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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명성 다 누려봤지만 중요한 건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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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명성 다 누려봤지만 중요한 건 '사랑' "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03/24] 70년대 인기스타 '펄시스터즈'의 배인순씨

여러분 〈펄 시스터즈〉.. 기억하십니까? 〈커피한잔〉, 〈님아〉, 〈떠나야할 그 사람〉과 같은 히트곡을 내면서, 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모았던 듀엣이었는데요. 가수로서 대중의 사랑도 한 몸에 받아봤고, 재벌가의 며느리도 되어봤지만, 아픔도 많았던 배인순씨.. 그런데, 〈펄 시스터즈〉의 언니 배인순씨가, 최근에는, 탱고, 힙합, 판소리에까지 도전하며, 새로운 인생을 펼쳐가고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탱고 코리아 패스티벌〉을 위해서, 탱고 연습에 열중인 배인순씨를 초대해, 최고의 여자 가수에서 20여년을 재벌가의 며느리로 살다가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자신만의 인생은 어떤 것인가.. 그녀의 인생 이야기 함께 합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가수 배인순씨입니다. 지금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이 흐르고 있는데요. 배인순씨는 중앙대학교 도서관학과를 졸업했고, 1967년 미8군 개최 보컬그룹 오디션에 합격해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배인순씨와 동생 배인숙씨가 듀엣으로 활동한 〈펄 시스터즈〉 는 '커피한잔' '님아' '빗방울' '떠나야 할 그 사람" 등을 히트시키며 70년대 가요계를 대표하기도 했는데요. 배인순씨는 1976년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과 결혼했으나 지난 98년 이혼했고, 이 후 〈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잔〉이라는 자서전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결혼에서부터 이혼까지 화제를 불러모았던 배인순씨.. 이혼 후 가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탱고 코리아 패스티벌〉을 위해 열심히 탱고 춤을 연습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인규 : 배인순씨, 안녕하십니까?

배인순 : 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제가 서두에 가수 배인순씨라고 소개를 드렸는데 그 가수라는 말을 요즘에 들으시니까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몇 년 전에 음반을 내시기도 하셨습니다만..

배인순 : 아니요. 가수라는 말이 항상 저에게는 붙어 다니던 것이었으니까요.

박인규 : 가수를 하시다가 탱고 댄서까지 하시기로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배인순 : 아니요. 댄서라기보다는요. 사실 왜 제가 탱고를 시작하게 됐는가 하면, 언젠가 제가 제 콘서트를 할 때 이런 모든 작업들이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어떤 과정이 있어야 내가 필요할 때 할 수 있는 역할이기 때문에 항상 어떤 그날을 위해서 제가 그냥 작업하고 있었던 겁니다.

박인규 : 몇 년 전에 한번 음반을 내셨죠?

배인순 : 네.

박인규 : 그 부분에서 음반뿐만 아니라 독자적으로 한번 리사이틀을 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신 모양이죠?

배인순 : 그것은 제 희망사항이지만 여건이 되면 할 것이고 안 되도 저는..

박인규 : 이렇게 준비를 하다가 여건이 되면 할 것이고, 안 되도 좋은 것을 해 봤으니까..후회는 없다?

배인순 : 네. 그렇죠.

박인규 : 그런데 〈탱고 코리아 패스티벌〉이라는 것이 어떤 행사입니까?

배인순 : 이번에 주최는 저희 선생님 김동환씨라고요. 그분이 주최를 하시는 거고요. 이 탱고를 좀더 알리기 위한 그런 어떠한 행사에요.

박인규 : 말하자면 한국에서 탱고 춤 좀 추시는 분들은 모두 다 모여서 추시고 그러시는 건가요?

배인순 : 선생님들이 많죠. 주로..동호인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고요. 또 잘 추시는 아마추어 분들이 많이 계세요.

박인규 : 언제 어디서 합니까?

배인순 : 25일 강남구청 구민회관에서 합니다.

박인규 : 그럼 배인순씨도 탱고를 추신다는 거죠?

배인순 : 네.(웃음) 저는 사실 출 만한 실력은 못 됩니다.

박인규 : 배우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배인순 : 한 6개월 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 김동환선생님이 너무 강요를 하시길래 선생님의 그 강요에 차마 거절을 못해서 나가는데 예쁘게 봐 주세요.(웃음)

박인규 : 시를 쓰시는 하재봉 시인이 이번 페스티벌에 무대감독으로 진행을 하신다고 해서 하재봉 시인이 권유한 것이 아닌가 했더니 선생님이 계속 추시라고 권유를 하셨군요?

