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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이 왜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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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이 왜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화제의 책] 줄리아 우드의〈젠더에 갇힌 삶〉

용산 어린이 성폭행 살해 사건,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 서울구치소 교도관의 여성재소자 성추행 사건 등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그간 잘 다뤄지지 않았던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최근 일어난 '기간제 여교사 신상정보 유출 사건'에서 보듯 여전히 강간, 성추행 등 성폭력은 온갖 편견과 오해가 뒤범벅 되어 있는 분야다. 누리꾼들은 가해자의 사진과 신상정보뿐 아니라 사건과 관련없는 동료 교사들의 정보, 심지어는 피해자의 신상정보까지 유출시켰고, 피해자의 글을 실어다 나르며 '편집 및 윤색'을 가해 사건을 왜곡시켰다.

게다가 이러한 글에 달린 댓글들은 차마 눈뜨고 못 볼 수준의 것들이 많았다. 누리꾼들은 가해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할 뿐 니라, "그러길래 행동을 조심했어야지"라는 식으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포털 측에서 실시간으로 게시물들을 삭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했지만, 누리꾼들의 놀라운 전파속도와 끈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강간은 성욕 때문에 일어난다?**

이 사건에서 보듯 사람들은 강간에 대한 여러가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미디어나 인터넷 등을 통해 강화되고, 이는 다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로 돌아오며, 성폭력 사건이 재발하도록 하는 사회적 배경이 되고 있다.

강간에 대한 고정관념 중 하나는 '강간은 성욕을 통제하지 못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남성의 성욕은 본래 통제 불능'이라는 편견과 맞물리면서 '강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매춘을 허용해야 한다'는 기묘한 논리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젠더에 갇힌 삶> (한희정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의 저자 줄리아 우드는 "강간은 섹스 행위를 포함하지만 강간은 성적 욕망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강간은 성욕보다 다른 사람을 굴욕시키고 지배하기 위해 고의로 계획된 공격적인 행동"으로 본다.

그는 "강간 같은 폭행은 성적 평등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회에서 가장 낮고,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믿고 성별에 따라 계층이 나뉘는 문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강간의 각본(rape script)"**

또 다른 고정관념은 "이미 '성립된 관계'에서는 강간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부부나 연인, 친구 사이에서는 강제된 성교를 강간으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다.

줄리아 우드는 "강간이 널리 퍼진 이유 중 하나는 상당수 남성들이 강제된 섹스를 용인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1998년도 연구에 따르면) 강간 사건의 75% 이상은 희생자를 아는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강간은 낯선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폭력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 모두 데이트 상대와 친구는 강간할 수 없다고 믿는 '강간의 각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강간의 많은 희생자들은 이러한 강간을 신고하면 자신들이 부정적으로 여겨질 것을 걱정하거나 가족들이 사회적 비난을 받을까봐 고발하기를 꺼린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매 5분마다 한 여성이 강간당한다"**

강간은 '젠더 폭력(gendered violence)'의 일부다. 대부분 '젠더 폭력'이라고 하면 강간, 성희롱을 떠올리지만, 이 말은 보다 많은 형태의 폭력을 포함한다.

부부나 연인 등 가까운 파트너에 의한 폭력, '여성에 대해 큰소리로 음탕한 말을 하거나 집적대는' 젠더 위협, 여성 할례 등의 성기 훼손, 인도, 파키스탄 등에서 종종 일어나는 신부살해와 같은 젠더 살해 등이 이에 포함된다.

흔히 '가정폭력'이라고 표현되는 '가까운 파트너에 의한 폭력'은 한국에서도 남의 일이 아니다.

줄리아 우드는 "여성의 최소 28%에서 최대 50% 정도는 가까운 파트너에 의한 폭력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또 부부관계뿐 아니라 연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 또한 급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는 "가까운 파트너에 의한 폭력은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른다. 1995년 여성 살인 희생자의 26%는 남편이나 남자 친구에게 죽임을 당한 반면, 남성 살인 희생자의 3%만이 부인이나 여자친구가 저지른 사건이었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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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에서는 매 12초마다 한 여성이 가족이든 친구든 가까운 사람에게 구타당하고, 매일 10명의 여성이 가까운 사람에게 폭력을 당해 사망한다. 더 많은 여성이 가까운 사람에게 구타당하고 죽임을 당하지만 그들의 사건은 신고되지 않거나 우발적인 부상이나 죽음으로 잘못 분류된다.

