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의 남북관계 이론가이자 활동가들이 6.15공동선언 6주년이 되는 해에 던진 화두는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과정으로서의 평화'였다.
6.15민족공동위원회 남측 상임대표이자 40돌을 맞은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인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지난 16일 <프레시안> 특별대담에서 '선(先)평화-후(後)통일' 같은 단계적 접근 대신 남북의 교류협력이 진전되는 과정 자체를 평화 증진이자 동시에 통일추진의 과정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1단계 통일' 언급 고무적"**
'6.15시대의 한반도'를 주제로 나눈 이날 대담에서 백낙청 교수는 '평화만 정착되면 통일은 안 해도 그만'이라는 인식과, 분단체제에 길들여진 사회과학자들이 진보적 어젠다를 내놓으면서도 분단이라는 현실을 망각하는 경우 등은 모두 "평화와 통일을 배타적이고 좁은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백 교수는 따라서 두 개념을 확장해 "군사적 요소뿐만 아니라 남북간의 경제불균형과 같이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를 긴 안목으로 통일과 연계해 풀어나가면서 평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통일 과정의 재구성을 강조한 서동만 교수의 경우는 "독일 통일은 양측의 평화 정착 과정이 종착점에 도달한 것"이었다며 "교류·협력이 진전되는 동안 의식하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자체가 통일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또 '과정으로서의 평화'라는 개념의 확대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제도화로서의 평화체제 수립은 매우 중요하다"며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는 중요한 단계"고 말했다.
<사진 : 백-서1>
이들은 특히 최근 논의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남북관계의 새로운 도약, 혹은 김 전 대통령이 최근 거듭 주장하고 있는 '1단계 통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이 평양에 가면 (6.15공동선언 2항에서의) 통일방안 합의와 관련해 최소한 민간 싱크탱크간 교류나 학술회의라도 북으로부터 얻어 와야 한다"며 "결국 정부가 얼마나 힘을 실어서 보내는가가 문제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은 5년간 끌었던 철도 개통을 뒤늦게나마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백 교수는 지난 연말 '1단계 통일로 가자'는 김 전 대통령의 2번의 연설을 거론하며 "뭔가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아 고무적"이라고 평가하고, 교류·협력이 축적된 '적당한 시점'에 남북 당국이 그간의 성과를 마무리하는 정도의 기구를 설립해 1단계 통일을 선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백 교수는 특히 정부 당국의 그같은 합의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민간 차원에서 다각도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여건을 성숙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 격차 해소는 평화 보장에 필수"**
이들은 특히 양극화와 고용 문제가 '분단체제' 및 평화·통일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논하면서 남북관계 이론가로서의 면모를 잘 드러냈다.
백 교수는 이와 관련해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의 '소떼 방북'을 예로 들며, 노동계 일부에서 "북의 값싼 노동력을 쓸 수 있게 되면 남쪽 노동자의 일자리가 위협 받는다는 논리가 있었다"며 "그건 이 세상에 남북한밖에 없을 때나 통하는 논법"이라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개성공단 노동력의 경우 경쟁 상대는 남쪽 노동력이 아니라 중국·동남아의 노동력"이라며 "남북의 노동력을 결합하는 것을 지혜롭게 이용하면 남쪽 기업의 수익성뿐만 아니라 국민복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경제국이면서 세계 최빈국 수준의 복지를 가졌다고 주장한 서 교수는 "결국 복지도 분단의 해소 내지는 평화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현재의 대치 상황이 계속된다면) 안보비용 등의 문제로 복지를 확충할 여건이 마련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또 "군사적인 위협보다 남북간 불균형의 해소가 평화를 보장하는 데 훨씬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안이안 상황인식과 무능이 불러온 최근의 현상들"**
또 미국의 북한 위폐 문제 제기에서 비롯된 6자회담의 난맥상, 전략적 유연성 및 한미FTA 등 최근 불거진 한미동맹의 문제에 관해 서 교수는 현 정부가 국민과 지지층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조장했다고 비판했다.
서 교수는 "용산기지 이전이나 전략적 유연성 협상이 어려운 협상이라는 건 국민들도 다 알았다"며 "이라크 파병때처럼 솔직히 얘기하지 못하고 '자주국방'이니 '동북아균형자론' 같은 좋은 지향점만 되풀이한 태도가 신뢰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백 교수 역시 "한편으로는 너무 큰 꿈을 제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날그날 일처리에 급급해 오히려 보수적이고 친미적인 관료들에게 끌려간 점도 많다"며 "(미국에) 버틸 때는 버텨주고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
서 교수는 특히 "미국은 한미동맹 재조정,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FTA 등 종합적인 전략을 가지고 북핵 문제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북핵 문제에만 올인하면서 다른 사안들도 포함한 복합적인 대응이 부족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날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의 사회로 본사 회의실에서 2시간가량 진행된 대담의 전문이다.
***"머잖아 '1단계 통일' 선포할 날 올 것"**
박인규 : 우선 오늘 대담의 취지를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지난해 가을 백낙청 선생을 모시고 라디오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인터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백 선생께서 불쑥 "<프레시안>은 남북관계에 별 관심이 없잖아"라는 말씀을 던지셨다. 아차 싶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남북관계를 심도 있게 다루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북한문제나 남북관계에 대한 일반독자들의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도 작용했다. 아무래도 기사 클릭 수를 무시할 수 없다 보니 국내정치 등 일반독자들의 관심사를 우선 따라가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어찌 됐건 <프레시안>의 고문이기도 한 백 선생의 지적 이후 우리도 남북문제를 보다 심도 있게 다뤄야겠다는 고민을 하게 됐다. 그런데 올 초가 되면서 일단의 북한전문가들이 <프레시안>을 중심으로 북한정세, 남북관계 등을 집중적으로 다뤄보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30명의 북한전문가들이 김정일시대의 북한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집중분석하는 시리즈, 서동만 교수를 비롯한 소수의 정예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매주 북한정세의 변화와 남북관계 흐름의 맥을 짚어주는 주간브리핑을 계획하고 있다. 3월 중 시작될 예정이다.
그래서 이번 대담은 그 총론 격으로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 변화를 보다 긍정적으로 이끌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전반부에서는 6.15 이후 한반도정세의 변화와 통일운동의 방향에 대해, 후반부에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관해 얘기하는 순서로 진행하도록 하겠다.
우선 남북정상회담 이후 5년 반이 넘어 이제 6주년을 넉 달가량 남겨두고 있다. 그동안 남북관계를 비롯해 한반도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백낙청 : 변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서동만 교수가 얘기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나는 대신 '분단시대 겸 통일시대'라는 표현을 쓰게 된 동기와 취지를 말하겠다. 우리가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6.15공동선언은 하나의 전환점이었고,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어느정도 상식이다. 내가 '분단시대 겸 통일시대'라는 어쩌면 자가당착적인 표현을 쓴 것은 첫째, 한반도식 통일의 경우 분단과 통일의 차이가 다른 나라의 통일 과정처럼 분명치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둘째, 그런 식으로 통일의 개념을 바꿔보면 통일과정이 실제로 많이 진행돼가고 있고 얼마 안 가서는 1단계 통일을 선포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물론 둘 다 이론상으로도 문제삼을 여지가 있는 발상이고, 실제 정세판단에서도 정확한 근거가 있냐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오늘 서동만 교수 만난 김에 그런 점검도 받고 좋을 기회라 생각한다.
