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윤도현의 YB밴드는 2005년 봄 런던과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지를 돌며 유럽 순회 콘서트를 가졌다. 리드보컬의 윤도현, 드럼 김진원, 기타의 허준, 베이스 박태희 등은 한 달 동안 대형 버스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매번 불과 20명 남짓한 관객 앞에서 노래를 했다. YB밴드의 유럽 투어에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찍은 김태용 감독이 동행했다. 김태용 감독은 낯선 환경에 내던져진 YB밴드의 모습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았고 〈온 더 로드, 투〉라는 제목의 록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김태용 감독의 카메라 속에 담긴 윤도현은 낯설지만 낯선 존재가 아니다. 유럽 투어 이후 새로운 스크린 투어를 시작한 윤도현을 만났다.
- 왜 찍었나?
"그냥 단순하게 시작됐다. 우리 밴드의 유럽 공연을 영상으로 기록해보자는 취지였다."
- 록 다큐멘터리로서 〈온 더 로드, 투〉는 실망스러웠다. 당신들의 모습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카메라에 담기긴 했다. 그러나 밋밋했다. 연출도 과감하지 못했고, 당신들도 솔직해 보이지 않았다.
"사실 기자들이 좋아할만한 내용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자극적인 인터뷰도 많았으니까. 화를 내거나 흥분해서 얘기한다든가 하는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김태용 감독이 마지막 순간에 그런 자극적인 장면들을 모두 빼버렸다. 조금 밋밋하더라도 자연스럽게 가자. 그렇게 결정했다고 하더라."
- 김태용 감독이 왜 그랬던 건가?
"우리를 보호하려 했던 것 같다. 극적인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도 좋지만, 혹시나 영화 내용 때문에 밴드가 겪게 될지도 모르는 곤란한 상황을 걱정했던 것 같다. 김태용 감독은 자신의 욕심을 접고 우리를 뒤에서 지켜봐 주는 걸 선택했다. 영화를 보면 촬영팀이 우리의 투어 버스를 묵묵히 뒤따라오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관객은 잘 모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게 감독의 시선이다. 우리를 배려한 거다. 우린 이번 작업을 통해 좋은 친구를 얻었다."
- 애초엔 〈온 더 로드, 투〉는 미국의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에 관한 록 다큐멘터리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노 디렉션 홈 : 밥 딜런〉 같은 작품들을 염두에 뒀었다고 알고 있다.
"안다. 하지만 〈온 더 로드, 투〉는 한 밴드가 낯선 땅에 가서 햇반과 김치로 끼니를 때우며 투어 콘서트를 다니다가 결국 영국 런던에서 성대하게 마지막 공연을 성공리에 끝마쳤다는 해피엔딩 스토리가 됐다. 하지만 그거 아나? 요즘 네티즌들의 반응은 예측불허다. 솔직했던 우리의 모습을 대중은 전혀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다. 어쩌면 YB밴드 안에 내분이 있다느니 하는 쓸데없는 구설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난 대한민국 사람들이 무섭다."
- 도대체 당신들은 유럽에 뭐 하러 갔던 건가?
"모험을 한 거다. 우린 한국의 여느 록 밴드보다는 편안하게 음악을 하고 있다. 우리도 안다. 그러나 우린 다른 게 필요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다른 세계에서 고생을 해보려고 나갔다고나 할까. 한국에선 인지도가 있는 밴드지만 유럽에선 20명의 관객 앞에서 연주를 해야 했다. 그런 상황과 맞부딪히면 뭔가 얻을 수 있겠다 싶었다."
- 뭘 얻으러 갔던 건가? 한국에선 무엇이 충족이 안 됐던 건가?
"열린음악회 무대에 서면 줄잡아 3만 ,4만 명 앞에 서는 셈이다. 하지만 클럽 무대에 서면 200명 남짓한 관객이 모여든다. 그렇다면 열린음악회 무대가 음악하기에 더 좋은 환경이냐 하면 그게 아니다. 사람이 많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란 말이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고 우리 음악을 듣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충족되지 않는 게 있다."
- 2002년 월드컵은 당신들에겐 행운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 YB밴드는 대중에게 사로잡혀버렸다.
