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리의 유일한 소원은 평화롭게 사는 것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리의 유일한 소원은 평화롭게 사는 것뿐"

'평화마을 만들기' 위한 '제3차 평택 평화대행진'

12일 대추리 '황새울' 들녘은 평화로웠다. 정월 대보름을 맞아 하늘에는 연이 날고 들에는 풍물이 울리는 가운데 달집히 활활 타올랐다. 주민들이 비는 소원은 단 한 가지. "이 땅에서 자손 대대로 계속 농사짓게 해주옵소서."

이날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서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평택대책위)' 주최로 '제3차 평화대행진'이 노동자, 농민, 학생, 시민단체 관계자, 민주노동당 당원 등 각계 인사 3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11〉

앞서 이곳에서 열린 '1차 평화대행진' 때는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수백 명이 부상했고, 지난해 말 폭력시위와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 한 차례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여의도 시위 도중에 얻은 부상으로 숨진 농민이 2명이나 발생하면서 경찰청장이 교체된 뒤로는 처음 열리는 대규모 집회여서인지 언론사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그러나 이날 행사는 주최측의 공언대로 아무런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진행됐다. 행사는 대부분 연날리기, 풍물놀이, 민속극 공연, 달집 태우기, 비나리, 줄다리기, 쥐불놀이 등 정월대보름에 걸맞는 전통행사들로 채워졌고, 경찰에 세운 '폴리스라인'도 잘 지켜졌다. 경찰병력은 대부분 미군부대 철책 안 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대기할 뿐이었고, '전의경 부모 모임' 참관단 50여 명도 행사를 지켜봤다.

평택대책위 관계자는 "1차 대행진 당시 충돌이 있었으나, 2차 대행진은 평택 시내에서 매우 평화롭게 진행됐고 이후 500일 간 촛불문화제 등 평택에서 열린 대부분의 집회가 평화롭게 진행됐다"며 "우리의 소원은 팽성 주민들이 평화롭게 계속 자기의 땅을 지키며 사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팽성으로 이주해 1년째 살고 있는 문정현 신부는 "미군기지를 확장하기 위해 285만 평의 평택 평야에서 주민들을 몰아내는 것이 진짜 폭력"이라며 "진짜 평화는 이 들녘에서 하얀 쌀을 내는 것이다. 앞으로 전국민의 힘을 모아 논갈이, 못자리를 하고 추수까지 할 것"이라고 힘 주어 말했다.

〈사진12〉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간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도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주민들은 선포문을 통해 "미군기지 확장과 강제 토지수용을 막아내는 것은 주한미군의 아시아태평양 침략군화와 한미 동맹의 침략동맹화를 파탄내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한 "앞으로 3월에는 평화의 논갈이, 4월에는 평화의 못자리, 5월에는 평화의 모내기를 연달아 진행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제 토지수용을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박스 시작]

***매주 토요일 대추리에서 열리는 문예행동 '황새울의 날'(박스기사 제목. 소제목보다 크기 키워주세요)**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대추분교는 온갖 색의 그림과 상징물로 가득차 있어 여느 폐쇄된 학교들과 달리 활기찬 느낌을 준다.

'미군기지 확장 반대'나 '주한미군 물러가라'와 같은 글자가 쓰여진 노란 깃발이 담장을 따라 둘러서서 바람에 펄럭이고, 학교에서 흔히 보는 '책 읽는 소녀'도 여러 색깔로 어지럽게 칠해져 있으며 이승복 어린이는 온 몸에 꽃무늬를 두르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 압권은 단연 학교 전면에 가득 그려져 있는 주민들의 초상화다. 큰 유리창 하나가 가득차도록 주민들의 이름과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미술가 이윤엽 씨와 함께 수원민미협(민족미술인협회) 작가 8명과 성남 민미협 작가 10명 등이 함께 작업한 결과다.

이윤엽 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얼굴을 벽화로 그리기 싫어하는데, 이곳 주민들은 매우 기뻐해 나 역시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주민들이 차츰 꼼꼼히 뜯어보곤 '안 닮았다'느니 '코가 삐뚤어졌다' 등의 항의를 하기도 한다"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미술가들이 손으로 그린 그림은 학교 벽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을의 담장 곳곳에 '평화마을 대추리'라는 글자와 함께 꽃이 그려져 있거나, 주민들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또 대추분교 옆 농협창고에는 '미군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도깨비와 들판에 서 있는 주민의 모습'을 그린 커다란 벽화도 있다. 이 벽화는 민예총 김성수 작가가 주도하고,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함께 그리고 있다.

