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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의 종교와 권력의 동맹은 언제 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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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의 종교와 권력의 동맹은 언제 끝나나?"

김민웅의 세상읽기 〈188〉

기독교가 종교로서 인류의 역사에 등장한 지도 200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애초에 등장했을 때는 팔레스타인 변방에 살고 있던 소수의 민중들이 초라하게 시작했지만, 이제는 가장 막강한 정치경제적 힘까지 가지고 있는 위치에 있게 되었습니다. 핍박과 탄압의 대상이었던 기독교는 점차 국가의 권력과 결합하면서 한 시대를 지배하게 되었고, 한때의 지하교회는 성채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당시 나사렛 출신의 목수이자 떠돌이 설교자였던 청년 예수가 그토록 바랐던 것은 이 땅에 더 이상 억울한 눈물을 쏟지 않으며 더 이상 한스러운 통곡소리가 들리지 않고 또한 더 이상 경쟁과 증오로 서로를 짓밟지 않는 그런 미래였습니다. 그래서 회복해야 했던 것은 사랑과 평화, 그리고 의로움이었고 이를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나가기를 희망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모인 곳은 이 세상의 권력자가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이들에게 새롭게 사는 법을 일깨우는 현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왔던 방식을 넘어서는 매우 전격적인 결단과 선택이 이 과정에서 요구되었고, 그로써 현실도 바뀌어져 나가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청년 예수는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실의 기독교와 교회는 그런 예수의 꿈과 희망을 여지없이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예수의 이름을 그 앞에 걸어놓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교회는 지배자가 되어갔고, 선교의 이름으로 서구의 제국주의 침략에 앞장서기도 했으며 거대한 토지를 자신의 소유로 하는 대지주가 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는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를 가진 곳이 아니라, 금과 은이 있는 창고의 열쇠를 가진 곳이 되어갔던 것입니다.

미국 뉴욕의 한 흑인 교회는 "달러"라는 이름을 가진 목회자가 이끌고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최고급 롤스로이스를 타고 수백만 달러짜리 고급 저택에 살고 있는 이 달러 목사의 인기는 가난한 흑인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달러 목사처럼 달러가 수북히 자신의 금고에 쌓이는 꿈을 꾸는 것입니다.

가난하기를 바라는 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빈곤하게 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유리함이 됩니다. 그러나 맑은 꿈과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일구기 위해 애를 쓰는 이들을 길러내기보다는, 야심과 욕망을 꿈으로 포장하여 교회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2000년 전 청년 예수가 했던 것과는 전혀 반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기독교 또는 교회가 하나의 권력집단이 된 지 이미 오래이며, 이름만 달러 목사가 아니지 그 실상은 달러인 경우도 허다합니다. 정치적 격동이 있을 때마다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은 이들 성채의 종교와 동맹을 맺기 위해 동분서주 합니다. 벌써부터 이러한 조짐들이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다고 합니다.

좋은 인연을 맺겠다는 것이야 뭐라 할 바가 아니나, 그것이 이 땅의 눈물과 아픔을 거두어들이는 노력의 일환이 아니라 본인들의 야심과 욕망을 위한 것이라면 그건 지탄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성채의 시대는 끝났다고 외쳐진 지가 20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성채의 종교와 권력의 동맹은 끝날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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