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굿패가 들어가면 만복이 따라 들어오고, 우리 굿패가 나가면 만액이 따라 나간다고 하였는데, 굿 한 상 푸지게 치고 가세~. 오방신장 합다리굿에 명가복가로 굿을 치세~. 갠지게 갠지게 갠게 갠지게."
소시적 풍물굿에 빠져 돌아갈 때 전북 임실 필봉굿 치던 대보름날이 생각납니다. 지리산 자락 두메골에서 대보름 뜰밟이를 하면서 필봉굿패와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던 30년 전 추억 아련합니다. 온 마을 사람이 신명에 겨워서 이글거리는 장작불을 감돌며 춤을 추던 그 시절이 대보름 철만 되면 아직도 생각납니다.
너울너울 춤춰라
마당은 비뚤어져도 장구는 옳게 쳐라
몸은 두둥실 떠 출렁거리네
강물처럼 한 몸 되어 넘실넘실 흐르리
북두칠성이 앵돌아졌네
오늘은 여기서 놀고 내일은 은하수 넘어
월선이 방으로 놀러를 가세
어리사저리사~ 어허이 어허~
내 고향이 어디냐고 묻거든
숲과 마을이 하나로 살갑던 수풀마을
두고 왔다고 전해다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네
숲과 마을을 모둠살이로 바라지굿 하던
자연의 나라 마을굿
꿈속에서나 만나네
나의 문화 메카여
고백하건대, 나의 예술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그 때 산골 마을굿입니다. 이것이 나의 미적 메카입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그런 풍물굿 광경을 볼 수도, 경험 할 수도 없습니다. 온 마을 사람이 집단으로 강신하던 신명세계를 이후에는 겪은 적도, 본 적도 없으니까요. 신기하게도 역사 이전 시대 고대적 원형의 마을굿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굿을 논하면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민속이나 예술로만 이해하려고 하지 종교와 신앙의 문화로 접근하지는 않습니다. 일정한 선을 그어 굿을 터부시합니다. 합리적인 교양인은 굿과 거리가 멀어야 한다는 이야기인지, 기독교 천주교 등 유일신 종교가 따가운 견제를 해서인지, 굿을 야만적인 미신일 뿐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결과, 겨레의 전통문화는 몰이해와 자기비하에 싸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 신학에서는 배우려고 해도 자기민족의 신화와 굿은 외면하는 이상한 인문지식 풍토입니다. 그 뿌리는 오래 되었지요. 오죽하면 나라 잃고도 정신 못 차려 신채호 선생이 개탄했으니 "부처가 들어오면 부처의 나라가 되고, 공자가 들어오면 공자의 조선이 되고, 예수가 들어오면 예수의 천국이 되는 나라"입니다.
굿은 역사의 왜곡에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겨레의 문화입니다. 에둘러 말할 것 없이 굿은 겨레의 원초적 종교이자 민속문화이며 예술입니다. 분리할 필요 없이 굿은 겨레의 모둠풀이 자연문화입니다.
요즘 같은 신년 정초 때 예전에는 마을굿이 한창이었습니다. "쳐들이세 쳐들이세, 만복을 쳐들이세"하는 마을굿의 비나리 말가락은 액과 복이 서로 얽힌 이 세상에서 액을 피해 복을 적극적으로 들이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나쁜 액을 수동적으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공동체 밖으로 쳐내고 복을 자력으로 만들어 냅니다. 굿을 하는 집단 주체자의 행위의지를 선언하는 비나리입니다. 굿은 앉아서 재수 붙기만 바라는 수동형 신앙이 아닙니다.
과거 농경사회에는 하늘과 땅의 천문지리와 노동력이 복의 근본이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논밭과 협동노동과 혈연집단이 자연공동체가 되어 살아가니 그것들이 만복의 근원이었습니다. 만복은 사람만 이롭게 하는 인복이 아니고 자연과 사회를 다 소중히 하는 모둠살이 복입니다.
굿에는 주체의 구성에 따라 풍물굿, 무굿, 고사굿이 있습니다. 무굿을 중심으로 하는 마을굿은 무당이 굿 전체를 주관하는 사제 역할을 하지만 풍물 치배들이 주관하는 마을굿은 특별한 사제가 없이 풍물패 치배가 모두 사제의 역할을 하는 굿입니다. 두레굿, 풍장굿, 지신밟이, 풍물, 메구 등이 그 범주입니다. 지역마다 이름을 달리해서 불렀지만 여기서는 통칭 풍물굿이라 하겠습니다.
풍물굿은 마을 집집을 돌기 전에 자연바라지부터 합니다. 마을을 감싸 안고 있는 자연에게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산, 당산목, 공동샘의 영신에 올리는 바라지굿입니다. 영신굿입니다. 그리고는 집집마다 돌아가며 집굿을 치지요. 문굿, 성주굿, 부엌굿, 장독굿, 샘굿, 곳간굿, 외양간굿, 뒷간굿, 마당굿 등을 치며 영혼에게 발원을, 이웃에게 축원덕담을 하면서 다닙니다. "물 묻은 바가지에 깨 달라붙듯이, 처녀에게 총각 달라붙듯이 만복이 다갈다갈 붙으소사~." 엄숙한 미사와 흥겨운 놀이가 같이 원초부터 혼융한, 아니 본래는 놀이와 제의가 그렇게 하나인 놀이굿입니다.
