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앞으로 고려사, 삼국사기도 올릴 겁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앞으로 고려사, 삼국사기도 올릴 겁니다"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02/08] 조선왕조실록 인터넷무료공개 이만열 국편 위원장

유네스코에 의해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조선왕조실록〉 지금까지 〈조선왕조실록〉은 학자들이나 일부 연구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지, 일반 시민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기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무료로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검색해 볼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올해 1월부터 시작된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 인터넷 무료 서비스가 네티즌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어서, "역사대중화의 혁명", "인터넷과 역사의 행복한 만남" 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데요. 이른바 등장의 의미는 무엇이고, 앞으로 역사의 대중화와 기록공개를 위해서, 우리사회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가, 집중인터뷰 오늘은, 조선왕조실록의 인터넷 무료공개를 추진한 국사편찬위원회 이만열 위원장과 함께 합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국사편찬위원회 이만열 위원장입니다. 이만열 국편 위원장은, 서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한국사학과에서 교수로서 33년간 강단에 섰으며,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지난 2003년 6월부터 제8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임 중입니다.

박인규 : 이만열 위원장님, 안녕하십니까?

이만열 위원장 :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인터넷판으로 을 공개하셨는데요. 조회수가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몇 분이나 방문하셨는지요?

이만열 위원장 : 네. 저희가 정식으로 인터넷에 올린 것은 금년 1월 1일부터입니다. 지금까지 약 27만여명이방문했습니다. 하루 동안에 아주 많이 들어온 날은 마침 지난 1월 28일 구정 하루 전날입니다. 그날이 토요일이고 구정 하루 전날이어서 많은 식구들이 모여서 조상들 얘기를 하면서 실록을 뒤적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거의 6만여분이나 들어왔습니다. 하루에 평균 7천여명이 조선왕조 홈페이지를 방문한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박인규 : 처음에 무료 공개 서비스를 구상을 하시면서 이정도 방문을 할 것으로 예상하셨습니까?

이만열 위원장 :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습니다만, 지금 방문자 숫자에 있어서는 저희들의 예상을 조금 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역사적 질문이 평소에 많은 편이고 또 조상들에 관한 얘기나 역사는 많이 찾아보려고 하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에는 아주 무궁무진하게 그런 자료들이 많이 있으니까..어느 정도 홍보만 되면 많이 들어 올 것이다..라고 생각 했는데요. 처음에 이렇게 많이 들어 올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박인규 : 일단은 말하자면 문을 열자마자 상당히 예상 이상의 성공을 거두신 셈인데요. 최근에 〈왕의 남자〉라는 사극이 거의 1천만명까지 관객이 들고 해서 그 영화에 영향이 있는 것이 아니냐..이런 분석도 있는 거 같은데요. 한국 국민들이 이렇게 왕조실록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이유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만열 위원장 : 네. 방금 지적하신 것도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왕의 남자〉 그 연산군조의 얘기이니까..그것이 그러면 실록에 구체적으로 나오느냐.. 또 어느 신문에서는 그것을 가지고 소개를 같이 연결시켜서 했습니다. 그래서 아까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그런 영화와 구정이 끼어서 조상들에 대한 관심도 올라갈 때이고 그리고 평소에 우리 국민들이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것..이것이 3박자가 맞아서 특별히 이렇게 많은 관심을 끌게 되지 않았나..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아주 상당히 가치 있는 기록 유산이고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우리나라의 역사 자료를 일반인에게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는 자료로서 제일 처음에 조선왕조실록을 고르신 데는 나름대로의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왕조실록을 국민들에게 먼저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하신 것에는 조선왕조실록이 어떤 기록이기에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이만열 위원장 : 네. 조선왕조실록은 우선 조선조 태조 때부터 철종 때까지 약 470여년간의 기록입니다. 우선 세계에서 470여년간의 기록을 일관된 그런 관점에서 그리고 편집 방침도 그렇게 일관되게 해 온 것이 없습니다. 우선 이 실록은 직필.. 바르게 쓴다..그래서 반드시 전왕이 돌아가신 다음에 실록을 만듭니다. 그 당시에 남겨진 여러 기록들을 중심으로..또 하나는 비밀보장의 전통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누구든지 볼 수 없습니다. 함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직필할 수가 있는 거죠. 이것은 조선왕조실록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볼 때 외국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은 세계적인 역사서다. 우리는 단연 그렇게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가령 비슷한 것으로서 일본의 〈삼대실록〉이 있는데요. 이것은 대단히 빈약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남원조라고 하는 곳에 〈대남실록〉이 548권이 있는데 이것도 우리나라에 비교할 바가 안됩니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왕의 실록이죠. 〈황명실록〉이라고 하는데 권수로는 2964권이나 되는 아주 큰 책입니다만 권수만 많을 뿐이지 기록 내용은 아주 소약합니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이 한자로만 약 6400만자임에 비해서 황명실록은 2964권으로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1600만자에 불과합니다. 우리 조선왕조실록에 4분의 1에 불과한 셈입니다. 거기에 우리 조선왕조실록은 고종, 순종 제일 마지막 임금이 되겠죠? 그 분들의 것은 일제가 관여했기 때문에 정식 조선왕조실록에 이것을 넣지 않습니다. 그것까지 넣는다면 더 많아진다고 이렇게 얘기 할 수 있습니다. 이 활자로 인쇄 간행된 이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의 인쇄문화 전통의 높은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역사서이면서 우리나라 역사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몽고 등 동아시아제국의 역사연구 그리고 국제관계사 연구에도 아주 귀중한 기본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과거에는 이 실록을 군주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종전까지는 학자가 주로 보다가 이제는 국민 대중이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것은 우리가 누리는 하나의 기록문화에 대한 하나의 행복이 아닌가..저는 또 그렇게도 생각해 봅니다.

