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중남미통합의 꿈(ALBA,볼리바리안 대안)에 시동이 걸렸다.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를 이용한 중남미연계와 지역 내 토착인디오, 학생, 정치계를 하나로 동화시키고 경제와 사회를 하나로 묶는 실질적인 통합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18일과 19일 양 일 간에 거처 브라질리아에서 회동한 남미공동시장 3인방(차베스, 룰라, 키르츠네르)은 오는 7월 베네수엘라-브라질-페루-볼리비아-콜롬비아-우루과이-아르헨티나-칠레를 잇는 1만Km에 이르는 대규모 가스관공사를 착공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중미인 베네수엘라에서 남미 끝인 아르헨티나를 가로지르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실무협상을 위해 이들은 오는 3월 아르헨티나의 멘도사에 다시 모여 건설에 관한 최종 기술적인 논의를 마무리 짓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200억 달러에 이르는 총 공사비로 침체된 남미경제를 활성화시키고, 향후 200년 동안 남미의 에너지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회심의 프로젝트는 차베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9일 우루과이 몬떼비데오에서 추진을 약속한 사안이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석유수출 세계 5위, 천연가스도 세계 8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며 중남미 최대의 천연가스 수출국이다. 이런 에너지자원을 앞세워 이번 브라질리아의 3국 정상회담에서는 남미석유(PETRO SUR)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번 3국정상 회동에서도 예의 그 보스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브라질과 아르헨 정상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고 나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남미 역사를 바꿀 이 대역사는 오는 2012년 완공될 예정"이라고 밝힌 차베스 대통령은 "남미공동시장 회원국들간 경제의 불균형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배려와 보완이 필요 하다"고 역설했다. 다분히 최근 미국과의 자유무역을 추진하고 있는 파라과이와 우루과이를 의식한 발언이며 자신을 열렬하게 추종하고 있는 에보 모랄레스의 볼리비아를 메르코수르 정회원으로 끌어들이려는 복안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어 "새로운 남미시장 건설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남미지역이 경제발전의 기선을 잡기 위해 사회ㆍ교육ㆍ개발사업 등에 투자를 심도 있게 고려하고 있다"고도 장담했다.
이번 남미공동시장의 3강 모임에서는 파라과이와 우루과이, 더 나아가서 볼리비아에 대한 경제원조와 현지투자 등이 광범위하게 논의되기도 했다. 차베스 대통령이 "경제규모가 작은 역내 형제국들에 대한 관대한 이해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아르헨티나의 키르츠네르 대통령은 우루과이의 남미공동시장 탈퇴 주장에 대해 "할 테면 해 보라"는 식의 강경자세를 유지했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필자의 남미 리포트 16일자 '죽었다던 미주 지역자유무역협정(FTAA) 부활하나'에서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차베스의 양동작전'**
차베스는 이어 남미 통합군사방위위원회 설립을 주장하고 미국은 역사적으로 항상 중남미 연합을 방해해 왔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군사적인 연합과 자주국방력이 없이는 남미 통합이 사실상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는 중남미대륙에서 제2의 '볼리바리안 혁명'을 꿈꾸며 반미의 선봉에 선 차베스가 석유를 무기 삼아 미국을 압박하고 군사적인 위협은 베네수엘라-브라질-아르헨티나의 연합군으로 방패로 삼는 한편, 넘쳐나는 천연가스를 당근으로 삼아 중남미 국가들을 포용하는 양동작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동시에 오일달러를 활용하여 낙후된 남미산업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역 내 토착민들과 학생, 정치인그룹의 교류와 동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 차베스는 "이 부분에 대한 지원책을 심각하게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남미공동시장 역내 교육과 산업, 그리고 경제분야, 문화와 에너지분야 통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자신이 주창한 '볼리바리안 혁명'을 이루겠다는 얘기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상들은 차베스의 이런 주도적인 역할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대선을 앞둔 브라질의 룰라로서는 골치 아픈 에너지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고 아르헨티나는 차베스의 에너지관련 각종 설비투자를 오히려 반기고 있는 분위기다.
한편 지난 85년 발족되어 91년 파라과이의 아순시온 조약을 거처 18년 만인 2003년부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자유무역을 시작한 남미공동시장(MERCOSUR)은 베네수엘라의 정회원 가입으로 단연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남미통합을 앞세워 정치적인 인기 유지와 통합을 명분으로 한 국가간 상호 내정간섭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또한 지나친 정부주도의 경제운영과 민영화된 서비스사업 위축 등 중남미 전체가 21세기에 사회주의화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아르헨 출신 혁명가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열렬한 추종자임을 자처한 차베스는 "사회주의가 구 소련과 함께 소멸되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자본주의는 심각한 빈부의 차이를 초래했으며 사회를 더욱 불공평하게 만들어가고 있다"며 사회주의 부활을 외치고 있어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번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됐던 제4차 미주정상회담장에서 "이제 미주대륙이 반미 성향의 국가들과 친미 국가들로 나뉘어 두 대륙이 됐다."고 공언했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말처럼 편가르기식 남미 통합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차베스가 추진하고 있는 '볼리바리안 대안'이 남미인들, 특히 소외된 인디오 부족들과 소수민족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게 될지도 관심사다. 하지만 차베스 주도의 이 원대한 프로젝트들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석유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결국 세계 석유값이 차베스의 야심작인 '볼리바리안 혁명'의 성패를 쥐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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