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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백년 갈 수 있는 국새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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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몇백년 갈 수 있는 국새 만들고 싶습니다"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02/22] 옥새전시회 여는 '세불옥새전각연구소' 민홍규 소장

옥새는 왕실의 도장이자 상징이었습니다.
왕실이 강하고 흥했을 때는 권위와 영광의 상징이었고,
왕실이 약하고 침략 당했을 때에는 망국의 비애요,
회한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40여년 가까이 어찌 보면 소외된 전통을 붙들고,
섭씨 1500도의 뜨거운 가마 옆을 지키며,
조선시대 대표적인 옥새를 복원하고 새롭게 만들어 온
옥새 전문가가 있습니다. 이번에, 보물 국새 등 자신의 피땀어린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옥새 전시회를 열고 있는,
옥새 전각장, 민홍규소장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집중인터뷰 오늘은,
옥새에 담겨진 장인의 열정과
옥새를 복원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조선시대 고종황제가 사용했던 옥새 등을 복원, 계승 발전시켜 온,
국내 유일의 옥새 전각장,
민홍규 〈세불옥새전각연구소〉 소장과 함께 합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세불옥새전각연구소 민홍규소장입니다. 민홍규 소장(53세)은, 옥새 전각장 석불 정기호선생의 제자로
조선시대 고종황제가 사용했던 "황제지새"와 "대한국새" 등
옥새 73과 중 40여과를 복원해 온 우리나라 유일의 옥새 전각장입니다.
명품 국새 4과와 옥새 15과 등 70여점의 작품을 전시하며,
600년을 이어온 우리 옥새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민소장의 옥새전시회는,
현재 서울 롯데명품관 에비뉴엘 갤러리에서 오는 28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박인규 : 민홍규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민홍규 소장 : 네. 안녕하세요.

박인규 : 우선 옥새 전시회를 열게 되신 것을 축하 드리고요. 이번에 소장님께서 복원하신 국새 4과와 옥새 15과를 해서 70점의 옥새를 선보이고 계시다고 하는데요. 많은 분들이 옥새와 국새를 잘 모르시는 거 같아요? 차이를 설명해 주시죠?

민홍규 소장 : 옥새는 일반적으로 왕이 공무에 쓰던 보통 업무에서 쓰던 것입니다. 군사를 동원하거나 또는 행정을 처리하기 위해서 또는 규장각이라든지 과거 시험을 볼 때 쓰는 각각의 업무용 도장 하나하나가 옥새입니다. 그런데 그 옥새들 중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옥새, 외교문제에 쓰거나 왕의 신의를 나타낼 때 쓰는 그 옥새 하나가 국새입니다.

박인규 : 국새가 더 대표적인 거군요?

민홍규 소장 : 네. 옥새 중에 대표적인 옥새를 국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전시하시는 것 중에서 민소장께서 새롭게 복원하신 것이 4과입니까?

민홍규 소장 : 이번에 대한국새를 한 5년 전에 한번 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한국새를 몇 년 지나다 보니 무언가 부족한 것 같아서 다시 작업해서 그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작년 개관 때 작품이 들어갔고요. 이번에는 '황제지새'가 새로 됐고요. 그 다음에 대조선 국보라고 해서 상당히 획이 깊게 새겨지고 아주 어려운 작업이 있었습니다. '과거지보' 같은 것들..문화적인 측면에서도 괜찮을 거 같아서 어차피 복원을 해야 할 것들이기 때문에 그런 작업을 했습니다. 이번에 그런 작업들 중에서 특이한 것은 직접 제가 금이나 은도 썼지만 옛날 아말강 기법이라고 해서 금을 입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통방법인데요. 요즘 말로는 도금인데요. 전통적인 방법은 전혀 다르거든요. 그 작업으로 이번에 작업을 했습니다.

박인규 : 참고로 말씀을 드리면 옥새는 한 개, 두 개가 아니라 '한과, 두과' 이렇게 한다고 그러죠?

민홍규 소장 : 네. 과라고 합니다.

박인규 : 제가 잘은 모르지만 고종황제 때 '황제지새', '대한국새' 라고 해서 옥새와 국새를 만들었는데요. 조선시대 당시에는 옥새라는 말을 쓰지 못했다면서요?

