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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 믿고 까불면..."

김민웅의 세상읽기 〈216〉

돌에서 태어난 원숭이는 담력이 워낙 뛰어나 이내 원숭이 무리의 두목이 되었습니다. 이름 하여 "미후왕(美猴王)"이었습니다. 풀자면 "아름다운 원숭이 왕"이라는 뜻이었는데, "아름다운 원숭이"라, 좀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이것이 손오공(孫悟空)이 본래 스스로 자신에게 붙인 호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저 원숭이 무리의 우두머리로만 자신의 삶이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해서 그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비법을 배우기 위해 길을 나서게 되는데 그러는 중에 도사를 만나 그에게 손오공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워낙에 야망이 커서 이후 하늘의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고 불사(不死)의 능력과 함께 여의봉을 손에 넣어 온갖 난장판을 벌이다가, 바위 속에 갇혀버리는 형벌을 받게 되고 맙니다.

제 힘만 믿고 우쭐대다가 꼼짝 못하고 다시 본래 태어났던 대로 돌이 되는 운명에 처한 셈이었습니다.

이후 당나라 삼장법사의 제자가 되어 서역의 천축국(天竺國)으로 가는 길에 갖가지 요괴를 퇴치하고 결국 득도(得道)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유기(西遊記)〉의 뼈대입니다.

인간의 욕망과 오만이 권세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덫임을 경고하면서, 인간을 괴롭히거나 유혹하는 온갖 망상을 이겨내는 역정을 통해서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는 일깨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의 매력은 우선 그의 화려한 도술(道術)입니다. "제천대성(齊天大聖)"이라고 자신의 지위를 스스로 높여 그 위력을 내세우면서 하늘까지도 뒤흔든 그의 재주는 누구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건 사람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권력에의 의지"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래봐야 그건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손바닥에서 까부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손오공은 그런 의미에서 오랜 세월, 동양의 정신사 속에서 인간의 자화상의 상징해주었습니다.

그의 탄생에 얽힌 사연과 이후 활기가 넘친 시절의 갖가지 소동,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를 징벌과 서역으로 가는 길에 직면했던 요괴와의 싸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법(佛法)의 깨우침으로 인한 손오공의 성장사(成長史)는 보편적인 적용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범위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석가여래의 손바닥은 오늘날, 역사와 민심 그리고 시대정신 등으로 달리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

잘 나가던 이들이 이따금 중도에서 순식간에 추락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남들을 추락시키면 시켰지 자신은 그렇게 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는 이들의 불운은 그러나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 재주와 능력을 믿고 제천대성이나 된 듯이 여기고 뻐기는 순간, 결국 판단력은 흐려지고 온 몸은 바위틈에 끼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맙니다.

손에 여의봉이 있으면 무얼 합니까? 구름을 타고 다닐 수 있으면 무얼 합니까?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손오공에게 기대하는 것은 세상의 요괴를 물리치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생각과 제도를 펼쳐나가는 일에 충심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재주가 많고 우두머리가 될 만하면 그 이상을 꿈꾸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권력에의 의지"보다 빈 마음으로 "득도의 뜻"이 앞설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가지고 이루어질 축복입니다.

손오공의 실력과 위치를 탐내는 이는 많지만 정작 〈서유기〉의 끝장까지 가는 이는 드뭅니다.

* 이 글은 〈프레시안〉의 편집위원인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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