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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제 더 이상 영웅은 필요치 않다"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02/01] 시사 평론가 진중권씨가 진단하는 황우석 사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논란과 관련해,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는, 처음부터 줄기세포는 없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허탈해 했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줄기세포가 없다는 조사결과를 믿지 않고, 나아가 황우석교수에게 재기의 길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시사평론가 진중권씨는, 우리사회가 심각한 인지부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인지부조화 현상이란 무엇이고, 황우석 교수 사태를 통해서 드러난 우리사회의 의식구조.. 안타까운 단면은 무엇인가, 집중인터뷰 오늘은, 시사평론가 진중권씨와 함께 황우석 교수 파문과 관련된 이야기..함께 합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시사평론가 진중권씨입니다. 진중권씨는 서울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정치사회비평지 〈 아웃사이더 〉의 편집위원이며, 현재 중앙대학교 독문과 겸임교수, 문화비평가, 방송 등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시사평론갑니다. 저서로는 〈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 〈폭력과 상스러움〉,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작가노트〉 등이 있습니다.

박인규 : 안녕하십니까?

진중권 : 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요즘 바쁘시죠?

진중권 : 네.

박인규 :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란과 관련해서 이미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발표했고, 지금 검찰의 조사가 진행 중인데요. 문제는 서울대의 9분의 조사위원회가 줄기세포가 처음부터 없었다..라고 말을 했는데도 그것 자체를 못 믿는 분도 있고, 황우석 교수를 말하자면 지지한다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진중권씨가 인지부조화 현상이다..라고 지적하셨는데요. 인지부조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중권 : 인지부조화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믿고 있는 것..그것이 사실로 입증되지 않을 경우 또는 사실에 위배될 경우에는 사실에 맞춰서 믿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 믿음에 사실을 조작하려고 한다는 이런 경향이거든요. 그래서 일치를 시키려고 하는 건데요. 가령 내가 어떤 사실을 믿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라고 하면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라고 넘어가면 될 문제인데 그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있었던 사실을 버리기가 쉽지 않는 모양이예요. 그래서 그 믿음을..뭐라고 할까요? 믿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사실을 냉정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대해서 왜곡을 시켜서 이상한 해석을 계속 제공함으로서 자기 믿음을 정당화하려는 그런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박인규 : 과학계의 과학자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줄기세포가 있느냐..없느냐..를 떠나서 사실 황교수는 이미 논문 자체에서 상당히 어떤 거짓을 했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씀을 하는데도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시는 분들은 줄기세포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아니 지금 없다고 하더라도 기회를 주면 만들 수 있을 것이다..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진중권 : 네. 바로 그것이 믿음에 맞춰서 사실을 이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과정이거든요.

박인규 :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적응과정을 거쳐서 아..내가 틀렸구나..라고 하면 좋은데 지금 진중권씨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런 인지부조화현상이 상당히 오래 갈 것이다..말하자면 황교수에 대한 믿음..황교수를 믿는 사람들의 믿음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적하시는데 이것은 왜 그럴까요?

진중권 : 어떤 것이 있다라고 하는 것은 확증적으로 입증이 됩니다. 사진을 보여주거나 실물을 들고나와서 보여주면 되거든요. 그런데 없다라는 것은 확증적으로 증명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령 UFO가 없다! 어떻게 알겠습니까? 가령, 날개달인 토끼가 없다! 혹시 압니까? 히말라야 산맥 어딘가에 날개 달린 토끼가 살지..그러니까 지구를 다 들어 보여준다 하더라도 사실은 그것은 입증이 불가능한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 믿을만한 근거가 있는 거죠. 그래서 원래는 줄기세포 있다라고 하면 그 주장을 내 놓는 사람들이 줄기세포가 있다는 증거를 내 놓아야 해요.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줄기세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들 없다는 증거를 내 놓아라..라고 하는데 무엇인가 없다라는 증거는 내 놓을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사실은..

박인규 : 그것은 아직도 말하자면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시는 분들이 그 믿을 굳게 가지고 있다는..?

