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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답니다"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12/30] 17년째 봉사활동 해온 탤런트 정애리씨

80년대 안방극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탤런트 정애리씨..연기자 생활을 해 오면서도 지난 20여년 간 변하지 않고, 꾸준히 사회봉사활동을 해 오신 정애리씨가 최근 결식 아동을 돕기 위한 '사랑의 도시락 나눔의 집'에 성금 1억원을 기부하면서 다시 한 번 새 밑의 따뜻한 정을 보여줬는데요.

월드비전친선대사등 수 많은 자선 단체에서 사회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일과 자원봉사라는 두 가지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탤런트 정애리씨.. 그녀가 인생을 살면서 중요시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나눔의 기쁨은 또 무엇인가? 오늘 집중인터뷰,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합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가 주목한 이 사람은 연기자로 방송인으로 또 한 아이의 엄마로서 바쁜 인생을 살면서도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 오고 있는 탤런트 정애리씨입니다.


정애리씨는 1978년 KBS주연급 신인탤런트 모집에 당선되며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한국방송연화연기대상 신인상을 비롯해 수 많은 수상 경력이 있으며 올해 KBS 연예대상 공로상을 받았습니다. 현재 월드비전 연탄은행, 사회복지법인 생명의 전화 등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정애리씨, 안녕하십니까?

정애리 : 네. 안녕하세요? 보통 상 얘기를 하면 대상 같은 것을 먼저 얘기 하는 거 아닌가요?(웃음)

박인규 : 그런가요?

정애리 : 신인상을 먼저 말씀해 주시네..(웃음)

박인규 : 죄송합니다. 그런데 신인상은 보통 한 번밖에 없어서 주장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정애리 : 너무 귀하죠.

박인규 : 최근에 텔레비전을 보다 보니까..KBS 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받으셨던데요. 우선 축하 드리고요.

정애리 :감사합니다. 조금 민망했어요.

박인규 : 연세에 비해서 일찍 받으신 것 같아요. 나중에 받으실 상이 없잖아요.(웃음)

정애리 : 그 공로..공로..공로..(웃음) 그 '사랑과 전쟁'이 사실 많은 분들이 끊임없이 사랑해 주셔서 지금 만 6년이 됐거든요. 그래서 좀 더 열심히 해라..그런데 우리는 매주 출연하시는 분들이 바뀌니까..그렇게 바뀌는 출연자 말고 그래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대신 받아라..해서 제가 대신 받은 것 같아요.(웃음)

박인규 : 일종의 개근상 같은 거군요. '사랑과 전쟁'이라는 프로가 부부간의 갈등..그런 얘기인데 저희집 안사람도 굉장히 좋아해서 제가 매주 정애리씨 얼굴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있습니다.(웃음) 정애리씨가 80년대에 '사랑과 진실' 같은 드라마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셨는데요. 그러면서 그 와중에도 사회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셨어요. 언제부터 그런 봉사활동을 시작하셨는지 말씀해 주시죠?

정애리 : 89년도요. 정기적으로 봉사를 했던 것은 89년도..지금도 매주 가고 있는 '성로원 아기집'을촬영하러 갔었어요.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엄마 역할로 시설에 가서 촬영을 했었는..찾아간 곳이 '성로원 아기집'이었어요. 그 때는 신생아부터 만 5세까지 어린 아이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아동 보호법이 조금 바뀌어서 계속 한 원에서 자랄 수가 있어서 가장 큰 애가 이제 2학년..내년엔 3학이 될 정도로 컸거든요. 그 동안은 다른 원으로 전원이 되는 상황이었는데..이제는 클 수가 있게 됐는데..그렇게 갔다가 '다시 와야지..' 그런 말을 하고 왔어요. 그런데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찾아갔었어요. 혼자서..제가 정말 혼자 잘 안다니는데..그랬더니 원장님이 깜짝 놀라셨어요. 특별히 알려진 사람이 다시 오겠다고 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대요. 그 때까지..(웃음) 보통은 인사만이었는데..저는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 갔는데요. 그 시간이 저에겐 굉장히 귀해요. 그렇게 첫 발을 딛게 됐는데요. 이렇게 될 줄은 저도 몰랐죠. 이렇게 제가 끊임없이 그 곳을 가게 될 줄은..