박인규 : 서동만 교수가 <창작과비평> 봄호에 쓴 '한반도 속의 6.15'란 글을 읽어봤다. 6.15 이후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이에 대한 대응을 아주 밀도 있게 분석한 글이었다. 연필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썼다는 느낌이었다. 서 교수는 지난 5년여의 궤적을 어떻게 보고 있나.
서동만 : 남북관계가 이전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미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북방정책을 표방하고 1989년부터 교류협력이 본격 시작됐다.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그에 대한 성과인 셈이었다. 물론 기본합의서의 경우 사문화까지는 아니지만, 남북관계가 그대로 진전되지는 않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상당한 정체가 있었지만 김대중 정부 들어서 대북정책이 전환됐다. 그리고 민주화의 진전, 특히 정권교체가 있다 보니 북도 남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제는 대등한 상대로 남을 대할 수밖에 없었다. 종래의 통일전선식 대남관계가 통할 수 없게 됐다. 남의 민주화가 진전됐고, 정부가 국민적인 지지와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게 상당히 중요한 변화라 본다. 그에 맞춰 정상회담이 실현된 거다.
중요한 것은 상호 체제의 인정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이라는 최고 지도자가 대등하게 만났다는 것은 상징적이었다. 종래에는 당국과 민간이 나뉜 한국과, 그것이 일치된 북조선간의 엇갈린 만남이었는데 이제는 대등한 관계가 됐다. 이제는 부문간, 단위간 대등한 만남이 전개됐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약간의 소강사태가 있었지만 회복이 돼서 작년에 6.15 평양 행사를 계기로 민간과 당국이 함께하는 모임이 이뤄진 건 획기적인 변화였다. 무엇보다 민간 행사에 당국 대표단이 참여해 김정일-정동영 회담이 실현됐다는 것은 의미있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정부가 민간과는 거리를 뒀는데 이제는 대등하게 만날 수 있었던 게 6.15정상회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수많은 역풍과 위험 속에 전진해온 남북관계**
박인규 : 그동안에는 남북관계가 진전이 되다가도 핵문제, 북미갈등이 불거져서 중단된 적이 많다. 남북기본합의서 그러했고 작년 9.19공동성명 후의 상황도 그랬다. 하지만 서 교수의 지적은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의 안정성이 보다 높아졌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서동만 : 일단은 진전되고 긍정적인 측면만 말했다. 백 선생이 <흔들리는 분단체제>를 통해 전진과 역풍을 포함한 총체적 접근을 시도했기 때문에 백 선생께서 짚어주시는 게 나을 것 같다.
백낙청 : 강압적인 방식으로 유지됐던 분단사회의 질서가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흔들리니까 혼란도 더 생기고, 기득권 세력들은 필사적으로 반대하면서 자칫하면 후퇴할 위험이 있다. 후퇴까지는 안 하더라도 일단 혼란스러우니까 우리가 피부로 느끼기에는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우리 살기는 혼란스러웠고 심지어는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크게 보면 혼란을 포함하고도 진전됐다는 서 교수 진단이 맞다고 본다.
남북기본합의서 전에 7.4남북 공동성명이 있었다. 당시의 정황을 보면 남이 북에 밀린 결과가 아닌가 한다. '닉슨쇼크'로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반공 일변도의 박정희 정권이 자신감을 잃은 것도 있고, 한편으로는 유신을 하기 위해서 국민들에게 뭔가 던져주는 게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있어 실제 합의에서 북의 주장을 많이 받아들였다. 공동성명의 내용 자체는 타당했지만 어쨌든 북에 밀렸고, 박 정권은 북에 밀리더라도 10월 유신을 해서 자기식으로 나갈 계산으로 양보를 했던 것 같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반대로 북이 밀린 경우다. 냉전이 종식돼 사회주의권이 무너졌고, 중국과 소련이 남과 수교하자 경제난과 외교적 고립이 겹쳤기 때문이었는데 7.4 때 박정희가 유신이라는 '뒷수'를 보고 있었듯이 기본합의서 이후 북은 핵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6.15공동선언에서는 어느 한 편이 밀리거나 우위에 있지 않았다. 남은 남대로 민주화라는 발전을 하면서도 IMF 위기 때문에 흡수통일이 단기간에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있었고, 북은 북대로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남에서 북을 붕괴시키지는 않을 거라는 안도의 마음이 있었다. 그런 상황 자체가 훨씬 생명이 있는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6.15는 훨씬 더 실감있게 살아있다.
한편 지난해 9.19공동성명에서 밀린 쪽은 미국이다. 그래서 끝내자마자 '뒷수'를 들고 나온 건데 그렇다 해도 9.19성명이 사문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 : 백1>
서동만 : 남북관계의 지체와 역풍을 힘의 관계로 설명하셨는데, 주요 합의에 이어 나와야 할 조치들이 뒤따르지 않아 발생한 문제점들이 있었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남북기본합의서 당시에는 유엔 동시가입과 한-소 및 한-중 수교가 있었기 때문에 북-미, 북-일 정상화가 이어져야 했으나 그게 이뤄지지 못해 지금까지 핵 문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6.15공동선언은 어느정도 균형이 있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에 차질도 있었고 전력제공 문제 같은 게 풀리지 않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당면했던 과제가 해결되지 못하면서 생기는 문제점에 따른 지체가 있었다.
백낙청 : 서 교수가 <창작과비평> 최신호에서도 지금과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 유념할 점이다. 그런데 남북기본합의서 뒤에 북-미, 북-일 정상화가 있었어야 한다는 건 일종의 당위론이다. 미국과 일본이 70년대에 중국과 러시아에게 남북을 상호 인정하자고 말해놓고 정작 중국과 러시아가 남쪽을 인정했을 때 미국과 일본은 북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분상 비판할 수는 있지만,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 예전에 했던 말을 지켜야 할 필요도 의사도 없게 되었다. 그러니까 실제로 교차승인이 이뤄졌을 수도 있는데 안 돼서 위기가 심화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94년에 김일성 주석과 김영삼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렸다면 남북관계가 더 일찍 풀렸을 수는 있다. 그러나 서 교수의 논법을 적용하면, 그 후속조치가 뒤따르지 않아 더 위태로운 역풍이 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상회담 자체가 순조롭지 않았을 수도 있고, 혹 성공적이었다 하더라도 김영삼 정권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뭔가를 안고 돌아왔을 경우 오히려 더 위태로웠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절차적 문제점을 안고 조지 부시가 대통령이 된 것도 또하나의 악운이었던 셈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됐다면 확실히 한반도 상황이 좋아졌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해서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미국이 북한을 치지 못했고, 남북관계도 안 깨졌고, 6.15선언이 조금씩 진전해 와서 2005년의 성과가 있었던 것이다. 부시 같은 사람과 몇년간 맞서면서 이만큼 이룩한 게 그것대로 값진 것이다. 2006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조마조마하지만 대세는 그대로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이 제네바기본합의를 할 때만 해도, 북이 5년 이상 못 간다는 가정을 가졌다는 얘기가 있다. 그렇게 불성실한 합의를 하고, 때로는 그 합의를 거부하고, 때로는 '악의 축'이라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결국은 9.19공동성명에 합의했다. 물론 미국은 지금 다시 딴 소리를 하고 있지만 9.19성명 자체를 뒤집겠다는 말은 안 한다. 내놓고 뒤집을 힘도 없다. 이처럼 미국의 방해, 그때그때 닥쳤던 역풍과 위험요소를 안고도 큰 틀에서는 전진해왔다.