진중권 : 그렇죠. 태양계 외계인이 산다! 없다는 증거를 대라..이렇게 하면 곤란하죠.

박인규 : 황우석 교수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또 상당수 국민들이 황우석 교수의 이른바 원천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냐..이런 일로 그것을 사장시켜서는 안 된다..무언가 재기의 기회를 주자..스너피 같은 경우는 다른 것은 몰라도 스너피는 진짜가 아니냐..그래서 재기의 기회를 주자는 의견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중권 : 재기의 기회를 줄 수 있다면 참 좋겠죠. 그런데 문제는 국제적인 규약에 맞느냐는 거죠. 말하자면 황우석 교수다..라고 하면 월드컵 팀에 비교하자면 레드카드를 두 번 받아서 사실 출전이 금지된 선수이거든요. 물론 우리는 재기의 기회를 주고 싶죠. 우리 팀이라고 한다면..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국제적으로 받아들여 지느냐..이런 문제거든요.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국내에서는 통할 수 있는 논리일지는 몰라도 밖으로 나가면 통할 수 없는 논리라는 것이고요. 이제까지 거짓말을 많이 한 과학자인데 다음에 다시 거짓말을 말라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진리를 탐구하기에도 시간과 비용이 부족한 것이 과학인데 진리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도 진리인지 아닌지 검증까지 해가면서 하기에는 과학적으로 시간과 비용이 좀..뭐라고 할까요? 아깝다는 생각이 들죠.

박인규 : 국제적으로 받아 들일 수 없다..라는 것은 그분이 논문을 조작하고 그런..

진중권 : 그렇죠. 이미 과학자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거든요. 그것에 대해서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기회를 주자는 분들이 계속 주장을 하다 보면 그분들의 이른바 인지부조화는 상당히 치유가 어렵겠네요?

진중권 : 그렇죠. 또 한가지는 기회를 줘도 문제입니다. 6개월 동안 기회를 줘서 2년 동안 만들지 못한 것을 6개월을 준다고 해서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만약에 6개월이 지나서 만들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렇다고 그분들이 그것을 수긍을 하겠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6개월만 더 달라..거의 다 되었다..이제는 3개월만 더 달라..이렇게 계속 나갈 수가 있는 것이거든요. 또 시간을 주어도 안 됐을 경우에 또 다른 핑계를 댈 수 있는 겁니다. 정부의 지원이 적었다..무엇이 문제였다..연구원이 과거와 다르다..라는 등등등..이분들이 계속 팩트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어하는 것이거든요. 믿고 싶어하는 이것은 팩트로 깨질 수 없는 거죠.

박인규 : 이번 사태를 보면서 어떤 분들은 통제되지 않은 과학 권력의 위험성이 드러났다..이런 말을 하는데 사실 전 과정을 보면 처음에 MBC PD수첩에서 문제를 제기를 했을 때 많은 분들이 그럴리가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거든요?

진중권 : 저도 그랬습니다.

박인규 : 무언가 의문제기에 대해서 막아보려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말하자면 어떤 진실이라는 문제와 황우석이라는 과학자가 하나의 어떤 사회적 권력이 되어서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억압한 것이 아니냐..이런 지적들이 있었는데요. 우리 사회의 어떤 분위기에서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까?

진중권 : 일단 언론에서 검증을 하려 하는 것은 언론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진리로 알고 있는데 그것이 허위였을 경우에는 언론에서는 계속 검증을 하려고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언론에서 검증하려 했을 때 이것이 일종의 신성모독 비슷하게 여겨지면서..이것은 황우석 박사가 과학자로 취급 받지 않았다..라는 것을 말합니다. 일종의 유사 종교 같은 영웅 내지는 유사 종교적인 교주와 같은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검증하자는 얘기 단순히..그것마저도 마치 굉장히 좋지 않은 발상으로 취급을 받았고 온갖 매도를 당하면서 아주 직접적인 위협을 받기까지 했는데요. 제가 볼 때는 황우석 박사가 상당부분 언론을 잘 이용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저기 청부취재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 청부취재가 아니더라도 거의 청부보도에 가까운 보도들이 계속 나왔고요. 그래서 굉장히 언론을 교묘하게 잘 이용했고요. 그래서 참 어디서도 보기 힘든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박인규 : 이번 사태가 아직 마무리 된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파시즘과 비슷한 현상이 보인다..또 하나는2002년 월드컵 때 많은 사람들이 보여줬던 집단적인 어떤 열광이라고 할까요? 이런 것들이 그때는 상당히 긍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약간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거 같다? 그런 우려를 하고 있는데 동의하십니까? 그 부분에..