배인순 : 네. 선생님이 저의 실력을 높이 평가해 주셨는지 자꾸 예쁘다, 잘한다..이런 말로 제가..

박인규 : 혹시 배인순씨의 왕년의 이름값을 활용하셔서 관객을 많이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아닌가요?(웃음)

배인순 : 어느 쪽이라도 좋습니다.(웃음) 그런데 이 기회를 통해서 많이 탱고 동호인들이 생겼으면 합니다.

박인규 : 이번 탱고 페스티벌에 특색 있는 분들도 많이 나온다고 들었는데요? 그 중에는 병신춤을 추시던 공옥진씨의 동생이신 공명규씨요. 이분은 아르헨티나에 가셔서 프로탱고댄서 그런 자격증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배인순 : 네. 그리고 지난 2004년도에 탱고대회가 있었을 때 하비엘이라는 한국 선수가 2등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 하비엘이라는 분은 지금은 탱고를 떠나신 것 같아요.

박인규 : 어쨌든 한국 사람들은 참 음주가무를 잘 하는 것 같습니다.

배인순 : (웃음) 아니요. 운동도 잘 하잖아요. 야구, 골프..

박인규 : 참 재주 있는 것은 사실이죠.

배인순 : 네. 맞아요.

박인규 : 언젠가가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자신만의 리사이틀을 위해서 탱고를 배우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배우고 계신 것이 탱고뿐만 아닌 것 같아요? 힙합을 배우신다는 말도 있고..

배인순 : 제가 지금 탭댄스도 지금 1년 이상 하고 있고요. 그 다음에 힙합도 좀..사람들이 욕 할까봐..차마 그 말은 부끄럽게 못하지만 그래도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어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고 나이를 먹었다는 것 때문에 모든 것을 좌절 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박인규 : 저희들이 알기로는 힙합이라는 것은 대개 10대들이 추는 춤이라고 알고 있는데..실례지만 그 연세에 추시려면 힘드시지 않으십니까?

배인순 : (웃음) 제가 며칠 동안 몸살을 앓기도 했었는데요. 우리가 힙합을 한다고 하면 10대들이 추는 그런 꼭 춤만 연상을 하는데 그것도 재즈힙합이라고 해서 얼마든지 소화시킬 수 있을만한 것이 있어요.

박인규 : 자기 나이에 맞게 소화시킬 수 있는..

배인순 : 소화시킬 수 있는 스텝들이 많아요.

박인규 : 판소리도 배우신다고 들었습니다?

배인순 : 네. 제가 예전에 지금 세종문화회관이지만 예전 시민회관에서 저희 리사이틀을 할 때 〈커피한 잔〉을 창으로 한번 불러 본 적이 있어요. 제가 잠깐 한 번 불러 볼께요.

박인규 : 네.

배인순 :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쾌지나 칭칭나네~" 이렇게 하면서 "8분이 지나면 9분이 와요~ 1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 쾌지나 칭칭나네~ " 이렇게 하면서 한 적이 있었거든요.

박인규 : 그 당시에도 이미 좀 하셨군요?

배인순 : 네. 그때 좀 했는데 그때는 돌아가신 김소희 선생님께 제가 좀 배웠어요. "만고강산~" 이런 것을 배웠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을 재연하기 위해서 요즘 안숙선 선생님께 제가 찾아가서 부탁을 드려서 조금 배웠는데요.

박인규 : 조용필씨가 판소리를 배우셔서 목이 트이셨다고 하는데 선구자가 계셨네요?

배인순 : (웃음)

박인규 :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실 50대가 넘으신 50대 후반의 나이이신데 그 동안 어떻게 그런 것을 하시고 싶어서 결혼 생활을 하시면서..좀 하셨나요?

배인순 : 아니요. 전혀 안 했죠. 그런데 사실은요. 모든 사람들이 냉철하게 나이를 두고 생각할 때 '나이 먹었는데..뭐~' 이 나이 때문에 굉장히 모든 잠재능력이라든가 이런 것을 사장시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할 때 그런 어떤 훈련을 통해서 그런 것을 하기 위한 어떤 훈련만 계속 하고 있다면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훈련만 계속하고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꼭 제가 말씀 드리고 싶어요.