박인규 : 군주가 볼 수 없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죠?

이만열 위원장 : 군주가 "그 실록을 가져 오너라." 해서 옛날의 왕의 것도 함부로 볼 수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박인규 : 이렇게 방대하고 어떤 일관된 역사기록을 가진 역사기록을 무료로 일반인들이 보게 하는 사례가 외국에도 있습니까?

이만열 위원장 : 이렇게 하는 것은 아마 인터넷이 발전하고 디지털화하는 이런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더러 중요한 문서들을 자기들의 문화 역량에 따라서 공개하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같이 한 아이템을 가지고 이렇게 방대하게 작업해서 내 놓은 것은 없습니다. 이것저것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올려 놓은 것은 있습니다만..

박인규 : 지금 27만명이 방문하셨다고 하셨는데요. 방문하신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시던가요?

이만열 위원장 : 네. 저희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까지 나옵니다. 우선 제일 많은 반응은 이것을 공개함으로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 것이 너무 뿌듯하고 감격스럽다..자랑스럽다..특히 해외에 계신 분들이 이런 얘기를 종종 할 때 도움이 됩니다. 또 하나는 저희들이 복권기금을 가지고 이것을 만들었는데요. 개중에는 이제까지는 내가 세금을 내는 것이 굉장히 아까웠는데 이 세금 내는 것이 아깝지 않다..이제 이 국사편찬위원회를 위해서 세금을 열심히 내야 하겠다..라고 하는 그런 반응이 올 때 저희들에게는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박인규 : 조금 전에 복권기금으로 만들었다고 하셨는데요. 이번에 을 구축하시면서 상당히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렇게 좋은 작업인데 예산이 어떻게 복권기금에서 나오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이만열 위원장 : 우선 복권기금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은 저희가 이것을 인터넷에 올리기 위해서 한 작업만 복권기금에서 나왔습니다. 우선 이것을 조금 이해하실 필요가 있는데요. 저희가 1955년에서 58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영인해서 실록을 학자들에게 배포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1963년부터 세종대왕 기념사업회에서 실록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72년부터는 민족문화추진회에서도 같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업이 93년에 번역이 일단 끝났습니다. 그리고 저희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기왕 영인해서 낸 것을 국민들이 한자로도 잘 읽을 수 있도록 표점을 찍고 그 다음에 교감을 해서 저희들이 다시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디지털화 했습니다. 디지털화 했는데 이 두 작업을 이번에 인터넷에 올리는데에만 복권기금을 이용했다. 복권기금 약 8억7천4백만원을 이용해서 올렸습니다. 그전에 번역한 것..예를 들면 세종대왕 기념사업회나, 민족문화추진회나 또 저희들이 교감실록을 만드는 것은 그것은 수십억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또 국가 예산에서..