진중권 : 월드컵 때 응원을 한 것은 실질적으로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거든요. 운동장 관중석 전체를우리 붉은 악마들이 채우고 응원을 하게 되면 우리 선수들이 당연히 그것에 자극을 받죠. 하지만 과학은 그렇게 응원을 해서 과학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스포츠와 과학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황우석교수를 지지하자..그러는데 황우석교수를 지지한다고 해서 어떤 과학이 발달하는 그런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범주가 잘못 된 거 같고요. 파시즘 얘기는 왜 나왔는가 하면, 언론탄압은 과거에도 있었거든요. 광고가 끊어지는 사태나..70년대에 박정희 정권 때 그런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때는 정권이 언론을 탄압했습니다. 권력이 언론을 탄압하고 언론을 민중들이 지원을 했어요. 격려광고를 낸다든지..그러나 이번에는 거꾸로 됐거든요. 오히려 대통령이 네티즌들의 반응이 심한 거 같다..이렇게 얘기하고 반대로 네티즌들이 일어나서 광고를 끊어버렸거든요. 그래서 일반 파시즘의 독해와는 다른 것입니다. 파시즘은 대중의 광범위한 동의를 바탕으로 한 독재이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는 이것이 일종의 사이버 파시즘, 내지는 인터넷 파시즘, 디지털 파시즘의 양상을 이번에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문제는 지금 노무현대통령께서도 네티즌들이 너무 한 것이 아니냐..라는 발언도 하셨지만 정작 많은 부분에서는 덮고 가자는 말씀도 하셨고 부총리 더 나아가서 유력한 정치인들이 황우석 박사를 굉장히 옹호하고 했거든요? 그런 정치권력이 지나치게 그런 과학적 진실의 문제를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는데요?

