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이란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갖은 수단을 동원해 옥죄고 있는 미국이 최근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가입하지도 않은 채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해온 인도와 핵 협력 협정을 맺고 핵 관련 기술을 이전하기로 한 데 대해 '이중잣대'라는 비난이 일어나고 있다.
영국의 〈BBC〉 방송은 2일(현지시간) NPT 지지자들은 이번 협정이 인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무시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미국이 이번 협정에서 인도의 22개 핵시설 가운데 8개의 군수용 핵시설은 불문에 붙이기로 한 것은 미국의 전략을 위해서라면 핵무기 개발에도 '면죄부'를 주는 선례가 됐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인도 핵협정은 무엇보다도 시장 확대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파키스탄 "우리와도 협정 맺자" 즉각 반응**
이번 협정이 잘못된 선례가 됐다는 우려는 인도의 오랜 경쟁국인 파키스탄에 의해 즉각 입증됐다.
파키스탄 외무부의 타스님 아슬람 대변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은 화석연료가 부족한 나라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핵 개발을 강조해왔다"며 "미국이 인도와 같은 종류의 핵 협력을 파키스탄에 제공하도록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인도 '지(Zee) 뉴스'와의 회견에서 "인도와 맺은 협정을 파키스탄과 맺을 때가 아니다"라며 파키스탄의 원성을 잠재우려 했다. 그는 파키스탄 핵 개발의 아버지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북한과 리비아, 이란에 핵 기술을 이전했다는 의혹을 거론하며 "파키스탄에는 핵 확산에 관한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에 앞서 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1일 "인도와 파키스탄은 합법적으로 핵무기를 획득했다"고 말해 파키스탄의 핵 개발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 머지않아 유사한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낳았다.
파키스탄도 대테러전에서의 적극적인 대미 협력을 명분으로 미국과의 핵협정을 추진하거나, 그동안 해왔던 대로 최소한 '묵인'이라도 받아내려는 희망을 갖고 있다.
***군수용 핵시설 비공개, NPT 미가입에 침묵하는 국제사회**
이같은 이중잣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번 협정을 오히려 환영하고 나서 IAEA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하고 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이날 이번 협정은 국제적인 핵 체제에서 고립된 인도를 개방하고 핵 비확산 노력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평했다.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이번 협정은 핵 비확산 체제를 강화하고, 핵 테러와 싸우며, 핵 안전을 높이는 노력에서 하나의 이정표"라며 "점증하는 인도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진전"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물론 IAEA가 국제적인 사찰을 전제로 민수용 핵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기구라는 점에서 민수용 원자로의 사찰을 규정한 이번 협정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8개의 군수용 핵시설은 공개하지 않기로 한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덮어놓고 환영만 했다는 것은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는 눈총을 피할 수 없다.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함께 NPT 체제를 주도하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도 인도가 여전히 NPT에 가입하고 있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이번 협정이 "비확산 체제의 성취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 안보에 엄청난 기여를 할 것"이라고 환영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이번 협정이 기후 변화와 비확산 노력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지난달 인도와 유사한 협정을 체결했다.
***부시 "역사적인 일"…민주당 "역사적인 실패"**
그러나 미국과 인도의 핵협정에 대한 미국 내외의 반발이 만만찮아 이번 협정이 실제 발효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핵협정을 비준해야 할 미 의회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공화당 소속인 에드 로이스 하원 테러비확산 소위원장은 미국과 인도의 관계 개선은 지지하지만 의회가 꼼꼼히 따져봐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의 에드 마키 하원의원은 이번 협정이 미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핵정책의 역사적인 실패"가 될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마키 의원은 "부시 대통령은 전 세계가 지켜왔던 핵에 대한 규범에 구멍을 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미 의회에는 이번 협정이 NPT에 근거하지 않은 데 대한 불안, 핵무기 개발에도 북구하고 '보상'을 받았다는 두려움, 미국이 앞으로 더 어려운 거래에 직면할 것이라는 생각이 공존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또 인도에는 핵무기 제조 프로그램에 필요한 핵분열 물질을 만들 능력이 여전히 있고, 그에 따라 핵무기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의회내에 존재한다.
***핵 관련 '행동 일치' 관례 깨**
44개국으로 이루어진 핵기술공급그룹(NSG)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도 남아있다.
미국은 인도와의 핵협정에 대해 이미 영국과 러시아, 프랑스의 지지를 이끌어냈지만 아일랜드와 일본, 네덜란드 등은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쌍무적인 핵 협정에 NSG의 동의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핵기술 이전에 대한 '일치된 견해'와 '공동대응'을 중시하는 국제사회의 관행으로 볼 때 미국이 그같은 합의의 전통을 깼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이번 협정의 궁극적인 견제 대상인 중국이 인도와의 '전례'를 들어 북한 핵 개발에 완화된 입장을 취할 경우 이 지역 정세를 어지럽히고 '핵 도미노'의 또다른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미국 핵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BBC〉는 전하고 있다.
중국은 협정이 나오자마자 "핵 협력은 반드시 NPT에 근거해야 한다"고 경계감을 드러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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