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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영화는 몸과 마음…너무 늦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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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영화는 몸과 마음…너무 늦게 만났다"

['쌀과 영화' 촛불문화제] 영화인과 농민이 손을 맞잡다

지난해 농민들은 외로웠다. 쌀협상 이면합의에 반대하는 시위에서부터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 사망에 대한 규탄대회에 이르기까지 논농사, 밭농사보다 '아스팔트 농사'를 더 많이 지었지만, 정부도 국민도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반대'나 '식량주권을 지켜내자' 등의 구호도 시대를 모르는 '무식한 소리'로 치부돼 버렸다.

17일 영화배우 최민식 씨가 "그동안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농민들에게 큰절을 했지만, 다른 영화인들도 그동안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한미 FTA의 칼 끝이 제일 먼저 자신들을 향하자 영화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농민들과 같은 처지에 내몰렸음을 깨달았고, 늦게나마 농민들의 외로운 싸움에 동참했다. 17일 저녁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열린 '쌀과 영화' 촛불문화제는 이들 두 집단 사이의 연대를 확인하는 첫 번째 자리였다.

***종묘공원 할아버지들과 잠시 승강이도**

저녁으로 예정된 '쌀과 영화' 촛불문화제에 앞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8개 주요 농민단체들은 17일 오후 2시 서울 종묘공원에 모여 '한미 FTA 저지를 위한 농민투쟁 선포대회'를 열었다. 하지만 개회사를 하기도 전에 종묘공원에 모여 있던 할아버지 100여 명이 무대 옆으로 몰려와 몸싸움을 벌이는 사건부터 생겼다.

이들은 발언자들이 미국을 비판하는 발언을 거듭한 데 이어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활동가가 단상에 올라 "오는 미군 막아내고, 있는 미군 몰아내자"라는 구호를 외치자 흥분해 시위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들은 "이 빨갱이들아, 미군 없이, 미국 없이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면서 여성 농민 활동가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곧 전경들이 도착해 이들을 막아섰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던 한 대학생은 "미군 문제나 FTA 문제가 바로 자신의 삶을 붕괴시키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며 한숨을 쉬었다.

***"여러분이 싸울 때 영화인들이 같이 하지 않아 죄송합니다"**

이날 농민대회에서는 영화배우 최민식 씨가 나와 농민들 앞에 큰절부터 올렸다. 최 씨는 "여러분이 식량주권을 위해 싸울 때 영화인들이 같이 하지 않은 점, 죄송하다"면서 "한미 FTA로 인한 스크린쿼터 축소를 계기로 앞으로는 과거와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남이 아니라 하나이며, 영화인을 대표해 고통을 함께 할 것임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최씨가 큰절을 하자 농민들은 격려의 환호성을 보냈다.

이날 행사에는 최 씨 외에도 양기환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원회 대변인 등 영화계 인사가 참석했고, 문경식 전농 의장, 정광훈 전국민중연대 의장,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 등이 잇따라 나와 발언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미국의 압력에 의한 노무현 정권의 쌀 개방,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수입 재개, 스크린쿼터 축소, 약품시장 개방 등의 재앙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인데, 이것이 단지 한미 FTA 협상의 전제조건에 불과했다고 하니 곧 들이닥칠 한미 FTA의 대재앙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제2의 한일합방인 한미 FTA를 350만 농민과 7000만 민족의 이름으로 단호히 거부하며, 문화주권 수호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영화계는 물론이고 정치, 군사, 경제, 문화 침탈의 총체인 한미 FTA를 반대하는 모든 국민들과 함께 식량주권, 문화주권 수호를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이들은 종묘공원에서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으로 행진해 '쌀과 영화' 촛불문화제에 참가했다.

***농민의 아픔에 영화인들도 함께 눈물 흘려**

촛불문화제에는 시작 전부터 2000명 가량의 많은 시민들이 모였다. 이들은 주최측이 나눠준 주황색 손수건을 두르고 "돈이 되면 무엇이든 다 파냐", "스크린쿼터는 우리의 힘입니다" 등의 팻말을 들고 공연을 기다렸다.

공연은 양동근, 김장훈, 전인권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고 대진대 학생들이 영화 '왕의 남자'를 패러디한 연극을 보이는 등 볼거리가 풍성했다. 또 이 집회 앞쪽에는 강혜정, 차인표, 김혜수,문근영, 안성기, 이준기, 전도연, 최민식 등 영화배우 20여 명과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 등이 참여한 탓에 기자들 사이에 열띤 취재경쟁이 벌어졌다.

공연 중 눈에 띄었던 것 중 하나는 농민시위 현장에서 타령으로 유명해진 '농민배우 횡성댁'의 연극. 그는 한 해 농사 지어 농협 대출금, 농약 등 자재 값, 땅 주인에게 줘야 하는 지대 등으로 다 뜯기는 새댁으로 분해 한바탕 타령을 하며 열연을 했다. 그는 "빚독촉에 시달리는 농민 마음, 우리 마음은 다 문드러졌다"고 외치며 눈물을 보였고, 이를 지켜보던 영화배우 전도연, 김혜수 씨 등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또 대진대 학생들의 연극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 부패한 관료들을 비판하던 연극을 그대로 따왔다. 이 패러디 연극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 가면을 쓴 노 첨지가 식량주권을 바치며 "FTA 협상 해달라"고 하자 부시 미 대통령의 가면을 쓴 관료가 거부하다 노 첨지가 쇠고기 수입과 스크린쿼터까지 바치자 "진작 줄 것이지"라며 받는 내용이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당시 "스크린쿼터는 우리의 문화주권"이라고 발언했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나왔고, 시민들은 야유를 보냈다.

***"우리 것 우리가 지켜야죠"**

이러한 공연을 지켜보던 이원흡 정읍시 농민회장은 "작년과 비교하면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 하는 단체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니, 앞으로 FTA 반대 투쟁이 좀 더 힘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농민들의 사정을 묻자 그는 "정읍 농민들은 2005년 한 해 동안 수해피해와 폭설피해를 겪으며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 쌀 시장을 개방하겠다고 하니 정말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영화배우 이준기 씨의 팬클럽 회원이라고 밝힌 박예슬(14) 양도 쌀시장 개방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박 양은 "그렇지 않아도 국내산 쌀도 잘 먹지 않아 많이 남아 돈다는데, 미국산 쌀이 들어오면 누가 우리나라 쌀을 먹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우리 영화도 마찬가지"라면서 "스크린쿼터가 없다면 〈왕의 남자〉와 같은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영화인 대책위'의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앞으로 더 많은 연대를 통해 한미 FTA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더 크게 만들고 힘을 모아 최후까지 지키겠다"고 다짐하면서 "이 문제가 얼른 잘 해결되어서 농민들은 들판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영화판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촛불문화제 마지막 행사는 농민의 쌀과 영화인의 영화필름을 교환하는 것이었다. 영화인들은 "우리는 밥심으로 영화를 짓는다", "충무로에서 우리는 영화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등의 멘트로 농민과의 연대를 표현했고, 농민들은 "쌀은 입으로 먹고, 영화는 마음으로 먹는다", "쌀과 영화는 몸과 마음인데 너무 늦게 만났다"고 말했다.

이날 농민들과 영화인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아침이슬'을 열창하며 이날 행사를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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