진중권 : 네. 이것은 과학이 어떤 정치화가 됐을 때 어떤 문제가 벌어지는 가를 잘 보여주는 예이거든요. 여권은 이런 거죠. IT, NT, BT. 이것을 정권의 업적으로 홍보하고 싶어하고요. IT 같은 경우는 삼성이 있고, BT 같은 경우는 황우석 교수가 있고..이 양 축으로 나가게 되면 우리사회의 미래가 열린다..이런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홍보의 역할을 황우석씨에게 기대한 것이고 그래서 많은 지원을 했던 것이고요. 그 다음에 유력 정치인들을 보십시요? 모두 가서 사진 찍는 것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황우석씨와 더불어서 사진을 찍는 것..그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자신들의 정치적 홍보수단으로 삼았던 것이고요. 이렇게 정과유착이고 그 다음에 과학과 언론의 유착이 또 있었고요. 굉장히 특이한 현상입니다. 논문조작자는 전 세계에 굉장히 많거든요. 하지만 이 정도로 정치권과 경제계, 또는 언론계..이렇게 마당발로 인맥을 쌓아가면서 논문조작을 한 예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인규 : 이번 사태를 두고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지적을 하셨는데요. 무슨 경제지상주의다, 애국주의다, 성과주의다..이런 얘기들을 했는데요. 그 중에서 제가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이른바 BT라는 부분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다? 굉장한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서 만약에 황우석 교수가 물론 세계최초의 업적이기도 하지만 사실일 경우에..그 어떤 돈과 관련된 경제적으로 어떤 성과를 낸 부분..이런 것들이 없었어도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이 그렇게 열광을 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진중권 : 제가 볼 때는 황우석박사와 같은 사람은 어느 나라에나 있습니다. 독일에 있고, 일본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거든요. 과학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인데요. 문제는 그렇게 논문이 조작으로 들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민이 황우석박사를 지지하는 이 현상은 대한민국 고유의 현상이거든요. 제가 볼 때는 그것에 세 가지 코드가 있는데요. 좀 전에 말씀 드렸듯이 국가주의 코드가 있습니다. '황우석박사가 잘났다..그 사람 좋겠네..' 이것이 아니라 황우석 박사가 업적을 내고 이런 것을 통해서 자기 실현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한국인으로..그런 코드가 있고요. 두 번째가 방금 말씀하신 저는 그것을 시장주의라고 하거든요. 모든 가치를 모두 돈으로 환산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33조..도대체 어떤 근거로 돈 액수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33조..여기에 언론에서 흘리고요. 그것에 말하자면 사람들이 홀린 거죠. 난자 기증한 분들도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난치병 환자..그러는데 사실 난자 기증식에서 애국가가 불려졌거든요. 국가를 위한 난자이고, 그리고 이 난자를 기증함으로서 얻어지는 경제적 이득..330조니..33조니..저는 이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세 번째가 참 문제가 있는 것이 또 하나 우리나라의 권위주의 코드인데요. 문제는 나라가 잘 되려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똑똑해 지면 되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항상 영웅을 뽑아요. 이 사람을 뽑아 지지해줘야 하고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이 다 옳은 것이고 저 사람을 따르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라는 거죠. 그것이 박정희 전대통령일수도 있고요. 이번엔 황우석교수일수도 있고요. 그렇게 되다 보니까..이것이 위계가 생기는 겁니다. 범인들이 있고 그곳에 범접해서는 안 되는 어떤 위대한 영웅..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우리가 건드려서는 안 되고 무조건 지지하고 지원하고 따르는 것이고 우리가 잘 사는 길이다..생존의 길이다..라고 믿어 버리는..이런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세가지가 어우러지면서 황우석 박사와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고 저는 보는 거죠.

박인규 : 약간 범위를 넓혀 보면 예를 들면 80년대까지는 많은 분들이 민주화를 사회전 체의 목표로삼았는데 이른바 민주화가 이뤄지고 나서 우리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어떤 방향을 잃은 것이 아닌가..예를 들면 노무현 정부에서도 어떤 국가의 최고목표로 국민소득 2만달러시대를 하 겠다..지금 우리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사회..예를 들면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까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합의가 안 되고 혼란스 럽고 그런 것은 관련이 없을까요?

진중권 : 정확하게 그 부분인데요. 문제는 과거의 개발독재시대 때에 우리가 늘 정부에서 얘기하고, 우리가 늘 들어왔던 그런 구호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무의식 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거 같습니다. 지금 한국 경제의 규모나 한국 경제의 질적 수준이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런 구호가 필요한..애국주의가 필요한..이런 시대는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우리의 의식은 과거회귀적으로 남아 있는 거죠. 더군다나 어느 정도 생활소득수준이 올라가게 되면 양적인 측면이 아니라 삶의 질적 측면들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돌아가는데 아직까지도 양화된 2만달러, 3만달러라든지..이런 것들은 제가 볼 때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질적 발전은 빠른데 그 정신적 발전이 따라가는 것이 늦거든요. 서구 같은 경우는 워낙 발전 자체를 오랜 기간에 해 왔으니까 같이 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한쪽은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빨리 해치워야 하지만 나머지 한 쪽 부분들은 늦게..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니까..차이가 벌어지는 거죠.

박인규 : 그것도 이제 압축성장의 부작용인가요?

진중권 : 네. 압축성장의 부작용인 거죠.

박인규 : 이번 사태를 계속 지켜보시면서 물론 어떤 처방이 나올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앞으로 우리사회가 어느 쪽에 힘을 써야겠다..이런 것들도 중요하지 않은가? 그런 느낌이랄까요? 생각 같은 것은 해 보셨습니까?

