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종범의 눈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종범의 눈물"

김민웅의 세상읽기 〈217〉

미국의 야구 스타 조 디마지오가 마릴린 몬로와 결혼했을 때, 미국인들을 열광했습니다. 자신들의 영웅과 자신들의 연인이 하나가 된 것이 미국의 힘과 아름다움이 하나 된 것처럼 여겼던 셈이었습니다.

그만큼 야구는 미국인들에게 일종의 국가적 운동경기로 성장해 왔습니다. 타격왕 베이브 루쓰의 등장 이후 야구가 대중적 인기를 폭발적으로 모은 결과 위에 디마지오는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는 그 아이와 함께 야구공을 던지며 주고받을 날을 고대합니다. 아이도 아버지가 야구공과 글러브를 사주는 날을 평생 잊지 못하게 됩니다. 아이는 그 순간 더 이상 아이가 아닌, 남자가 됩니다.

미국 메이저 리그의 성장사 그 밑바닥에는 말하자면, 이러한 "젖 먹던 힘"이 면면히 깔려 있습니다. 야구에 대한 열광은 자신들의 어린시절의 추억과 결합되어 있고 야구에 대한 애정은 그래서 더욱 애틋합니다.

미국에서 야구가 시작된 것은 18세기 말이었지만, 전국적 관심사가 된 것은 1860년대 남북전쟁이 끝나고 나서였습니다. 일종의 국가적 통합의 기운이 그 안에 실린 셈이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1868년 명치유신 직후인 1870년대이니까 꽤나 일찍 시작했는데, 야구는 일본에게 근대적 열정의 상징 가운데 하나가 된 셈이었습니다. 야구를 잘하는 것은 미국과 같은 발전을 이룩하는 일과 다름이 없다고 여겨진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경우 야구가 들어 온 때는, 1905년 그러니까 식민지 시대가 열리기 직전이었습니다. YMCA 야구단이 창설되었던 것인데 안타깝게도, 야구가 식민지 시대의 울분을 담아내면서 민족적 통합의 열기를 모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100여 년이 지났습니다. 고교야구의 부흥과 프로야구의 출현 등으로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그러나 축구처럼 국민적 열광의 대상이 된 것은 WBC 4강에 오른 이제야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야구는 다른 구기 종목과는 달리 정해진 선을 넘는 파격이 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홈런을 친다는 것은 미리 그어놓은 한계를 돌파하는 유쾌함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살아 돌아와야 합니다. 반칙으로 실격하는 경우를 빼놓고는, 경기 중에 선수가 죽는 경우는 -물론 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웃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만-야구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파격과 생환은 야구의 핵심입니다. 홈으로 돌아오는 그 생환은 언제나 기쁨에 차 있습니다. 파격을 완성한 자의 멋진 금의환향(錦衣還鄕)입니다.

WBC 대회의 한국팀 주장 이종범 선수가 자신의 일본 프로 야구팀 활동시절의 좌절과 아픔을 이야기하던 중에, 목이 메고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국을 대표해서 구장을 주름잡던 서른일곱의 사나이가 쉽게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드러내자 그건 참으로 의외의 장면이었지만, 한 선수가 정상의 길로 올라서기까지의 고투와 절망,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깊은 통증이었습니다.

붉은 색의 축구와 푸른색의 야구가 어느새 우리의 에너지가 되고 있습니다.

남북전쟁을 겪었던 미국, 명치유신의 절박함 속에 있던 일본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것이 야구였다면, 식민지 시대를 통과하여 전쟁과 독재, 그리고 민주화와 이제 바야흐로 비상의 날개를 펴려는 우리에게 야구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야구를 좋아 하는가 아닌가를 떠나, 그 안에 있는 한계를 뚫어내는 파격의 힘과 마침내 기쁘게 살아 돌아오는 그 순간에 집중하는 열정이 우리 모두에게 능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종범의 눈물"은 사실 우리 모두의 눈물이기도 하니 말이지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