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여년 간 민주화의 고비 때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민주화의 물꼬를 트고,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말들을 해왔던, 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인데요. 정의구현사제단은, 지난 30여년 간,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을 모토로, 중요한 역사의 현장에, 언제나 함께 해 온 이름이었습니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우리사회 민주화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고, 이 시대의 역할은 무엇인가..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새 대표로 선출된, 전종훈 신부와 함께 합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전종훈 신부입니다. 전종훈 청량리 본당 주임신부는(50세), 1990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 전곡성당과 염리동 성당 주임신부, 정의구현사제단 민족화해와일치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우토로 국제대책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전종훈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전종훈 신부 :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우선 사제단의 대 새표로 선출되신 걸 축하 드리고요. 사제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을 모토로 내놓으셨던데요. 정의구현사제단은 요즘은 사실 예전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기게 됐고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시죠?
전종훈 신부 : 저희 전국사제단이 출범한 직접적 계기는 암울했던 박정희 군사독재시절 지학순주교님의 구속사건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당시 74년 7월 6일에 대만주교회의와 필리핀의 매스컴회의에 참석을 마치고 유럽을 순방한 뒤 김포공항에 도착한 지주교가 바로 중앙정보부에 연행이 되게 됩니다.
박인규 : 공항에서 바로 연행되신 거죠?
전종훈 신부 : 네. 그래서 7월 10일에 지주교를 위한 기도회를 갖게 되고 또 15일에 지주교님이 연금상태에서 민청학련사건에 대한 '나의 입장'이라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사실 그 당시에 민청학련사건 또 그 이후에 인혁당사건을 조작하려고 했던 그래서 당시의 정치적인 위기를 돌파하려 했던 박정희 정권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23일에 지주교님이 다시 양심 선언을 하게 됩니다. 양심선언의 주된 내용이 "소위 유신헌법이라는 것은 민주헌정을 배신적으로 파괴하고 폭력과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으로 조작한 것이므로 무효이다. 그리고 긴급조치1,4호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참옥한 자율법 유린의 하나이고 자신에게 붙여진 내란 선동은 억압받는 청년에게 그리스도적 사랑을 실천하려고 돈을 주었기 때문에 조작한 죄목이며 그래서 비상군법회의는 꼭두각시이다."라는 양심 선언을 하게 됩니다. 결국 이 지주교님의 양심선언과 그에 따른 구속으로 유신권력과 천주교는 화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죠. 그런 상황을 더욱 강력히 밀어붙이면서 대결의 자세를 선명히 하면서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출범하게 된 그런 계기가 됐습니다.
박인규 : 출범이 그럼 74년 7월인가요?
전종훈 신부 : 74년 7월에 주교님 사건이 생겼고,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그해 74년 9월 26일에 명동성당기도회를 기점으로 생기게 된 거죠.
박인규 : 그 당시에 유명한 '제1시국선언'이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과 소명을 믿는다" 그러면서 유신헌법 철폐, 민주헌장 회복 등을 요구했는데요. 요즘 사람들은 잘 상상이 가지 않을 텐데요. 30여년이 지났지만 굉장히 엄격했을 때이거든요. 어떻게 해서 신부님들께서 그런 것을 내시게 됐고 그 당시의 상황이랄지 영향 같은 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전종훈 신부 : 역사학자들이 그 당시의 시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치의 영도자 통치, 일제의 제국주의자들의 천왕의 파시즘 같은 독재다' 이럴 정도로 암울했던 시대이죠. 그런 폭압적인 시대 때 시국선언이라는 것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용기가 없이는 불가했다고 보여지는데요. 더구나 이 시국선언에서 저희 전국사제단은 네 가지를 요구합니다. 유신헌법을 철폐하라, 그리고 민주헌정을 회복하라는 것이죠. 그 다음에 긴급조치를 전면 무효화시키고 구속 중인 지학순주교님을 비롯해서 성직자, 학생, 민주애국지사를 즉각 석방하라, 국민의 생존권과 기본권을 존중하고 언론보도 집회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서민 대중의 최소한의 생활과 복지를 보장하는 경제정책을 확립해라..라고 하는 전반적인 민주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죠. 이 시국선언이 우리 사회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이유가 있다면 아무도 말을 할 수 없었던 시대에 가장 필요한 최소한의 요구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 될 것이고요. 또 어쩌면 거의 유일무이하게 그 당시 처음으로 억압적인 정치구조와 군부 통치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심어 주었다는 것..
