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의 꿈이 영글고 있는 개성공단에 시련의 계절이 찾아 왔다.
북한이 2004년 12월 공단 가동 후 처음으로 종업원들의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나서는 한편,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표시하는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대두됐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개성공단이 실질적인 가격 경쟁력을 지닌 상품을 생산하는 공업지구가 될 것인지가 판가름 난다. 이곳으로의 진출을 고민하는 남한의 기업들은 이번 일이 해결 추이를 본 후 진정한 '투자 유인' 요소를 발견하거나, 아니면 뒷걸음질 칠 것이다.
***"공장 가동 시작도 안 한 기업도 임금인상 압박"**
우선 최저임금을 4% 인상해 달라는 요구는 문제 해결의 양상이 주목된다.
남북 당국과 입주기업 및 노동자들이 상호 입장을 합리적으로 조율해 임금 수준을 결정한다면 문제될 게 전혀 없다.
그러나 작업 거부나 파업 같은 대결과 갈등이 노정되거나, 금강산 관광 사업에서처럼 북측 특유의 '실력 행사'에 입주 기업들이 휘둘린다면 공단 진출 자체를 백지화할 공산이 크고 공단에 이미 진출한 기업들도 생산을 축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입주 기업들이 임금인상 요구로 '진통' 혹은 '몸살'을 앓고 있다는 최근의 언론 보도는 우려를 자아낸다.
〈한겨레〉의 7일 보도에 따르면 개성공단 입주기업에서 종업원들을 대표하는 직장장들은 현행 월 50달러인 최저노임을 4% 인상해 달라는 입장을 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을 통해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측이 2003년 9월 채택한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 25조에 따른 것으로 이 조항은 월 최저노임을 50달러로 하되, 공업지구관리기관(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이 중앙공업지구지도기관(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합의해 전년의 5%까지 높일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시범단지에 입주한 15개 기업 중에는 가동기간이 6개월이 채 안되거나 아직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기업도 있어 일괄적인 인상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장근무 거부도 있었다"**
북측은 또 올 들어 노동강도가 높은 몇몇 직종에 추가임금을 지급하는 직능별 임금 차별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는 지난해 북측이 개별 기업별로 직장장, 총무, 총반장, 반장 등의 직책 수당을 추가로 요구해 관철시킨 후 나온 것이다. 이 신문은 한 입주기업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개성공단의 실질 인건비는 이미 80~100달러에 이른다"고 전했다.
개성공단의 임금은 최저노임 50달러에 15%의 사회보험료를 합친 57.5달러로 알려졌으나 여기에 6달러의 출퇴근 보조비, 점심 부식 지원, 직책 수당 등을 합치면 실질 인건비가 크게 오를 수 있다.
이에 앞서 입주기업 사장단은 지난 1월 19일 북측과 종업원의 일당 계산방식을 놓고 협의한 결과, 연간 노임에서 365일을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가동일수인 296일로 나눠야 한다는 북측 요구를 수용했다.
이에 따라 일당은 1.64달러에서 2달러로 높아졌고 사측이 연장근무 때 지급해야 하는 수당도 다소 커졌다.
특히 이 협의가 이뤄지기에 앞서 일부 작업장에서는 일당 계산방식 때문에 연장근무를 거부하는 일도 벌어진 것으로 알려져 어느 정도의 마찰과 갈등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같은 보도에 대해 통일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해명했으나 관련 사실 대부분을 시인했다.
직책 수당에 대해 통일부는 "책임을 부여하고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내는 한편 일부 직장장 등에 대해서는 북측과 협의해 인력을 교체함으로써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또 "직종에 따른 임금 차등의 문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인센티브제로서의 기능도 할 수 있다고 보며 적절한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며 "정부는 입주기업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가능한 부담이 크지 않도록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개성공단 제품이 미국의 '관세 폭탄'을 맞는다면…**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한미 FTA에서 한국산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공단이 국제 무역, 특히 대미 무역에서의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핵심 요소다.
미국과 한국이 개성공단 상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조항을 포함한 FTA에 합의한다면 개성공단 제품은 특혜 관세를 적용 받아 훨씬 싼 가격에 미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중국이나 동남아 등에서 생산된 제품과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된다.
더군다나 미국은 북한 등의 '불량국가'가 생산한 제품에 대해 고율을 관세를 매김으로서 사실상의 수입 차단 효과를 보고 있어 '개성산' 제품의 미국 진출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의 FTA 협상팀과 통일부 등 개성공단 관리 부처는 이달 초 맺은 한-싱가포르 FTA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미 FTA에서도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되도록 미국에 강력히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김금동 개성공단운영위원장은 "한미 FTA는 개성공단 제품들에도 반드시 확대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이같은 입장이라고 〈불름버그〉 통신이 6일 전했다.
신언상 통일부 차관도 지난달 23일 "개성공단 제품이 특혜 인정을 받으면 좋겠다는 심정은 다 마찬가지"라며 "협상이 시작됐고 최대한 FTA의 정신이 반영되도록 외교부, 재경부 등 유관 부처와 긴밀히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원산지 우회방지 규정 만들겠다'고 맞서**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롭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한미 FTA 협상 출범 기자회견 때 "한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에 대해서만 FTA가 적용된다"고 밝혀 개성공단 제품에 대해서는 FTA 적용이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도 지난달 14일 "한국과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해서만 FTA가 적용될 것"이라며 "개성공단 제품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는 아주 복잡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USTR이 미 의회에 제출한 협상 통보문에는 "(FTA에 따른) 특혜 세율은 그런 특혜를 받을 자격이 있는 (한국산) 재화에만 적용되도록 원산지 '우회방지' 규정을 만든다"고 밝혔다. 〈불름버그〉는 이같은 상황에서 개성공단 제품 문제가 한미 FTA 타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까지 보도했다.
과거 개성공단 추진을 주춤케 했던 요인은 주로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이나 남한 보수파들의 반대 등 '외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새로 대두된 임금 인상과 원산지 문제는 철저한 시장 원리 혹은 경쟁 논리로 움직이는 문제들이다.
지난해 김윤규 전 회장 문제로 현대아산이 금강산 사업에서 치렀던 곤욕과 유사한 문제가 개성공단에서 벌어진다면 기업들은 당장 발을 뺄 것이다. 그곳에 들어선 기업들은 대기업이 아니고, 현대아산처럼 독점적 권리를 갖지도 않은 중소 제조업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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