박인규 : 인터넷에 올리기 위한 저작권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실제 비용이..

이만열 위원장 : 네. 이것만 복권기금을 이용했습니다.

박인규 : 그래도 보도가 되기로는 앞으로도 좀 더 보강해야 할 부분들이 많고 말하자면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차후 예산이 확보가 되어 있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다는..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만열 위원장 : 그렇습니다. 올해 저희가 약 복권기금에서 4억5천6백만원이 지금 확보가 되어 있습니다. 내년 것은 아직까지는 예산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해야 할 문제가 첫째는 고종, 순종 실록을 표점, 교감 표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그것을 번역 해야 합니다. 고종, 순종 실록을 번역해서 올려달라는 요구가 굉장히 많습니다.

박인규 : 아직 그 부분은 번역이 안되어 있군요?

이만열 위원장 : 네. 번역이 조금 되어 있는데 아주 조잡하게 되어 있어서 국가 기관이름으로 상정하기는 어렵다고 해서 이번에는 저희들이 뺐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요구가 자기 조상들을 찾아야겠다는 요구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씨별, 관향별, 인물직업별, 그리고 사건별..이런 것들을 정리해서 저희들이 내보려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국제화시키기 위해서 앞으로 몇 십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영문으로 번역해서 세계에 내 놓겠다고 하는 것이 저희들의 입장입니다. 그러면 세계가 조선왕조실록이 영문으로 번역된 것을 보고 한국문화의 수준을 아주 높이 평가하지 않을까..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작업들을 위해서 앞으로 국가예산이 더 할애되고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이번에 조선왕조실록이 인터넷에 공개가 되면서 이른바 이라는 말도 나왔고요. 이제 국민 모두가 역사가다..그런 의미에서 네티즌과 히스토리언을 합쳐서 〈네스토리언〉이라는 말도 많이 유행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주로 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해서 앞으로 일반에게 공개하는 계획도 말씀을 하셨는데요. 예를 들면 고려사라든가, 삼국사기라든가..아니면 조선왕조내에서도 승정원일기 같은 것도 인터넷에 공개될 수 있는 날이 금방 올까요?

이만열 위원장 : 우선 저희들이 승정원일기와 그 다음에 비변사등록..이것은 저희들이 계속 번역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 들어 오시면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그것의 일부가 완역이 아닙니다. 일부가 표점교감본과 번역이 모두 올라와 있습니다. 저희들이 하는 작업대로 매년 올려 놓고 있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삼국사기라든지 고려사와 같은 것도 저희들이 하려고 합니다. 특히 일차적으로는 관찬사서..관에서 편찬한 여러 역사책들이 있습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이런 것들이 있는데요. 그것을 일차적으로 모두 표점 교감해서 그 다음에 번역해서 조선왕조실록 모양으로 이렇게 올려서 국민들의 역사에 대한 욕구와 또 반대로는 국민교육을 이런 인터넷을 통해서 사례를 통해서 직접 교육을 시키는 것이 좋겠다..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을 만드신 데에는 투입된 인력이 정확하게는 두 명도 안 된다고 제가 말씀을 들었는데요? 어떻습니까? 앞으로 그런 역사 자료들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 위해서 일을 하는데 인력이라든가, 예산이라든가..어려움 같은 것은 없으십니까?