박인규 : 그 당시는 사실 유신헌법 반대라는 말만 해도 잡혀갈 때가 아니었습니까?
전종훈 신부 : 그렇죠.
박인규 : 사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1974년부터 87년까지 아주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부터 굉장히 역할을 많이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박종철 고문 사건, 6월 항쟁의 어떤 기폭제가 된..그것을 정의구현사제단에서 말하자면 고문 조작경위나 이런 것들을 그 당시에 밝히셨죠?
전종훈 신부 : 네.
박인규 : 이렇게 해서 민주화의 고비 때마다 굉장히 민주화의 물꼬를 뚫었던 선봉의 역할을 해 오셨는데요. 어떻습니까? 그 동안 정의구현사제단에서 활동하신 수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대체로 어떤 분들이 역할을 많이 하셨죠? 어떤 분들을 꼽을 수가 있을까요?
전종훈 신부 : 30년이 넘게 지금까지 계속해서 민주화 운동을 하고 계시는 1세대..우리는 1세대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사제단활동의 1세대라고 하는 신부님들..지금도 길바닥에서 길 위에서 항상 투쟁을 하고 계신 문정현신부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이끌면서 민주화 운동을 전반적으로 정리, 지도해 가는 함세웅신부님..그 외에 1세대 신부님들이 많으시겠지만 대표로 두 분을 꼽을 수 있겠지만요. 사실 30년 동안 사건이 있는 현장에서 또는 우리들의 기도 안에서 언제나 함께 해 준 수 많은 사제들이 가장 대표적인 분들이다..
박인규 : 현재 정의구현사제단에 소속되어 있는 신부님은 몇 분이 계십니까?
전종훈 신부 : 사제단은 회원제가 아니기 때문에 회원 명부도 없고 그래서 몇 사람의 인원이 있는지는 우리도 모릅니다. 다만, 사건사건마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회원이라면 회원일 수 있겠죠. 사건에 느끼는 경중에 따라서 어떤 때는 과거에는 천 여명이 된 적도 있었고 사제만..또는 몇 백명이 됐을 때도 있었고요. 아닐 때는 몇 십명 정도..이렇게 사안과 사건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약간은 참여하는 신부의 숫자는 다릅니다.
박인규 : 전국사제단이라고 하는데 교구마다 따로 사제단 활동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종훈 신부 : 네. 각 지역 교구마다 사제단이 결성이 되어 있어서 교구는 각 그 지역문제를 주로 관심을 갖고 그 지역의 현안 내지는 인권문제, 환경문제, 농촌문제, 노동문제에 직접적으로 소리를 내고, 행동을 하고 다른 단체와 연대를 하고 있고요. 이 전국사제단은 그런 지역사회에서 활동을 하는 신부님들이 전체적으로 같이 모이는 조직이고 그래서 대체로 중앙에서 일어나는 전국적인 이슈가 되는 문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이런 전국적인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응하는 그런 단체가 됐죠.
박인규 :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떨지 모르지만 민주화가 되어서 인지..또 아니면 최근에 카톨릭 자체가 예전보다 보수화 됐다는 말도 있고요? 그래서 사제단 활동이 예전만큼은 활발한 것 같지는 않다..라는 얘기도 일부에서는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십니까?
전종훈 신부 : 많이 듣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죠.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사제단이 독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사제단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또 그만큼 다양화되고 시민사회단체가 성숙됐고, 많이 성장했다..그런 면에서는 좋은 의미로 받아 들일 수 있고요. 그러나 저희들이 시국현안이나 인권, 노동, 다른 어떤 민족문제에 있어서 비껴 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들이 서야할 자리가 된다라고 하면 언제든지 그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죠.
박인규 : 그렇다면 새롭게 대표를 맡으시면서 사제단이 지금 이 시대에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런 것이다..라는 나름대로의 구상 같은 것이 있으십니까?
