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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합당 이후 대변인의 말도 갈수록 거칠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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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3당합당 이후 대변인의 말도 갈수록 거칠어져"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03/29] 회고록 '대변인' 펴낸 박희태 국회 부의장

5선 국회의원이며 국회부의장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박희태 의원.. 박의원은, 민정당과 민자당 시절..4년 3개월 동안, 대변인을 지내며, 타고난 순발력과 풍부한 유머를 발휘했던 정치인입니다. 지금도 많이 쓰이는 "정치 9단", "국회의원이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 이란 말도 역시 박희태 부의장이 대변인 시절 만들어낸 말들인데요. 최장수 대변인 기록을 갖고 있는 박 부의장이, 이번에 자신의 대변인 시절의 에피소드와 정치 뒷이야기를 담은, 〈대변인〉 이라는 회고록을 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박희태 국회부의장을 초대해, 그가 대변인 시절에 함께 했던 정치 사건들의 뒷 이야기.. 그리고 최장수 대변인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이런 이야기..함께 합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박희태, 국회부의장입니다. 박희태 부장의장은, 제13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후 검사로 활동했고, 1988년 부산고등검찰청 청장을 끝으로 국회의원에 출마, 현재까지 5선 국회의원입니다. 지금까지 법무부 장관,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했고, 민정당과 민자당 시절 4년 3개월간 대변인을 지냈습니다. 현재 제 17대 국회 부의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박희태 부의장님, 안녕하십니까? 박희태 의장: 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정치인이 되시고 난 이후에 대변인뿐만 아니라 법무부 장관, 원내총무, 당대표까지 하셨는데요. 회고록을 대변인을 주제로 내셨어요. 그래서 혹시 대변인 활동에 대한 애착이 있었던 건지 또 어떤 계기로 이런 회고록을 내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희태 부의장 : 네. 대변인이 끝난 지가 십 수년이 됐습니다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때 정치가 참 재미가 있었다, 요즘도 어떻게 그런 정치 다시 볼 수 없겠느냐..그때 재미있던 이야기들을 좀 엮어내서 국민들에게 다시 그때를 생각하면서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없겠느냐..이런 이야기들이 있어서 제가 그 시절 것만 뽑아서 책을 엮어 봤습니다.

박인규 : 요즘에도 언론에서 '총체적 난국이다..' 이런 말들을 많이 쓰는데 이것도 박 부의장께서 만들어 내신 말이 맞습니까?

박희태 부의장 : 네. 제가 만들어 냈습니다.

박인규 : 그 당시에는 어떤 상황이었길래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됐습니까?

박희태 부의장 : 그때가 90년 봄인데요. 나라 전체가 무너질 듯한 혼란의 위기였습니다. 그때 이 KBS도 사 장 퇴진을 요구하면서 노사파업을 해서 100여일이 넘게 파업을 하다가 공권력이 투입되어 서 대략 100여명이 연행이 되고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에도 대 규모 스트라이크 사건이 일어났고 또 정치적으로는 그때가 3당이 합당한 직후입니다. 그래 서 3당 합당에 참여하지 않은 김대중 총재의 평민당이 연일 그 3당 합당의 부당성이라고 할까, 이것을 부각시키면서 공세를 펼쳐왔고요.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데모가 끊 이지 않았고, 또 우리 민자당 중앙당사에까지 학생들이 들어와서 농성에다가 화염병을 던지 고 불을 내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부동산 값이 치솟고 전세, 월세 값도 올라서 서민들이 아주 경제적으로 어려웠고요. 수출이 적자로 판정이 되고 물가는 오르고 이래서 나라 전체가 정말 혼란과 불안의 도가니로 빠졌습니다. 그래서 정부와 우리 그때 여당인 민 자당이 당정 연석 회의를 해서 이 어려운 사태를 어떻게 우리가 규정을 하느냐.. 어떻게 규정을 하고 또 그것에 대해서 대책을 세울 것인가..이것을 의논하다가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나왔는데요. 그런데 경제부총리로 있던 이성윤 부총리가 영어로 현재의 이 상황은 'Total Crisis'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대체 그것에 동의하고 이래서..그날은 우리 상황 진단 은 지금 'Total Crisis' 로 이렇게 규정한다..이렇게 하는 것이 단순한 진단 뿐만 아니라 처 방적 효과도 있다..이렇게 국민들에게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데 제가 기자실로 오면서 생각 해 보니까 'Total Crisis'라는 말만 했지..우리말로 한 일이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이것을 어떻게 우리말로 고쳐야겠다 싶어서 제가 생각한 것이 그냥 이것을 밋밋하게 번역하면 그냥 '전체적 위기' 그런데 전체적이라는 말이 너무 진부하고 좋은 말이 없나..이렇게 생각하다가 총체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까지는 총체적이라는 말이 전혀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사전에서 낮잠 자던 용어인데..그리고 Crisis를 위기라고 하려고 하니까 총체적 위기..이건 너무 심하다..한 단계를 낮추어서 난국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총체적 난국'이라는 것이 탄생이 됐는데요. 와서 기자들이 브리핑을 낼 때 그 말이 아주 신선하고 국민들에게 아주 이 현 시국을 정말 인식을 잘 시키고 또 이것에 대한 경각심도 갖게 하는 좋은 용어라고 하면서 대서 특필로 총체적인 난국이라고 했습니다.