박인규 : '성로원 아기집'에 다시 가셔서는 무슨 일을 하신 겁니까? 그 곳에서는..?

정애리 : 사실 할 일이 있나요? 그냥 애들 보고..너무나 많이 예쁜 아이들이 있었고..저는 그것이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그 때..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라는 노래가 참 많이 따뜻한 노래잖아요? 유행을 한참 지나고 있을 즈음이었는데, 그 노래는 사랑을 베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불러야 할 것 같은 노래였는데요. 계속 가니까..발음도 제대로 안 되는 세 살, 네 살 꼬맹이들이..제가 예쁜 언니..이거든요. 별명이..(웃음) 예쁜 언니가 왔으니까 노래를 불러줘야 한다면서..정말 발음이 안 되는데 그 노래를 불러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충격이었고 너무 눈물을 참 많이 흘렸었는데요. 그리고 그 다음에 "다시 올게.." 그런데 정말 발걸음이 안 떨어지고..처음엔 그랬죠. 아마 많은 분들이 처음에 그런 곳을 갔다가 다시 못 가시는 건..그 헤어짐이 두려워서 일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또 헤어짐이 있으면 지금은 당연하게 "안녕, 다음에 뭐 필요한 게 있니..?" 이렇게 얘기하기도 하고요. 저는 지금은 우리 가족이라고 생각을 하는데..가족이 헤어질 때 당연하게 다시 만날 것을 알고 헤어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시간이 흐르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박인규 : 지금도 매주에 한 번씩 '성로원'에 가시는 겁니까?

정애리 : 네.

박인규 : 네 살, 다섯 살 된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그러실 텐데..같이 놀아주시는 걸로..

정애리 : 놀아주죠. 놀아주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같이 의논하기도 하고 지금은 많이 감사한 것이, 그런 일들이 번져나가서 제 팬 카페 친구들도 매주 와서 봉사를 해주고 하는 것들이..번져가는 아름다움이 있어서 참 좋고요. 그런데 정말 아이들이 참 예뻐요. 객관적으로 봐도 예뻐요.(웃음)

박인규 : 말하자면 하나의 식구로..?

정애리 : 그렇죠. 식구죠.

박인규 : '성로원'을 17년째 다니지만 흑석동에 있는 하래의 집 얘기도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오갈 곳이 없는 할머님 두 분과 아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셨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해서 만드시게 된 건지 말씀해 주시죠?

정애리 : 그 곳은 그룹홈인데요. '성노원'에 다니기 시작 할 때 즈음..어느 날 20대였는데 그룹홈이라는 얘기를 처음 들었어요. 저는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이지만 봉사자로 남는 것이 좋고 어떤 시설의 원장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설이 갖는 장점도 있지만 그 시설이 갖는 단점까지는 뭐하지만..가정에 가까웠으면 좋겠다..그 중간과정이 그룹홈이잖아요? 그래서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룹홈은 제가 정말 한 번 꼭 하고 싶다..그 장을 마련해 주고 싶다..그룹홈들이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가 하면요. 지금은 많이 생기기는 했는데 어르신이면 어르신, 장애우이면 장애우, 아기면, 아기..이런 식으로 있는데요. 저는 장애우는 조금 더 많은 필요가 있어야 하니까..그것은 서로 조금 많이 힘들 수 있으니까..그렇게는 말고 아기부터 어른까지..우리의 가정들이 모두 있으면서 아기는 어른 섬기는 법을 배우면서 사회생활을 적응할 수 있는 것들도 배우고 또 어르신들은 아기를 양육하고 돌보면서 귀찮은 것도 있지만 또 거기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잖아요? 그런 것들 같이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늘 있었는데..그 일이 어느 날 실현이 된 거죠.

박인규 : 할머님 두 분과..?

정애리 : 전부 아홉 식구가 있었어요. 거기서 부모가 신생아를 낳기까지 했거든요. 그래서 아홉 식구가 됐습니다.

박인규 : 그 비용을 모두 대셨다고 들었습니다?