박인규 : 아주 젊게 사시는 군요. 요새는 60세부터 청춘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예전 얘기를 한 번 해보죠. 70년대 초반에는 〈펄 시스터즈〉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저도 그때 중학생이었지만 대단했던 것을 기억하고요. 요즘으로 치면 누구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핑클, 이효리, 보아 정도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배인순 : 이효리와 비교를 한다면 글쎄요. 우리가 영광일까요? 이효리가 영광일까요? (웃음)

박인규 : 대단한 자부심이시네요. 그 '커피 한 잔' 이라는 곡이 사실은 그 당시에 새로운 감각으로.. 그때만해도 요즘 말로 트롯트라든가, 전통가요가 많았는데요. 신중현씨가 쓰신 곡이죠? 어떻게 신중현씨를 만나서 이런 곡을 부르게 되셨습니까?

배인순 : 글쎄요. 제가 많은 방송도 했고, 또 책으로도 그 얘기를 해서 많은 분들이 아시고 계시겠지만 저희 동생과 제가 미8군 오디션을 보는데 구경하러 갔었어요. 그때 음악은 물론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을 때인데요. 그때는 정말 'let it be me' 라든지, 'Lipstick On Your Collar' 이런 팝송만 듣고 즐길 나이인데요. 그 한번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오디션이 끝난 다음에 제일 높으신 분이 '저, 두 자매는 누구냐, 저 두 여자아이는 누구냐고, 뭐 하는 아이들이냐'고..

박인규 : 노래는 아직 안 하시고?

배인순 : 네. 안 했는데 구경하러 왔다고 하니까 노래 뭐 하는 거 있느냐고, 하는 것이 있으면 한 번해 보라고 해서..그때 제가 기타를 들고 'let it be me' 를 불렀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저희들이 합격이 되어서 그때부터..

박인규 : 구경꾼으로 가셨다가 합격이 되셨군요?

배인순 : 네. 발탁이 되어서 하게 됐어요.

박인규 : 그렇게 해서..신중현씨는 어떻게 만나신 겁니까?

배인순 : 그 오디션을 보는데 신중현 선생님 밴드가 나와서 오디션을 보셨어요. 그런데 유난히 그 신중현 선생님의 밴드가 굉장히 저희 가슴을 자극을 했기 때문에 동생과 상의한 결과 '우리 신선생님께 레슨을 받자..' 이렇게 되어서 레슨을 받으면서 그 곡을 받은 거에요. 〈님아〉, 〈커피 한 잔〉, 〈떠나야 할 그 사람〉, 〈싫어〉..

박인규 : 말하자면 사부님이시군요?

배인순 : 네. 사부님이시죠.(웃음)

박인규 : 요즘도 만나시고 그러십니까?

배인순 : 전화는 몇 번하고요. 한, 두 번 뵈었어요.

박인규 : 〈펄 시스터즈〉가 70년대 전반은 대단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언제가 가장 전성기라고 하면 뭐하지만..잊을 수 없는 무대 그런 무대가 있으십니까?

배인순 : 그렇죠. 왜냐하면 69년도에 저희가 처음 그때는 LP판이라고 해서 앞에 6곡, 뒤에 6곡이 있는 판인데 사실은 뒤에는 경음악 6곡과 앞에 저희 곡 6곡을 넣었는데 그 앨범에 줄줄이 계속 〈님아〉, 〈떠나야 할 그 사람〉들어 계속 있어서 계속 히트곡이 되어서..

박인규 : 그 앨범이 1집?

배인순 : 네. 그 앨범이 1집이에요. 그래서 그 해 말에 저희가 가수왕상을 받을 것이 저희로서는 잊을 수 없는 해였고요. 그 다음에는 저희가 패티김 라사이틀에 초대가수로 나갔는데 그 열광주신 박수소리가 아직도 정말 수 많은 세월이 흘러도 아직 귀에 쟁쟁한 것 같고요. 너무나 저희 자신도 놀랬었고요. 그 다음 해에 저희가 리사이틀을 해서 정말 성황을 이뤘던 것이 저희는 잊을 수 없는 해이죠.