박인규 :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역시 명 대변인답게 말씀하셨군요. 요즘도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도 있어요. 요즘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희태 부의장 : 요즘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총체적 난국'이라고 진단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비해서는 훨씬 완화된 총체적 난국이라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제가 앞에서도 소개해 드렸지만 '정치 9단'이라는 말씀도 만들어 내셨고, '총체적 난국' 이라는 말씀도 만들어 내셨는데요. 혹시 그 외에 말하자면 박희태 부의장께서 만드신 새로운 그런 상황을 설명하는 그런 말이 있을까요?

박희태 부의장 : 많이 있었는데 갑자기 잘 생각이 안 나는데요.

박인규 : 제가 듣기로는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박희태 부의장 : 네. 그런 말도 있었죠. 그때는 당시 저희 당에서 96년 선거가 끝난 직후입니다. 그때 우리 여당이 과반수에서 조금 모자랐어요. 의석이..마침 무소속으로 당선된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가 영입을 했습니다. 그래서 과반수가 넘었는데 그렇게 되니까 야당에서 인위적으로 정계를 개편했다고 해서 국회 개원에 협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원을 못하고 지났습니다. 그러면서 자꾸 연일 공격을 하기 때문에 제가 그랬습니다. 그 전에 야당은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많은 의원을 빼다가 국민회의라는 그런 정당을 만들었거든요. 그러면 자기들은 남의 정당에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자당 국회의원으로 모두 삼았는데 우리는 무소속인데 왜 그것을 문제를 삼느냐? 그래서 제가 국회에서 '세상에 요즘 웃기는 말이 있다, 자기가 부동산을 사면 그것은 투자이고, 남이 사면 투기이고..그리고 자기의 여자 관계는 로맨스이고 남의 여자 관계는 스캔들이다, 지금 이런 웃긴 이야기들이 있는데 지금 야당의 주장이 이와 같다..그러니까 빨리 철회해라..' 제가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박인규 : 이번 책에 나온 정치 비화라고 할까요? 몇 가지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좀 전에 총체적 난국의 원인 중의 하나로 3당 합당을 말씀하셨는데 이번 책에 따르면 그 당시에 김영삼 총재와 김종필 총재께서 서로 모르셨다..합당 당일날까지도 자기하고만 하는 줄 알았다..이렇게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정확하게 맞습니까?

박희태 부의장 : 네. 제가 그 당시에 보고 들은 것은 그렇습니다. 3당 합당이라고 해서 그 당시 여당인 민정당과 야당인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그리고 김종필 총재의 신공화당이죠. 이 3당이 합쳐서 하나의 정당이 탄생을 했는데요. 그 합당의 과정이 3개 정당의 대표가 같이 의논을 한 일이 전혀 없습니다.

박인규 : 한 번도 없습니까?

박희태 부의장 : 한 번도 없습니다. 이 합당을 추진한 주체는 물론 노태우..당시 대통령이고 그 대통령 밑에 그것을 추진하는 실무 책임자가 있었겠지요? 그 분이 각각 이렇게 선별해서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니까 민주당과만 이야기를 하고 또 한편으로는 공화당과만 이야기하고 이래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합당 선언이 되는 그날까지 자기들하고만 이렇게 합당을 하는 줄 알았다..

박인규 : 합당 선언을 한 그날 김영삼 총재라든가, 김종필 총재께서는 상당히 좀 당황하셨겠네요?