서동만 : 물론 당시 북-미, 북-일 수교가 안 됐다고 해서 한-소, 한-중 수교가 없었던 편이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한쪽이나마 냉전이 종식됐으니 그 자체도 역사의 진전이다. 1차 북핵위기와 지금의 차이는 중국의 역할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게 반드시 긍정적이지는 않지만, 북미 양자끼리만 할 때보다 어떤 면에서 균형이 생겼다. 물론 게임이 복잡해지긴 했지만 크게 봐서 역사의 진전이었다.
***통일과 평화의 개념 확장…'선(先)평화론'과 '선통일론'의 한계**
박인규 : 남북간 평화와 통일에 관해 얘기해 보도록 하자.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남북간의 교류·협력 확대가 우선이고 이를 통한 평화정착,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일이 되는 단계식 접근을 상정하고 있다. 또 평화와 통일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언젠가 교사들을 상대로 남북관계에 대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통일을 너무 앞세우면 불안한 면이 있으니 평화정착을 먼저 하고 통일을 하는 2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많은 교사들이 '그럼 통일하지 말자는 거냐'고 따졌다. 평화정착을 강조하는 것은 분단고착이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백 선생께서는 이미 통일이 진행 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통일이 진행 중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백낙청 : 그 교사들은 통일의지가 강한 사람들이었던 모양이다. 아마 다른 그룹에 가서 그렇게 말했으면 당연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면서 심지어는 평화만 정착되면 통일은 안 해도 되지 않느냐고 질문했을지 모른다. 또 일부 진보적 사회과학자들처럼 통일은 오히려 평화정착에 저해되니까 평화만 얘기하고 통일은 말하지 말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둘다 극단적인 얘기다. 평화와 통일을 배타적으로 나누는 것은 그 둘의 개념을 좁게, 고정시켜서 보기 때문이다. 전쟁위협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전쟁이 아닌 상태'라는 초보적이고 좁은 개념의 평화라도 절실한 것이고, 1945년에 건설하려다가 좌절된 단일형 국민국가의 건설을 통일이라고 한다면 그런 통일요구가 오히려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성립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은 통일의 개념도 바꾸고 평화의 개념도 확장해야 할 단계다. 군사적 요소뿐만 아니라 남북간의 경제불균형 같이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가 굉장히 많은데, 그걸 긴 안목으로 통일과 연계해 풀어나가면서 평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또 그렇게 평화를 구축해가는 작업은 일회성 통일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이뤄가는 것과 합치된다. 그렇게 한반도의 복잡한 과정에 맞춰서 평화와 통일을 얘기해야 한다.
그러나 자주통일을 주장하는 인사들 중 상당수는 분단체제의 구체적 작동방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통일을 무작정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분단체제를 굳혀주는 측면이 있다는 걸 잘 모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분단체제가 오래 지속되면서 거기에 길들여진 진보적 인사나 사회과학자들이 진보적 어젠다를 내놓으면서 분단이라는 현실을 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역시 타파해야 할 것이다.
서동만 : 백 선생께서는 <흔들리는 분단체제>에서 동서독 통일과정을 비판적으로 정리하면서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단계로서의 평화, 즉 평화가 정착된 후에 통일로 간다는 것은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이자 남북관계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통념이다. 그 모델은 동서독의 통일 과정이었다. 동서독은 장기적인 교류가 있고 나서 1989년 갑자기 통일을 했는데, 평화적인 방식이었고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거니까 한반도도 그 정도로 하면 좋지 않겠냐는 인식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도 결과적으로 보면 '평화=통일'이었다. 72년 동서독 기본조약과 75년 헬싱키 회의를 통해 제도로서의 평화는 정착됐고, 89년의 냉전 종식으로 평화 정착이 도달점에 왔다. 동서독 어느 쪽도 통일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고, 교류-협력이 진전되는 동안 의식하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자체가 통일이었던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동서독 통일을 재구성해 봐야한다.
백낙청 : 세계적 명성을 지닌 서독의 진보적 지식인들도 독일식 통일로 가는 독일식 평화정착 과정을 모르고 살았던 거다. 통일이 너무 급히 됐다느니, 국가연합제를 거쳐야 했다느니 뒤늦게 말하고 있지만 독일의 현실에서는 공허한 뒷북치기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 현실에서는 독일식 통일도, 베트남식 통일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앞서 말했던 통일지상주의나 선(先)평화론에 비하면 우리 정부가 내놓은 '화해협력-평화정착-통일'의 3단계가 오히려 합리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이것 역시 한반도식 통일의 구체적 진행과는 동떨어진 발상이다. 실제로 최근 <프레시안> 기사를 보더라도 한미 군사당국자들이 '통일 단계'를 흡수통일로 규정하는 시나리오에 합의한 적이 있다. 그건 6.15선언에 명백히 위배될 뿐 아니라 현실에도 맞지 않다.
서동만 : 물론 독일 통일 과정에서 배워야 할 건 있다. 제도화로서 평화체제의 수립 단계는 상당히 중요하다.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는 중요한 단계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개념에 맞춰 '과정으로서의 평화'랄까 하는 식으로의 개념 확장도 필요하다. 이제는 단계로서의 평화까지 포함해 과정으로서의 평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6.15선언에서 평화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교류협력의 증진 자체가 평화의 진전이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철도 연결을 통해 사실상의 평화지대가 형성됐다. 평화라는 개념을 넓히자는 것은 바로 그 이유다.
백낙청 : 6.15공동선언에서 평화가 빠진 걸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한반도 평화는 미국을 빼고 얘기할 수 없다. 미국 대통령이 참여한 3자회담도 아니었는데, 남북 정상이 만나 평화선언을 했다면 힘도 없는 친구들이 헛소리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9.19공동성명은 당장 평화체제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5년의 세월을 거쳐 드디어 평화선언을 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서동만 : 어떤 식으로건 한반도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면 남북이 주도적이고 협력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남북관계를 국제법적으로만 해석하면 국가간의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 우리의 통일 방안인 남북연합이라는 게 국가간 관계를 전제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사실 한국과 미국의 동맹이 우선이다. 미국사람들은 '남-북도, 한-미도, 북-미도 국가간 관계인데 한미동맹이 먼저가 아니냐'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 북한에 대한 인식과 정책에서 굉장히 중요한 차이를 낳는 형식적인 측면이다.