진중권 : 과학의 문제인데요. 과학기술이 우리 미래에 핵심적인 부분이 될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BT이든, IT이든, NT이든 모두 발전을 시켜야 하는데요. 문제는 과학의 발전이라는 것이 새마을 운동하듯이 아니면 예전에 군대에서 무슨 삽으로 땅을 파듯이 아니면 스포츠에서 운동할 때 무슨 응원하듯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굉장히 냉정하고 차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영웅이 필요한 것이 아니거든요. 영웅은 사실 청동기 시대 현상이거든요. 청동기시대 때나 영웅이 필요하지..그래서 과학이 발전하려면 국민들 한 사람, 한사람의 마인드가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황우석 사태를 통해서 드러난 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마인드가 과학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감성적이고 감정적이고 심지어는 미신적이고..지금 보니까 음모론까지 나오잖아요? 어처구니가 없는 현상이죠.

박인규 : 말하자면 개개인의 독립성, 자율성, 어떤 창의성 이런 것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진중권 : 그렇죠. 개개인이 과학적 마인드를 가져야지만 그것을 토대로 위대한 과학자들도 나오는 것이거든요. 말하자면 동네 축구가 튼튼하게 되고 프로축구가 잘 되어야지 국가대표들도 잘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국가대표팀만 잘 하기를..

박인규 : 잘하는 사람이나 똑똑한 사람보다는 국민모두가 똑똑해 지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진중권 : 그렇죠.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똑똑해져야 한다는 거죠.

박인규 : 열심히 하면 올 수도 있겠죠.

진중권 : 네.

박인규 : 시사평론가라는 타이틀에 만족하십니까? 어떻습니까?

진중권 : 남들이 불러주는..(웃음) 시사평론가라는 것이 일정한 직업이 없는..

박인규 : 어떻게 보면 전공이 없는 팔방미인이라는 말도 되는데..(웃음)

진중권 : 그렇죠.

박인규 : 문화평론가를 더 좋아하실 거 같은데 어떻습니까?

진중권 : 저는 프리랜서..자유기고가가 좋은데요. 항상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뭐라고 할까요? 선호하는이름들이 있더라고요. 시사평론가, 문화평론가..대게 비 정규직..(웃음) 일정한 직업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거 같은데요.

박인규 : 국내에 들어오셔서 말하자면 사회적인 발언, 공적인 발언을 처음 하신 것이 제 기억으로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이것이 조갑제 기자가 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패러디 하신 책인데요. 첫 어떤 사회적 발언으로 조갑제..당시 박정희전기에 관한 것인데요. 조갑제기자라는 어떤 보수논객 또 박정희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권력자..자신의 주제로 잡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진중권 : 독일에서 우연히 이분이 쓴 글들을 보고 경악을 했거든요. 그것은 파시즘 코드이기 때문에 이분이 하는 말이 예전에 1930년대 나치 철학자들이나 나치 언론기자들이 또는 언론사의 논술위원들이 하던 그런 얘기들이 여과 없이 그대로 나오는 것을 보고 사실 제가 경악을 했고요. 이것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하다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주는 것은 의미가 없을 거 같습니다. 이것을 비꼬아 주어야겠다..해서 풍자와 패러디..해학으로 갔던 것이죠.