박인규 : 그 뒤에 일본무대로 진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국내가수로는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배인순 : 그것을 끝내고 73년도에 도쿄가요제가 있었어요. 작고하신 이봉조 선생님의 곡을 〈사랑의교실〉이라는 그 곡을 받아서 도쿄 가요제에 갔죠. 저희가 그 곡은 사실은 이봉조 선생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그 곡이 인터네셔널한 곡은 아니라고 저희가 판단을 했지만 도대체 국제가요제라는 것이 무엇이냐? 저희가 한번 볼 겸 가자..그렇게 해서 갔어요. 그래서 가서 의상상만 타고 왔죠.

박인규 : 말하자면 그때 국제가요제를 처음 참가하신 건가요?

배인순 : 저희가 처음 참여했어요. 그래서 그때 다녀오고 난 뒤에 CBS-SONY사와 계약을 해서 저희가 그 SONY회사로 계약해서 일본에 가서 음반도 내고, 또 텔레비전 활동을 많이 했었어요.

박인규 : 요즘 보아 같은 친구를 보고 있으면..우리가 늦게 태어났다면 저렇게 됐을 텐데..하셨겠네요?

배인순 : (웃음) 저희가요. 적십자회담만 아니었으면 일본에서 저희가 제일 먼저 이름이 났을 거에요.

박인규 : 적십자회담은 무슨 얘기입니까?

배인순 : 우리나라 최초 1호 적십자회담이 워커힐에서 있었잖아요? 그때 우리가 일본에 있는데 억지로 불러왔었어요.

박인규 : 공연을 하라고요?

배인순 : 네. NHK나 이런 곳에 공연 스케줄이 모두 잡혀 있는데 그 NHK는 유난히도 한번 펑크를 내면 전혀 쓰질 않아요. 그래서 펑크를 내고 여길 와서 그 다음부터는 그 음반이 그 곡이 '하얀 빗속의 이야기'라는 그 곡을 받았는데 너무 괜찮은 곡이었는데 그 일로 인해서 저희가 그냥 중단이 되어 버렸죠.

박인규 : 한 30년만 늦게 태어나셨으면..

배인순 : (웃음)

박인규 : 그런데 굉장히 인기 있던 시절에 갑자기 결혼을 하시면서 가요계를 떠나셨어요? 그때 고민하시지는 않으셨어요?

배인순 : 아니죠. 결혼 하면서 떠난 것은 아니고요. 일본으로 가게 된 것은, 저희가 가려고 애를 쓴 것은 그 당시 신중현 선생님 같은 작곡가분들이 계시지 않았어요. 거의 트롯트 작곡가 선생님들만 계셨기 때문에 저희 이상과 너무 맞지 않아서 저희가 스스로 딜레마에 빠졌어요. 사실은..그래서 외국으로 가자..그 당시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기 때문에 결국 사실은 저희가 도망을 간 거죠.

박인규 : 미국으로 가신 겁니까?

배인순 : 일본으로 간 거죠. 일본에 가서 SONY사와 1년 반 정도 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가서 미국의 유명한 제리 루이즈라는 코믹영화배우가 계세요. 그분 아들이 게브리얼 루이즈라고 게브리얼 루이즈 앤 밴드가 있어요. 그 밴드와 저희가 미국에서 투어를 하면서 공연을 했었어요.

박인규 : 언니가 되시잖아요? 〈펄 시스터즈〉가 결혼하시면서 해체되시고 동생 되시는 배인숙씨는 한 동안 솔로로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이런 노래도 부르셨고요. 지금 미국으로 가신 걸로 들리는데 지금 미국에 계십니까?

배인순 : 미국에서 살다가 얼마 전에요. 가족들이 이제는 모두 들어왔어요.

박인규 : 다 들어왔습니까?

배인순 : 네.

박인규 : 그럼 우리도 다시 한 번 뭉쳐서 무엇을 해보자..이런 말씀들은 나누시지 않으셨습니까?

배인순 : (웃음) 사실은요. 어릴 적에도 제가 강요해서 음악을 했거든요. 사실 동생은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어요. 먹는 것과 책만 주면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아이인데 그때도 제가 강요를 많이 하면서 해서 원망도 많이 듣기도 했는데 이제는 노래를 한 세월이 저희가 6~7년이 됐는데 이제는 각자의 인생을 산 것이 20여 년이 넘다 보니까 이제는 이래라, 저래라 하는 그런 언니, 동생 사이라기보다는 배인순의 인생과 배인숙의 인생이 완전히 따로 분리되었기 때문에 가족이라는..가정이라는 그 울타리가 있기 때문에 제가 감히 그렇게 침범도 할 수 없고..