따라서 '개념계획 5029'나 <프레시안>이 보도한 한미간의 합의에서 나오는 '한반도 유사시' 혹은 '북한 급변사태' 같은 상황이 터지면 한미동맹이 우선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동북공정 같은 게 나오면서 중국이 북에 개입하려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6.15공동선언 제2항에서 통일방안의 공통점을 확인했던 의미는 크다. 흡수통일이 아닌 방식으로, 한반도 문제를 남북 주도로, 그리고 남북의 협력을 통해서, 혹은 좁게 말해 남의 주도로 푸는데 필요한 중요한 근거가 된다. 미국을 향해 '남북관계는 단순한 국가관계가 아니라 민족간의 관계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기 때문이다.
<사진 : 서1>
백낙청 :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의 잠정적인 특수 관계라는 말은 남북 기본합의서에도 나온다. 그 표현을 달리해서 6.15공동선언에 나타난 것이다. 그 원칙을 확고하게 붙들고 있지 않으면 한미동맹이 우위라는 논리에 밀릴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남북도 국가간 관계고 한미도 국가간 관계인데, 동맹을 맺은 관계가 앞서지 않느냐는 논리는 곤란하다. 한미동맹은 대등한 동맹도 아니다.
***DJ '1단계 통일로 가자'는 말의 의미**
박인규 : 선평화-후통일이 아니라 1단계 통일이 진행중이고 평화와 통일이 같이 가고 있다고 했는데, 그 1단계 통일 혹은 1단계 평화가 됐다고 말할 수 있는 징표라면 뭐가 있을까.
백낙청 : 1단계 통일의 형태에 대해 명백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6.15공동선언 제2항은 1단계 통일이 어떤 형식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체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또 제4항에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여러 분야에서의 사회문화 교류를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해나갈 것을 다짐함으로써 실행과정의 큰 그림을 그렸다. 4항의 이행이 진전되어 정부간 교류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상설기구도 생기고, 어떤 분야에서는 공동사무소도 운영하는 과정이 축적되면서 통일의 형태가 잡혀갈 것이다.
물론 핵문제 해결, 북미관계 개선 등 국제적인 상황도 달라져야겠지만, 그런 상황을 이끌어가다가 적당한 시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한번 더하든지 해서 '어, 통일이 꽤 됐네, 통일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겠냐, 그렇게 선포해버리자'라고 합의하면 1단계 통일이 이뤄진다는 게 내 구상이다. 정부 당국만의 결단으로 남북연합 기구를 갑자기 만드는 게 아니고 그간의 축적을 추인하며 약간의 뒷마무리를 하는 정도의 기구설립으로 가능하리라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해 말에 했던 두번의 연설에서 1단계 통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옛날부터 3단계 통일론을 주장해왔는데,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색깔론 때문에 그 1단계인 남북연합은 통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6.15공동선언 이후에도 남북연합 그 자체가 1단계 통일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지 싶다. 따라서 지난해의 연설은 이제 뭔가 적극적으로 나온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아 고무적이었다.
민간의 입장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제적인 여건이 성숙됐을 때 남북 정부가 선언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시민사회 각계각층에서 이미 남북간의 네트워크가 형성이 돼서 남북연합이나 '낮은 단계 연방제' 정도는 선포해도 별로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여건을 성숙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동만 : 임동원 전 장관이 '사실상의 통일'이란 말을 꺼낸 적이 있다. 제도적으로는 통일이 아니지만 남북이 경제협력도 활발히 하고 상호 왕래에 큰 불편이 없다면 사실상의 통일로 들어선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백낙청 : 임동원 전 장관은 근래에도 '실질적인 통일'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남북연합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실질적인 통합에는 못 미치는 점이 많을 거라고 본다. 가령 남북 주민의 자유왕래는 남북연합이 생긴다고 해서 이동의 자유가 전면적으로 주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럽연합의 현 수준은 물론이고 한참 전 수준에도 못 미칠 것이다. 남북연합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이동의 자유를 확대하면서도 폭발적으로 늘지 않도록 관리하는 걸 텐데, 그런 걸 통일이라고 할 수 있겠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그에 대해 두 가지 얘기를 하고 싶다. 첫째, 그걸 통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시민사회, 민간 수준의 상당한 통합이 축적됐음을 전제로 한다. 둘째, 그런 식의 느슨한 연합, 어떻게 보면 국가연합 중에서도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을 통일이라고 보는 게 이론상 타당하냐는 문제는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 과정의 특수성을 감안해 생각해야지 연합은 어떻고 연방은 어떻다는 교과서적인 정의를 가지고 결정할 수는 없다. 유럽연합은 이미 만들어진 각각의 국민국가가 새로 연합을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한반도는 국민국가를 만들어야 할 때에 외세가 개입해 억지로 갈라놓았다. 남북 양쪽에 통일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있고 소위 이질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언어라든지 여러가지 면에서 유럽과 비교할 수 없는 토대가 있다. 그걸 바탕으로 재결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만 물꼬를 터놔도, 오히려 너무 빨리 통일이 되어 불상사가 터질 것을 걱정하는 정도로 상호 인력(引力)이 크고 인화성(引火性)이 강하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통일을 촉진하는 동시에 통일과정을 관리하는 장치가 국가연합이다. 이것은 유럽연합이나 스칸디나비아 연합 등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양극화, 분단 전제로 해결책 찾아야"**
박인규 : 통일운동이라 하면 열혈 투사들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 백 선생이 상임대표로 있는 6.15민족공동위원회에 지난해에 시민단체가 들어가면서 하나로 모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통일 운동은 부문운동이라는 생각이 많아 보인다. 백 선생이 창비 신년사에서 '남한의 개혁 작업도 분단체제 극복과 맞물리지 않으면 성과가 없다'고 얘기했는데, 통일운동과 이른바 다른 부문 운동들은 어떻게 맞물려서 가야 할까.
백낙청 : 6.15위원회 상임대표 입장에서 아주 현실적인 고민거리다. 또 어떤 면에서는 그런 현실적인 고민을 세상에 들고 나와 떠들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 문제는 오히려 서동만 교수가 거리를 두고 보면서 고언도 해주고 그러면 어떨까 싶은데...
서동만 : 작년 6.15 행사 이전까지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종교단체, 통일연대의 3자 연대 축으로 통일운동이 만들어져왔다. 자주통일론은 통일연대의 노선이고 화해협력통일론이 민화협의 노선이다. 종교단체는 화해협력에 가까우면서 시민운동적인 면도 포함되어 있어 여러 운동의 매개자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작년 6.15 행사부터 시민운동진영이 참가하기 시작해 이른바 4자연대로 가게 됐다. 시민운동의 참여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시민운동은 그동안 사실 국내문제에만 집중해왔고 남북관계와는 거리를 둬왔다. 그런 면에서 국내개혁을 중심에 두는 단체가 통일운동에 결합한 것은 상당히 중요한 측면이 있다.