박인규 :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런 전혀 평가할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진중권 : 저는 평가를 할 부분이 있다, 없다..그 논의가 재미가 있거든요. 예컨대, 박정희 정권 때 특별한 경제정책이 이 부분은 타당했다, 이 부분은 부적합했다, 이것은 맞아 떨어졌는데 저것은 문제가 있었다..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지금 그 문제 자체가 어떻게 제기가 되고 있는 가하면, 박정희 전대통령이 먹여 살렸다..이렇게 되요. 그런데 저는 어법자체가 굉장히 잘못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어느 나라를 가도 잘 사는 나라가 어디 한 두 군데입니까? 굉장히 많은데요. 어느 나라를 가도 누구 덕분에 먹고 산다라고 하는 어법이 없어요. 미국사람들..너희들은 누구 덕분에 먹고 사느냐..프랑스 사람들, 독일 사람들, 일본 사람들..너희들은 누구 덕분에 먹고 사느냐..그 물음 자체가 없거든요.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만 있다..라고 하는 거죠. 그러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모두 꼭 누구 얻어 먹여줘야지만 사는 사람들인가? 라고 했을 때 저는 그 어법자체가 굉장히 정치적이고 이념적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비과학적인 것이 경제성장이 있었다고 하면 그 원인을 찾아야 해요. 원인을 찾아서 그것을 잘 살려서 더욱더 성장시키는데 써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은인을 찾아서 감사하려고 해요. 경제성장이 되지 않으면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범인을 찾습니다. 성토를 하려 해요. 원인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그 다음에 뭐라고 할까요? 합리적인 대책..이렇게 가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고 성토하고 잘되면 박정희 탓..못 되면 무조건 노무현 탓..이런 식의 어법이진 않습니까?

박인규 : 말하자면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고 모든 원인과 결과를 의인화 한다는 말씀이죠?

진중권 : 그렇죠. 주술시대의 어법과 사고방식인데요.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그 부분이고요.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그 당시의 타당성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은 아니죠.

박인규 : 일각에서는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무명의 학자가 유명해 지기 위해서는 유명한 사람과 한번 붙으면 유명해 진다? 그래서 조갑제, 박정희 전대통령을 물고 늘어진 것이 아니냐..이런 식으로 보는 분들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 니까?

진중권 : 그때 조갑제씨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저도 그 당시에 무명은 아니었고요.(웃음)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신경 썼던 것은 조갑제씨가 아니라 조선일보의 미디어였죠. 이 사람의 얘기는 다른 데 실었으면 뭐 아무 문제가 없는데 당시의 조선일보에 거의 면 하나 전체에 실리면서 연재가 됐거든요. 그래서 조선일보와 대결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조갑제씨와는..

박인규 : 진중권씨의 글 스타일에 대해서 독설, 패러디, 한쪽은 냉소적이다..라는 평가도 있는 거 같고요. 독설이라든가 패러디가 어떤 억압적인 상황에서는 상당히 유용할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무언가 새로 모색하는 단계에서는 너무 사태를 냉소적으로 보려 하는 것이 아니냐..이런 평가도 있는 거 같습니다?

진중권 : 문체는 다양할 수 있죠. 독설을 사용할 때도 있고, 패러디를 사용할 때도 있고, 진지한 어법을 사용할 수도 있고요. 제가 사용하는 여러 가지 문체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독설이 필요한 부분은 독설을 하고, 패러디가 필요한 부분은 패러디를 하고 그 여러 문체중의 하나지..

박인규 :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2002년도 월드컵 와중에 서해교전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상당히 비판하는 여론도 많았고 진보쪽에서는 상대적으로 비판을 자제했고 특히 민노당이 거의 공개적인 비판을 하지 않았을 때 왜 비판을 하지 않느냐..라는 식의 글을 쓰셔서 그때 상당히 화제라고 할지..그런 일이 있었는데요. 그때는 어떤 생각에서 쓰신 겁니까?

진중권 : 저는 진보이고, 보수이든 간에 일단은 논리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요. 기준에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미군 탱크에 여중생 두 명이 깔려 죽는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사실 사고였는데..그것을 가지고 촛불시위를 했다라고 하면 똑 같은 논리로 어쨌든 북한이 NLL을 누가 그었든지 이런 문제와 상관없이 어쨌든 총격을 가해서 사람을 죽게 만든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제가 볼 때 윤리적인 또는 도덕적인 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가 되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좌우를 떠나서 진보, 보수를 떠나서요. 서해교전에 죽은 우리 장병들은 젊은이들이거든요. 예컨대, 돈이 없어서 대학을 그만두고 돈을 벌기 위해 그곳을 들어간 장병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느냐는 거죠. 여중생의 생명이 고귀하다면 이 장병들의 생명도 고귀하다라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분노는 동등하게 표출이 되어야 하는데 왜 그 분노자체도 이념적으로 표출하느냐는 거죠. 제 지적은..

