(Steppe of Kipchak)에서 살았던 민족인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통로를 포함하고 있어 군사, 경제적 요충지였다. 현재 이 지역은 러시아ㆍ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의 3국에 걸쳐 있는데 대부분의 유목민들이 그렇듯이 기록이 없어 정확한 역사를 알기 힘들다.
킵차크족이 역사의 무대에 크게 등장한 것은 몽골이 러시아를 정복하고 13세기 중엽 킵차크한국(汗國)을 세우면서부터다. 이 때 뚜르크계인 킵차크족은 북쪽의 불가르, 서쪽의 슬라브 및 동로마, 동남의 이슬람권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여 크게 번영했다. 그러나 킵차크한국은 오래 가지 못하고 14세기 말에 티무르 군대에 의해 멸망한다. 그 뒤 킵차크족들은 다시 그들의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지금의 러시아, 카자흐스칸 같은 나라의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알타이 지역도 옛날 킵차크한국의 범위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곳에 킵차크족이 사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오전에 차가 고장이 나서 시간을 많이 보내 이 원주민에 대한 자세한 취재를 하지 못해 아쉽다. 다만 옛날 몽골의 힘을 업고 러시아 땅까지 차지한 킵차크족들이 러시아의 한 구석에서 자신의 역사를 잊고 사는 모습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읽는다. 이들은 한 때 킵차크대초원을 중심으로 유라시아 접점지역을 호령했다는 자신을 모르고 있다. 아니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결국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꾸르간, 꾸르간, 꾸르간**
1시 반, 호젓한 개울가에서 낮밥을 먹었다. 빠른 시간 안에 끝내기 위해 이번에도 라면을 먹었다. 화동이가 드디어 코피를 터뜨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있어 다행이다. 30분간의 짧은 낮밥 시간이지만 그동안 플루스닌 교수로부터 알타이의 특징적인 꽃과 약초에 관한 공부를 했다. 플루스닌 교수는 원래 생물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실습을 통해 많은 야생화를 알고 있었다. 이번 탐사에서 알타이 식물을 공부하는 데 플루스닌 교수가 큰 도움이 되었다.
꾸릴스끼 차이(Kurilskii Chai) 물가에 자라는 나지막한 나뭇가지에 노란꽃이 피는 식물인데 주로 높은 지역에서 자란다. 노란 꽃과 초록색 잎은 차를 끓여 먹는데 시내에서는 아주 높은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꿀 1㎏이 50루블(2달러), 설탕 1㎏이 20루블인데 이 차는 설탕 값과 같은 ㎏당 20루블이라고 한다. 한 가지 아주 흥미로운 것은 우코크를 비롯해 빠지릭 꾸르간을 발굴했을 때 널 속의 주검 위와 아래 바로 이 꾸릴스끼 차이를 깔고 덮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빠지릭시대에도 이 식물이 아주 이로운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즈베로보이(Zveroboi)도 노란 꽃이 피는데 37가지 통증에 쓰이는 약초이고, 띄스야첼리스트니크(Tysyachelistnik)는 100가지 병에 효과가 있는 만병통치 약이라고 한다. 끝으로 하나 더 소개하면 차브레쯔(Chabrets)라는 꽃인데 이 꽃은 바로 차로 끓여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알타이를 답사할 때는 유용한 식물이다. 이 차브레쯔는 알타이 대부분의 산속에 있기 때문에 답사 때 실제 차를 많이 끓여 먹는다고 한다. 이리나가 저녁밥 먹을 때 차브레쯔를 끓여서 주었는데 향긋하고 맛이 좋았다.
낮밥을 먹고 바로 큰길 가에 있는 꾸르간을 조사했다. 이정표가 48km을 가리키는 지점인데, 꾸르간과 제사 터가 있다. 제사터는 돌덩이 8개를 둥그렇게 세웠고 가운데 또 하나의 돌이 세워져 있다. 발굴 결과 이곳에서는 항아리에 말뼈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꾸르간은 2~3명이 합장된 것인데 길가라 그런지 도굴 당한 상태라고 한다. 꾸르간 앞에는 '발발'이라는 선돌이 상당히 길게 늘어서 있는데 이것은 말을 묶었던 곳이라는 설과, 전쟁 때 무덤 주인이 적군을 죽인 숫자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45~48km 지점에 꾸르간 집중되어 있는데 근처에만 300~400기가 넘는 꾸르간이 있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만 20~30여 기 정도가 눈에 보인다. 가는 길에 많은 꾸르간을 지나쳤는데 처음 꾸르간을 보았을 때는 하나하나 자세하게 기록을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이제는 '어느 지점에 꾸르간이 집중되어 있다'는 식으로 적고 있다. 옮기는 발걸음마다 고대 유적지와 만나게 되는데 흔히 하는 말로 "그냥 발길에 차인다"는 표현이 생각날 정도였다.
3시가 조금 넘어 검문소에 도착했는데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들어갈 때 10분, 나갈 때 1시간이 걸리는 이상한 검문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군인 왼쪽 가슴에 혈액형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Ⅰ(O) Ⅱ(A) Ⅲ(B) Ⅳ(AB) RH+-로 표시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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