점점 비어가는 대추리를 온갖 그림과 작품으로 채우는 것은 미군기지 확장 이전에 반대하는 문화예술인들의 공동행동 '2006 대추리 현장예술제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일환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들사람들'이라 하고 예술제 기간으로 잡힌 12주 동안 매주 토요일을 '황새울의 날'로 정해 문예 집중행동을 벌이기로 했다. 11일은 첫번째 '황새울의 날'이었다. 황새울은 대추리 부근 황새가 많이 날아들었다는 갯벌의 이름이다.

(사진1)-학교전경
(사진2,3)-도깨비 벽화,수도꼭지 미군

***지신밟기 풍물소리에 주민들도 덩더쿵**

평택시 팽성읍의 도두2리, 대추리는 미군기지 확장이전 대상 지역이다. 일부 주민들은 정부의 수용계획에 따라 보상을 받고 마을을 떠났지만, 상당수의 주민들이 남아 예전과 같은 마을 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11일 기자가 대추리를 찾아갔을 때 노인정에는 할아버지들이 모여 앉아 화투를 쳤고, 한 구멍가게에는 아주머니들이 둘러 앉아 직접 찐 떡을 나눴다. 하지만 빈 집이 늘어난 만큼 마을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12일 있을 제3차 평택평화대행진도 준비할 겸 겨울농활 차 대추리에 왔다는 한양대 02학번 김연 학생은 "빈집이 너무 많아졌다"면서 "2,3년 전 북적이던 마을 분위기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너무나 다르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11일 2시 대추리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평택문예패'가 마을의 안녕을 빌고 액운을 쫓는 지신밟기를 하러 온 것이다. 마을에서 제일 먼저 주안상을 받은 노인회장 정태화 씨는 "주민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어 고맙소"라며 풍물패에게 술을 권했다. 풍물잡이는 "이 땅은 우리 땅, 내년에도 농사짓세"라며 "이 나라 망치는 미국놈 부정, 미국놈 몰아내고 별달거리"라고 소리했고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따라다니며 즐거운 표정으로 구경했다.

(사진4,5) - 풍물단 전체 모습, 사진을 든 손

***"우리 손으로 만든 어여쁜 땅을 어찌 빼앗길까"**

풍물단이 찾은 집 중에는 이날 입주한 '들사람들의 집'도 있었다. 이들은 평택에서의 문예공동행동을 보다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강제수용에 따라 주민이 떠난 집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 집에는 '본 가옥은 보상이 완료된 국방부 소유의 재산으로 무단으로 점용·사용할 경우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계고문이 붙어 있었으나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이날 이들은 돋울새김으로 '들사람들'이라고 쓴 문패를 걸고 큰 현수막을 걸어 자신들의 집임을 알렸다.

또 들판 한가운데 곧게 뻗어 있는 농로에 각기 평화를 기원하는 글을 쓰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참가한 문화예술인들은 '땅은 그 땅을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다(신현욱)', '평화의 길을 간다(임창웅)'는 등의 글을 남겼다. 이 행사에 참가한 가수 정태춘 씨는 "여기에 모인 이들은 예술적 표현을 위해 이곳에 모인 것도, 오늘의 행동으로 누군가를 설득하고 변화시키려는 것도 아니다"라며 "이 땅과 나를 엮어 이 싸움을 나의 것으로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6) 텅빈 들판에 깃발
(사진7,8) 농로에 글씨를 쓰고 있는 서예가, 미사일과 호미

***"여기는 내 정서의 뿌리"**

이날 저녁 7시에는 대추분교 운동장에 설치된 비닐하우스에서 주민들 300명 가량이 참가한 가운데 가수 정태춘, 박은옥 씨가 노래하는 콘서트가 열렸다. 이 '비닐하우스 콘서트'에는 도두리 출신 가수인 정태춘 씨와 같은 지역 출신 시인 박후기 씨가 나와 자신의 노래와 시 속에 녹아 있는 고향의 정서를 주민들에게 이야기했다. 주민들은 '예전에 둑이 터지던 시절'이라든가 '지금 이 자리까지 새우젓 배가 들어오던 때'와 같은 추억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들사람들' 기획팀장인 신현욱 씨는 이날 콘서트에서 "이 공동행동에 연대하는 문화예술인을 1000명까지 늘리겠다"며 "농토 빈 집벽에 그림을 더욱 많이 그리고, 도종환 시인 등 문학인들의 사인회를 무료로 개최해 시민들에게 더욱 널리 알리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이 '비닐하우스 콘서트'는 대추분교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7시에 열릴 예정이다.

(사진10) '들사람들' 단체인사
(사진11)'촛불을 들고 콘서트를 보고 있는 주민'

〈박스 끝〉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