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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사람 그리고 삶

[민들레 교육 칼럼] 교육과 공간 ③

'교육 불가능' 시대라고 합니다.

과열된 입시경쟁,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학교폭력, 공교육을 대체하다시피 팽창해버린 사교육…등. 가르침과 배움은 사라지고 오로지 '등수 매기기'에만 골몰하는 교실 풍경은 이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식상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다들 이런 식상한 이야기를 하곤 하지요. 누구나 알고 있는 현실 진단을 기계적으로 읊조리는 정책 당국자, 학자들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뻔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풍경, 그 맞은 편에는 학교폭력, 입시 부담, 혹은 어른들이 짐작하지 못하는 그밖의 어떤 이유로 자살을 고민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떠나고 싶을 만치 심각한 문제 앞에서, 어른들은 왜 '뻔한 이야기'만 반복하는 걸까요. 어쩌면 이런 간극이야말로 우리 교육의 절망스런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지금 진짜 필요한 미덕은 '솔직함'일 수 있겠다고 봅니다. 짧은 자기 경험으로 섣부르게 단정짓기보다 교육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주 하찮은 수준이라는 걸 솔직히 인정하고 시작하는 태도 말입니다. 또 근대적인 학교 모델이 이젠 어떤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혔다는 점, 그리고 그 한계와 모순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한계가 있다는 점 역시 솔직히 인정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에 주목한 건 그래서입니다. 지난 1999년 창간된 이 잡지의 시선은 '학교 너머'를 향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바뀌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만큼 우리는 학교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만들자"라는 <민들레>의 목소리가 교육에 관한 '뻔한 이야기'들에 갇혀 드러나지 않았던 '학교의 빈 곳'을 살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편집자>

공간의 재탄생

사람이 아닌 것 중에 올해 가장 주목 받은 걸 꼽으라면 단연 '85호 크레인'이 아닐까. 키 35미터, 부산 영도 앞바다에 서 있는 거대한 철강 덩어리다. 한국 조선 산업의 역군으로 30여 년을 선박 기자재와 부품을 독으로 실어 날랐던 터라 군데군데 녹이 슬어 쇳가루도 자주 날린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이 크레인에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던 건 한 사람이 그 꼭대기에 올라가 머물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는 35미터 쇠다리에 얹힌 한 평도 채 안 되는 조정실에서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렇게 사계절을 다 겪었다.

'오전 7시 일어나 이불을 널고, 아침을 먹고, 트위터로 세상과 소통하다 정오 무렵이면 점심을 먹고, 크레인 위를 몇 바퀴 도는 식으로 운동. 오후가 되면 멀리서 가까이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손 흔들어 인사하거나 전화 통화. 오후 5시 30분 무렵 저녁식사가 올라오고, 다시 운동한 뒤 7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벌어진 촛불문화제 지켜보기'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만져지는 건 온통 차가운 쇠붙이에, 보이는 거라곤 허한 조선소와 길 건너 아파트 단지일 터…. 후,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고 마음이 저려왔다. 그렇게 걱정이 점점 커지던 어느 날, 그가 전하는 그곳 풍경을 보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그가 크레인에 오르고 반 년이 지났을 때였다. 자신이 지내는 크레인 위를 직접 촬영해 대안언론 'plogTV'를 통해 보여주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그의 조곤조곤 설명이 이어졌다. 좁은 조정실 운전석 앞쪽에 반으로 접힌(좁아서 그렇게 하고 자야만 했던) 전기장판도 보이고 밥이 올라오는 밥줄과 널어놓은 빨래가 바람에 날리는 것도 보였다. 그러다 카메라에 스티로폼 박스가 잡히더니, 채 익지 않은 토마토가 보이고, 파란 이파리도 보였다. …… 그래, 크레인이라고 어떻게 그를 지배할 수 있으랴!

그는 그곳에서마저도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었다, 공간의 한계를 넘어, 쇠붙이 위에 텃밭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가꾸고 있었다, 85호 타워 크레인이 더 이상 죽은 자의 공간이 아닌 산 자의 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그렇게 바람과 햇살 한 줌으로 치커리와 토마토를 키우고, "크레인 위에서 첫 수확한 치커리입니다. 귀엽죠.^^ 모두들 치커리 같은 나날이시길~!" 같은 상큼한 메시지를 아랫동네 사람들에게 보냈다.

