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사업, 시청앞 광장 조성사업, 서울문화재단 설립, 뉴타운 조성사업 등 취임 이후 추진했던 거의 모든 사업들에서 시민단체와 마찰과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이 시장은 최근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서울지역 19세 이상 성인 남녀 540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조사에서 시정 평가 점수가 100점 만점에 72점으로 나올 정도로 상당히 인기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이를 기반으로 대권에까지 도전하려는 이명박 시장을 보며, 각 지방자치단체 출마 후보자들은 충분한 학습효과를 가졌을 법하다. 이미 많은 지자체에서는 버스노선개편, 복개하천 복원 등 서울시의 정책을 따라하기도 했다.
오는 5월에 열리는 지방선거에서도 이명박 시장의 출마 때와 같이 생태도시, 문화도시 등의 공약이 난무하리라는 예측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는 이명박 시장의 ' 반환경적인 신개발주의'가 전국에서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명박 시장은 시민사회에 실패의 경험을 안겼다"**
문화연대가 23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7층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연 토론회 '민선 3기 서울시와 이명박 시장을 말한다'는 지난 4년간 서울시 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 이런 시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 토론회는 '공간/생태' ,'문화/예술', '미디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됐으며, 각 분야별로 이명박 시장의 시정 성과들을 예리하게 따져보았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시민단체의 활동가나 연구소의 연구위원들은 그간 시민사회가 이명박 시장의 문제점을 꾸준히 비판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가 상당히 높다는 점에서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이명박 시장은 문화연대가 이번 토론회를 알리는 보도자료에서도 밝혔듯 "공공 부문에 있는 사람 중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문화연대는 이 보도자료에서 "비판하면 배제하고 비판자를 비난하며 상황을 돌파해가는 이명박 시장의 시정은 문화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에게는 실패의 경험으로 남아 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결국 시민사회 단체들에게 '이명박 딜레마'는 이 시장이 반민주적인 방식으로 반환경적인 '신개발주의'를 시행해가는 데에도 정작 서울 시민들은 그를 '능력있는 CEO 시장' 등의 이미지로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에 있다.
다음 서울시장이 전대의 높은 인기만을 보고 이명박 시장의 정책 방식을 답습해도 큰 문제거니와, 이 시장이 차기 대권 후보로까지 오르내리고 있어, 시민단체들로서는 이 딜레마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왜 시민들이 청계천과 서울광장의 스케이트장을 좋아하는가?"**
이날 '문화/예술' 부분 토론회에 방청객으로 참가한 라도삼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민단체들의 비판은 '이명박 시장이 틀렸다'는 자신의 전제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친다"고 비판하면서 "왜 시민들이 청계천과 서울광장의 스케이트장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라 위원은 "시민단체들이 문제가 있다고 보는 청계천과 서울광장을 시민들이 환영한다면, 시민들의 눈높이가 낮거나 혹은 시민단체들의 눈높이가 지나치게 높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날 토론회에 '문화/예술' 분야의 발제를 맡은 박인배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기획실장은 "서울 광장 한 귀퉁이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이들은 500명이 채 안 된다"면서 "그 외의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바라보고 대리만족을 얻는 것이다"고 반박했다.
박 실장은 "이러한 전시행정, 대리만족 시스템은 이명박 시장의 문화정책의 특징"이라며 "잔디보호, 공공청사시설 등을 내세워 엄격한 사용제한을 두고 있는 서울광장이나 소수의 고급 계층만을 위한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계획 등이 그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시장은 문화정책의 목표가 '시민 문화 향수권 확대'라고 밝히면서도 이러한 전시행정만을 거듭할 뿐, 서울 시민들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생활문화' 진흥에 대한 관심은 전무하다"면서 "그가 가진 문화정책에 대한 관점은 철두철미한 공급형"이라고 비판했다.
***"일방적으로 공급에 대한 만족도만 중요한 게 아니다" **
임정희 시민자치문화센터 소장은 "서울시는 시행, 평가, 재조정 등 모든 과정을 분산하지 않고 있으며, 다른 주체들과의 협력을 단지 형식적으로만 사용한다"며 "서울시 문화정책의 최대 문제점은 집중된 권력이 집중된 경영 전략으로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다"고 비판했다.
임 소장은 "시민들에겐 위에서 아래로 제공된 마지막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하나의 문화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화적 산물 외에 일어나는 많은 성과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의 문화정책은 시민들의 창의성, 창조성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면서 "위에서 아래로 제공하는 공급형 문화정책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 열린 문화정책이 '생활문화'의 육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당부했다.
***"마술쇼처럼 모든 진행과정 숨긴 채 추진해 온 이명박 시장" **
이에 앞서 열린 '공간/생태'부분의 토론회에서도 이명박 시장의 '인기'에 대한 분석이 이뤄졌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은 "이명박 시장이 인기가 많은 까닭은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인기가 많은 까닭과 같다"며 "둘다 마술쇼를 펼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 위원장은 "마술쇼에서 한번에 모든 것이 확 바뀌는 것을 보며 관객이 환호하는 것처럼, 서울시에 금방 뉴타운이 생기고 청계천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시민들이 환호하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마술쇼에서와 같이 이러한 정책들은 아무런 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황 위원장은"이명박 시장은 마술쇼에서 처럼 모든 진행과정을 숨기고 뒤에 숨어 진행하고 있지만, 결국 조금만 지나면 모든 거품이 벗겨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발에 대한 대중의 강한 욕구를 적극 이용한 것"**
'공간/생태' 부분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섰던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개발주의 사회 속에서 개발에 대한 대중의 강한 욕구를 적극 이용하는 이명박 시장의 인기는 높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홍 위원장은 "이명박 시장은 '세계 일류도시'라는 개발주의적 함의가 짙게 풍기는 궁극목표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자연환경과 역사문화를 돌보지 않는 강력한 개발정책을 밀어붙였다"면서 "이명박 시장과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김현옥 전 서울시장은 '반생태, 반문화 개발주의'라는 점과 '반시민, 반민주주의 밀어붙이기 행정'이라는 점에서 매우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홍 위원장은 "다른 한편으로 이명박 시장의 인기는 현재 우리 시민들의 문화와 자연에 대한 욕구가 높아져 노골적인 개발주의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는 이러한 욕구를 이용해서 더 큰 개발주의로 갈 수 있다는 위험"이라면서 "이것이 바로 '신개발주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가 다음 시정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시민사회의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면서 "새로운 시대를 내세운 낡은 행정은 생태문화도시 서울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뼈아픈 타산지석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