민홍규 소장 : 조선시대 초기부터 후기가 들어설 때까지 우리 왕조실록을 보면 '버보' 라는 말 또는 '보인'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보'자가 들어가는 것을 썼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인'이라는 말도 썼고요. 그런데 '인' 이라는 말은 격이 낮은 수준이고요. '보인' 이라는 것은 그것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박인규 : 새라는 것이 황제만 쓸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해서 고종황제께서 1897년에 대한제국을 선포하시면서 만드신 것이 '황제지새'..

민홍규 소장 : 네. '황제지새', '대한국세'. 실제적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우리가 만든 국새로서는 대한 제국 때 만든 '대한국새'가 1호 국새입니다. 우리 민족으로 볼 때는요. 그 당시에 만든 분이 우리 석불 스승의 바로 윗 스승 황소선생님께서 대한제국의 '대한국새'를 1호 제작하셨습니다.

박인규 : 이번 전시회 중에서 '삼족오국새'를 만드셨다고 하는데 말하자면 국운의 상승을 위해서 만들어 보셨다고 하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민홍규 소장 : 제가 이번에 만든 것은 아니고요. 2004년도에 이 작업을 제작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중국의 동북공정이 있었을 때도 아닌데 제가 사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조선시대의 옥새를 복원하고 나면 고려시대의 옥새도 재연시키고 싶습니다. 그래서 고려시대 것을 연구하다 보니 그 맥이 고구려시대에 있지 않나..해서 고구려 문화를 뒤지다 보니 우리나라가 예전부터 천손민족이라고 해서 어떤 비조사상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새를 숭상하는..지금은 미국을 상징하는 것이 하얀 독수리인데 그와 마찬가지로 그 전에 우리는 벌써 우리민족은 그것을 썼고요. 그것을 뒤지다 보니까 고구려 고분 벽화에 용과 봉황을 나란히 좌우에 두고 가운데 중앙에 태양 가운데에 있는 새가 있더라고요. 그것이 바로 삼족오인데요. 일반적으로 삼족오를 까마귀로 알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것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잘못된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고 까마귀 오(烏)자도 되지만 검을 오(烏)자도 되거든요. 한자는 해석이 여러 가지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병아리를 보고 독수리라고 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까마귀나 까치는 벼슬이 없습니다. 그런데 삼족오에는 벼슬이 굉장히 큰 것이 있습니다. 그림에 보면요. 그것도 작은 것이 아니라 거의 몸의 길이의 반 정도가 될 정도의 벼슬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있는데 왜 까마귀라고 하는가? 그것은 까마귀가 아니고 태양 가운데에 있는 태양새입니다. 제가 문헌을 뒤져 보니까 우리 민족은 천손민족..하늘의 민족이고 새를 숭상하는 민족이였기 때문에 좀더 강한 힘을 갖고자 해서 했고 중국에서도 여러 가지 회남자에도 나오고 문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네들에게는 지금 우리 고구려 벽화와 같은 그림이 나온 적이 없어요. 중국에는..우리나라에만 삼족오 그림이 나옵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국민들은 삼족오를 태양새로 알아 주셨으면..고구려의 상징으로서 인터넷에 보니 일본 축구팀의 상징을 삼족오로 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우리 것과 다릅니다. 그것에는 벼슬이 없습니다.

박인규 : 까마귀가 아니고 어떤 봉황과 같은 상상 속에서만 있는..

민홍규 소장 : 네. 태양새죠.

박인규 : 이 옥새라는 것이 말입니다. 말하자면 그 나라의 어떤 권위의 최고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저희 같은 경우는 일본에 의해서 식민지가 되고 그리고 나서 고종 황제가 만들었던 옥새도 상당히 수난을 받았을 거 같은데요? 그 운명이 어떻게 됐습니까?