풍물굿을 지금은 농악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야말로 풍물굿의 세계관을 제거한 왜곡된 개념입니다. 일제는 굿을 무당굿으로 축소하고 마을굿, 대동굿 등 사회성을 띤 굿은 억압했습니다. 마을마다 있는 서낭당을 미신 소굴로 낙인찍고 서낭당의 괭가리, 징, 쇠납 등 굿물을 전쟁 포탄으로 쓴다고 다 공출해 간 것입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 민속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굿 개념은 대한독립국가 국민교육이 시작된 이후에도 아직도 그 버릇대로 가고 있습니다.
굿은 본래 겨레의 생활신앙이고, 종교문화이며, 놀이이며, 예술양식이며, 집회양식이요, 개인의 영혼을 주관한 양식이며, 공동체를 지키던 투쟁의 양식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건 너무 심한 논리의 비약이 아닙니까? 굿에다 다 가져다 붙이는 게 아닙니까?" 항의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비약이 아닙니다. 원래가 그렇습니다.
"구경굿 가자. 잔치굿 났다. 구경굿 났다. 난리굿 났다."는 말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학창시절 탈춤반 벗들과 1977년 진안 남원 순창 지역을 답사 다닐 때 어느 작은 마을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때 팔순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이 "이 고장에선 의병굿이 참 겁나게 셌지"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굿은 그들 삶의 총체적 양식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농인들이나 인민('민중'이란 말 대신 '인민'이란 말을 복원하자는 '전태일 통신'의 박승옥 님 제안이 좋다!)은 의병운동이란 개념을 쓰지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의병굿이라 부르며 항일투쟁에 참여한 것이지요. 의병굿은 공동체를 지키려는 행위였습니다. 굿은 삶의 복을 지키고 쳐들이려는 총체적 행위양식이기 때문에 항일투쟁에도 굿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설 명절 하면 지금처럼 설 연휴 사흘 간의 공휴일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줄창 설 명절이었습니다. 초사흘까지는 조상과 자연을 먼저 섬기고 나흘 째 되는 날부터 대보름까지 마을 대동놀이를 하였습니다. 한 마을에서만 노는 게 아니라 마을끼리 대항하며 놀았습니다. 기세배를 하고 줄다리기, 석전, 횃불 싸움까지 하면서 공동체의 만복을 지키고자 투쟁훈련을 놀이로 했습니다.
조상바라지는 각성받이로, 산바라지는 온 마을 사람이 함께 하였습니다. 일성받이 마을도 있습니다. 서낭당 문을 열고 산신 바라지를 하거나 우주목인 당산나무를 바라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의 화해와 우의를 다지는 민속놀이를 펼칩니다. 우리 민속문화 전체의 약 70%가 설날에서 대보름 기간에 몰려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때는 온 겨레가 카오스의 세계로 빠져드는 축제판이었습니다. 무질서로 질서를 전복하는 해방의 질서입니다.
달집놀이, 쥐불놀이, 줄다리기, 탈춤, 지신밟기(뜰밟이), 당산굿, 산신맞이 서낭굿, 윷놀이, 제기차기, 횃불싸움놀이, 석전놀이, 기세배, 장승굿, 떡치기 등등 생각나는 대로 주어 담았으나 지방마다 다르고 노는 양과 질에서는 다른 명절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왜 그렇게 설 명절 민속놀이문화가 많을까요. 새해를 시작하는 의미 말고도 동아시아적 농경문화의 특성입니다. 전통시대 농업은 사람이 협동해서 하는 노동이 절대로 필요하기에 마을 공동체가 농사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함께 풀어야 했습니다. 일과 놀이는 문화의 양면이었습니다. 봄부터 시작하는 농사철에 함께 일을 해야 하는 만큼 의기투합을 위해서도 농사 전에 같이 놀아서 묵은 감정의 앙금이 있다면 털고 공동체의 활기를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굿은 모든 만물에 영혼이 깃들고 있고 살아 있는 것으로 봅니다. 굿은 범신적 영혼주의입니다. 그러기에 만물에서 신성함을 서로 인정하고 서로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며 서로 믿고 바라지하는 문화양식입니다. 굿으로 볼 때 모든 만물상은 인간에게 선한 영이든 악한 영이든 신성한 굿물입니다. 바라지와 일과 놀이와 휴식과 꿈이 모두 신성한 삶으로 보이는 모둠살이 문화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모든 물상에서 영혼을 인정하지 않으면 한낱 이용 대상의 환경으로 간주될 뿐입니다. 들러리로 보일 뿐입니다. 굿에서 영혼을 빼면 한낱 농악 타악기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물도 바람도 돌도 나무도 짐승도 사람도 모두 영혼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상기시키는 것이 동아시아의 굿이고 풍류예술입니다. 굿은 동아시아의 근원적 문화이면서 근대의 세속화, 물질주의에 대안을 일러주는 '오래된 미래'의 문화입니다.
마을굿은 마을과 산천을 하나의 세계로 이해하며 자연과 조상에 바라지하였던 민간인이 세운 작고 오래된 나라입니다. 액을 막고 복을 쳐들이면서 자자손손 행복하기를 바라던 '자연의 나라'였습니다. 마을굿은 누천년 내려온 민간의 신화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대국가주의는 이 소박한 자연의 나라를 무시해버렸습니다. 한 점 배울 가치도 없다는 듯 쓰레기 미신으로 쓸어버리고 시멘트로 토목 공화국을 건설했습니다.
대보름이 다가옵니다. 정월 14일 밤 일 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을 쳐다보며 소원 성취를 빌어봅니다. 달집을 지어서 타오르는 불처럼 올 한 해도 큰 탈 없이 재수대통으로, 만복을 이곳 우리에게로 쳐들이자고 외쳤던 그날의 작은 나라 큰 세상을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쳐들이세 쳐들이세 만복을 쳐들이세~."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