"우리 밴드 앞에 붙는 '국민'자가 문제다. 대중들은 우리가 늘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르길 원한다."
- YB밴드는 록밴드인데도 발라드를 부른다. YB밴드는 가장 좋은 멜로디에 기껏 사랑 이야기를 싣는다.
"그게 가장 어렵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것 말이다. 지금도 마음이 급하다. 왜냐하면 우리들 스스로는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시기를 놓쳤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도 어느 순간부터 대중들에 의해, 미디어에 의해 길들어져 왔던 거다. 그래서 유럽으로 갔다. 아무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말이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게 무엇인지 깨닫고 싶었다. 더 이상은 아니었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 그래서 버릴 것은 버리고 깨달을 것은 깨달았나?
"밴드는 음악으로 말하는 거다. 다음에 나올 앨범은 자칫하면 완전히 망할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을 응시하고자 애쓰고 있기 때문에 대중적으론 몹시 위험할 거다. 대중들은 참 이상하다. YB밴드가 발라드만 부르는 록밴드라고 비난하면서도 우리 앨범에 있는 다른 노래에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이상은 우리가 못한다. 어쩌면 이 영화가 그 시작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 영화 속에서 당신들은 계속해서 '로큰롤'을 외친다. 팝의 시대에 록을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
"전세계적으로 록은 지금 죽어가고 있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록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록의 매력은 음악을 하는 과정이 밴드에 몸을 담고 있는 구성원들의 생각을 일치시키고 그걸 세상과 나누는 것이라는 데 있다. 우리가 굳이 유럽에 갔던 것도 그래서다. 미국과 아시아에선 록이 죽어가고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지만 그곳에는 아직 기운이 남아 있다."
- 록이란 과연 뭔가?
"기자들이나 사람들은 자꾸 논리로 설명을 하려고 든다. 정의하려고 든다. 록이 시대를 아우르는 무엇이라고 거창하게 말하려 든다. 하지만 록은 단순하다. 레드 제플린이나 지미 핸드릭스가 위대한 건 그들이 자신만의 언어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로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음악 속에 세상을 담았다. 록은 이유가 없다. 〈스쿨 오브 록〉이란 영화를 보면 록은 이유가 없다고 하지 않나. 초등학생 아이들도 느낄 수 있는 게 록이다."
- 당신들은 왜 록을 하나?
"이번에 밴드 이름을 YB밴드로 바꿨다. 〈온 더 로드, 투〉에도 나오지만 YB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윤도현 밴드라는 뜻도 있다. 또 Why Be?라는 질문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우리도 우리 스스로에게 내가 왜 존재하는가, 우리가 왜 존재하는가를 묻고 있다. '무얼 하느냐'에서 '왜 존재하느냐'를 묻는 쪽으로 왔다는 거다. 그게 우리 음악의 진화 방향이기도 하다. 또 우리의 음악을 듣는 대중은 누구인지도 묻고 있다. 다음 앨범의 컨셉트는 아마 '4+1'이 될 거다."
- 무슨 뜻인가?
"YB밴드의 4명 멤버들과 대중이 합쳐져서 우리의 음악이 된다는 거다. 유럽에서처럼 열 댓 명 앞에서 연주를 한다 해도 그 중에서 단 한 사람만이라도 우리 음악을 이해하고 우리를 이해한다면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 두렵지 않나? 당신들은 이미 가진 게 많다.
"차라리 빨리 해치워버렸으면 싶다. 그걸 빨리 겪어내고 싶다. 그래야 우리가 달라진다."
- YB밴드의 구성원들 모두가 동의한 건가? 사실 영화에는 그런 논쟁이나 갈등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들은 벌써 몇 년 째 이런 고민을 해 왔고 이제 모두가 달라져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우린 기로에 서 있다. 유럽 투어를 함께 했던 영국 밴드 '스테랑코'의 리더인 리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어차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말이다. 우리끼린 동의했다. 생각해보니까 '4+1'이 다음 앨범의 제목으로도 썩 잘 어울릴 것 같다. 살면서, 이렇게 배우는 것 같다. 가식을 버리고. 〈온 더 로드, 투〉에서 우리가 유럽 투어를 다니면서 만들었던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Live and Lea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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