박희태 부의장 : 당황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 저희들은 그것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청와대에 3당 합당 선언을 한다, 노 전대통령과 양 김 총재가 모여서 한다고 해서 저희는 일종의 형식적인 그런 회의인 줄만 알고 금방 끝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오후 2시인가에 회의가 시작됐는데 저녁 때가 되어도 회의가 끝나질 않아요.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 하니까..청와대에 있는 비서들이 굉장히 불안해 하면서 왔다 갔다 해서 "왜 그렇습니까?" 하니까 "이 문제가 간단치 않습니다." 하면서 자기들도 궁금해서 그 비서들이 시키지도 않은 차를 배달하는 척 하면서 들어가서 회담 분위기를 살펴 보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박인규 : 자칫하면 3당 합당이 안 될 수도 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박희태 부의장 : 안 될 수도 있었죠. 그래서 그 회의가 장장 9시간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마무리 결론을 내고 또 여러 가지 조건을 타결했겠죠. 그렇게 해서 밤늦게 국민 앞에 나와서 3당 합당 선언을 하면서 이것은 구국의 결단이다..이렇게 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그 뒤에 3당 합당 이후에 여러 가지 합의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자꾸 분쟁이 생기게 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3당 합당을 통해서 당시까지 원내 소수당..과반수를 되지 않았던 민자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게 된 것이군요. 그래서 노태우 당시 전대통령께서는 구국의 결단으로 말씀하셨지만 김대중 총재께서는 3당의 야합이다라고도 하셨고, 현재 노무현 대통령 같은 분은 나는 그것에 참여하지 않겠다..이런 말씀도 있었고요. 아직도 구국의 결단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희태 부의장 : 구국의 결단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인 레토릭(rhetoric), 정치적으로 일종의 조금 과한 그런 수사이다..대국민 수사라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보면 그때 여당인 민정당이 과반수가 되지 못해서 어려웠거든요. 정국을 끌고 가기..그러니까 우리는 구국은 아니더라도 어려운 고난의 결단인 '구당의 결단' 정도는 된다..(웃음)

박인규 : 일각에서는 87년 대선에서 양 김씨가 분열한 것과 그 다음에 이 3당 합당이 말하자면 우리나라 정치에서 지역주의를 굉장히 심화시킨 요인 중에 큰 요인이다..라고 지적을 하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희태 부의장 : 글쎄요. 그 당시 3당 합당 추진 배경을 보면 노태우 민정당 총재께서 처음에는 김대중 총재와 합당을 하려고 추진을 했습니다. 저도 그 말을 그때 들었는데..그런데 이리 저리 이야기가 되다가 그 DJ쪽에서 'NO'라고 해서..

박인규 : 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박희태 부의장 : 글쎄요. 제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먼저 그쪽을 했다고 합니다. 안 되니까 YS쪽, JP쪽..이렇게 교섭을 해서 3당 합당이 일어났는데요. 그런데 3당 합당이 지역주의를 심화시켰다고 생각은 별로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충청권이 모두 함께 들어왔으니까..영남권과 충청권이..그리고 이 3당 합당으로 인해서 솔직한 이야기로 우리 정치에 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은 사실입니다.

박인규 : 어떤 면이 부정적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박희태 부의장 : 그 합당 전까지는요. 정치가 정말 타협과 서로의 토론 같은 것이 있는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민주적인 정치의 원형을 보이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박인규 : 최소한 타협과 대화의 정신은 있었다?

박희태 부의장 : 네. 왜 그런가 하면, 어떤 한 정당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독선, 독주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것이 나눠져..

박인규 : 그 당시 상황을 황금분할이라고도 했죠?

박희태 부의장 : 그렇죠. 황금분할이라고 했죠. 민정당이 제 1당인데 그것도 과반수에서는 이십 몇 석이 부족하고..

박인규 : 타협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박희태 부의장 : 네. 어떤 정당 하나라도 잡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고 또 야당은 세 개의 정당이 있는데 세 정당이 모두 뭉치지 않으면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그래서 서로간의 소위 말하는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정당 입장에서는 민주당과 공조한 일도 있고 또 김종필 총재 당과도 협조를 해서 법안을 통과시킨 일도 있고, 또 야당은 야 3당끼리 모여서 법안을 통과시킨 일도 있고요. 이것이 3당 합당 때문에 모두 없어지고 정치가 그야말로 대결과 투쟁 이런 식으로 나가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인규 : 이제는 지나간 얘기이기는 하지만 그때 합당을 하지 않고 그런 식으로 계속 했더라면 우리나라의 정치문화가 더 발전할 수 있었다..?

박희태 부의장 : 네. 그런 면만 따진다면 저도 동의합니다. 우리의 정치문화라고 할까, 타협의 정치 전통이 상당히 지금은 성숙이 되지 않았을까..안타까운 그런 생각은 있습니다.

박인규 :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이 되실 때 그 현대 그룹의 정주영 회장께서도 출마를 하셔서 말하자면 시중에서는 괘씸죄에 걸린 것이 아니냐..그런 말도 있었는데요. 제가 듣기로는 당선이 되시고 난 다음에 정주영 회장이 찾아와서 무언가 사과를 했다고 할까요, 그 당시를 기억하십니까?

