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는 이념적 체계는 없다. 그러나 언제든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다."
'한국사회포럼 2006' 둘째 날인 24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는 '반(反)운동을 말하다: 뉴라이트 및 신보수주의에 대한 토론'이 열렸다. 이날 토론에는 다른 분야에 비해 월등히 많은 약 200명 가량의 연구자 및 시민들이 모여 이 문제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뉴라이트는 반(反)운동"**
토론회 제목에서 드러나듯, 현재 뉴라이트는 고유한 이념적 지향을 드러내기보다 반북, 반전교조, 반한총련과 같은 '반(反)운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의 공통적인 견해였다.
발제자로 나선 고려대 이나미 강사는 "보수세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부에 대해서뿐 아니라 민주화와 개방화에 의한 진보적 NGO들에게도 대항하기 위해, 또한 역설적이게도 이들을 모방하여 보수적 시민단체를 조직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 단체는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자 북핵문제나 '서 교장 자살사건' 등을 호재로 삼아 세 불리기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서 교장 자살사건은 충청도의 보성초등학교 교장이 자살한 사건으로 그의 죽음을 두고 언론과 보수단체들이 '전교조가 그를 죽였다'며 논란을 키웠다. 그러나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에 대한 도 교육위의 조사'였던 것으로 추후에 밝혀졌다.
이나미 강사는 "보수세력이 서 교장 자살사건에 특히 반응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에게는 반북과 더불어 반전교조가 중요한 슬로건이 되고 있다"면서 "그 이유는 전교조가 학생들을 좌경화시켜 보수주의에 반하는 사회구성원들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반북'과 '반전교조'는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참석한 코리아포커스의 안진걸 기자는 "이들 단체가 내세우는 반운동 슬로건들은 모두 기존의 진보진영이 그동안 대중으로부터 상당한 지적을 받아 온 지점들"이라며서 "이들은 차별성을 내세우든 단순한 증오나 반감을 이용하든 기존 진보운동단체가 제대로 해오지 못한 부분에서 성장하고 있으며, 상당한 실체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라이트, 올드라이트와 다를 것 없다"**
그러나 또다른 발제자인 김재중 월간 〈말〉 기자가 지적했듯이 "이제껏 개혁·진보 진영은 뉴라이트에 대해 '올드라이트와 다르지 않다'며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외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과연 뉴라이트의 실체가 있느냐' 혹은 '뉴라이트가 과연 올드라이트와 차별성을 가지고 있느냐'는 문제제기가 많이 나왔다.
이나미 강사는 뉴라이트를 보수세력으로, 올드라이트를 극우세력으로 보고 "보수단체는 현재 자기변신을 하지 않는 한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현 정부, 북한, 노동, 여성문제 등에 대한 태도에서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반면, 극우단체는 여전히 자유주의 등 냉전적이고 추상적인 이념을 제시할 뿐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극우단체와 보수단체의 이념은 표현방식과 과격함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면서 "보수단체의 자유시장과 자유민주주의 강조는 극우단체와 반공의 다른 표현이고, 보수단체가 내세우는 기업활동의 자유는 극우단체의 '반노조'와 같은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벌써 몇몇 보수단체들은 중도보수로 나가는 듯하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시금 수구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고 덧붙였다.
***"올드라이트보다 실천적이고 정교해"**
그러나 김재중 기자는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의 분리는 보수가 재편되어 가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에 이들이 정책대결을 펼친다거나 대립각을 세우지는 않겠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기자는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의 차이로 '대북관의 차이'를 들었다. 그는 "올드라이트의 대북관이 오로지 북한 정권의 붕괴에만 맞춰져 있다면, 뉴라이트의 대북관은 북한 정권이 변화에 맞춰져 있다"면서 "이들은 탈북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보를 거의 독점하고 이를 언론과 정치인에게 흘리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북한 인권 관련 의제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의 북한관을 '온건과 강경'으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으나, 다만 분명한 것은 뉴라이트의 북한관은 올드라이트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실천적이고 정교하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뉴라이트, 이념적 체계는 없으나 토대는 있다"**
광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김재석 사무처장은 "뉴라이트 세력이 지역운동에서 실체를 가지고 나타나지는 않는다"면서 "뉴라이트 전국연합에 광주지역 조직이 3개나 있다길래 어떤 이들인지 확인해 보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단체로 활동하지는 않으나 시민사회 자체가 상당히 보수화되어 뉴라이트가 내세우는 시장지상주의와 같은 가치들이 지역사회를 광범위하게 장악하고 있다"면서 "현재 지역사회는 '진보적 가치와 환경을 훼손하더라도 한번 잘 살아 보자'는 보수적 이해와 요구들이 확산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연구원의 은수미 박사도 같은 맥락의 의견을 내놨다. 은수미 박사는 "현재 뉴라이트는 하나의 논리적 틀로서 자리잡은 것은 아니나 광범위하게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봤다.