계절이 바뀌었다고 꽃이 피는 것도 새가 날아오는 것도 아닌, 녹슨 몸에 쇳가루 냄새 풍기는 그곳을, 사람 김진숙은 꽃도 피고 새도 날아오고 희망도 넘나드는 곳으로 새롭게 피워냈다. 공간의 재탄생이다. 공간은 이렇듯, 제 몸의 물리적 모양새와는 상관없이 주인에 따라 정체를 달리하곤 한다.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309일 동안 한 평 남짓한 45m 상공의 크레인에서 생활했다. ⓒ뉴시스

교육공간의 재탄생을 꿈꾸며

옛날 이야기 한 토막. 십이 년 전, 민들레출판사는 주차장 옆 15평 남짓한 반지하 공간 하나를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책상 몇 개와 큰 테이블 하나, 벽면에 놓인 허름한 소파, 한쪽 구석에 놓인 작은 싱크대. 그 초라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책을 보고 찾아오는 어른들 속에 한두 명 아이들이 섞여 오더니 어느 날부터 아이들 수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득한 거짓과 위선을 참을 수 없어 뛰쳐나온 아이들이 학교 대신 민들레를 찾아와서는 한켠에서 노닥거리다 발송 작업을 거들기도 하면서 어느덧 사무실을 자신들의 아지트로 삼아버렸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소파를 차지하고 앉아 한나절을 보냈다. 소파를 차지하지 못한 아이들은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야, 좀 조용히 해라, 우리 일해야 된다"는 출판사 어른의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 점심 때가 되면 같이 식사 준비를 했다. 파를 다듬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따뜻한 밥을 지었다. 흥부네 밥상마냥 여남 명이 둘러 앉아서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반찬 삼아 밥을 먹곤 했다. 아이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 책을 보고 찾아오는 이들로 그 좁은 공간에는 늘 이야기마당이 펼쳐졌다. 작은 공간의 테이블은 100분 토론의 장이었다가 고민 상담소였다가 금방 밥상이 되기도 하고 또 요긴한 작업대가 되기도 했다. 그 속에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모색하고 책을 만들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 진로, 가족과의 문제를 푸느라 최선을 다했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작은 사무실은 어느새 배움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이 만남은 '민들레사랑방'으로 진화했다. 출판사를 찾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 더 이상 15평 사무실이 감당할 수 없어, 따로 아이들만을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붙인 이름이었다. 그저 사랑방 놀러오듯 편하게 들러 이야기도 나누고 혹 배울 게 있으면 서로 자극해가면서 함께 성장해가자는 의도였다. 사랑방은 나중에 '공간민들레'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랑방뿐만 아니라 안방도 필요한 이들이 있어서였다. 아직 제 집이 없어 이리저리 옮겨다니다보니 꼭 마음에 드는 곳에 깃들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만은 챙겨야지 하는 것들이 있다. 오래전 15평 남짓한 공간에 있던 것들이다. 소파에 앉아 듣기만 하는 아이도 열변을 토하는 아이도 편안할 수 있는 분위기, 책상이 되었다 작업대가 되었다 토론대가 되기도 하는 테이블, 쉴 수 있는 소파, 따뜻한 밥과 떡볶이를 만들어 내는 싱크대, 가르치려 들지 않고 그저 열심히 사는 어른들. 이들이 모두 배움터 민들레의 핵심 요소들이다.

공간과 사람과 삶의 선순환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처럼 헷갈리는 것들이 있다. 공간과 사람, 시스템과 사람, 시대와 개인 따위가 그렇다. 공간만 잘 만들어놓으면 그 안의 삶도 그렇듯 평화롭고 알찰 것인지, 정책이나 시스템만 갖춰지면 모든 게 기름칠한 재봉틀마냥 잘 돌아갈 것인지.

사람이 시스템을 만들고, 시스템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감옥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 또한 사람이다. 사람은 쇠붙이 크레인 위에서도 토마토와 치커리를 키울 수 있고, 네모난 교실에서도 자유를 말하고, 그곳을 박차고 나오기도 한다. 그게 사람이다. 또, 거기서 멈추는 법이 없다. 그곳에 작은 틈을 내거나 떠나는 것으로 제 할 일 다 했다 하지 않는다. 크레인과 교실을 넘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평화와 온기, 배움과 가르침이 넘실대는 곳으로. 그게 사람이다. 다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기에 세상은 여전히 기우뚱거린다.

* 위의 글은 <민들레> 78호에 실렸던 김경옥 <민들레> 주간의 글입니다.(☞ <민들레>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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