미국에서 매 5분마다 한 여성이 강간당하고 있고, FBI는 강간의 단 36%만이 신고된다고 추정한다. 이는 미국 여성의 25%는 살면서 강간의 희생자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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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무시하고 공격적일 것을 요구받는 '남성적 젠더'**

이러한 폭력은 어디에서 연원하는가. 줄리아 우드는 "다른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한 폭력은 남성성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이러한 폭력에 있어 젠더는 성별보다 더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해석은 이 책에서 그가 줄곧 사용하는 '젠더 정체성'과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남성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현대 사회가 남성성에 대해 기대하는 여러 요구조건을 설명한다.

일단 남성성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조건은 '여성적으로 되지 말라'는 것이다. 어릴 때 대부분의 소년들은 소녀나 여성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거나 느끼지 말아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강요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알수 있다.

또 남성은 '보다 공격적이 되라'는 사회적 지시를 받는다. 우리 사회가 은연중에 소년들에 대해 싸움이나 누군가와 맞서는 것을 피하지 말길 바라는 기대를 갖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이렇게 공격적으로 길들여진 남성성은 이성에 대한 폭력과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남자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어서, 줄리아 우드에 따르면 자신의 파트너를 폭행한 여성 또한 강한 남성적 젠더 지향성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젠더는 하나의 사회적 제도**

이렇듯 젠더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성(sex)과 달리 한 시대의 가치, 문화, 고정관념 등을 반영해 사회적, 심리학적으로 구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줄리아 우드는 "엄밀하게 젠더는 개인적인 특성이라기 보다 성의 사회적 의미를 규정하는 상호 복합적인 문화적 사고"라고 규정한다.

젠더는 여러 다른 사회적 제도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삶을 억압하거나 트렌스젠더나 동성애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를 만들어낸다. 또한 젠더는 다른 제도와 마찬가지로 그 관습적 규정에 반발하는 이들에 의해 깨어지거나 다시 재편되곤 한다.

예를 들면 줄리아 우드가 설명하는 남성성의 새로운 경향이 그러하다.

그는 "현대 남성들은 전통적인 관점의 '진정한 남자'가 되는 것과 동시에 섬세하고 평등주의적인 남성이 되어 전통적 관점에 맞서는 아이러니한 기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남성들은 조직이나 남성 집단 내에서 "과묵하고 거칠며 독립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도록 요구"받는 반면, 가정이나 연인 앞에서 "집안을 꾸리고 어린아이 양육에 완전히 참여하는 파트너가 되고 보다 정서적으로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 과연 대화할 수 없을까**

줄리아 우드의 책 〈젠더에 갇힌 삶〉은 이러한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젠더뿐 아니라 각 개인의 사적 관계에서 작용하는 젠더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분석을 가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성과의 관계에서 불화를 겪고, 해결방안을 찾지 못한 채 문제를 반복하고 있다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줄리아 우드의 분석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 책의 일부를 인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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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대한 이야기 : **

"우리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까요?" 오해와 상처로 끝나는 수많은 대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언급해야 할 특정 문제가 있을 때만 관계에 대해 논하는 데 관심을 둔다. 대조적으로 여성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조차 (또는 특히 그럴 때) 중요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

남성적 말 공동체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을 무엇인가를 하기 위한, 문제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반면, 여성적 말 공동체에서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긴다. 여성 파트너들이 '관계에 대해 논의하길' 원할 때 많은 남성이 회피하거나, 남성이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릴 때 여성은 자주 관계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자주 느끼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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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그밖에도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서 서로가 다른 젠더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분석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상에서 '남자가 알아야 할 여자에 대한 10가지 이야기'나 '오래가는 연인의 비법'이라는 식의 이성 간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한 여러 팁들을 알려주는 글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러한 임시방편의 기술이 아닌 '젠더에 갇힌 삶'을 사는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이 맺는 관계들의 한계를 되짚어 볼 기회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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