이만열 위원장 : 네. 저희가 그런 어려움이 많습니다. 저는 정확하게는 1.3명이라고 하는데요. 그것은 2004년 예산이 확보가 되면서부터 이것을 인터넷에 올려 놓는 작업만을 하는데 1.3명이..두 사람 모두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출근도 하고..우선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표점 교감본에 대한 그 저작권을 저희들이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민간업체가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것을 저희들이 사 들이는 작업과 그리고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및 민족문화추진회의 번역본을 저희들이 교섭을 해서 전송권을 협약하는 이런 과정이라든지..기술적으로 그 다음에 어떤 것을 올리고, 어떤 것을 빼고, 어떻게 해서 이것을 검색을 잘 하도록 한다든지..그리고 지금까지 기록문자로는 올리지 못했지만 이미지로 올려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세종 때, 세조 때 악보 같은 것이라든지 말이죠. 그 다음에 칠정산내외편이라고 해서 천문기록에 관한 것들이 있는데 단순한 기록이 아니고 별자리도 나오고 하니까..이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다시 촬영해서 이미지로 올리는 문제와 관련해서 1년 반 동안 1.3명이 수고를 했습니다.

박인규 : 앞으로도 그런 인력이라든가 예산 쪽에서 보강이 되어야겠군요?

이만열 위원장 : 네. 그렇습니다. 저희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할 일이 많은데요. 예산도 그렇고 인력 면에서 너무 빈약합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이 위원장께서는 조선왕조실록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실록을 만들어야 한다..그런 지적을 가지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실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건지 설명해 주시죠?

이만열 위원장 : 아마 대한민국실록이라는 말은 언론에서 붙인 거 같고요. 저는 정확하게 '대한민국일지'라고..지금 저희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자료대한민국사'라고 하는 것을 22권을 냈습니다. 아주 큰 책입니다. 이것은 1948년 해방이 되면서부터 지금 1952년까지 내는데 22권을 냈습니다. 그것을 지금 어떻게 하는가 하면, 그 당시에 나온 신문, 잡지..이런 다른 기록들에서 찾아서 하루하루 대한민국자료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하루하루의 일을 제대로 적어 놓으면..중요한 일이라도 제대로 적어 놓으면 50년, 100년 이후에는 그것이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되지 않겠는가..그것이 바로 예전에 왕조시대에 실록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취임하면서부터 대한민국일지를 적자..했는데 인원이 없어서..그러니까 2분의 1명..0.5명이 그 일을 하니까..되지를 않습니다. 저희들에게 조금 여유 있는 예산과 대략 10명 정도의 전문가를 주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아주 중요한 일들을 적어 가면 이것이 100년, 200년 후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능가하는 좋은 기록이 될 것이다..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대한민국실록이라고 해도 좋고, 대한민국일지라고 해도 좋을 거 같습니다.

박인규 : 그것도 인원과 예산이 문제가 되는 군요. 은 지금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저희가 방문하려면 인터넷 주소가 어떻게 되죠?

이만열 위원장 : 인터넷 주소는 'www. sillok.history.go.kr' 인데요. 그렇게 쳐서 들어오시기 는 좀 힘드실거고요. 그냥 한글로 검색창에 국사편찬위원회라고 치셔서 들어 오시면 조선왕조실록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저희가 유관기관, 문화재청이라 든지 민족문화추진회라든지, 세종대왕 기념사업회..이런 곳에 배너를 달아주 려고 합니다. 배너를 초, 중, 고등학교나 중요한 기관, 원하는 기관에 모두 달 아주려고 합니다. 달아주면 그곳에서 자기들의 홈페이지에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바로 나올 수 있게끔 하려고 하는데요. 그 노력을 하는데에도 역시 그것도 예산이 부족합니다.