내부개혁을 우선하는 시민운동-화해협력통일과 자주통일-시민운동의 세 가지 노선이 기본적으로는 같이 가고, 어떻게 구심력을 유지하며 가는가가 상당히 중요한 과제다. 동시에 개혁과제와 통일운동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는 사회적 양극화 해소라는 한국사회의 중요한 과제도 통일문제와 떨어질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양극화 해소는 복지 확충의 문제인데, 결국은 평화와 남북화해협력을 어떻게 내부 개혁과 결합시키냐는 문제다. 이 둘이 서로 떨어지거나 균열이 생기면 치명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 백 선생도 누누이 강조했듯이, 국내 정치 지형의 측면에서 볼 때도 상당히 주요한 고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양극화는 특히 IMF 이후 경제개방에 최근 한미FTA 체결까지 겹치면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됐다. 예산의 측면에서 단기적으로 보면 대북 지원이 양극화 해결과 상충되는 방향으로 갈 위험성과 우려가 있다. 그 우려를 해소하는 길은 결국 통일운동의 대오를 잘 꾸리고, 어떻게 저변을 확대시킬 것인가의 과제와 맞물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백낙청 : 나는 양극화문제든 복지문제든, 분단사회라는 것을 전제하고 답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남북이 현재 전진적인 통합 과정에 들어서있는 사회라는 것을 전제하고 그 맥락에서 얘기해야 한다. 그 맥락을 떼어놓고 복지가 중요하다느니, 또는 노무현 정권이 왜 양극화를 못 막느냐고 얘기해봤자 그건 일반론일 뿐 적절한 비판은 못 된다.
정주영 회장이 소떼 몰고 갔을 때, 노동운동 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렸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노동자를 착취한 돈으로 생색낸다는 도덕적 규탄도 있었지만, 남북관계가 좋아져서 북의 값싼 노동력을 쓸 수 있게 되면 남쪽 노동자가 골탕 먹는 것 아니냐는 논리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는 다분히 정서적인 반발인데, 정주영 회장을 북에 못 가도록 하는 방식이 아니라, 남쪽 내에서 노조 탄압 못하게 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문제제기다. 그런데 그건 이 세상에 남북한밖에 없을 때나 통하는 논법이다. 개성공단이 없더라도 남한의 기업들은 비싼 임금을 피해 중국이나 동남아로 진출한다. 지금 개성공단의 노동력은 남쪽 노동력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 노동력과 경쟁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남북노동력을 결합하는 것을 지혜롭게 이용하면 남쪽 기업의 수익성뿐 아니라 국민복지에도 도움 될 수 있다. 서 교수 말대로 평화와 복지를 연동해서 구상할 필요가 있다.
서동만 : 과거의 우리의 발전 방식은 '저복지 고성장'이자 '냉전형 개발독재체제'였다. 사실 우리나라가 OECD 가입국으로 세계 10위 규모의 무역 대국인데, 이 정도 수준의 양적 규모를 가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빈국 수준의 복지를 가진 것은 분단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면이 있다. 결국 복지 문제도 분단의 해소 내지는 평화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북의 위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정치지형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안보비용 등의 문제로 복지를 확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상당히 어렵다. 역사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정치지형상으로도 복지와 평화는 같이 갈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는 예산의 문제가 있고, 우리도 못사는데 왜 북에 투자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단견이다. 그 두 가지가 같이 갈 수 밖에 없는 것은 필연이다.
또 남쪽 내의 사회적 불균형 문제뿐 아니라 남북간 불균형도 너무 커졌다. 이제 평화 개념은 구조적 평화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남북간 불균형의 해결도 절박한 과제다.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이 되는 우려도 있지만, 북중간 경제협력 강화에는 중국의 동북3성과 북쪽의 경제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는 것에 대한 중국의 우려가 작용한 면이 크다. 물론 북을 중국에 의존적으로 만든다는 전략이 있을 수는 있지만, 우선은 그런 문제라고 보여 진다. 그런 면에서도 남북간 불균형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군사적인 위협보다 남북간 불균형의 해소가 평화를 보장하는데 훨씬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박인규 : 몇 년 전에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남한 사람들은 북한의 핵폭탄 보유보다 경제 붕괴를 더 걱정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그 기사를 번역해서 올렸더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읽더라.
서동만 : 당장 주식을 가진 사람들은 심각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박인규 : 그렇지만 경제난이 곧 안보위협이다는 생각은 아직 많이 퍼져있지는 않은 것같다.
백낙청 : 아직은 경제난 자체가 안보위협이라는 생각이 많이 퍼져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미국이 지나치게 북에 압박을 가할 때, 그것이 북에만 해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에도 마이너스 된다는 생각은 많이 퍼져있는 것 같다.
예컨대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도 광범위한 반발을 일으켰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 자체가 과해서 그런 점도 있지만, 미국이 과한 발언을 한 것은 처음도 아니고 국내에서 그보다 과한 발언들도 많다. 그런데 6.15 이후 사회적 분위기 달라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업가들을 포함해서 다분히 보수적인 사람들도 북한 경제가 붕괴돼서 우리 주식시장 폭락하고 한국 경제에 끼칠 영향을 걱정했던 것이다. 과거에는 안보와 경제를 위해 한미동맹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악의 축' 발언이 나오니까 미국이 바로 우리의 안보와 경제를 위협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반미감정이 급진적인 소수뿐 아니라 상당히 넓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게 됐다.
서동만 : 미국 내 금융자본의 이해관계는 군수산업 자본의 이해관계와 다르다는 분석이 있다. 따라서 미국 내에서도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복합적으로 봐야 한다.
***남북 경협 주체의 확대**
박인규 : 통일운동 얘기로 돌아가 보자. 작년 6.15행사와 8.15행사는 민관이 같이 했다는 면에서 중요했다고 본다. 통일사업에서 민관이 같이 진행한 것은 통일운동이 남한 전체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고도 볼 수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대기업·정부·민간의 역할 분담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백낙청 : 분담은 이미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는 전체 활동량을 늘이면서 역할 조정을 어떻게 정교하게 하느냐의 문제가 남은 것이 아닐까.
서동만 : 경제협력이 본격적인 개발단계로 가고 있는데, 거기에 맞춰 중국이 북에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럴 때 남쪽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정부가 작년 9.19합의 직후 6대 동력 사업을 중심으로 우리 정부가 상당히 많은 준비를 했는데 북미 관계가 악화되면서 다시 중단됐다. 노무현 대통령도 올해 연두 기자회견에서 그에 대한 언급을 일체 못 했다. 결국 정부는 북핵문제를 의식할 수밖에 없고, 정권 말기라는 부담과 국내 여론의 문제도 있다.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한데, 대기업도 정주영 회장이 들어갈 당시에 비해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순수 국내기업이 없다. 외자 비중이 20-30%이고, 세계적인 기업일수록 더욱 그렇다. 삼성도 순수 국내기업 아니다. 또 대기업은 외국 자본이 관여하고 있는 의사결정 과정은 물론이고 당장 주가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북핵문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다른 차원의 민간측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또 민간은 아니지만 지방자치체가 정부가 못 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데 지방자치정부가 본격적 개발협력프로그램을 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특히 인프라 건설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결국 정부도 아니고 대기업도 아닌 주체를 어떻게든 생각해내야 한다. 공익성을 가진 민간재단일 수도 있고, 공기업일 수도 있다. 공기업은 정부와도 직결되므로 한계는 있겠지만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성공단 진출에서 보듯이 중소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물론 수익성 보장을 위해 북의 정책 변화도 전제돼야 하지만, 정부 보장 하에 공익성을 갖는 새로운 주체가 펀드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추진할 수 있다. 국제 컴소시엄까지 확대시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핵올인'으로 2개월 늦은 위폐 대응…'대연정' 몰입의 폐해**
박인규 : 지금까지 주로 한반도내의 문제에 대해 얘기해왔는데, 좀 다른 얘기를 해보자. 9.19 이후 북핵문제가 진전이 안 되고 있는데, 이같은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은 한계가 있지 않나 싶다. 더욱이 미국이 위폐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는데, 한국이 꾀할 수 있는 돌파구가 있을까.