전종훈 신부 : 글쎄요.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있지만 아직 제가 대표가 되어서 회의를 통해서 우리의 방향을 잡지는 않았습니다만, 대체적으로 3-4가지 정도를 저희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활동을 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싶은 것은, 우선 과거청산문제가 시급하다..이것은 단순히 과거를 청산한다는 의미보다는 밝은 미래를 살기 위해서..왜냐하면 청산없이 미래를 얘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특히나 가장 문제가 되는 정치권의 문제에 있어서는 결국은 과거청산 없이 흘러온 정치의 이런 유형들, 인물들..이런 것들이 혼재되다 보니까 아무리 사람을 바꿔도 그 구조는 그대로 구태의연하고 그러다 보니까 과거의 가장 대표적인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 같은 것은 거의 언급도 하지 못하는 이런 상태라면 이것은 대단히 시급한 문제이다..과거청산이 시급한 문제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고요. 또 하나는 역시 민족의 화해 일치..이거야 말로 민족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이고 아직도 이 문제는 저희들이 힘있게 활동해 나가야 할 그런 가치지향적인 문제이고요. 또 하나는 사회정의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양극화 문제를 저희는 사회정의 차원에서 접근을 하고자 합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 없이 사회정의는 있을 수 없다..그런 측면에서 사회 정의를 위한 양극화 문제에 저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안을 마련하고 국민께 호소하고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찾고 우리들이 어떻게 투신해야 할지를 모색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인규 : 좀 전에 국가보안법 말씀도 해 주셨는데요. 김수환추기경하면 카톨릭계에 가장 큰 어른이신데요. 최근에 와서 국가보안법폐지에 반대한다..사학법 개정안에도 반대하신다..김수환추기경께서 너무 좀 보수화가 되는 게 아니냐..따라서 카톨릭 전체도 보수화가 되는 것이 아니냐..그런 지적도 있고 해서요. 어떻습니까? 사제단 활동을 하시기가 카톨릭 내부에 여러 가지들이 힘드시거나 그런 부분들은 없습니까? 그런 부분들이 장애라고 할지..여러 가지 안에 흐름이..
전종훈 신부 : 사제도 선택이었거든요. 그 삶을..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사제의 삶을 선택한 것이죠. 역시 사제단의 삶도 내가 선택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무슨 장애를 느끼거나 그런 것은..
박인규 : 교단전체의 흐름이라든가 최고 높으신..높다는 표현이 어떨지는 모르지만..그것과는 관계없이 각 사제단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활동을 하신다..그런 말씀이신 거죠?
전종훈 신부 : 네. 그렇죠.
박인규 : 사제단에서 앞으로 지금 말씀하신 과거 청산, 또 민족의 화해 일치, 양극화 해소와 같은 문제에도 많은 역할을 해 주시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전종훈 신부 : 네.
박인규 : 지금부터 전종훈 신부님은 어떻게 살아 오셨나..그런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세가 올해 50세이시던데요? 사제서품을 받으신 것이 90년..대략 35~36세 정도에 받으신 건데요? 상당히 늦은 거죠?
전종훈 신부 : 일반적으로 한 10년 늦었죠. 10년 늦게 입학했습니다.
박인규 : 그러시면 어떻게 이렇게 뒤늦게 신부님이 되시기로 결심하셨는지요? 사연이 있으실 거 같은데요?(웃음)
전종훈 신부 : (웃음) 저는 시대의 소산이다..이렇게 우선 말씀을 드리는데요. 7~80년대를 살아온 젊은이로서 고뇌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고뇌라는 것이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 이런 고민을 사실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고민 속에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유인이 되고 싶었어요. 그 무엇에도 구속 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그 길이 무엇일까? 자유인으로서 교회와 민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 고뇌에 답을 사제의 길로서 찾은 거죠.
박인규 : 그렇게 결심하신 것이 30세에 들어서면서 하신 겁니까?
전종훈 신부 : 네. 30세가 됐을 때 했습니다.
박인규 : 실제로도 사목을 하시면서 신부님께서 생각하셨던 자유인으로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일을 하는 그런 보람 같은 것은 맛보고 계십니까?
전종훈 신부 : 사제이기 때문에 다른 예를 들어서 시민단체에..또 다른 영역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도 열심히 할 수 있겠죠. 그런 영역에서 일을 하는 것과 사제로서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사제는 일단 그 무엇으로부터 구속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대단히 고무스럽고..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든지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고 아니면 그 누구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 수 있고요. 그런 사제적인 특성이라고 할까요? 그런 점이 훨씬 이 사명을 수행하는데 다른 어떤 영역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좋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분들은 종교인은 개인의 영적 생활을 주로 다루는 것이지..사회적 문제까지 발언하고 하는 것은 종교인으로서는 할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어떻습니까? 사제가 해야 할 일 중에서 그런 개인의 영적인 문제와 사회의 어떤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필요한 겁니까?
전종훈 신부 : 필요하다기 보다는 개인의 영적인 문제와 사회적 문제를 분리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발상이다..개인의 삶이 사회의 삶과 어떻게 동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박인규 : 사회가 병들면 개인도 힘들어 질 수 밖에 없다?