민홍규 소장 : 글쎄요. 제가 간단하게 문헌을 통해서만 봤는데요. 제일 먼저 일본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찬탈할 때 제가 알기로는 제일 먼저 옥새 먼저 수탈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뺏어간 겁니까? 민홍규:
뺏어갔다기 보다는 그 당시에는 지니고 있었던 거죠. 고종에게서 탈취해서 지니고 있으면서 여러 가지 우리나라의 국익이 되는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고종황제가 싸인을 하지 않으니까 그 옥새를 찍어서 마치 고종황제가 발주한 냥 그렇게 작업을 했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까 그 나라를 침투해서 그 나라를 강점하려면 가장 유리한 것이 옥새였다고 봅니다.

박인규 : 식민지가 되기 이전에 벌써..

민홍규 소장 : 그런 계획을 미리 준비해서 그렇게 작업을 했던 거죠. 그러고 나서는 그 옥새를 가지고 가지 않았나..이렇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지금은 남아 있습니까?

민홍규 소장 : 지금 현재는 '제고지보'와 '대원수보'..이런 한 두 개정도..

박인규 : 그렇다면 고종황제 때 만들어진 옥새는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는 군요?

민홍규 소장 : 거의 일본에 찬탈되지 않았나..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맥아더원수께서 일본에 찬탈된 것 중에 5과를 찾아다가 줬다는 것은 이미 보도에 났던 것으로 보면 거의 일본으로 가지 않았나..싶습니다.

박인규 : 그 중에 지금 2과만 남아 있고..

민홍규 소장 : 박물관에 지금 기록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면 2과만 보이더라고요.

박인규 : 해방 후에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도 이른바 국새는 우리가 사용을 한 거죠?

민홍규 소장 : 네. 계속 사용을 했습니다.

박인규 : 지금까지 몇 가지나 사용이 됐습니까?

민홍규 소장 : 지금까지 이승만전대통령정부 당시와 박정희전대통령 그 다음 DJ대통령까지 해서 세 번 만들었습니다.

박인규 : 그런데 국내의 대표적인 전각장이신데요. 김대중전대통령 당시 만들었던 '봉황국새' 작업에 참여하지 않으셨어요?

민홍규 소장 : (웃음) 그 당시에 저에게 공문이 왔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옥새는 조선의회에 보면 옥새는 옥새 전각장이 혼자서 그 작업을 모두 다 합니다. 그것은 옥새가 어떻게 완성되어질 것인가에 대해서 전각하는 방법과 조각을 새기는 방법이 다릅니다. 그 새기는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서 제가 주문할 방법도 나옵니다. 그러데 그것이 매치하지 않으면 반드시 터지거나 갈라지기 때문에 이것이 일목요연하게 작업되지 않은 거 같아서 잘못하면 실수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제가 빠지는 것이 지금 윗 분들이 하시는데 도움이 되겠다..싶어서 제가 스스로 못하겠다고 공문을 보냈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옥새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이 일관되게 책임을 지고 해야 하는데 그 당시 작업은 분업형태로 됐단 말씀이시죠?

민홍규 소장 : 네.

박인규 : 어떻습니까? 이 옥새라는 것이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거 같은데요? 우선 그 재료는 무엇을 씁니까?

민홍규 소장 : 옥새의 완성된 재료는 금이나 은, 동, 일반적으로 옥새이니까 옥도 있고요. 그런데 작업을 하는데 제일 처음에 틀을 잡고 모양을 만드는 것은 밀랍으로 합니다. 밀랍으로 형상을 만들어서 모형을 만들려면 밀랍으로 합니다. 순수 밀랍으로 하면 조각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송진을 섞어서 그렇게 작업을 하는데요. 그 작업을 하기 전에 밑그림 작업이 바로 그림으로 거북이나 용을 그려서 예전에는 그 밑에 인장부분은 어떻게 되어질 것인가를 하는 것을 써서 임금에게 올리죠. 그런 작업이 끝나고 나면 그것에 결제..요즘 말로는 결제죠. 하명에 따라서 새기는데 아까 말씀 드린 밀랍이나 그런 것을 새기고요. 그것이 완성되고 나면 그것에 흙을 입혀서 진흙을 붙여서 진흙으로 거푸집을 만들고 거푸집이 어느 정도 마르면 도자기를 굽듯이 굽습니다. 구우면 밀랍이 녹아 내리죠. 그렇게 되면 밀랍을 떼어내고 마치 요즘 말로 하면 붕어빵 철에다가 붕어빵 반죽을 부어서 철을 빼 버리면 붕어빵이 나오듯이 그런 식입니다. 그렇게 밀랍이 어느 정도 녹아서 내리고 나면 그것을 그대로 구워서 구워진 것을 꺼내서 그 안에 쇠물을 붓는 겁니다. 쇠물을 부어서 어느 정도 굳어지고 나면 깨서 마무리 손질을 하는 것이죠.