박인규 : 외국에서 보면 〈사이먼 앤 가펑클〉이라든가, 우리나라에서도 〈트윈 폴리오〉 송창식, 윤형주씨는 가끔 그렇게 라디오에도 같이 나오셔서 노래도 하시더라고요.

배인순 : 그분들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가수 중에 윤형주씨를 제가 참 인간적으로 좋아하는데요. 그분들은 계속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그런 것이 필요하고 우리는 워낙 30년 동안 공백이 있는데 같이..그렇지 않아도 제가 가끔 얘기하죠. 왜냐하면 작년까지는 아들 둘 대학을 다 보내기 전까지는 자기는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이제는 작년에 동생이 아들 둘을 모두 대학에 보냈는데 이제는 제가 또 강요를 해 보니까..

박인규 : 강요를 하시지 마시고요. 권유를 하십시오.

배인순 : 네.(웃음) 권유를 지금 하고 있어요.

박인규 : 권유를 하시고.. 팬들이 원하면 또 할 수도 있는 게 아닙니까?

배인순 : 그런데 팬들이 정말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그게 사실 제일 두려운 거죠.

박인규 : 그건 좀 기다려봐야겠네요.(웃음)

배인순 : 네.(웃음)

박인규 : 지금부터는 최근에 배인순씨께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몇 가지 말씀을 여쭤볼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힘든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이혼도 하셨고, 그런데 이혼을 하신 뒤에 바로 연예계 활동을 하신 것은 아니고 제가 알기로는 음반을 내신 것이 3~4년이 지나서 음반을 내셨는데요?

배인순 : 제가 이혼을 한 뒤에 우리 막내 아들을 데리고 한 5년을 한국에서 우리 막내아들을 위해서 이것, 저것 뒷바라지를 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5년 동안 같이 있다가 형들, 아빠한테 보내면서 제가 그때 음악을 시작했죠.

박인규 : 그러면 다시 음반을 내시게 된 것은 언젠가는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으신 그런 마음이 있으셨던 모양이죠?

배인순 : 혼자되면서 그런 생각은 하기 시작했죠.

박인규 : 〈펄 시스터즈〉의 전성기로부터 한 30년이 지나서 연예계로 다시 도전을 하시게 된 건데요. 어떻습니까?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연예계의 위상이랄까,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배인순 : 너무 많이 달라졌죠. 그리고 너무 보기 좋고, 한편으로는 비가 미국까지 가지 않았어요? 정말 그래서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고 지금 보아가 일본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고 아마 미국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제가 그런 후배들을 보면서 '우리가 한 20년만 늦게 태어났으면..지금쯤은 우리도..'(웃음) 그런 허상을 해 보죠. 아무튼 많이 달라졌고요. 지금에 와서 우리 연예계 쪽을 바라다 본다면 저희가 30년 전에 일본에 가서 상을 받을 때 방송국을 찾아서 텔레비전 출연을 할 때나 모든 활동을 하러 다닐 때 그때 이런 말씀을 드리면 방송가에 계신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조금 냉철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그때 상황보다 지금 한국이 많이 발달은 했다고 하지만 깊숙이 들어가 봤을 때 참으로 일본과 차이가 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박인규 : 어떤 비즈니스측면에서 좀 엉성하다고 할지..그런 말씀이십니까?

배인순 : 네. 그런 거죠. 특히 제 개인적으로 저만을 바라봤을 때를 생각하면 일본의 30년 전에도 정말 대선배들이 출연한다고 하면 그 엄청나게 그 코너를 띄워주고 정말 그 선배를 빛이 나도록 감싸서 그 프로에서 띄워주는 것을 그 사람들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너무나 하고 싶은 마음에 텔레비전에 몇 번 출연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모든 포커스를 맞춰서 그 사람들의 오히려 들러리를 세우는..그런 것을 볼 때 제가 너무 슬펐어요. 노래를 하고 싶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다시 컴백했을 때 '이것은 아니다, 이건 내가 잘못했다, 겉만 보고 내가 다시 노래를 하고 싶다고 한 것은 내가 잘못 판단했구나..' 이렇게 제가 생각한 적도 있어요.