서동만 : 결과적인 얘기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사실 9.19성명 전후로 위폐 문제를 제기할 움직임이 이미 있었다. 9.19성명이 역사적이고 의미있는 것이었지만, 그 이후 우리 정부가 상황을 안이하게 인식했던 측면이 있다.
7월에 6자회담이 재개되기 직전까지도 북핵 문제에 대한 비관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9.19합의는 극적인 타결이었지,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거꾸로 합의가 갖는 의미를 살려야 하는 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 인식이 안이했다.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 나도 방송에서 해설하다 보면 되는 방향으로 하라고 하지 안 되는 쪽을 얘기하기는 힘들다. 꼭 초치는 것 같아서 잘되는 방향으로만 얘기했다.
결과적인 얘기지만 미국의 의도는 처음부터 양면적이었다. 합의가 나온 직후에 힐 대표가 폐막 연설에서 마약, 인권 얘기를 다 해버렸다. 심지어 당시 이미 위폐 문제까지 꺼냈다는 얘기도 있다. 그 발언을 두고 합의에서 밀린 미국 대표의 국내정치용 플레이로 해석했지만 결과적으로 보건대 강온양면적인 것이었다. 이미 강경론의 입김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강경 페이스로 돌아왔다. 결국 9.19성명의 모멘텀을 살리지 못했다. 우리 정부는 위폐문제와 관련해 두 달 정도 대응이 늦었다. 우리가 복합적인 대응을 했어야 했다. 앞으로도 그런 식의 대응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박인규 : 말씀 들어보니 우리 정부가 순진했다는 얘긴데.
서동만 : 그런 면도 있지만, 당시 미국은 한미동맹 재조정 문제,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 FTA등 종합적인 전략을 가지고 북핵문제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북핵문제에만 올인하면서 다른 사안들도 포함해서 복합적인 대응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결과적인 얘기지만.
<사진: 백2>
백낙청 : 해설하다 보면 되도록 좋은 쪽으로 한다고 서 교수가 얘기했는데, 사실 비판적인 지식인 중에서는 요즘은 그게 오히려 드문 성향이다. 대개는 안 좋게 얘기해야 지식인으로서 체면이 선다고 생각한다.
내용을 잘 모르면서도 줄기차게 희망적인 얘기를 해온 건 바로 나다. 나는 세세한 것은 모르지만 내가 느끼는 큰 흐름에 대해서는 지금도, 물론 안이하게 대응한 면을 반성은 해야 하지만, 사태가 좀 꼬이고 있다고 너무 어둡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9.19성명에서 미국이 밀렸다고 했지만, 모든 국가는 합의된 문서 내용에서 밀릴 때는 다른 수를 염두에 두게 마련인데 하물며 미국이 다른 생각 없이 밀렸을 리는 없다. 문건 자체에서는 미국이 밀렸지만, 즉시 '뒷수'를 들고 나오지 않았나. 미국 입장에서는 그것이 일종의 꽃놀이패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북이 경수로 주장도 접고 '행동 대 행동'에 대한 요구도 완화하면서 굽히고 들어오든가, 아니면 속수무책으로 회담에도 못 나오고 고립돼서 정권이 위태로워지고 부시 대통령이 지금도 바라는 정권교체가 이뤄지든가, 둘 중의 하나를 내다보며 즐길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북에는 중국 카드가 남아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에 달려가서 경제개혁의 의지를 과시하면서 중국의 도움으로 버티겠다고 나온 것이다. 남쪽으로서는 답답한 현상이다. 중국이 도와줘서 북이 붕괴되지 않는 것은 남으로서도 다행이지만, 핵문제가 해결되어 한반도 경제문제도 북이 좋아하는 표현으로 '우리 민족끼리' 풀어가야 하는데 중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여러 이권을 중국이 선점해버리게 되면 남북의 통합과정에 손상이 올 수도 있다.
사실 그런 상황은 미국 입장에서도 별로 유리한 게 아닌데, 미국은 어찌 보면 꽃놀이패 하는 재미에 취해서 당장에는 생각을 덜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역시 미국인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다시 이런 면을 착안해서 어떤 새로운, 명쾌하지는 않고 다소 구질구질한 진전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우리 정부의 대응이 안이했던 점은 많았다. 가령 8.15행사가 성사되고 9.19성명 나온 것이 노무현 정권으로서도 상당히 큰 성과인데 그것을 제대로 활용해서 여론을 잡아 다음 단계로 밀고 나가지 못하고 대통령이 '대연정' 얘기에만 몰두했다. 또 미국이 제기하는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미리 대응하지 못한 면도 있다.
민간측에서 보더라도 '이제는 수구 반통일 세력은 완전히 눌렀다'는 지나친 낙관으로 '이제는 자주통일론자와 화해협력론자의 결전의 시기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것은 이론상으로도 자주통일과 화해협력이 얽혀서 같이 간다는 점을 외면한 오류이면서, 동시에 정세판단에서도 지나친 낙관주의였다. 이 참에 미군을 아예 내보내자는 등의 안이한 판단에서 오히려 수구세력이 단합하고 기세를 올리게 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럴수록 민간에서 더 창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주영 회장 때와 같이 대기업이 움직이기 힘든 여건이라면, 나는 그것이 주주의 국적보다 가령 삼성전자 같으면 그 시장이 미국 또는 미국의 영향권에 있고 그 상품이 미국정부의 통제에 약한 탓이 더 크다고 보지만, 서 교수 말대로 대기업 이외의 다른 주체도 발견해야 한다.
<사진 : 서2>
서동만 : 우리 정부가 북핵 문제로 지나치게 위축돼있었다. 전략적 유연성이나 한미FTA 등 최근 한미관계와 관련한 일련의 상황들이 노무현 정권의 지지층 뿐 아니라 국민들에 대한 '신뢰'의 측면에서 자칫하면 '신뢰의 위기'로까지 갈 수 있다. 보수 언론은 정부 내 온건자주파와 강경자주파의 대결이라 말하고 있는데, 사실 정부안의 의견 대립은 있을 수 있다. 이라크 파병 때도 그런 의견 차이가 있었다. 다만 대국민 '신뢰의 문제'인데, 1차적으로 지지층의 신뢰 문제가 생겨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은 선거 직전이라는 상황에서 잠잠해 보이지만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이 부분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꼭 극복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신뢰의 위기"**
박인규 : 노무현 정부의 역량보다 태도의 문제라는 것인가.
