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타이문화의 원류로 가는 입구 추야스텝**
추야스텝은 추야 강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추야강의 모든 발원지가 바로 이 지역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추야스텝 때문에 추야강이란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른다. 추야스텝은 2구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서북쪽에 있는데 주로 남추야산맥에서 발원하는 강들이 흐르면서 이룬 고원지대의 스텝이다. 우리가 꾸라이는 지나면서 북추야산맥을 완전히 벗어났으며, 여기서부터 만나는 차간우즈(Changan-Uzun)강, 엘란가쉬(Elangash)강, 꼬꼬죠끄(Kokozëk)강은 모두 3000m가 넘는 남추야산맥을 발원지로 하고 있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알타이공화국은 높고 깊은 산지로 형성되어 있다. 맨 남쪽은 3000~4000m의 알타이 산맥이 카자흐스탄ㆍ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고, 이어서 해발 2000~3000m의 높은 우코크고원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우코크고원과 우리가 달리고 있는 추야도로 사이에 3000m가 넘는 산들로 이어진 2개의 추야산맥, 즉 북추야산맥과 남추야산맥이 다시 가로막고 있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서북지역 추야스텝에 비해, 그보다 몇 배나 더 넓은 광활한 동남쪽 추야스텝 모두 러시아와 몽골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싸일류곔(Sailyugyem) 산맥에서 발원하는 강들이 만들어낸 고원지대 스텝이다. 우리가 앞으로 올라갈 우코크고원은 바로 알타이산맥에 둘러싸여 있는데, 이 알타이산맥은 러시아, 중국, 몽골의 세모 지점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중국과 몽골의 국경을 이루면서 몽골쪽은 고비사막까지 이어지고 중국 쪽은 중가리아 분지가 된다. 알타이산맥이 앞에서 본 세모 지점에서 러시아와 몽골을 국경으로 하는 동북쪽으로 계속되는 것은 싸일류곔산맥이 된다. 그러니까 알타이산맥이 알타이산맥과 싸일류곔산맥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싸이류곔산맥에서 추야스텝으로 흘러드는 강 가운데 중요한 것은 차간부르가즈이(Chagan-Burgazy)강, 울란드뤽(Ulandryk)강 들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알타이산맥과 싸일류곔산맥 양쪽에서 발원하는 수원을 다 받아들여 북추야산맥과 싸일류곔산맥 사이로 흘러 추야스텝으로 흘러가는 강이 따르하뜨(Tarkhat)강인데 바로 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우코크로 가는 길이고, 우코크에서 계속 가면 카자흐스탄까지 이어진다.
내가 이처럼 장황하게 여러 강을 설명하는 것은 이 모든 강의 상류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높은 고대 유적들이 남아 있고 앞으로 우리의 답사도 주로 이런 강을 따라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적지가 있는 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적지가 강의 이름을 그대로 빌려 쓰고 있다는 점도 어려운 강 이름들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다. 추야스텝은 알타이문화의 원류를 찾아들어가는 입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많은 문화유적을 안고 있다. 어쩌면 지금부터 수 천 년 전 알타이문화가 꽃 피울 당시는 지금보다 더 좋은 기후조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추야스텝은 평지의 길이가 70km, 너비가 10~40km이고, 해발 1700~2000m 높이에 위치해 있으며, 눈 덮인 산맥들로 둘러싸여 있다. 식물은 꾸라이스텝보다 빈약해 가끔 가시가 많은 관목들과 건조해 갈라진 땅에 쑥 덤불만 보일 뿐이다. 이 지역 년 평균 기온은 -6.7℃이고, 겨울에는 -62℃까지 내려간 해가 있으며, 여름에는 31℃까지도 올라간다. 이곳은 러시아에서 가장 건조한 곳으로 연 강수량이 150mm를 넘지 않고, 얼어 있는 지면은 15~90m 두께에 이른다. 봄과 여름에는 자주 먼지폭풍이 불고, 그 밖의 계절에는 바람이 불지 않고 계속 햇빛이 비추인다. 가을이 가장 좋은 시기에 속하며, 추야스텝은 러시아에서 낙타를 기르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추야강은 급하게 흐르지 않고 조용하고 잔잔하게 흐른다. 강물은 맑고 조금 노란빛을 띄는데, 악뚜루강 아래 추야스텝 안에서만 탁한 하얀색이다. 스텝 안에는 얕은 호수(깊이 1~5m)가 많다. 최근 그 가운데 몇몇 호수에서 치료에 효과가 있는 광물성 진흙을 발견했다고 한다.
***새로 발굴하는 바위그림 이르비스뚜**
오후 3시 5분, 우리가 지나는 차간우즈는 바로 남추야산맥의 설봉에서 눈이 녹아내려 만들어낸 여러 강줄기를 모아 이루어진 큰 강이다. 상류에서 흐르던 차간(Chagan)강과 딸두라(Taldura)강이 벨띠르(Beltir)에서 합쳐져 차간우즈강이 되는데 추야스텝에서 가장 큰 강이다. 이렇게 흐르는 강 덕분에 온통 사막 같은 환경에도 물가에는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러나 얼마를 더 가니 도대체 나무라는 것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황량한 경치가 나타난다.
