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가 1975년 '백지광고 사태'를 맞아 동아일보에 격려광고를 냈던 시민들에게 오는 4월 1일 저녁 6시 동아일보사 앞마당에 모이자고 제안했다.
동아투위는 20일 "동아일보, 동아방송을 살리기 위해 격려광고를 냈던 광고주들은 동아일보 사주가 자유언론의 대의를 배신한 이상 진상규명을 요구할 권리와 격려광고 성금의 반환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여백을 삽니다"**
동아일보의 백지광고 사태와 이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격려광고 게재는 31년 전인 1975년 초에 벌어진 일로서 동아투위가 모임의 참여대상으로 꼽은 '격려광고주'들은 대개 40대 후반에서부터 80대에 이를 것으로 보여 과연 얼마나 모일지 관심을 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1974년 12월 중순부터 동아일보의 광고주들을 위협해 신문의 광고동판과 방송의 광고녹음을 회수해 가도록 했다. 그 결과 그 해 12월 25일부터 동아일보에는 일반 광고가 완전히 사라졌고, 말 그대로 '백지광고'가 나갔다.
그러나 1975년 초부터 시민들은 광고지면을 사며 격려하는 문안을 보내왔다. 다음은 1975년 1~2월에 게재된 격려광고문 가운데 일부다.
(박스 시작)
* 동아! 너마저 무릎 꿇는다면 진짜로 이민갈 꺼야. - 이대 S생
* 약혼했습니다. 우리의 2세가 태어날 때 아들이면 '동아'로, 딸이면 '성아'(여성동아)로 이름을 짓기로 했습니다. - 이묵, 오희
*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여백을 삽니다. - 밥집 아줌마
* 직필은 사람이 죽이고 곡필은 하늘이 죽인다. - 부산 어느 기자
* 총화단결을 파괴하는 자는 동아를 고사시키는 바로 당신들이다. - 1대학강사
* 긴급조치로 구속된 동료학생에게 사식비로 전하려 했으나 그 길마저 당국이 차단해서 동아일보에 성금을 바칩니다. - 이대 사회학과 일동
* 작은 광고들이 모두 민주 탄환임을 알라. - ㅇㅇ출판사 편집부
* 겨레여! 민주수호와 자유언론을 위해 총화단결하여 투쟁합시다. - 을지로 6가 평화시장 피복사 근로자 30인
* 썩은 이를 뿌리뽑자. - 젊은 치과의사들
*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 - 어느 경북대 교수
* 시장길에서 만난 우리들 빈 바구니로 돌아서며 조그마한 뜻 '거목 동아'에 보냅니다. - 주부 일동
* 국민 여러분 우리 손자에게 아빠를 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박경리 (2월 17일 사위 김지하씨 석방 후)
* 이 상태에서 우리는 뭘 배울 수 있겠습니까. - 동성고 6인
(동아투위 제공)
(박스 끝)
동아투위에 따르면 1975년 1월 한 달 동안 게재된 격려광고는 모두 2943건이었고, 탄압이 심했던 시절이었으니 만큼 이 가운데 익명의 신청자는 58.9%에 달하는 1734건이었다.
당시 동아일보에는 시내버스 안내양들이 신문팔이를 해 번 돈으로 광고를 샀다거나 긴급조치로 옥고를 치르다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장준하 선생이 친구가 입원비에 보태 쓰라고 준 돈을 성금으로 내놓는 등 감동적인 사연이 계속됐다.
또 최근에는 첫 번째 격려광고가 당시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낸 '언론의 자유를 지키자'라는 광고였던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동아투위는 지난 17일부터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동아 광고탄압과 언론인 무더기 축출'에 대한 사주의 사죄와 정부 당국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농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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