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사이 미 백악관의 참모 누군가는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그의 종교적인 신념에도 불구하고 테러리스트들(하마스)이 자유롭고 공정한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 대단히 곤혹스러운 일을 맡아야 했을 것이다.
하마스의 승리는 26일 아침 점점 분명해졌다. 아흐메드 쿠라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는 사임했고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은 새 정부를 구성하는 데에 하마스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하마스는 무자비하고 편파적인 (미국의) 반테러 정책이 테러리스트들을 평정하기보다 그들의 주의·주장을 확산시키는 데에 더 많은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테러리즘을 이기는 유일하고 현실적인 방법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어떤 경우에라도 합리적인 불만 거리를 주지 않아 그들의 정치적 명분을 없애버리는 일이다. 그런 전략의 성공을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무장해제다. 영국은 그들에 대한 쓸데없는 비방 대신 범죄자가 아닌 평등한 주체로 그들을 정치 과정에 참여시켰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이 소수자들에 뿌리박은 테러리스트 그룹에 대한 냉전적인 사고를 거두지 않는 이유는 서방 강대국들이 이탈리아 극좌파 테러조직인 '붉은 여단', 독일 적군파 '바더 마인호프', 흑인 지하단체 '심비니어즈 해방군' 같은 소수 테러조직과 겪었던 과거의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그 단체들은 자신들의 불만에 동정적인 세력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러나 서방의 정책결정자들은 그같은 과거의 경험 때문에 정치적 기반이 분명한 하마스 같은 반식민주의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그들의 접근방식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 서방은 테러리즘에 대한 이스라엘의 '성공'을 추종했지만, 이스라엘이 아랍의 넓은 땅을 자신들의 영토로 삼으려는 점령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했다.
그같은 폭력적이고 무지막지한 이스라엘의 캠페인은 1980년대 하마스를 탄생시켰고 지난 20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가능케 했다.
부시 행정부는 팔레스타인의 선거는 하마스의 승리가 아니라 부패한 파타당의 패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파타당의 부패에 있어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조사는 없었지만, 부시 행정부의 그같은 입장은 하마스 승리의 정당성을 손상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부시 대통령은 26일 오전 하마스는 무장단체이고 이스라엘의 제거를 선언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같은 입장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부시의 옹호와는 모순되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의 불법적인 정착을 지켜내기 위한 정착민들의 무장 민병대 문제를 거론하지 않으면서 부시가 하마스의 무장 해제를 요구하는 것은 매우 위선적이다.
부시 행정부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멀어지기로 한 것은 새로운 게 아니다. 그것은 부시 행정부 수립 초기 몇 달 동안 취해 왔던 전략으로 2차 인디파다가 일어났던 당시에는 이스라엘이 전세를 압도하고 있었고 팔레스타인 희생자 수가 이스라엘인들보다 5배가 많았다. 그 후 이스라엘 희생자 수가 늘어 팔레스타인의 3분의 1이 되어서야 부시 행정부는 성의를 가지고 사태에 개입하면서 자제를 촉구하고 '평화 로드맵'을 만들었다.
그 로드맵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군사적인 통제가 불가능한 지역에서 철수하기로 하고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둘러싸는 분리 장벽을 세우면서 쓸모없어졌다. 부시 행정부는 다가오는 이스라엘 총선에서 벤야민 네타냐후가 총리로 선출돼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중동 싹쓸이' 정책을 시행할 기회를 다시 한번 갖게 할 수 있을지를 기다리는 시간벌기 게임을 다시 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더 중요한 문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그 정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그같은 정책은 과거 중남미에서 충분히 나타났다. 그 지역에서 미국은 민주적으로 선출됐지만 미국에 적대적인 정부와 일하기보다 마약을 거래하거나 독재를 하지만 미국에 우호적인 정부들과 일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미군이 이라크에 묶여 있고 아랍 국가들에서 급진 무슬림 집단이 발흥하며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권력 기반이 탄탄해지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을 코너로 몰아 압살하도록 하는 것은 중동 전쟁을 결정하는 것으로밖에 보일 수 없다.
아랍과 무슬림 세계에 있는 친미적인 독재 정권의 철권 아래서 아랍과 무슬림 대중들 사이에 분노가 커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정의하고 있다. 그들이 부시 행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급진 무슬림 단체를 통해서다.
레바논,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팔레스타인에서 보았듯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최소한 일부 지역에서라도 가능하다면 종교나 부족에 관계없이 반미적인 급진주의자들이 대부분의 표를 얻고 있다.
더 넓은 차원에서 볼 때 미국인들은 지난 50년간 미국이 밀고 있는 왕과 독재자들을 통해 아랍과 무슬림 사람들을 억압하고 고문해 온 미국의 대외 정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랍과 무슬림들의 민주주의적 희망과 열정을 뒷받침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안정과 안보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다. 지금까지 부시 행정부는 그 정책을 거부해 왔다.
하마스가 부상한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가 새로운 팔레스타인 정부를 받아들이지 않고 협력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존중하기보다 철권을 통한 팔레스타인 지배를 선호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아람과 무슬림들에게 보내는 셈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유·해방·민주주의를 확대한다는 미국의 가면이 단지 위선이고, 거짓이고, 책략이고, 미국의 헤게모니 확대를 위장하기 위해 교묘히 꾸며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하마스 같은 조직들의 위상을 강화할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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