차간우즈에서 12㎞를 더 달려 3시 23분 오르똘뤼끄(Ortolyk, 877km)에 다다른다. 해발 1772m로 상당히 높은 지점이지만 강 주위를 빼놓고는 사막지역이다. 여기서 산악지역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기름을 넣는다. 많지 않는 주민들이 사는 정말 척박한 사막 같은 지역에 주유소가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주변에 슬레이트로 이은 집들이 보이는데 사람들이 별로 나타나지 않아 적막감마저 감돈다. 이 작은 마을은 바로 엘란가쉬강과 꼬꼬죠끄강이 츄야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중요한 지점이다. 마을 안쪽으로는 두 길로 흐르는 추야강이 흐르고 있다.
다시 오후 4시 40분. 추야도로를 떠나 추야강을 건너 남쪽으로 남추야산맥을 향해서 달린다. 물론 비포장도로다. 다리를 건너 얼마가지 않아 바로 도로를 벗어나 길도 없는 스텝지역을 달리기 시작한다. 어떤 곳은 돌밭이라고 불러야 할 형편이다. 주변의 풍경은 사막 기후에서나 살 수 있는 키 작은 식물들이 대부분이다. 척박한 땅이다. 꾸바레프 교수는 타고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방향 감각과 운전 실력으로 흔적도 없는 길을 찾아 어디론가 향해가고 있다.
오늘의 목표는 31㎞를 더 들어간 산속에 있는 이르비스뚜강 상류의 바위그림 발굴장이다. 그러나 알타이 귀신으로 자처하는 꾸바레프 교수마저도 길을 잃고 헤매는가 하면 유리 할아버지가 모는 차가 오지 않아 한참씩 기다리는 일도 있었다. 지나는 길에도 꾸르간을 수시로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고대 문화의 흔적이 곳곳에 널려 있다(꾸르간떼 - 1804m, N50°00'398", E88°26'582"; 주위에 스키타이시대 꾸르간 - 1811m, N49° 59'995", E88°25'076")
평지가 끝나고 돌산지역으로 들어서자(2149m, N49°51'843", E88°17'019") 주변 경치가 전혀 달라진다. 길이라고 하기에는 돌산 같은 곳을 잘도 달리는 러시아제 UAZ차가 참 경이롭다. 5시 40분, 돌산을 넘어가니 좁은 초원지대가 나타나며 꾸르간과 앞에 늘어서 있는 선돌 4기가 나타난다(해발 2301m, N49°50'164", E88°12'710"). 여기서부터는 이르비스뚜강 가로 길이 잘 나 있고 멀리 발굴단 야영지가 보인다. 참 험난한 찻길을 무난하게 도착하여 안심이 된다.
6시 20분 우리가 야영지(2354m, N49°48'844", E88°10'720")에 도착하니 갑자기 천둥이 치며 먹구름이 몰려온다. 우리는 서둘러 텐트를 치고 나니 조금 있다 비가 내린다.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 옷을 꺼내 입었다. 7시쯤 작업하러 갔던 조사반 5명이 내려오는데 어제 깔박-따쉬에서 만났던 꾸바레프 교수 아들 일행이다. 오늘은 첫날이라 한나절만 일했다고 한다.
8시 반부터 한 시간 정도 저녁밥을 먹었다. 큰 식당텐트 안에서 우리팀 8명과 발굴팀 5명이 빽빽하게 앉아 쇠고기 통조림을 넣은 마카로니로 즐거운 저녁 한 때를 보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곳의 대체적인 상황과 내일의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꾸바레프 교수의 아들이 다른 조사팀들과 암각화를 찾다가 갑자기 날씨가 나빠져 혼자 길을 잃고 캠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5명이 조사 작업을 하고 있는데 팀장인 꾸바레프 교수의 아들 글렙 씨, 그리고 3명의 고고학도와 1명의 미술학도가 함께 조사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작업은 미국ㆍ몽골과 합동으로 하는 조사여서 얼마 전에 미국의 학자가 다녀갔다고 한다. 합동 발굴이라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자금을 대고 실질적인 작업은 모두 러시아 쪽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산지 알타이에서는 강과 바위가 있는 지역에는 거의 대부분 암각화가 발견된다고 한다. 깔박-따쉬도 많은 수량이 분포하지만 '엘란가쉬'라는 곳은 현재 발표된 암각화만 3만여 점이며 아직 발표되지 않은 것도 그 정도가 된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원래 이번 답사에 엘란가쉬 탐사도 들어 있었는데 내가 우코크 고원을 고집하여 내년으로 미루었다. 이렇게 훌륭한 사이트를 가지고 있는 이네들이 참 부럽게 느껴졌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 이번 탐사에서 가장 관심사였던 우코크고원 가는 일을 상의하였다. 오늘 왔던 길은 문제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길이라고 한다.
"우코크는 국경수비대나 만취한 운전서만 가는 곳이다."
우코크를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우리가 타고 왔던 차는 갈 수가 없기 때문에 하루에 100달러씩 주기로 하고 대형 특수차량(프로바데니크)을 부탁하여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현지를 다녀본 경험이 있다는 특수차량 운전사에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라고 물었더니, 비, 눈, 국경수비대의 허락 같은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자기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꾸바레프 교수의 국제학술대회 초청 등 내년에 합동으로 발굴하는 문제도 함께 논의하느라 밤 10시가 넘어서야 일을 마쳤다.
화동이가 낮에 코피가 흐르더니 31㎞를 오는 동안 거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을 느낀다. 편두통이 심해 감기약만 먹였다. 원철이도 약간의 편두통을 느낀다고 하는데 고도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해발 2355m 고지에서 보내는 첫 밤은 웬일인지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한 밤중에 온도를 재보니 밖이 6~7℃, 텐트 안이 13℃다.
그림 5) 이르비스뚜의 캠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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