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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투우 같은 불공정한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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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투우 같은 불공정한 게임"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123〉

***'남미, 미국과 자유무역 왜 반대하나'**

지난 주말 투우경기를 즐기며 열광하던 멕시코 시민들은 경기장 안의 황소 한 마리가 관중석으로 훌쩍 뛰어들어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7명이 부상을 입고 관중석은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빠지는 등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투우장에 등장한 황소가 투우사를 제쳐두고 관중석으로 돌진해 좌충우돌 관중들을 들이받은 이 황당한 장면은 중남미 전역의 톱뉴스로 등장,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를 보는 시각 또한 가지각색이다.

남미 현지의 일부 역사학자들과 언론들은 '새끼 새(Pajaritó)의 반란'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등 멕시코에서 일어난 투우장 난동을 유럽제국의 중남미 식민지정책에 연결시켜 해석하고 이를 다국적기업들과 제국주의에 무모하게 대항하는 남미 국가들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새끼 새'는 지난달 29일 멕시코시티의 유서 깊은 투우경기장에서 관중들을 습격한 황소에 붙여진 이름이다.

미주 대륙에서 투우는 페루와 멕시코에서만 성행하는 경기로서 남미의 지식층들은 이를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잔재로 평가하며 투우경기에 열광하는 페루와 멕시코 국민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옛 로마제국 시절 노예검투사들이 원형의 경기장 안에서 피를 튀기며 서로 생명을 건 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서 열광했던 것과 다를 게 뭐냐는 식이다.

투우는 황소와 인간의 대결이라는 다소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극한의 경기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싸움은 항상 강자인 인간 편에 유리하게 진행된다. 황소 편에서 보면 불공정한 룰을 적용한,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얘기다.

우선 경기장 안에 들어선 황소는 말을 탄 '삐까도르'라는 무사들에게 창으로 목 부위의 운동신경을 난자 당해 방향감각을 상당부분 잃어버린 상태에서 투우사와 대결하게 된다. 또한 투우로 지정된 송아지는 외모 가꾸기와 '붉은 천' 만을 공격하도록 훈련을 받아 움직이지 않는 투우사보다는 흔들거리는 붉은 천만을 집요하게 들이받는 것이다. 쓸데없는 데 힘을 소모하도록 길들여진다는 말이다.

창 끝에 찔린 상처로 인한 과다출혈과 쓸데없는 체력소모로 기진맥진해진 황소는 투우사의 예리한 칼끝을 피할 수가 없으며 관중들을 열광시키는 각종 묘기를 연출하고 피를 토하며 원형 경기장의 모래밭에서 죽어가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리고는 환호하는 관중들의 영웅이 된 투우사들에게 돈과 명예를 안겨주는 게 투우들의 한결 같은 삶이다.

이는 투우들의 운명이 어쩌면 로마제국 시절 검투사들의 운명과 같다는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또한 중남미에서는 유럽 정복자들의 자원착취에 동원된 토착원주민들도 불공정한 룰 속에서 짐승들처럼 도륙 당한 역사를 지니고 있어 투우들의 운명과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논평도 나오고 있다.

***멕시코 '황소의 반란'이 남미에 주는 교훈**

다소 비약된 비유이긴 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역사적으로도 '새끼 새'로 불리던 멕시코의 투우가 관중들을 습격했던 것과 같은, 다소 무모하고 황당한 도전이 종종 있어 왔다고 지목했다. 로마제국 시절에도 황제에게 반기를 든 검투사가 있었는가 하면 마야족을 이끌고 스페인 식민지정책에 반기를 든 유카탄 반도의 까넥 하친트, 잉카제국의 재건을 위해 스페인군대에 도전했던 페루의 뚜빡 아마루 등이 그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투쟁은 마치 투우사와 황소의 싸움처럼 불공정한 룰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결과는 항상 신무기와 강한 조직을 가진 유럽제국 군대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아르헨티나 현지에서는 이번 멕시코 투우사건을 평가하면서 남미국가들이 다국적기업들과, 제국주의, 신자유주의, 나아가 FTAA(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에 강력히 맞서고 있는 것은 이들이 내세우는 조건이 항상 자신들에게 유리한 불공정한 룰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폈다.

이들은 투우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무딘 뿔과 돌진하는 힘이 전부이듯이 남미국가들이 가진 무기는 식량과 기초적인 기술이 전부여서 천문학적인 자본과 신기술 등으로 무장한 서방 강대국들에 대항하는 것은 황소와 투우사의 대결처럼 불공정하고 결과가 뻔한 게임이 아니냐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투우사에게 돈과 명예를 안겨주고 희생된 투우들처럼 남미는 지금까지 서방강대국들에게 황금과 곡물 등을 착취당하면서 희생만 강요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남미국가들은 미국과의 자유무역을 결사 반대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비관적인 평가는 일견 지나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감이 없지 않지만 전혀 근거 없는 황당한 얘기는 아니라는 것이 현지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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