박인규 : 주물을 만드는 것처럼..?

민홍규 소장 : 네. 주물을 하는 겁니다. 주물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방식은 옥으로 깍는 방식은 주로 우리 옥새에는 없었고요.

박인규 : 저희 보통 도장이라고 하면 칼로 판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것도 일종의 도장인데..

민홍규 소장 :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 뜻은 예전에 세종 때도 그런 말씀이 있었지만 임금이 가장 부드러운 흙으로 가장 강한 쇠를 머금어서 토해낸 것이 옥새라는 겁니다. 흙이 가장 부드럽지만 도자기처럼 구워졌을 때는 단단하거든요. 또한 쇠는 평소에는 단단하지만 불을 머금었을 때는 물처럼 연합니다. 그래서 서로 상극적인 부분까지 갔다가 다시 원 위치로 돌아오면 그것이 옥새가 되는 겁니다. 흙 같은 경우는 처음에는 무르지만 물로 반죽해서 굳히면 단단하고 쇠는 단단하지만 불로 녹이면 물러지고 그것이 다시 식었을 때는 옥새가 되는 거죠.

박인규 : 옥새는 그럼 일반 도장처럼 파서는 만들지 않는 모양이죠?

민홍규 소장 : 네. 파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박인규 :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김대중전대통령 당시에 만든 '봉황국새'가 상당히 갈라지고 금이 가서 문제가 있다고 하던데요. 그것은 왜 그런 겁니까?

민홍규 소장 :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당시에 상당히 전문가들이 많이 하셨습니다. 애도 많이 쓰셨는데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저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다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어떻습니까?

민홍규 소장 : 글쎄요.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인감도장도 금이 가고 그러면 참 기분이 그런데..국새가 그렇다고 하니 정부에서 다시 제작한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잘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인규 : 민소장님께서는 옥새 만드는 일을 40년 가까이 해 오셨다고 말씀을 들었고요. 계속 말씀하신 것처럼 구워내다 보니까 가마 옆에서 일을 하시다가 폐와 신장이 좋지 않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민홍규 소장 : 연금을 합니다. 우리 옥새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합금하는 방법 또는 금과 같은 것을 연금하는 방법을 쓰는데 연금을 하다 보면 때로는 붕산 같은 것도 섞거든요. 그러면 그것에서 독가스가 나오고 그 독가스를 요즘 같이 장비가 좋아서 특수 마스크를 쓴다든지 환기가 좋은 것이 아니고 글자 그대로 조선시대 방식대로 하다 보면 그 가마 앞에서 마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농축되면 폐로 농축이 되고 간이나 콩팥에서 걸려지기 때문에 축척이 되죠. 그래서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십년 하다 보면 일종의 직업병 같은 것이 생기는 겁니다.

박인규 : 그래서 수술을 하시게 된 겁니까?

민홍규 소장 : 네. 그래서 상당한 그 휴우증은 피로를 많이 느끼고 충혈이 잘 가시지 않고..

박인규 : 어렵게 하셔서 과거의 옥새를 복원도 하시고 하셨는데요. 이번 전시회에는 손님들도 많이 오십니까?

민홍규 소장 : 네. 상당히 관심을 많이 가지십니다.

박인규 : 서울에서는 처음 하신 거라고요?

민홍규 소장 : 네. 서울에서는 처음 했습니다.

박인규 : 차제에 우리 옥새의 아름다움이랄까요, 기품 같은 것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민홍규 소장 : 네.

박인규 : 지금부터는 민소장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이 옥새와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한번 여쭤 볼까 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을 들어보니 고종황제의 첫 번째 옥새를 만드신 분이 스승의 스승이시고 또 제가 듣기로는 석불 정기호선생께서는 이승만대통령 때 국새를 만드신 분이시고요. 그런데 민소장님께서는 언제 입문하셨고 어떻게 하시다가 옥새와 인연을 맺게 되신 겁니까?

