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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윤리…우리 여성계의 침묵과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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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윤리…우리 여성계의 침묵과 발언

[기자의 눈] 왜 중요한 시점에 침묵했는지 반성 있어야

4일 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민우회 등 전국 32개 여성단체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황우석 교수팀 난자 채취과정의 진상을 규명하고 엄격한 난자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의 주장은 이른바 황우석 사태가 줄기세포의 유무와 원천기술 보유 여부에 매몰되어 가는듯한 상황에서 뜻깊은 것이었다.

***여성의 몸을 가볍게 여기는 한국 사회**

우리가 '난자 관리' 문제에 주목하는 까닭은 아주 분명하다. 이는 여성의 건강권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관리가 허술한 가운데 연구에 소요되는 난자들이 음성적인 매매를 통해 조달되면 결국 이는 또다른 의미에서 '몸의 상품화'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최근에 처한 상황을 돌이켜보면, 황우석 교수가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난치병 환자의 치료와 선진 의료한국의 구축 등 이 기술로 얻을 이득에만 열광했을 뿐 생명윤리에 대한 관심은 거의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명'과 '윤리'는 그저 귀찮기 그지 없는 돌부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난자 채취과정에 대한 관심이 생겨날 리 있었겠는가? 2004년 〈네이처〉지가 난자 출처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서야 비로소 우리는 이 문제를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의 풍토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 여성의 몸에 대한 낮은 이해도도 황우석 연구에 막대한 수의 난자가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흘러들어가게 한 하나의 원인이었다. "어차피 배출돼 없어질 난자" 또는 "싱싱한 난자" 따위의 발언에는 여성의 몸을 연구재료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 사고방식이 녹아들어 있었다.

한창 난자기증 열풍이 불던 무렵, 한 방송사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 여성들을 붙들고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위해 난자를 기증하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난자 기증이 가져올 수 있는 엄청난 후유증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가볍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난자기증이 곧 애국이라는 시각 외에는 다른 것은 전혀 보이지 않던 야만의 시절이었다. 한국사회 전체가 이러한 시각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4일 여성단체들이 "황우석 교수팀의 2004년과 2005년 논문을 위해 제공된 난자에 대한 정확한 진상규명을 실시"하고 "난자관리에 대해 철저한 관리‧감독을 해야 함에도 이를 소홀히 한 보건복지부는 책임"을 지며 "정부는 황우석 연구팀에 대한 연구지원 철회뿐만 아니라 배아복제 연구에 대한 정부지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요구한 것은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여성인권 깨우치는 따끔한 등에 되어야**

그러나 이번 황우석 사태에서 여성단체들은 호주제 폐지 운동이나 성매매 금지 운동 때 처럼 의제를 선점하고 적극적으로 이끌어 나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들도 그 동안 '생명공학감시연대'에 참여해 왔지만, 그 안에서 '여성 인권'를 의제로 삼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다고는 평가하기 어렵다.

심지어 생명공학 감시연대가 지난해 말 황 교수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성명을 낼 때 여성단체 측에서는 자기들 이름을 빼달라는 주문을 한 사례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주문했던 이유가 무엇이든 소극적인 태도였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특히 황 교수의 연구와 관련해서는 난자윤리 문제가 연구의 진위 문제에 앞서 부각되었음을 상기할 때 더욱 그렇다.

지금에 와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두고 '만시지탄' 운운하며 반기기 이전에 과거에, 특히 황 교수의 연구윤리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을 때에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소극적이다 못해 문제를 회피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던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런 얘기를 꼭 공개리에 얘기하자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여성계 내부에서는 지극한 자세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잘 알다시피, 여성운동이든 무슨 운동이든 문제가 본격 제기될 때 자체의 역량을 모으고 고민의 과정을 거쳐 작지만 한 걸음을 떼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우리의 여성운동은 이미 중요한 고비를 한 차례 놓친 것은 아닐까?

물론 이번 사태가 갖는 특이성이 있다. 생명공학과 관련된 일이라 사안 자체가 매우 복잡하고 또, 이번 사태가 줄기세포 진위논란, 원천기술 보유여부, 취재윤리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쳐서 일어났다. 여성단체로서는 자신의 의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할 적절한 시기를 포착하지 못했다는 변명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2000년에 여성단체들이 '생명공학 감시를 위한 여성모임'을 조직해 "생명윤리법을 제정하고 이에 난자관리에 관한 규제 규정을 포함하라"는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이번 여성계의 부진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번 공동 기자회견의 의미를 평가절하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작년 한 해 동안 의제를 주도해 나가지 못했다는 반성을 토대로 2006년 한 해동안 한국사회에 적극적으로 생명공학과 여성인권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맹목적이다시피 앞을 향해서만 달려나가다 크게 고꾸라진 한국 사회에 여성의 인권,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등에 역할을 여성계가 하지 못한다는 법이 있는가.

그런 점에서 우리의 여성계는 기회를 놓쳤다기보다는 아직 중요한 기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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