전종훈 신부 : 그렇죠. 사회의 구조악이 있다면 그것이 인간의 개인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 삶과 사회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박인규 : 신부님은 민족화해와일치위원장등을 지내시면서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에 굉장히 앞장서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전종훈 신부 : 저는 그 질문..그럼 왜 국가보안법이 있어야 하는지를 설명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은 그야말로 민족의 모순덩어리..그 자체이거든요. 그러니까 남북이 공존, 공생해야 한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화해와 일치를 모두 얘기합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그 국가보안법은 공생할 수 없는 법입니다. 엄청난 모순이죠. 그 모순을 안고 평화를 얘기한다면 옳은 얘기인가? 또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창조성을 파괴하는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헌법위반이고, 기본권 제한이면서도 더더욱 창조성을 파괴한다는 의미에서 대단히 악법이죠. 또 하나는, 국가보안법..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없는 악법입니다. 왜냐하면 이웃간에 불신을 만듭니다. 이것은..서로 의심하고 불목하면서 어떻게 믿는 사회, 어떻게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가능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가? 그리고 또 하나는 이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과거청산도 없다라고 보여지는 이유가 국가보안법이 있기 때문에 수구보수세력들이 우리사회를 그 어떤 것도 이분법으로 갈라서 이념논쟁으로 끌고 가는 그 추동원인이 국가보안법이 있다는 것이죠. 결코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창조적 미래지향적 희망이 없어 보인다는 거죠. 항상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미래 지향적이기 보다는 과거 회귀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그런 의미에서 국가보안법은 민족을 위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더더욱 평화라는 최고의 가치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개정사립학교법이 상당히 아직까지도 정치적 논란이 되고 있고요. 또 대체로 개신교단이라든가, 천주교에서도 상당수는 반대하시는 분들이 많고요. 전신부님께서는 개정된 사학법으로도 사학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어떻게 보면 강력한 찬성의 말씀을 하셨는데요. 지금 사립학교를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어떤 것이 문제라고 보십니까? 사립학교에 대해서..
전종훈 신부 : 우선 개정 사학법의 내용을 보면 학생이나 학부모의 교사회 등등 학교자치기구의 법제화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개방형이사제라는 이것도 전체 이사의 4분의 1에 불과하고요. 그나마 이배수추천제의 인원 중에서 임명하기로 했기 때문에 학교 민주화와 재정의 투명성에 과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상당히 의심스럽지만..그러나 어쨌든 이 개방형이사제도입, 친인척이사수의 제한, 또 이사장과 그 배우자 혈족의 학교장 취임금지 등을 갖는 이 개정안이 사립학교가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라는 것에서 찬성하는 것 뿐이죠. 다만 문제는 아마도 개정안을 반대하는 많은 사학들의 숨겨진 큰 원인이 있다면 아마 사유재산권 침해라고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요. 저는 이렇게 봅니다. 저희들의 인식으로는 학교 법인은 누가 그 주체가 되든지 간에, 설립과 동시에 공공재산으로 사회에 봉헌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박인규 : 사유재산이 아니다? 사회의 것으로 봐야 한다?
전종훈 신부 : 사회의 것이죠. 때문에 학교는 단체성격의 본질상 공익법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더더욱 여타의 사학단체와는 달리 교회의 학교, 이것은 사회에 봉헌한 공익재산으로 고백하고 그래서 소유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사회의 구호를 위한 도구로 여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그런 점에서..
박인규 : 좀 더 공공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지금보다도..
전종훈 신부 : 훨씬 강화되어야 하고요.
박인규 : 마지막으로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황우석교수 논란이 아직도 사회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신부님의 입장에서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것과 이른바 생명 복제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원천적으로 금지를 해야 하는 것인지..어떻게 보십니까?
전종훈 신부 : 생명 복제는 사제의 입장에서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죠. 다만 지금 황우석교수가 문제가 됐던 것은 난치병환자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 물거품이 됐다라고 하는 것에서 안타까움이었고요.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도 그 어떤 생명도 미물이라도 그 어떤 이유와 목적으로도 그 존엄성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는 할 수 있는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왜냐하면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되면서 다른 어떤 생명을 얘기한다는 것도 모순이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저는 결코 이것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박인규 :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이란 모토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새 대표로 계신 전종훈신부님..앞으로 우리 사회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많이 도와주시길 부탁 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 드립니다.
전종훈 신부 :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에서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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