민홍규 소장 : 저희 조부님이 서예와 사군자를 잘 하셨어요. 그리고 아버님은 동경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셨는데요. 아버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할아버님께서 오랫동안 장수하셨습니다. 그런데 저희 조부님과 스승님이 아주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저를 소개해 주셨고요. 그때 당시가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입니다. 16살 때였는데요. 정말 처음에는 매력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어느 날 일본에서 아다지로 손과 이시이 소세키라고 해서 유명한 전각가들이 그 제자들도 찾아와서 정말 공항에서 큰 절도 하고 해서 '아..이 공부를 하면 저렇게 사람들이 하는구나..' 어린 마음에 그랬었는데요.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은 지켜야 할 일이다..그런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박인규 : 민소장님의 호가 세불(世佛) 인간 세(世)자, 부처님 불(佛)자..세불(世佛)이시고 스승이신 정기호선생님은 돌 석(石)자의 석불(石佛)이신데요. 불(佛)자를 같이 쓰시는 게 이유가 있습니까?

민홍규 소장 :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정책이기 때문에 불(佛)자를 쓰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불(佛)자는 부처 불(佛)의 종교적인 개념이 아니고 널리 이익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불(佛)자의 뜻을 보면 부처 불(佛)의 뜻도 있지만 세상에 널리 이익 되게 한다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것은 예전에는 옥새 전각장이 사대부 양반들에게서 나왔거든요. 그것은 임금이 직접 손에 잡는 것을 장인들이 만들 수 없다고 해서 서사관이나 화원이라든지 이런 양반 계층에서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불(佛)자를 나눠보면 사람 인(人)변에 아니 불(弗)자 입니다. 쉽게 말해서요. 사람이면 안되고 사람이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임금 위에 군림할 수 있기 때문에 임금 위에 군림하면 안 된다..고해서 오직 이 작업에 매진해야지..자칫하면 임금이 쓰는 옥새를 만든다고 해서 마치 요즘 말로 하면 권위를 세우거나..그럴 수 있는 소지가 다분했습니다. 그래서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해서 부처 불(弗)자, 널리 세상을 이익 되게 할 불(弗)자를 쓰게 됐던 겁니다.

박인규 : 16살에 시작하셨으면 40년 가까이 이 일을 해 오신 건데요. 중간에 힘드시거나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으셨습니까?

민홍규 소장 : 제일 첫 번째 힘들었던 것은 선생님께서 40세가 되기 전까지는 나가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세상에..그러면 20대, 30대도 아니고 40대이면 이미 젊음이 끝나는 시간인데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중간에 제가 서예계 활동도 하고 미술계 활동도 하고 절대 옥새는 하지 않겠다..아직까지 나오지 않겠다..해서 많은 분들이 제가 서예를 하는 서예가로 인식하는 분들도 많이 있고 그림 쪽으로 인식하고 있죠.

박인규 : 옥새를 실제로 세상에 선보이신 것은 그럼 마흔이 넘으셔서 하신 겁니까?

민홍규 소장 : 아니요. 제가 84년부터 선생님께서 작업하신 재료, 선생님께서 옥새를 해감하시고 나서는 옥새를 많이 못하셨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황제가 없는데 옥새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하셔서 주로 동장이라고 해서 동에다가 미니 옥새죠. 그 재료로 제가 선생님 것을 해 드렸습니다. 그 작업을 하면서 조금씩 선생님께 배워서 했었고요. 그러나 공개하지는 않았고요.

박인규 : 제가 속된 질문일지는 모르지만요. 전각을 하시거나 인감을 만드시거나 그런 분들은 만들어서 작품을 팔 수 있는데 이 옥새라는 것은 대통령이나 지도자가 쓰시는 것이기 때문에 만들어서 어떻게..상업적으로 가치가 없는 일이어서 생활하시는데 힘드시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민홍규 소장 : 그것 때문에 제가 상당히 혼란스러웠고요. 40대가 되어서 세상에 내 놓으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 순간부터 그것을 제가 가장 많이 느꼈습니다. 예전에 저와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관에 지휘가 어느 정도 생겨서 위치가 있는 단계에서 저를 찾아온 친구들도 있었고 그 예전에 똑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어느덧 법을 다루는 친구들도 생기다 보니까 '도대체 나는 지금 뭔가? 나도 그만 두고 싶다..' 하는데 이미 그 나이가 되니까요. 앞으로, 뒤로 갈 수도 없는 그런 소위 말해서 진퇴양난이 되더라고요.