정애리 : 네. 제가 가장이니까 대야죠.(웃음) 가장의 역할을 제가 맡았으니까요.

박인규 : 그 하래의 집이 지금 아직도 되고 있나요?

정애리 : 그 집 자체는 중간에 있던 아이가 대학교에 입학해서 기숙사에 들어가고, 어르신 한 분은 가족들이 나중에는 모시고 싶다..해서 가신 분들도 계시고요. 그리고 아이들은 정말 감사한 것은, 그냥 원에 있었으면 절대 입양이 될 수 없었던 아이가 입양이 됐어요. 그 곳에서..저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또 "나는 따로 살아보고 싶어.."라고 하시는 어르신들은 집을 따로 얻어드려서 생활비는 지금도 대드리고 있어요.

박인규 : 그룹홈..가족처럼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하나의 가족을 만들어서..

정애리 : 혈연이 아닌 가족이죠.

박인규 : 해 보시면서 어떻습니까? 배우셨다거나 얻으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앞으로도 혹시 그런 일들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신 건가요?

정애리 : 저는 그 일은 잠시..하래의 집은 거기까지였던 거 같고요. 그리고 언제든지 하라고 하면 저는 해야죠. 필요한 것 같아요. 힘든 점도 많이 있지만..

박인규 : 저도 말씀을 듣고 보니까..아이들과 어르신 분들이 따로 모인 것보다 같이 모여서..

정애리 : 소용은 더 많이 필요하죠. 모두 각자 필요한 것이 다르니까..

박인규 : 지난 5월에 책을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 17년동안 봉사활동을 하시면서 생긴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담았다고 들었는데요. 안 보신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청취자를 위해서 그 안에 있는 에피소드라든가, 어떤 내용이 있는지 소개해 주시죠?

정애리 : 네. 물론 그 전에도 책으로 얘기를 나눠보면 어떻겠느냐..라는 얘기들이 많았는데요. 제가 조금 겁이 났어요. 그리고 무슨 할 얘기가 없다..라는 생각들이 참 많이 들었었고..봉사했던 것을 알리는데도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만 8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봉사현장도 알리게 됐었는데..그런 저런 의미로.."그래..지금쯤은 한 번 나도 좀 정리를 좀 해보고,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그리고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잘 몰라서 못하겠다는 분들이 있으면 그 분들에게도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책을 냈는데..그 동안에 만난 사람들이 주인공들이었죠. 하래의 집 식구들도 있었고, 그리고 '성로원 아기집' 식구들도 있었고, 자원 봉사자를 포함한..그리고 제 3국이나 제가 KBS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만났던 아픈 환우들을 보면서 느꼈던 이야기들..아름다운 이야기들..그런 것들이 곁들여졌는데요. 제목이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 라고 하니까..사랑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 라고 되묻는 분들도 많으셨는데..(웃음)'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로 됐던 건 정말로 우리가 버린다고 하는 버림을 받았던 아이가 있었어요. 쓰레기 봉투에 버려졌던 그 아이의 이야기를 그 안에 담았었어요. 그것이 소제목이었죠. 결국은 그것이 책의 제목이 되어 버렸는데요. 그런데 정말 버리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이..정말 그것은 아닌 것 같아서..'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라는 책이 나오게 됐죠.

박인규 : 지금 말씀하시는 중에, 8년만에 말하자면 봉사한 활동을 대외적으로 알리게 되셨다..라고 하셨는데..알리시게 된 나름대로의 사연이..?

정애리 : 저는 지금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냥 현장이 좋아요. 그 안에서 그들과 있는 것이 좋고..지금도 가끔 그 현장에서 일하는 것들을 이런 저런 이유로 카메라가 오면 참 불편하고 싫더라고요.(웃음)

박인규 : 촬영이 아니니까..

