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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과 붉은악마, 자살골 넣으려 하나

[기고] 상업주의와 국가주의의 덫에서 벗어나야

2002년 한국을 들었다 놓았던 월드컵 열기가 우리에게 다시 '준비태세'를 요청하고 있다. 언론과 자본은 "2002년을 기억하라"며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등 이미 전투태세다. 특히 통신계의 두 강자인 KTF와 SKT는 서로 자기네가 '진짜'라며 족발집, 떡볶이집 수준의 '원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어느새 월드컵 열기는 진흙탕 싸움판이 돼버렸다. 응원가 시비가 일면서 붉은악마와 윤도현이 등장했고, '봉이 김선달' 서울시는 시청 앞 광장을 재벌에 팔아넘기면서 이 싸움판에 '등록'했다. 무대 위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무대가 비좁아 보일 지경이다. 그들은 뒤엉켜 서로를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는데, 어느 손가락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헷갈리는 아수라장이다.

***돈 때문에 서로 등돌린 붉은악마와 윤도현**

자본과 언론에 대한 실망은 이미 익숙한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이러한 그림 속에 영 어울리지 않는, 그래서 보기에 안쓰러운 이들이 있다. KTF와 SKT가 서로 거리응원의 '적자'임을 상징하고 증명하기 위해 내세운 문화적 아이콘 붉은악마와 윤도현이다.

4년 전 월드컵 열기의 1등공신은 붉은악마와 윤도현밴드일 것이다. 붉은악마는 국민적 성원을 받으며 이제 회원 수 30만이 넘는 거대조직이 되었고, 당시 히트곡도 몇 안 되던 윤도현은 '국민가수'의 반열에 오르며 광고대박까지 터뜨렸다. 그런데 독일월드컵을 목전에 둔 지금 이 둘은 갈라섰을 뿐 아니라 서로 대치하고 있다. '하나'로 뭉쳐야 할 이들이 이렇게 따로 노는 이유는 무엇일까. 좋게 말해 스폰서이고, 까놓고 말해 돈이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결별한 이들은 나름의 이유를 들어가며 각자 자신의 '(상업적) 선택'을 합리화하고 자신의 변치 않는 순수성을 주장하지만 숲을 보든, 나무를 보든 그들의 행위에는 비판의 여지가 많고도 넓다.

***상업마케팅에 포획된 윤도현의 '저항'**

윤도현. 유명세를 탄 이후 의식 있는 가수로 알려지면서 주변에서 그를 귀찮게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음악만 하게 내버려 둬'라며 힘들어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힘이 다시 났는지 TV와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도 하고 광고모델도 한다. 물론 대중가수인 그는 더 많은 수입을 추구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매우 '상업스런' 포즈와 목소리로 접하게 되는 그를 보면 과연 촛불시위 한가운데서 반미와 반전을 외치고 인권을 공부하고 싶다던 그 윤도현이 맞는지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사실 젊음과 저항은 상업마케팅이 눈독 들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서태지는 이 땅의 부모가 싫어하는 모든 것(소음에 가까운 음악, 흑인 갱스터 패션, 그리고 '내 자식'이 흠모해서는 안 될 그의 학력 등)으로 승부했지만 엄청난 규모의 추종세력을 갖게 되었고, 곧 단군 이래 최고의 상품으로 거듭났다.

서태지는 의류회사 닉스와 단 3개월 간의 광고모델료로 8억 원, 프로스펙스와 1년 간 15억 원, 그리고 KTF의 야심작 fimm의 모델료와 콘텐츠 제공 댓가로 32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서태지에 비해 '의식'에서 뒤지지 않을 윤도현은 광고모델 수입 총액에서는 뒤질지 모르겠으나 더 다채로운(?) 회사들과 광고계약을 맺었다.

***'저항문화와 성공'의 딜레마**

오랜 기간 피지배계급은 그들의 문화를 통해 지배계급이 강요하는 사회가치와 이데올로기에 도전했고, 이를 두려워한 지배집단은 바른생활을 강요하며 억압해 왔다. 이러한 갈등구도에 대중문화의 효용성을 간파한 상업자본주의가 뛰어들었다.

이 갈등은 어떻게 완화되는가. 갈등은 지배계급의 전략과 저항세력의 한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해소된다.