박인규 : 스승 되시는 정기호선생께서는 어쨌든 대한민국 최초로 국새를 만드셨습니다. 봉황국새라고 김대중전대통령에 기회가 있었는데 못하셨고 전각장으로서는 정말 우리나라에 쓰는 국새를 만들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으실 거 같은데요?

민홍규 소장 : 글쎄요. 그것은 제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바람이 있다면 그런 생각은 듭니다. 그냥 어떻게 제 명예를 걸고 한번 해보고 싶은 심정은 있습니다. 일단 정부에서 여러 사람을 모아서 하든, 그렇지 않든..

박인규 : 그러나 전체적인 것을 지휘나 감독을 하면서 해 보고 싶다?

민홍규 소장 : 네. 그러고 싶습니다.

박인규 : 그런데 아직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무형문화재, 인간문화재 지정은 아직 못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민홍규 소장 : 그런 것 때문에 좀 말이 많습니다.(웃음) 그런데 제가 움직임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박인규 : 본인이 신청을 하지 않으신 건가요? 아니면 옥새 전각장이라는 분야가 아예 없는 건가요?

민홍규 소장 : 그 분야가 현재 없습니다.

박인규 : 생각은 있으십니까?(웃음)

민홍규 소장 :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현재에 만족합니다. 부담이 없기 때문에..그런데 뒤를 생각해서는 소위 문화의 맥을 잇는 측면에서는 제가 딸이 하나 있기 때문에 우리 아이는 이 일을 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의미에서는 후사를 생각해서는 요즘 젊은 아주머니들은 눈치가 아주 빨라서 스승이 저렇게 사는 것을 보니까..자식도 그렇게 살겠구나..싶어서 보내질 않죠.

박인규 : 지금 그러면 민소장님으로부터 옥새 전각을 배워야겠다..라고 해서 지금 배우고 있는 제자는 없습니까?

민홍규 소장 : 예전에는 좀 있었는데 그나마 모두 나가 버리고 요즘에는 없습니다.(웃음)

박인규 : 아무래도 계승을 하려면 국가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지원을 해 줘야 이어갈 수 있겠네요?

민홍규 소장 : 네. 그렇게 되면 굉장히 수월합니다.

박인규 : 40년 가까이 전각 이외에 다른 여러 가지 활동도 하셨지만 하시면서 장인이라고 칭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떻습니까? 옥새의 의미라고 할지?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민홍규 소장 : 옥새는 정말 아까도 말씀 하셨듯이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 총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임금을 상징하는 것을 절대 호락호락하게 만들지 않았거든요. 최고의 문화를 집약한 것이기 때문에 옥새라는 것이 국가를 상징하지만 외국에서 보기에는 그 나라를 알 수 있는 척도입니다. 이제는 그렇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왕권의 상징..요즘도 물론 국가를 대표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옥새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대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과거의 왕조를 이어온 우리나라의 통치권자의 맥을 잇는 의미가 대단히 크고요. 또 문화를 다시 집약해서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전시회도 하셨고 앞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앞으로 이것만은 꼭 해 놓고 가고 싶다..그런 것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시죠?

민홍규 소장 : 제가 국새를 정부에서 만들던지, 만들지 않던지 국새를 만드는 최고의 보물로서 시대가 흐르고 나서 100년, 500년, 1000년이 지나서 그 당시에 누군가가 만들었던 국새가 굉장한 문화적인 가치가 있다..그런 작품을 남기고 싶습니다.

박인규 : 정부에서 사용하든 하지 않든 관계없이 대표적인 국새를 만들어 보고 싶다..그런 일이 잘 되기를 빌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 드립니다.

민홍규 소장 : 네.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에서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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