박인규 : 그런 식의 논리라면 지금 어떻습니까?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지적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진중권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부는 하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외교상대로서 북한을 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정부가 아닌 다른 단체들, 가령 민주노동당이라든지, 아니면 정당차원에서 집권여당만 아니다라고 하면, 그 다음 시민사회단체라든지 이런 곳에서는 얼마든지 지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북한도 그것을 이제는 받아 들여야 해요.

박인규 : 한때 민노 당원이셨는데요. 아직도 당원이십니까?

진중권 : 당원은 이제 그만 뒀습니다.

박인규 : 탈당을 하신 겁니까?

진중권 : 제가 시사평론 같은 것을 하다 보니 제가 처음에 당원이 됐을 때만 해도 민노당의 존재 자체가 없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우리나라에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보수주의자든, 진보주의자든, 중도성향의 유권자들..모두 대부분 공감하지 않습니까? 그런 공감대를 위해서 제가 입당을 했던 것이고요.

박인규 : 말하자면 도와주기 위해서..

진중권 : 그렇죠. 힘을 좀 실어준다는 차원에서요. 그런데 이제는 원내에 진출을 했고 그 다음에 저도 나름대로 중립성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제 성향이라는 것이 민노당에 가깝기는 하지만..그런 것을 위해서라도..

박인규 : 그러면 현실 정치세력과는 어떤 특정한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까?

진중권 : 그렇죠.

박인규 : 어떻습니까? 지금 노무현정부에 대해서 진보쪽에서는 너무 개혁적이지 못하고 진보적이지 못하다..또 보수쪽에서는 좌파정권이다..이런 딱지 붙이기처럼 굉장히 혼란스러운데요. 노무현 정부의 어떤 여러 가지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진중권 : 보수쪽에서의 얘기라는 것은 정치학적인 규정이 아니라 이념적인 공세이거든요. 이른바 색깔론을 펴는 것이고요. 제가 볼 때는 오히려 진보정당쪽에서 지적하는 바가 사회학적, 또는 경제학적..옳바른 경향이라고 보는 겁니다. 노무현정권이 쓰는 정책은 굉장히 자유주의적이고 신자유적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유럽의 기준으로 따지면 상당히 우익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 그런 정권이라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까 사회적 양극화 벌어지는 거죠. 모든 것을 시장에 대폭 맡기다 보니까..즉 IMF 극복과정에서 특정 처방을 가지고 신자유적으로 했다라고 하는 거죠. 물론 자유주의가 세계물결이기는 하지만 나라마다 수용해서 하는 것은 편차가 있거든요. 우리는 거의 시장에 대부분 맡기는 식으로 했기 때문에 굉장히 우익적인 정책을 폈고 그러다 보니까 사회적 양극화가 벌어지는 거고요.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상이고 또 하나가 정치적 차원에서는 개혁을 하겠다는 것인지..말겠다는 것인지..꼭 선거할 때만 개혁하겠다..라고 하고 선거가 끝나면 실용..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사람들은 개혁피로증이라고 하는데 개혁이 되는 것에 피로증이 아니예요. 개혁은 말만 하고 개혁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는데 대한 피곤함이라는 거죠.

박인규 :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다방면으로 활동하시는데 앞으로 주로 쟁점을 두고 활동을 하시고 싶은 그런 분야가 있으십니까?

진중권 : 저는 미디어미학쪽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21세기의 예술과 기술이 어떻게 결합하는가..그리고 생산이 어떻게 연계가 될 수 있는가..이런 것을 해명하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목표이고 작업의 과제입니다.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신 대로 경제적 성장에 걸맞은 문화적 성숙, 그런 곳에 기여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 드립니다.

진중권 : 네.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에서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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