정애리 : 네. 그게 좋잖아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고 그래서 참 싫었었어요. 때로는 봉사현장에서 카메라를 만난 적도 있었는데..제발 하지 말자..라고..그렇게 찍어서 내 보내면 안 된다..고 해서 안 하다가..이제 8년이면 그 시간이 긴 시간이었나봐요. 주변에도 많이 알려지고 해서 어느 날 할 수 없이 한 번 촬영을 했는데 너무나 많은 효과가 있었어요. 봉사를 하겠다는 분들이 너무 많이 생겼고요. 그리고 그 분들이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전화가 많이 왔었고요. 그리고 후원해주시겠다는 분들도 참 많아져서 제가 좀 반성을 했죠. '아..이 일이 나 혼자 좋자고 이 일을 했었나 보다..나는 조금 귀찮지만 제가 책에도 쓰고 항상 하는 말이..사랑은 표현이 되어야 사랑이고 표현이 안 되는 건 사랑이 아닌 조그마한 것이 아니고 없는 건데 그 사랑이 표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고, 희생이 따르지 않고서는 사랑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얘기도 하는데..그렇다면 내가 아무리 하기 싫고 귀찮아도 알려진 나잖아요. 알려진 내가 감당해야 사랑의 수고로서의 한 방편이구나..그래서 합니다. 할 수 없이..(웃음)

박인규 : 말하자면 같이 어떤 봉사활동을 하실 분들을 모으기 위한 그런..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 자칫하면 오해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정치를 하려고 하는 것이냐?..

정애리 : 저도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하시는 분은 안 계세요. 한 10년쯤 됐을 때는 "아니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 혹시 정치에 꿈이 있어?" 그래서 저는 "아니요. 저는 정말 그 쪽에는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그렇게 건너건너 얘기가 온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 정말 아닌데요." 그렇게 얘기했고..그건 아니고요. 제가 좋으니까..(웃음)

박인규 : 정답이신데요. 자신이 좋아야 하죠. 맞는 말씀이시고 다만, 최근에 들어와서 정애리씨 외에도이른바 연예 스타들의 자선 활동들이 많은데 약간은 논란도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일들이 인기를 위한 어떤 마케팅 차원이 아니냐..라는 측면도 있고..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죠. 그런 논란들을 보시면서 나름대로 일단 그 일을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또 거기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속이 보인다..라는 식의..

정애리 : 제가 봐도 속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없지 않아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것조차도..인기나 마케팅을 위해서 하는 것 조차도 끊임없이 하다 보면 달라질 수도 있고 또 계속 하게 될 것이고..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일로 인해서 누군가가 혜택을 받고 누군가가 행복해 한다..라면 그 일을 그렇게 너무 많이 뭐라고 하시지 말고..좀 더 격려해서 "정말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거구나.."라고 해 주시면 더 좋지 않을까..

박인규 : 이렇다..저렇다 말 할 것이 아니라 계속 좋게 보면 할 수도 있고..그럴수도 있겠네요.

정애리 : 네. 그렇게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박인규 : 그렇지만 제가 느낀 것은, 방송인 생활을 하시는 것도 바쁘실텐데 집안일도 있고 세 가지 일을 같이 하시는 것이 힘들지는 않으십니까? 어떠세요?

정애리 : 때로는 힘이 들 때도 있지요. 저는 봉사..연기하는 방송인..그것을 의식주처럼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하지는 않아요. 의와 식과 주가 모두 있어야 우리가 살아 갈 수 있는 것처럼 그 일을 똑같이 동시에 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순간에 위급한 상황은 있겠죠. 제가 당장 방송을 하러 가야 하는데.."저 봉사하러 가야 해요.." 이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그리고 방송이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거면 정말 무슨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그 봉사현장에 가는 것이 더 급하면..저는 그 일을 해야 한다고 보고요. 그리고 그것보다도 지금 당장 내 집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면 그 일을 하는 것이 순서적으로 당연하다고 보거든요.

박인규 : 세 가지 일이 힘드시지는 않으시다?

정애리 : 네. 괜찮아요.

박인규 : 말하자면, 방송과, 봉사와, 집안일이 정애리씨에게는 삼위일체이군요?

정애리 : (웃음)

박인규 : 얼마 전에 정애리씨가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계신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에 1억원을 기부하셨는데..'사랑의 도시락 나눔의 집'에 쓰여지겠죠?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돈을 내 놓으신 건 상당히 필요한 거라서 내 놓으신 거겠죠?