박인규 : 말하자면 지금 당장 가장 인기 있는 사람들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배인순 : 네. 스포트라이트와 그 선배들이 나왔을 때는 들러리 같은 기분을 들게 했을 때 그건 우리 지금 젊은 PD들이 많이 계신데 그분들이 조금 더 그 사람들에게 배려하는..

박인규 : 각자의 개성이나 그런 것들을..

배인순 : 네. 그런 어떤 자리들을 좀 지켜주시는 게 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저는 이런 말씀을 감히 드리고 싶어요.

박인규 : 요즘은 방송무대나, 이런 무대에 서시는 일이 별로 없으십니까?

배인순 : 제가 그냥 접어 버렸어요.

박인규 : 그래도 앞으로 리사이틀을 하시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런 준비들은 계속 하시고 계신 건가요? 말하자면..

배인순 : 그래서 제가 탭 댄스도 한 1년 반정도 하고 있고, 탱고도 했고, 힙합도 지금 하고 있고, 이제 이것저것 노래 연습도 하고 있는데요. 어차피 저는 노래는 떠나서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노래와 연관되는 일도 지금 하려고 하고요. 언젠가는 한 번 하고 싶다..왜냐하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투어를 다니다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저희가 음악 공부만 했거든요. 그럴 때 그것을 해보다가 결국은 정말 유명한 작곡가를 만나서 곡까지 받아놓고 우리가 쉽게 포기하고 '아, 우리는 더 이상 노래를 할 필요가 없다..' 라는 그런 어떤 오만한 판단에 급한 판단을 내려서 제가 결혼을 했거든요. 그것이 이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또 그것을 후회한다면 지금의 제 소중한 세 아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더 후회도 할 수 없고 그런 심정입니다.

박인규 : 요즘 하루하루의 일상생활은 어떻게 보내시는지 제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배인순 : 네. 굉장히 부지런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어요.

박인규 : 조금 전에 후회스런 결정 같은 것에 대해서 한 말씀 하셨는데요. 거의 50대 후반이 되시면서 여러 가지 일들..가수도 하셨고, 결혼도 하셨고, 여러 일들을 겪으셨는데요. 겪으시면서 '내가 정말 이 결정은 정말 잘했다..' 라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배인순 : 아직도 제가 살 날이 참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직까지 제가 정말 선택을 잘했다, 이 선택은 내가 정말 후회한다..이렇게 말씀 드리기에는 아직도 제가 해야 할 일들도 너무 많고 살아야 할 날도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모든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나 해야 될 일이 너무 많이 남아 있어요.

박인규 : 항상 젊게 사시는군요?

배인순 : (웃음) 그렇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드리기는 아직 이르지 않나..조금 더..

박인규 : 20대에는 가수로서 누구도 부럽지 않은 명성을 누려 보셨고, 또 30~40대에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에 들어가서 부인으로 살아 보셨고..말하자면 부와 명성을 모두 누려보셨는데요. 지금 돌아보니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더라..어떤 것이 있습니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배인순 : 가장 중요한 것은요. 사랑.. 사랑이 굉장히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 같아요. 정말 진실된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것과 그리고 명예라고 생각해요.

박인규 : 그럼 지금도 무언가 사랑하시면서 살고 계신가요?

배인순 : 저는 정말 우리 아이들 셋을 위해서라면 달나라까지 갔다 올 수 있는 그런..

박인규 : 사랑해야 할 아들들이 있고..

배인순 : 네. 제가 정말 그 아이들을 가져서 지금까지 그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고요. 오히려 지금이 더 한 것 같아요. 같이 살 때보다..가슴이 아픈 사랑이기 때문에 더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지금은 음악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제가 몇 번 방송을 하면서 음악을 포기할까 했는데 포기하고는 못 살겠다는 것이 또한 음악이라는 것을 새삼 알았기 때문에..

박인규 : 앞으로 꼭 해 보고 싶으신 꿈이 있다면 무엇인지 한가지만 말씀해 주시죠?

배인순 : 제가 모든 팬들이 원한다면 제 무대를 꼭 한 번 갖고 싶은 것이고요. 그것을 성공한다면 그 다음에는 제가 정말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다는 것..그것을 꼭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인규 : 자식에 대한 사랑, 음악에 대한 사랑..그 사랑에 충만한 삶을 보내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배인순 : 네. 오늘 너무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에서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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