박인규 : 지금 당장은 검색창에 국사편찬위원회를 입력하셔서 그곳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만열 위원장 : 네. 그렇습니다.

박인규 : 지금부터는 역사교육에 관한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위원장님, 조선왕조실록을 일반인에게 공개했다는 것은 넓은 의미로 보면 역사의 대중에 대한 교육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최근에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라든가, 중국의 동북공정 이런 얘기들이 나오면서 우리나라가 그 동안에 국사교육을 소홀히 했다? 라는 의견이 많이 나온 거 같습니다? 특히 중, 고등학교부터 시작해서..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을 보시면서 어떻게 판단을 하고 계십니까?

이만열 위원장 : 우선 저희가 조선왕조실록을 우리 국민들에게 공개하게 된 것도 역사 교육, 역사의식의 함양이라고 하는 아주 중요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방금 말씀주신대로 일본의 역사교과서왜곡이라든지, 중국의 동북공정..이런 것이 나올 때마다 우리 언론에서 참 많이 떠들고 국민 여론도 참 상기가 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결론에 가면 국사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나옵니다. 그것이 한결 같은 결론입니다. 그런데 그 결론이 정부에 넘겨서 제도적으로 고쳐서 하는 데는 많은 애로가 있습니다. 제가 교육부장관 자문기관인 국사발전위원회라고 하는 자문기관에 위원장을 맡아서 일을 해 보니 교육부에서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또 국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려면 국사교육시간을 늘려야겠다..그것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게 되면 교사를 늘려야 하고 또는 다른 과목시간을 줄여야 하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틀립니다. 이것을 자칫 잘못하면 국사교과의 어떤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것이다..이렇게 다른 곳에서 얘기를 하기 때문에 이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교육부의 힘으로만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때에는 우리 국민전체의 컨센서스(동의)를 통해서 민족교육의 기반이 무엇이냐..민족교육기반은 국어와 국사다..라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최대 공약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국어와 국사시간을 좀 더 늘리고 강화시킨다는 전제 위에서 다른 어떤 기술적인 문제라든가..하는 것을 정리해야 되지 않는가..생각합니다. 방금 질문주신 역사교육과 관련해서는 초, 중, 고등학교 역사시간이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오면 제 7차 교육과정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렸는가 하면,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필수과목에 있도록 하고 그 다음에는 2, 3학년에는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국사는 필수과목으로서 국정교과서를 가지고 가르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교과과정을 할 적에 근, 현대사는 빠졌습니다. 근, 현대사는 고등학교 2, 3년..그러니까 선택과목시간에 강화하도록 하라..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그것에 빠지고 보니까..고등학교 2, 3학년에 올라가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이 역사를 근, 현대사를 모르고 졸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 3년 선택과목..근, 현대사과목은 선택으로 하는 대신 교과서는 검정교과서를 했습니다. 지금 아마 7, 8종이 나올 겁니다. 그래서 그 교과서에 따라서는 저자들과 저자들의 성향에 따라서 좀 더 비판적인 것도 좀 더 우호적인 것도 있고요. 그렇게 나오지 않나..이렇게 생각합니다. 우선 국사 교과서와 관련해서 문제가 있는 부분은 우리가 정리를 해 나가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좀 더 이 사회분위기를 예를 들면 고시에서 국사과목을 넣어 준다든지, 공무원시험에서 국사과목을 좀 더 강화시켜준다든지, 대학 국사과목을 좀 더 전공선택으로 해 준다든지..이런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중요한데 그것이 잘 협조가 되지 않습니다.

박인규 : 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어떤 사회적 합의까지는 있는데 실제로 그것을 실행하는 데에는 굉장히 문제가 많군요?

이만열 위원장 : 네. 그렇습니다.

박인규 : 조선왕조실록 인터넷공개를 계기로 해서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어떤 역사교육에, 국사교육에 대중화에 많은 역할을 해 주시길 부탁 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 드립니다.

이만열 위원장 : 네.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에서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