정애리 : 그렇죠.

박인규 : 어떻습니까? 도시락을 못 먹는 어린이들이 많은가요?

정애리 : 외국에 아주 못 사는 나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주 잘 살고 있다고 하는 우리 나라에서 조차도 지금 결식아동이 30만명을 훨씬 넘고 있거든요. 사실은 저는 적어도 아이들은 먹는 걱정..이런 것들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아이들은 정말 공부하기 싫어서..이런 걱정을 하는..놀고 싶어하는 것이 기본적인 아이들의 생각인데 굶은 것 때문에 아이들의 어깨가 가라 앉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아서 그동안 월드비전의 홍보대사를 하면서 특별히 우리 나라 쪽의 일은 도시락 나눔 행사에 많이 관여를 했었어요. '도시락 나눔의 집', '사랑의 도시락을 나눕시다'..이런 일들을 많이 하면서 정읍에 새로 '도시락 나눔의 집'을 지으려고 해요. 특별히 이번에 폭설 때문에 정읍이 가장 큰 피해지역이기도 해서..사실 폭설이 나기 전에 정읍으로 정해졌거든요. 그래서 '아..이 집이 정말 필요한 곳에 지어지는 구나..' 그렇게 하려면 일단은 돈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거죠. 그 다음에 자원봉사자나 또 후원자를 통해서 사랑이 같이 들어 가서 아이들에게 매일매일 밥도 가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기 전에는 시설을 만들어야 하는데 제가 책에 낼 때 그것을 책의 뒤에 썼었어요. "이 책의 저자의 수익금 전액은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여집니다." 이렇게 썼는데 그것을 보고 책을 사 준 분들도 굉장히 많으실 거예요.

박인규 : 책이 많이 나갔습니까?

정애리 : 조금 나갔네요.(웃음) 그래서 그것은 제 얘기를 쓴 것이 아니고 제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것이었고..또 저는 봉사하면서 제가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 것이 최고의 보너스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 보너스를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그 수익금을 내가 갖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더더군다나 인세가 어떻게 쓰여지는지를 사면서도 당연히 정애리를 많이 믿어 주셨던 분들이 "저 여자는 잘 쓸 거야.."라고 믿으시겠지만 그래도 "아..이렇게 쓰여 지는구나.."라고 정확하게 알면 더 좋으실 것 같아서 그 곳에 넣게 됐어요.

박인규 : 며칠 전에 굿네이버스의 이일하회장께서 저희 프로그램에 나오셨는데요. 남아시아 지진문제 때문에..정애리씨도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지진현장을 다녀 오신 걸로 얘기 들었습니다.

정애리 : 네. 인도를 갔었죠.

박인규 : 그 당시에 다녀 오셨나요?

정애리 : 제가 갔을 때가 100일만이었거든요. 대략 90일쯤에 갔었는데 100쯤 됐을 때 인도에서 가장 많은..한 마을에서 가장 많이 죽은 9천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던 곳에서 밤에 갑자기..기억나세요? 봄쯤에? 쓰나미가 온다고 해서 대피하고 했던..그 날 제가 그 곳에 있었잖아요..(웃음)

박인규 : 상당히 놀라셨겠네요?

정애리 : 저는 놀란 것도 놀란 거지만..제가 이것을 왜 겪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봤을 때 저희도 제가 가지 전까지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사망자 숫자가 단지 숫자로만 기억될 수 있었는데 직접 현장에 가서 보니까..그 분들이 한 분 한 분 누군가의 엄마, 아빠, 누나, 동생..모두 누군가의 누구잖아요. 그리고 그 분들이 그 사랑을 잃은 슬픔에다가 정말 이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공포겠구나..다시 쓰나미가 온다는 것 때문에 대피하는 그 현장에 같이 있다가 그걸 느꼈어요. 이 분들이 그 공포에 얼마나 힘들어 할까..그 마음까지를 아마 우리가 모두..이해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박인규 : 작년에 몸이 아픈 몽골소년 앙카를 한국에 와서 수술을 받도록 도와주셨다고 들었는데요. 저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정애리씨가 아무리 능력이 많으시다 하더라도 온 세상에 참 어려운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데 그 일들을 다 할 수는 없는 게 아닙니까? 어떻게 해서..말하자면 봉사활동을 택하신다고 할까요? 그런 원칙이 있으신지..혼자 다 하시면 안 되잖아요?