박희태 부의장 : 네. 기억합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이 오신 것은 아니고요. 회장을 대신해서 그 분에 버금가는 책임지가 오셨습니다. YS가 오라고 해서 온 것은 아니고 자진해서 와서 YS를 만나겠다고 해서 만났는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그 당시 마침 우리 김 당선자 방에 저 혼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서가 들어와서 누가 오셨다고 해서 들으니까 현대 쪽 사람이라서 제가 일어나서 나오려고 했더니 "대변인, 앉아 있으시오." 라고 해서 제가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데..'하면서 할 수 없이 앉아 있었는데 그 분이 들어 오셔서 이제 두 분이 대화를 하셨어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와 세 사람만 앉아 있는데 그런데 그쪽 현대 쪽에서 오신 분은 "여러 가지 대선에서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 어떻게 우리가 후보가 안 되려고 했는데 불가피했다.."는 그런 그 배경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듣기가 아주 민망해요. 그래서 제가 또 일어났거든요. "제가 일이 있어서 좀 가봐야겠습니다." "안 된다고..앉아 있으라고.." 그래요. 제가 세 번을 일어서다가 할 수 없이 붙들려서 그냥 있는데 제가 지금 도저히 옮길 수도 없고 참 민망해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으로 김영삼 당선자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업은 용서하되,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 뒤에 현대 문제는 그렇게 됐고요.

박인규 : 그런데 그 뒤로는 기업도 용서하지 않으신 것이 아닌가..싶은데요?

박희태 부의장 : 기업은 제가 볼 때 자세히 잘 모르겠습니다. 현대가 그 뒤에도 다 잘 된 것을 보면 모두 용서가 되지 않았겠습니까?(웃음)

박인규 : 지금부터는 앞으로의 얘기를 여쭤보겠습니다. 좀 전에 말씀하시면서 3당 합당 이후에 상당히 타협과 협상의 정신이 실추가 된 것 같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것에 앞서서 대변인을 오래하셨고 명 대변인이라는 말씀을 들으셨으니까 어떻습니까? 좋은 대변인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대변인입니까? 대변인이 발표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박희태 부의장 : 대변인은 사실 공보관과는 조금 다릅니다. 정부의 공보관은 있는 그대로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발표를 하는 것이지만, 대변인은 자기가 소속된 당이나 자기가 대변할 사람의 뜻을 어떻게 하면 잘 포장해서 국민들이 쉽게, 아주 즐겁게 받아 들일 수 있는가..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이 저는 대변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인규 : 요즘 한나라당의 이계진 대변인께서 웃을 소(笑)자를 써서 소변인을 하겠다..라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그것이 어떻게 보면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 10여년 전에 대변인을 하셨지만 요즘의 대변인들의 발언이나 이런 것들을 보시면서 아쉬움이랄지, 아니면 더 낫다라고 할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박희태 부의장 : 네. 조금 대변인들의 이야기가 너무 직설적이고 좀 그런 면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변인 탓은 아니고요. 우리 정치가 그만큼 정치상황이 각박해지고 또 대결을 하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대변인이 할 수 없이 그런 표현들을 쓰지 않는가..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각 정당에서 지금이라도 대변인에게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대변인이 정말 자기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런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야지..대변인이 무슨 코멘트 하나 했다고 해서 그냥 그것을 잘했느니, 못했느니, 약하다, 그것은 도대체 정곡을 찌르지 못했다..이런 식으로 자꾸 하면요. 대변인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변인을 좀 풀어줘라, 그냥 두어라, 대변인을 터치하지 말아라..라는 이런 이야기를 저는 오히려 정치권에 하고 싶습니다.

박인규 : 지금 5선 의원이시면 사실은 최고참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면에서 보시면 지금의 정당이 대변인에게 너무 틈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여유를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런데 그것이 왜 잘 안될까요?

박희태 부의장 : 글쎄요. 너무 조급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대변인의 논평이 그날 그날 금방 그 시간에 얼른 어떤 효과를 거둬야 한다..

박인규 : 인터넷 시대의 영향인가요?

박희태 부의장 : 네. 대변인의 논평이라는 것은 정말 저는 항상 그것을 생각하면서 했습니다. '짧은 말 긴 여운' 말은 짧게 하되 여운은 금방 들을 때뿐만 아니라 이틀, 삼일..며칠이 지나도 '아, 그 말이 지금까지도 이렇게 여운이 남아 있고 이렇게 계속 울린다'는 그런 식의 논평이나 대변인이 참 좋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금방..