우선 지배계급은 저항이 못마땅하지만 '성공적인 저항'과는 타협한다. 지배계급의 동맹인 상업자본주의를 발동시켜 성공적으로 저항한 이들에게 부와 인기를 수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항세력에게는 이 과정을 도울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저항의 성공적 확산을 위해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반전과 평화를 노래하던 Jefferson Airplane(후에 Jefferson Starship으로 개명), 영국의 보수주의와 심지어 여왕까지 조롱했던 Sex Pistols, 공산주의자를 자처하며 시민혁명을 노래한 Clash, 물질문명 배격의 선봉에 섰던 Bob Marley, 미국의 패권주의와 그 잔혹함을 고발한 Rage Against The Machine, 그리고 언더그라운드에서 X세대의 우상으로 부상한 Nirvana 등은 모두 저항을 노래했지만 상업주의의 '전통의 명가' 레코드회사와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타협도 했고 외도도 했다. Nirvana는 미국 최대 할인매장인 월마트의 판매거부로 앨범 〈In Utero〉의 디자인과 곡명을 수정했고, Clash는 그들의 곡 〈Should I stay or should I go〉가 리바이스 광고에 삽입된 바 있으며, 나이 들어 팝락으로 귀순한 Van Halen의 〈Right Now〉는 환경보호 캠페인 차원에서 만들어진 곡이었지만 펩시콜라 광고의 배경음악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지배집단은 성공한 저항문화에서 저항을 탈색시키고 이를 대중이 열광하는 히트상품으로 전환시키기도 하고 다른 상품이나 패션과 결합시키기도 한 것이다. 마치 체 게바라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의 글을 읽은 적도 없지만 그와 동일시하려 그의 얼굴이 그려진 흑백 브로마이드를 탐내고 그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는 젊은이들에서 보듯이.

그러나 위에 언급한 이들이 아무리 인기를 얻고 돈을 벌었어도 절대 하지 않았던 것이 있다. 바로 상업자본의 이윤 창출을 돕기 위해 스스로 그 전위가 되어 그들의 광고에 출연하는 것이다. 그들은 음악인이기에 철저하게 음악으로 승부했고 음악으로 돈을 벌었다.

그러기에 다채로운 회사의 광고에 출연해 '상업스런' 포즈를 취하는 윤도현을 보면 서태지 못지않게 영 어색하고 때론 불편하다. 또 다시 월드컵을 맞아 '타이밍'까지 고려하며 다시 그 재벌과 같이 음악하고 광고 찍는 모습이나, 결국 거리응원 다툼에 휘둘리게 된 그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기도 한다.

***붉은악마의 검은 옷**

붉은악마는 과거의 동지였던 윤도현이 현재 적의 동지가 됐다 해서 너무 쉽게 '나의 적'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는 붉은 악마가 한 '상업적 선택'의 결과인 셈인데 최근 보여준 그들의 무리수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얼마 전 붉은악마는 대 앙골라 전 응원에서 검은 옷을 입고 나와 축구계의 비판을 샀다. 이 '추태'에 대해 붉은악마는 자신들이 참여한 KTF 컨소시엄이 SKT컨소시엄에 서울시청 앞 광장을 빼앗겼기 때문은 절대 아니라면서, 프로축구 부천SK 구단의 일방적 연고지 이전 결정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한국 축구의 근간인 프로축그의 연고제 정착을 위해, 그리고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SK에 경고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라 했다.

그러나 그 과정과 지난 행적을 더듬다 보면 붉은악마의 주장에 고개가 심하게 갸웃해진다.

이들이 한국축구 발전 운운하는 모습은 난데없다. 작년에 도가 지나친 국가대표팀 소집으로 인한 선수 혹사, K리그 활성화, 축구협회 국정감사로 촉발된 축구협회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 등을 다루기 위해 의견을 나누자고 몇몇 단체가 수 차례 제안했을 때 이들은 거절했다. '제발 우리를 가만히 놔둬'라고 하면서.

그때 그들은 "붉은악마는 개인 의지로 움직이고 대표팀을 서포팅하기 위한 단체일 뿐이며 경기장에서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만 추구한다"는 변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들은 3월 1일 집단최면에 걸린 듯 정확히 반대로 행동했다. 또 이제까지 그들이 못본 척했던 '축구발전'의 깃발을 갑자기 주워들었다. 그들은 남의 깃발을 집어 들고는 그걸 펄럭여가며 SK를 야유하고 대한민국을 외치는 다른 관중에게 폭언을 하기도 했다. 속 보이는 변신이다.

***연고지 이전이 비난할 일인가?**

여기서 연고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어느 팀은 천안에서 성남으로, 다른 팀은 안양에서 서울로 옮겼다. 모든 구단이 이렇듯 서울로만 향하고 있는데 SK가 제주도로 옮기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붉은악마는 지역의 팬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난하지만 프로구단이 연고지 옮기는 것은 철저한 상업적 판단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LA 레이커스라 알고 있는 팀도 과거엔 그곳 팀이 아니었다. 왜 팀 이름이 '호수들(lakers)'일까? 호수가 많기로 유명한 미네아폴리스에서 창단된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가 옮겨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메이저 프로스포츠에서 적자에 시달리는 구단은 없다. 그러나 흑자를 내는 데도 연고지를 옮긴다. 다른 지역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기 때문에 옮기기도 하고, 잘 있다가도 갑자기 경기장이 맘에 안 든다며 시나 주 정부에 새로 지어 달라고 생떼를 쓰다가 안 지어주면 옮기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주민들이 붉은악마식으로 험악하게 나오는 경우는 없다. 그 구단을 붙들어 매기 위해 써야 할 돈이 내키지 않으면 그냥 보내는 것이다. 보내놓고 보니 아쉬우면 나중에 다른 구단 유치하면 된다는 식의, 철저한 시장논리다.