정애리 : 그리고 할 수가 없어요. 전 절대로 혼자 할 수도 없고 제가 할 수 있는 것만 저도 할 텐데..참 감사한 것은 이렇게 오래 하다 보니까..저를 신뢰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기셨어요. 그리고 노는 물에 따라서 노는 물고기들이 달라진다고 하잖아요?(웃음)

박인규 : 그러면 정애리씨를 원하시는 곳이 있는 모양이죠?

정애리 : 그리고 제가 노는 물이 참 좋으신 분들이 많이 계신 물인 거 같아요.(웃음) 그러다 보니까..행복한 심부름꾼이 된 거죠. 다른 분들이 도와주셨죠. 그래서 가능했어요.

박인규 : 저희 친구들도 대게 40대가 넘어가고 하니까..몇 년 전부터 "우리도 뭔가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봉사활동을 하자..그래서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가자.." 이런 말들은 나온 지가 몇 년이 됐는데요.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어느 분도 말씀 하셨지만 한국 사람들이 참 남 도와주기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그런데 도와줄 수 잇는 길을 잘 못 찾고 있다..말씀하셔서.. 17년동안 말하자면 그 분야에 전문가이시니까..자원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데 길을 잘 모르겠다..하는 분들에게 조언 같은 말씀을 해 주시죠?

정애리 : 그런 것들이 있는 거 같아요. 내가 뭘 해서 크게 해야지..라는 마음들이 많이 있으신 것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 크게 하려면 정말 못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당장 시작하시고..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을 하세요. 자신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세요. 봉사하면서 힘들면 그 일은 오래 못 하거든요. 사람마다 받은 것이 다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은 아이와 잘 놀아주고, 어떤 사람은 정말 우리 아기 봐 주는데 한 아이 더 봐줄 수도 있으니까..그렇게 할 수 있고 쉽고 재미 있는 것들을 하면 그 현장은 어디든지 많고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하면, 정말 가까운 동사무소부터 시작해서요. 사회복지과가 어디든 다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떤 단체에 연락하든 다 알려주세요. 봉사현장은 많이 있으니까..멀리 크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박인규 : 따님이 한 명 있는 걸로 들었습니다? 지금 몇 살이죠?

정애리 : 만 12살이예요.

박인규 : 초등학교 6학년..?

정애리 :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죠.

박인규 : 그럼 엄마와 같이 그런 봉사활동도 하고 그럽니까? 어떻습니까?

정애리 : 그 아이는 지금도 매주 같이 다녀요. 어떤 날은 제가 깜짝 놀랄 만큼 "엄마가 다 해야 돼?" 이러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 힘든 분이 나오면 저를 툭툭 쳐요. "엄마가 어떻게 좀 해봐.."(웃음)

박인규 : 이제 연말도 됐고 해서 어떻습니까? 지나는 동안 상당히 해당 분야에도 최고스타이셨고, 봉사활동에도 상당히 내공을 쌓고 계신데요. 앞으로 나의 삶의 이렇게 꾸려 가겠다..라는 계획 같은 것을 말씀해 주시죠?

정애리 : 저는 지금 당장 잘 살고 싶어요. 지금 이순간을 잘 살면 아마 또 다시 이어지는 그 순간이 좋을 것 같고요. 커다란 욕심 없고 지금처럼 일도 할 수 있고, 봉사현장에도 제가 있을 수 있어서 웃을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도록 많이 사랑해 주세요..(웃음)

박인규 : 그러니까 봉사활동을 하시는 것도 정애리씨가 지금 당장 잘 살기 위해서 하시는 거죠?

정애리 : 네. 제가 좋잖아요.

박인규 :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역시 잘 살기 위해서는 나눠야 한다..

정애리 : 나누는 것은 채움입니다.

박인규 : 나눌수록 더 커진다고 하더라고요. 계속 좋은 일 해주시길 부탁 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 드립니다.

정애리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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