박인규 : 너무 직설적이 됐다?

박희태 부의장 : 네. 좀 그런 정치권의 성급함이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닌가..생각합니다.

박인규 : 본인께서도 물론 말씀을 잘 하시는 분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본인이 보시기에 이분은 참 설득력 있게 말씀을 잘 하신다..그런 정치인이 혹시 있으십니까?

박희태 부의장 : 글쎄요. 요즘 정치인을 아무래도 대상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거에 훌륭한 분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제가 겪어 본 중에 말씀을 가장 설득력 있게 또 잘하시는 분은 김수한 전 국회의장입니다. 그분은 참 말씀을 잘 하십니다. 한 번 들어보셨습니까? 아주 참 잘하십니다.

박인규 : 지금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상당히 달변이라고들 평가를 하는데 명 대변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박희태 부의장 : 노 대통령과는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 뭐라고 말씀을 드리지는 못하겠네요. 잘한다고 하기도..못한다고 하면 실례가 될 것 같고..(웃음)

박인규 : 박 부의장께서 속해 계시는 박근혜 대표는 어떠십니까?

박희태 부의장 : 우리 박근혜 대표는 참 말을 조리 있게, 또 논리 정연하게 또박또박 잘 하십니다.

박인규 : 말씀이 너무 짧으시다는 말씀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박희태 부의장 : 그러니까 짧은 말 긴 여운이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웃음)

박인규 : 혹시 이명박 시장에 대해서도 말씀하실 만한 것이 있으십니까? 짧은 말 긴 여운의 정신으로..

박희태 부의장 : 이명박 시장님 말씀을 제가 많이 들어보지 못해서 어떻게 말씀 드리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소신도 있고, 박력도 있고, 추진력도 있는 그런 것이 말에 섞여서 나오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박인규 : 검사로 시작을 하셔서 국회의원도 5선이나 하시고, 장관도 하셨고, 당의 대표까지 해 보셨습니다. 말하자면 거의 성공의 연속인 삶을 살아 오셨는데 혹시 그 과정에서 이 부분은 참 내가 결정을 잘했다고 했던 일이라고 할지, 아쉬운 부분 같은 것은 없으십니까?

박희태 부의장 : 아쉬운 점은 많이 있습니다.

박인규 : 대표적으로 한가지만 꼽아 주시죠?

박희태 부의장 : 오늘 저 좀 봐주시라고 나오기는 했는데..오늘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불러 주시면 제가 고백을 하겠습니다.(웃음)

박인규 : 차제에 하나 말씀해 주셔도 될 것 같은데요?(웃음)

박희태 부의장 : 책이 팔리지 않을까..싶어서요.(웃음)

박인규 : 비슷한 유형의 질문일수도 있겠는데요. 너무 좀 성공만 하셔서 어려운 사람들의 사정을 모르시는 것은 아닌가..그런 약간의 비판이라고 할지, 그런 것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박희태 부의장 : 그런데 누가 저보고 양지만 달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제가 지금 응지에 있습니다

박인규 : 어떤 측면에서 그러시죠?

박희태 부의장 : 지금 야당이 된지가 9년째입니다. 그런데 9년 동안 야당만 하는 사람에게 양지만 있다고 하는 것은 조금 너무 평가가 문제가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웃음)

박인규 : 말씀을 굉장히 잘 하신다고 평판이 나 있는데요. 그것은 어떻게 타고나는 것입니까? 아니면 훈련을 하면 되는 겁니까?

박희태 부의장 : 별 말씀을요.

박인규 : 어머니께서 상당히 말씀을 잘 하셨다는 말도 있고요.

박희태 부의장 : 네. 저희 어머님은 시골에서 참 소위 제도권 교육을 받아 보시지도 못한 그런 분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잘 하시면 얼마나 잘 하시겠습니까? 단지 좀 짧으면서 저희들에게 좀 재미나게 그런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제가 조그마한 탤런트라도 받은 것이 있다면 그런 것은 제가 받았지 않았는가..생각합니다.

박인규 : 원로 정치인으로서 요즘 정치가 상당히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좀 정치의 어떤 사랑을 받기 위한 방법..간단하게 부탁 드리겠습니다.

박희태 부의장 : 네.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안심하고 사업도 하고, 투자도 하고, 또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고, 또 장사하는 사람들, 누구라도 마음이 편안해야 정치를 사랑하게 된다..이렇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왕년에 명 대변인이시고 거의 원로 고참 정치인이 되셨는데요. 국민들이 좀 편안하게 하는 정치에 많은 도움이 되시길 부탁 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희태 부의장 : 네.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에서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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