붉은악마는 영국축구의 예를 든다. 그러나 이는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찾은 것이다. 과거 독재정권이 지도에 말뚝 박듯 '여기 가서 축구 해!' 하면 따라야 했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영국은 지역의 기업가(주로 공장주)가 노동자와 그 가족을 위해, 결국은 자신이 돈을 번 지역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팀을 만들었다.

따라서 영국의 축구팀은 지역 노동자와의 관계가 돈독한, 지역의 공공재로서 기능했고, 그러한 전통으로 인해 연고지 이전은 구단의 운영전략으로 고려될 수 없었다. 태생도, 역사도, 환경도 다른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나친 공공성으로 인해 영국축구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영국의 불황과 훌리건의 등장 때문에 영국축구는 유럽의 2부 리그로 전락했고 훌리건은 유럽사회의 골칫덩어리가 되었다. 그 돌파구가 된 것이 상업화였다. 이제까지 팀에 대한 충성심을 면죄부 삼아 폭력을 일삼고 판을 망치는 '팬(훌리건)'과 단절하고 '고객'을 찾아 나선 것이다.

당시 대처 정부는 훌리건을 대대적으로 '소탕'했다. 구단은 훌리건의 경기장 내 집결지인 입석 공간에 지정좌석을 깔았고, 경기장 환경을 혁신했으며, 감시카메라와 경비원의 수를 대대적으로 늘렸다. 당연히 입장료도 곱절 이상 인상했다. 이러한 변혁을 겪은 후 영국은 축구종가의 부활을 알리는 캐치프레이즈 'Football is Coming Home'을 내걸고 199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지금의 유로컵)를 유치했고 그 뒤 최고의 리그로 거듭났다.

물론 재벌기업이 손해 볼 일은 절대 하지 않지만, 그래도 일년에 50억에서 100억 정도의 적자를 보는 상황이라면 구단이 연고지 옮기는 것을 '그런 식'으로 비난할 일은 아니다. 이미 어느 방송진행자가 붉은악마에게서 훌리건의 모습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했듯이 이런 일이 반복되면 붉은악마도 구단과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라면 아마추어답게 즐기자**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상당수 붉은 악마는 열정과 믿음이 지나쳐 아집에 빠진 듯하다. 누군가 게시판에서 맘에 들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이렇게 반응한다. "당신 몇 번이나 대표팀 응원하러 가봤냐." "우리가 당신보다는 한국축구에 대한 열정이 높다."

이들은 '한국 대표팀 응원'과 '한국축구 발전'을 혼동하고 있다. 붉은악마는 국가주의와 애국주의에 매몰된 집단이라는 많은 이들의 지적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스스로 만든 스펙터클에 스스로 열광하고, 전체주의적이면서도 폐쇄적인 이들의 성향은 파시즘의 의혹을 갖게 한다. 거대한 집단적 창조행위에 참여하면서 그 육감적 흥분을 즐기는 이들. 그리고 참으로 공교롭게도 나치식 경례와 흡사한 이들의 몸짓.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붉은악마는 너무 비대해졌고, 응원의 규모는 그들의 몸집 이상으로 커졌다. 자기 돈, 자기 희생을 이야기하면서 왜 10억에 가까운 후원금과 버스 120대의 지원이 필요한가. 정치권의 제의와 시민단체의 제의는 거절하면서 왜 자본과는 마다 않고 손을 잡는가. 그것도 하나도 아닌 여러 개의 손을. 스펙터클에 집착해 규모만 키워 일은 잔뜩 벌여놓고 이제 뒷감당이 안 되니 급전이 필요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선택한 게 재벌과의 포옹 아닌가.

붉은악마가 프로페셔널 응원단이었던가. 프로응원단이 아니라면 아마추어답게 하기를 바란다. 원정응원도 젊은 사람 배낭여행 떠나듯 하기 바란다. 마치 군사작전 하듯 120대의 버스로 몰려다니지 말고, 기차도 타고 시내버스도 타고 지도도 찬찬히 봐가며 젊은 날의 뜻있는, 추억 많은 여행을 다녀오기 바란다.

***다시 헤쳐 모여 하나가 되길…**

짧은 생각이지만 나는 이제까지 윤도현을 보면서 상업주의를 연상했고, 붉은악마를 보면서 국가주의를 느꼈다. 그런데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그들은 새로운 무기를 장착했다. 윤도현은 기존의 상업주의에 국가주의(애국가 마케팅)를, 붉은악마는 그들의 국가주의에 상업주의(스폰서)를 끌어다 결합시켰다. 갈라섰지만 이들 둘은 결국 닮은꼴이다. 그럴 거라면 뭐 하러 갈라서나.

윤도현과 붉은악마는 우리가 역사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우리 문화역량의 주축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순간의 방심으로 저지른 자충수가 자살골로 연결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야 비로소 나를 포함해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다시 헤쳐 모여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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