그는 "뉴라이트는 한국사회에 탄탄한 토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현재 경쟁력, 경쟁성, 생산성, 발전과 같은 말이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뉴라이트는 이념적 체계는 없으나 그들의 사고는 이미 한국사회에 보편적인 형태로 정착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뉴라이트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완성을 꿈꾼다"**
이렇듯 토론회 참석자들은 뉴라이트는 현재 이념적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이들의 '지향'에 대해서는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안진걸 기자는 "뉴라이트는 '자유'를 내세우고 있으나, 가장 부자유한 상태는 빈곤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뉴라이트는 자유주의를 말하면서 빈곤문제나 노동의 양극화 등에 관심이 없거나 시장에 맡기자는 모순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재중 기자도 뉴라이트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정책마저 '해체해야 할 권력'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뉴라이트는 '시장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면서 빈부격차 등 양극화 문제는 시장에 맡겨두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장 대 공공성이라는 논쟁구조에서 공공성을 왼쪽, 시장을 오른쪽으로 본다면 뉴라이트는 가장 오른편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연대의 김성란 대외협력위원장은 "최근 뉴라이트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책을 내는 등 역사논쟁을 시작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 시기에 당시의 보수진영에서 역사논쟁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네오콘으로 나타났다"면서 "뉴라이트 역시 이러한 미국의 역사를 베껴 와 최근 역사논쟁을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뉴라이트의 미래상 역시 소유권을 100% 보장하는 신자유주의적 체제를 완성시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이나미 강사는 "자유주의연대를 비롯한 뉴라이트 세력들이 어떤 이념을 가질 것인지를 놓고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바람직한 현상"이라면서 "자유주의를 제대로 공부하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은 진보진영에 대한 성찰이어야"**
하지만 통일연대의 김성란 대외협력위원장은 "뉴라이트를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에 반대한다"면서 "뉴라이트는 '반짝 장사'가 아니라 분단체제와 종속적 한미동맹 체제의 변화가 가져오는 구조적 변화에서 비롯된 역사적이고 거시적인 변화"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뉴라이트의 출발 지점이라면 진보진영도 이 변화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면서 "뉴라이트와 진보진영은 현재 변화된 국민의식을 두고 논쟁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은수미 박사는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은 좌에 대한 성찰이어야 한다"면서 "진보진영이 뉴라이트에 대해 비성찰적이며 폐쇄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만큼 진보진영도 그러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진보진영과 유사한 면이 있기 때문에 뉴라이트가 득세하는 것"이라면서 "진보진영은 차별 철폐를 외치면서도 차별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하지 못하며, 각 부문이 자신이 당면한 문제가 소재한 부문 이외의 부문에는 관심을 갖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진보진영이 추상적 개념의 공공성, 평등을 넘어 구체적인 대안과 심도 있는 논의가 가능하도록 깊이 있는 성찰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중의 감수성에 맞는 비전과 담론 생산이 필요하다"**
이날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뉴라이트의 실체에 대한 의문과 지향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지만 시민사회에 상당히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고, 시민사회 내적으로 꽤 포섭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렇게 보수진영 전체가 변화하고 있는 데 대한 진보진영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주 경실련의 김재석 사무처장은 "현재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통합 작업을 벌이고 있다"면서 "이처럼 차이를 전제로 한 연대를 확장하는 것이 진보진영의 성찰 노력이자 대안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나미 강사도 "보수주의자는 결정적인 순간에 잘 뭉친다"면서 "뉴라이트는 올드라이트와 다르다고 하지만 2007년 대선이 다가오면 뭉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진보진영에서도 서로 논쟁과 대립으로 스스로를 소모시키지 말고, 연대하여 대중에게 친밀하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기식 사무처장은 "뉴라이트가 이데올로기적 포섭력을 가지는 데 주목한다"면서 "진보진영의 대응은 결국 얼마나 대중적 설득력을 가지고 대중의 감수성에 와 닿는 비전과 담론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문제에 달려 있다고 본다"는 말로 토론회를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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