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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한 범죄자만 잡으면 성폭력이 근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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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출소한 범죄자만 잡으면 성폭력이 근절되나?

〈기자의 눈〉 본질을 직시한 대책이 필요하다

11살 초등학생이 성범죄 경력이 있는 동네 아저씨에게 성추행당한 뒤 살해당한 사건을 두고 전국민 사이에 분노가 일고 있다.

관련 정부 부처와 정치권 등에서는 이에 발맞춰 온갖 아동 성범죄 대책을 내놓고 있다. 진수희 한나라당 원내부대표가 21일 '전자팔찌법 통과를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인 데 이어 22일 열린우리당 여성 의원들은 "성범죄자의 집에 문패를 달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그 외에도 청소년위원회, 법무부, 경찰청 등에서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처벌받는 성범죄자가 극소수인데 재범만 가둬서 무슨 소용**

이들이 발표하는 강경 대책들은 영화 〈공공의 적〉을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강철중 형사의 수사방식처럼 이들도 단순하고 저돌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며칠 사이 수많은 정책을 쏟아낸 이들이 과연 강철중 형사 처럼 '공공의 적'을 붙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강철중 형사와 이들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강철중 형사는 눈에 보이는 단 한 명의 적을 쫓아 달려들었지만, 성폭력 범죄자는 실체가 없다. 성폭력 범죄자는 한 명이 아닐 뿐더러 얼마 전 초등학생을 살해한 50대 남자와 같이 전력이 있는 전과자들만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연구조사에서 빈번히 드러나듯 대부분의 성폭력 범죄는 평소 피해자 근처에 있던 지인, 즉 멀쩡한 일반인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지금 쏟아져 나오는 정책들은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마치 모든 성범죄가 재범 이상의 범죄자들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처럼 재범 이상자들의 활동을 제약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세한 신상정보 공개, '성범죄자의 집' 문패 달기, 전자팔찌, 화학적 거세 등 지금 나오는 대책들이 다 그러하다.

따져 보자면 이번에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죄자는 피해자가 고소하고 그 재판에서 승소해 처벌까지 받게 한 특수한 사례에 해당한다. 성폭력 사건에서, 특히 어린이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소하는 비율은 매우 낮으며, 또 고소한다고 해도 재판에서 승소하는 비율도 매우 낮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단체나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재범율이 70~80%에 이르든, 혹은 인권위의 주장대로 6~7%에 머물든 재범율은 사실상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애초에 사법기관에 의해 처벌되는 성범죄자 수가 전체의 극히 일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성범죄가 일어나며 피해자들이 고소, 고발도 하지 못한 채 홀로 고통을 삭혀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낮은 신고율…성범죄엔 무용지물인 사법시스템이 더 문제**

지금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현재의 사법 시스템이 성범죄를 제대로 다루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성범죄가 사법기관에서 거의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이며, 바로 그것이 성범죄의 위험이 일상적으로 만연하게 만든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신고율이 낮은 까닭이 성폭력 범죄가 피해자만 고소할 수 있는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이를 비친고죄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사무국장은 "성범죄를 비친고죄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의식과 제도가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성폭력 문제를 '정조'의 개념으로 바라보던 시각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는 고소는 되레 피해자의 인권 침해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종종 언론에 보도되듯 현재도 수사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심한 욕설과 무책임한 언행을 일삼는 행태가 남아 있는 터다.

성범죄 신고율이 낮은 까닭은 '성범죄자는 나쁘다'며 공공의 적으로 몰면서 모두 쉽게 분노하면서도 정작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수준은 낮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의식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성범죄가 비친고죄로 바뀐다고 해도 피해자의 권리가 구제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의 피해의식만 늘리는 역설적인 결과를 빚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쏟아지는 대책들도 인식수준이 낮기는 마찬가지다. 어린이를 성범죄의 위험과 사건화 이후의 노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보다 성범죄자를 응징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범죄 방지 효과는 낮은 반면 인권은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만 반복하려나**

현재 유력한 대책으로 '전자팔찌' 제도가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전자팔찌' 제도는 이번 사건만 보더라도 실효성이 의심된다. 이번 사건은 가해자의 집 안에서 이뤄졌다. 단순히 범죄자가 어디 있는지만을 파악해 통제하려는 시스템으로는 이번과 같은 사건이 다시 재발한다고 해도 결코 막지 못할 것이다.

현재 중요한 것은 '형을 살고 나온 범죄자의 행동을 어떻게 제약할 것인가'가 아니라 '형을 살고 나와서도 범죄를 다시 저지른다'는 사실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부족이다. 이번 사건은 사법부가 아무런 교화나 재사회화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성범죄자를 별다른 교육이나 교정 없이 집행유예로 풀어주었음이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다. 그를 집행유예로 풀어줄 수 있었던 것이 성범죄를 심각한 범죄로 여기지 않는 의식의 반영이라면, 교육이나 교정절차가 없었던 것은 성폭력 문제를 단순히 성욕의 문제로 치부해 아예 교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단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단체에서 지적하듯, 성폭력 범죄자는 성욕 때문이라기보다는 심리적 열등감이나 정신이상 등의 문제로 범죄를 저지른다. 성추행이든 성폭행이든, 초범이든 재범이든 관계없이 심리치료를 비롯한 철저한 교육과 치밀한 교화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범죄 방지의 효과는 없이 인권만 침해하는 대책들**

요새 쏟아지는 정책들은 우리 사회의 음습한 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실체없는 적을 잡기 위해 내놓은 대책들 치고는 너무나 단순하고 자극적일 뿐이다. 성폭력 문제에서 '공공의 적'은 현재 '재범자'로 특정화된 일부 그룹이 아니다. 그는 우리 안에도 있을 수 있으며, 모든 곳에 있다.

범죄자를 응징하고자 할 뿐 피해자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데에는 무관심한 대책들은 아무런 해결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들은 성범죄 방지의 효과는 없이 '인권만 침해하는' 대책이기도 하다.

오히려 성폭력 범죄를 다루는 경찰의 재교육부터 시작해 성범죄를 다루는 사법부의 의식전환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고 절실해 보인다. 또 형기를 마친 범죄자를 다시 가두려 애쓰기 전에 다시 범죄을 일으키지 않도록 그를 교화하는 길을 찾는 것이 수순이 아닐까.

지금 신속하긴 하되 지나치게 즉자적으로 움직이는 여러 정부부처와 단체들 때문에 한 아이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끝난 이번 사태가 결과적으로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한때의 소요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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