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궁궐 깊은 처소에 가두어진 셈이나 마찬가지인 군주의 마음은 의탁할 곳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권력을 키우기 위해 군주를 이용할 야심만 있었지, 정작 나라의 안위나 백성들의 아픔을 껴안으려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습니다. 군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조정의 현실 속에서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하나하나 알아가던 군주 연산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포악함이 뒤섞인 채 기녀 출신의 장녹수의 치마폭에 한 없이 한 없이 싸여 갔었습니다.
한편, 조선팔도를 이곳저곳 다니면서 판을 벌이던 떠돌이 광대패 장생과 공길은 연산과 장녹수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놀이를 하다 궁내시의 눈에 우연히 들게 됩니다. 이리하여 누구도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절대군주 연산과 천민 광대 장생의 일행이 서로 운명적인 만남 속으로 얽혀 들어가게 됩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기록된 한 대목을 극(劇)의 계기로 삼아 만든 연극 "이(爾)"는 이렇게 해서 영화 〈왕의 남자〉의 원본으로 무대 위에 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연산은 슬픈 군주였습니다. 그리고 그 슬픔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 마음이 위로받을 곳이 없었던 광대 공길에 대한 총애를 통해 그 서러운 돌파구를 만들어냅니다.
헌데, 공길은 권력이 주는 특권과 혜택 앞에서 흔들립니다. 유혹 당합니다. 하지만 민중의 탄탄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장생의 존재 앞에서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실마리를 포착하게 됩니다.
그건 들판의 아무렇게나 자란 듯한 야생초가 지닌 힘이기도 했습니다. 그 "아무렇게나"에 실린 힘은 그러나 알고 보면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걸 잃어버릴 때 광대는 자신의 가락으로 춤추는 광대가 아니라 남의 장단에 놀아나는 꼭두각시가 되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연산의 그 우여곡절을 품은 사연이 이해가 되고 동정이 가면서도, 우리는 광대의 생명력이 권력의 요구로 이리저리 휘둘리게 될 수는 없다고 여기게 됩니다.
공길은 이 권력 앞에서 동요하는 존재의 약함을 상징해주고 있었고, 장생은 이 권력과 팽팽한 긴장을 상실하지 않고 본래의 자신을 결국 지켜내는 민중적 생명력의 승리를 의미해주고 있었습니다.
연산은 자신의 개인적 사원(私怨)으로 말미암아 군주의 본분을 망각했고 공길은 왕의 남자가 되는 처지의 변화가 가져다 줄 권력의 꿀맛에 취할 뻔합니다. 영화에서 공길과 관련된 이 대목은 사실 원작과는 달리 주목되지 못하지만 그런 공길을 구해내는 것은 장생의 고난과 용기로 드러나는 저 광활한 들판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입니다.
세상은 궁궐의 화려한 침소를 부러워하지만, 인간의 사랑과 진실을 정작 지켜낼 수 있는 힘은 야생의 들판에 있는 것입니다.
지엄한 권력으로도 쉽게 길들일 수 없는 민중의 뜨거운 영혼이 여기에 숨쉬고 있습니다.
하여 극과 영화 속에서 왕의 남자는 사실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건 다만 권력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왕의 남자가 되는 순간 광대는 더 이상 광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친 자들의 단호하고도 유쾌한 비상(飛上)이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의 남자〉를 만들어 낸 이들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를 외치기 위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들을 비롯한 영화인들은 권력과 거대 자본의 포로가 되지 않으려고 지금 저 비장미 넘치는 장생의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 춤은 시간이 흐르면서 아마도 장엄한 군무가 되어갈 것입니다. 들판에 휘몰아치는 바람과 마주하여, 이 시대의 광대들을 끝끝내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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