서동만 : 둘 다다. 국민의 신뢰는 역량 문제와 떨어질 수 없다. 이라크 파병만 하더라도 국민들이 그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본다. 물론 사정을 이해하더라도 반대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용산기지 이전이나 전략적 유연성 협상이 어려운 협상이라는 건 국민들도 다 안다. 실제 매우 힘든 협상 아닌가. 이라크 파병 때처럼 솔직히 얘기하는 게 나았다. 반대 여론도 협상력으로 활용하는 것이 외교 협상의 교과서적인 지혜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국방·동북아균형자론 등의 얘기를 꺼낸 게 구체적인 협상과정과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꾸로 헷갈리게 됐고 그에 따른 신뢰성의 문제가 나온 것이다.
박인규 : 레토릭과 실제가 따로 갔다는 얘기인가.
서동만 : 따로 갔다기 보다는, 지향점과의 연관성 문제다. 지향점을 가진다고 다 성취될 수는 물론 없다. 자주국방이나 동북아균형자론이나 얼마나 중요한 지향인가. 그런데 구체적 협상 과정에 대한 설명을 통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방식으로 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백낙청 : 정권담당자가 비전을 제시하면서 국민설득을 잘 못한 '태도의 문제'도 있고 협상과정에 대한 장악력의 문제도 있다. 외교부든 국방부든 그 협상을 담당하는 실무팀의 능력 문제가 있는데 그나마 대통령의 지휘가 안 먹히는 사태까지 겹친다면 국민의 불신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또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비해 충분한 준비나 훈련이 없었던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면이다. 남북관계에서는 정권 초기에 그런 미숙성이 특히 두드러지다가 후에 많이 안정됐다고 본다.
전략정 유연성 문제는 사실 김대중 정권때부터 논의돼온 것이다. 또 냉정히 생각하면 어차피 주한미군이 한국 사람들을 위해 주둔하는 것이 아닌 마당에, 미국이 세계적인 군사전략을 바꾼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활동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을 한국이 반대한다고 미국이 안 하겠는가. 불행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2005년 '공사 발언'은 속은 시원했지만, 아무런 밑받침이 없는 발언이었다. 사실 그 순간에도 다른 무엇인가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 얼마전 <프레시안> 보도로도 드러났다. 자주국방이라든가 자주외교가 목표라면 막연한 그림이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어느 수준의 목표이고 얼마나 장기적인 목표인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중간단계는 무엇이고 이를 위해 우리가 참고 견뎌야 할 것은 무엇인지가 포함된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너무 큰 꿈을 제시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날그날 일처리에 급급하다가 오히려 보수적이고 친미적인 관료들에게 끌려간 점도 많다.
사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에 어느 정도 협조를 해줘야만 되는 상황에서 파병이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이 우리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협조를 위해 일정한 댓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너무 잘 알아버리면 미국의 요구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버틸 때는 버텨주고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 한다.
박인규 : 신뢰의 문제나 일관성 문제를 제기하셨는데, 노무현 정권이 변화의 가능성은 있나.
서동만 : 관료 장악 문제 말했는데, 외교안보 의사결정 기구와 구성원의 문제가 크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만들어진 건 결국 그것 때문이다. 외교부, 국방부, 국정원 등 국가안보기구는 상대적으로 볼 때 매우 거대한 기구다. 그 기구를 대통령이 혼자 통제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김대중 정부부터 NSC가 조정기능을 해왔는데,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호남관료들의 맥이 있었고, 그것이 일정 부분 김대중 대통령의 노선이자 정책을 지지하는 라인 역할을 했다. 호남에 기반한 것이 그런 역할을 가능하도록 했던 것인데, 노무현 정권은 그런 지지 라인 역할이 확보가 안 되고 있다.
여전히 한반도 냉전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과도기인 셈인데, 국방과 외교라는 거대한 기구를 장악하고 통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역시 NSC의 구성과 같은 문제가 작용한 것이지만 말이다. 능력의 문제에 그런 면이 있고, 법적인 근거가 미비한 것도 사실이다. 법적 규정을 고치면서 좀더 충실화하는 방향으로 갔어야 했는데 안보정책실이란 제도로 회귀했다. 조정기능이 사실상 없어진 것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DJ 방북, 정부가 얼마나 힘 실어주느냐가 성패 좌우**
박인규 : 경남대 북한대학원의 구갑우 교수가 최근 <교수신문>에서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3가지인데 첫째, 북한의 사회성격에 대한 분석이 배제돼 있다, 둘째 우리에게 미국이란 무엇인가, 즉 미국과 어느 정도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이 동아시아론과 함께 진행돼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없다, 셋째 민주화 이후의 한국을 '87년 체제'로 개념화하면 계급격차 심화 등의 현실적 문제가 자칫 제도적 미비에 의한 것으로 치부되고, 나아가 제도적 개선으로 고쳐질 수 있다는 환상을 낳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마침 미국 얘기도 나오고 했으니 구 교수의 비판에 대해 백 선생께도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백낙청 : 구갑우 교수의 글은 나의 분단체제론에 초점을 두었다기보다 분단체제론을 포함한 '창비 사회과학담론' 전반을 겨냥한 것이고 40주년을 맞은 창비에 대한 비판을 담은 글인데, 나는 먼저 구 교수의 글이 애정을 지닌 비판이라는 점이 고맙고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식으로 비판의 요점을 명시해준 점이 생산적인 토론을 가능케 한다고 본다. 다만 미국문제와 관련된 그의 두번째 비판은 내가 보기에 설득력이 약한 것 같다. 그가 말하는 '한미동맹에 대한 정면돌파'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세계체제 속의 미국의 역할이나 한반도정책, 동아시아정책 등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창비가 그 분야의 전문지가 아닌 점을 감안하면 창비 나름의 몫을 해왔고 창비의 동(북)아시아 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믿는다.
분단체제론에서 북한의 사회성격에 대한 분석이 배제돼 있다는 비판도 수긍하기 어렵다. 북한학자도 사회과학자도 아닌 입장에서 내가 구체적인 분석을 수행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사회에 대해 우리 사회과학계에서는 만나보지 못한 성격규정을 시도한 것이 분단체제론이라는 생각이고 그 문제를 둘러싸고 손호철 교수와 논쟁도 있었다.
87년체제론에 대해서는 사실 나 자신도 여러가지 의문을 갖고 있는데 그만큼 '창비 담론'으로서는 정착이 덜 된 논의다. 구 교수는 '분단체제론-동아시아론-87년체제론의 삼각 담론'을 창비 사회과학 담론의 기본골격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나 자신은 분단체제론과 '근대적응/근대극복의 이중과제'론이 두 기둥이고 여기서 출발해서 여러가지 구체화 시도가 벌어진다고 인식하고 있다. 87년체제론은 그러한 확산노력 중 최근의 시도랄 수 있는데, 이 논의를 진행해온 사회과학도들이 분단체제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가령 구교수가 언급한 53년체제, 97년체제, 2000년체제 등과의 연관을 규명하는 데 미흡했고, '이중과제'의 맥락 속에 자리매김 시키려는 노력도 부족했다는 게 나 자신의 판단이다. 내 나름으로 머릿속에 그리는 그림이 있지만 여기서 길게 말할 계제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구 교수의 지적대로 '보수와 진보 양측에서 공격을 받을 소지가 있고 한국사회를 벌집 쑤셔놓은 듯한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의제'를 비켜가지 않으면서 슬기롭게 싸워나가는 것이 창비를 포함한 우리 지식인사회 전체의 임무라는 점에 동의한다.
<사진 :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
박인규 : 김대중 전 대통령이 4월에 방북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작은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백낙청 : 서 교수도 예측하기를 망설이는데 나야 더욱 그렇지 않겠나(웃음). 다만 철도로 간다면 그 자체가 이벤트가 되어 다른 큰 성과가 없더라도 국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은 분명하다. 또 하나는 철도 방문을 북에서 동의한다고 하면 그것 자체가 왔을 때 뭔가 선물을 안겨주겠다는 의사표시 아닐까 지켜보고 있다.
서동만 : 대담 제목이 6.15 시대인데, 6.15 시대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남북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것의 마무리로서의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고 본다. 김 전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막혀있는 북미관계를 타계시키거나 남북관계를 한 단계 더 진전시키고자 하는 의욕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결국 정부가 얼마나 힘을 실어서 보내는가와 같은 정부의 몫이다.
철도의 경우는 벌써 5년이나 끌었다. 이제 와서 재개한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구실이 필요한데 김 대통령의 방북은 그 좋은 구실이 되어 줄 수 있다. 시기에 대해 야당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정상회담도 6.15공동선언에서 합의되고 아직 이행이 안 된 한 가지인데, 이 문제가 김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풀릴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 볼 수 있다. 물론 북이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북에서 의지가 있다면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김 전 대통령만큼 적임자는 없다. 물론 이런 것들은 예측이고, 방북을 해봐야 알 수 있지만.
김 전 대통령의 경우 가장 힘 있었던 대통령 시절에는 정작 통일논의를 잘 얘기하지 못했다. (웃음) 자신의 3단계 통일론을 재임 시절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가 요즘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다소 늦었지만 통일방안 합의와 관련해 최소한 '트랙 2'로 싱크탱크 간 교류나 민간 학술회의라도 북으로부터 뭘 얻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벌써 야당에서 미리 넘겨짚고 통일논의를 비판하는데 민간에서 하면 야당에서 반대하기도 어렵다. 김 전 대통령이 방북으로 트랙 2 정도는 끌어내서 통일논의를 지속해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협에 대한 국민 공감이 미국 압력에 버티는 힘"**
박인규 : 마지막으로 경협 문제를 얘기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부분이기도 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외교전에서 그나마 한국의 레버리지를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남북경협이라고 말한다. 경협과 관련해 남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어디까지일까.
서동만 : 교류협력기금 확대가 우선 가장 큰 성과다. 그만큼 지원활동이라든가 교류협력사업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협사업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작년 9.19합의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경협방안을 집대성해서 만들었는데, 지금 다소 위축된 상황이다. 경협은 남북관계의 최대의 과제이자 시대적 과제다. 김대중 정권시절에는 전력 지원이 큰 문제였는데, 지금은 인프라 건설을 포함해 개발프로젝트의 단계로 가야할 시점이다. 어떤 식으로든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안 되면 정부가 보증을 서고 민간이 역할을 하는 방안으로라도 물꼬를 터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박인규 : 얘기를 듣고 보니, 처음에는 어느 정도 진전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러면서도 주변을 둘러보면 답답한 것도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정부의 역할 면에서 노무현 정부가 최근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마무리로, 올해 6.15 행사 준비상황을 좀 얘기해달라.
백낙청 : 아직 확정은 안 됐지만 6.15공동선언 6돌 기념공동행사는 광주에서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작년 6.15 행사는 우선 물꼬를 트는 것 자체가 큰 의미였고, 8.15 행사 때는 통일축구가 있어서 대중동원을 잘 했다. 통일집회에 온 사람과 축구 보러 온 사람들이 어울려 즐기면서 통일의 의지도 확인하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 올해는 월드컵으로 인해 축구는 어렵고, 어떻게 6.15 행사를 대중적으로 확산하는 계기로 만들까 고민하고 있다. 대중적 확산에 대해 내부에서도 물론 개념이 좀 다르다. 기존의 통일운동을 대중에게 더 알리고 통일의식을 전파한다는 것을 위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그런 통일운동에 냉담하던 국민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로잡고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점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다.
경협 확대 등 지금까지 서 교수 얘기를 고려하면 사실 후자 쪽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수 국민들이 공감하도록 확산되어야 하고, 그래야 경협을 뒷받침해주기도 편해지고,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맞서 버티기도 편해진다. 그런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은데 구체적 방안은 고민 중이다.
박인규 : 6.15 공동위원회 상임대표이신데, 임기는 어떻게 되나.
백낙청 : 우리 조직이 규약도 없이 출범했다. 결성식에서 상임대표로 선출됐는데, 임기가 언제까지인지조차 정해지지 않았었다. 지난 15일 공동대표자 회의에서 규약이 통과 돼, 임원 임기는 2년으로 하고 결성식 때 선임된 임원은 자동적으로 유임하면서 임기 기산일자를 조직이 처음 결성된 작년 1월 31일자로 하기로 했다. 그러니 내 임기는 내년 1월 31일까지인 셈이다.
<사진: 백-서2>
박인규 : 올해 통일행사는 어떤 것인가.
백낙청 : 올해 6.15는 남쪽에서 같이 하기로 했고, 8.15는 북에서 같이 했으면 하는데 북측은 8.15는 따로 하고 다른 계기에 같이 하는 것을 생각해보자는 얘기도 나왔다. 유동적이다. 북에서 올해 아리랑 축전을 다시 한다고 하는데, 그 축전에 남쪽 대중이 참여하고 관람하는 방식을 작년과 같이 할지도 협의해 봐야 안다.
작년에 열린 민족작가대회에서 '6.15선언실천 민족문학인협회'를 상설기구로 만들기로 했다. 그를 위한 조직위원회가 남북 양쪽에 구성돼 실무접촉중인데, 잘 되면 올 봄에 결성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 하나의 상설 남북공동기구가 생긴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시에 문학인이라는 특수한 인종들이 만나게 되니 남북간 실질적 통합을 위한 수많은 네트워크 중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동만 : 북한 전문가나 남북관계 연구자들은 통일운동이나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움직일 필요성이 커졌다. 이제는 북을 직접 보고 접촉하면서 북조선 얘기를 해야 하지 않나. 지금까지는 막혀 있어 면피가 됐지만 이제 그게 안 통한다. 그래서 교류협력과 통일운동 면에서 발을 담그면서 현장감있는 연구 활동을 해야겠다.
박인규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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