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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 그리고 경극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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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 그리고 경극까지

[뉴스메이커]〈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

이준익 감독은 아들을 위해 찍은 영화 〈키드캅〉(1993)으로 데뷔한 뒤 10여 년 동안 영화사 운영에 주력해 왔다. 충무로에서 그는 〈달마야 놀자〉 같은 영화를 제작하고 〈헤드윅〉 등을 수입 배급한 영화 '비즈니스맨'이었다. 하지만 〈황산벌〉을 직접 제작 연출해 성공시킨 뒤 이준익 대표는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2000년 초연 뒤 호평을 받은 김태웅 작가의 희곡 〈이(爾)〉를 영화화한 〈왕의 남자〉는 창작자로서 이준익 감독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 보이는 작품이다.

〈왕의 남자〉에서는 16세기 초 조선 궁중을 배경으로 정치권력을 풍자했던 광대패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 마더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포악한 임금 연산(정진영)과 질투의 화신인 녹수(강성연)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영감을 얻은 만큼 원작의 구성이 워낙 탄탄하기도 하지만, 영화 〈왕의 남자〉는 원작의 힘을 뛰어 넘는 영화적 성취를 담아 내는 데에 성공했다. 한국영화에서 거의 조명되지 않던 광대놀음을 신명나는 스펙터클로 승화시키면서, 동시에 퇴락한 정치 권력을 풍자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곳곳에 포진시켰다.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권력을 쥔 모든 자들에 대한 반골 정신을 숨김없이 드러낸 이준익 감독과의 솔직 유쾌한 인터뷰.

- 제작자로서 영화사를 이끌던 때와 옷차림부터 다르다. 사업가에서 예술가로 완전히 변신한 건가?(웃음)

"내가 원래 미술학도다. 세종대 회화과 79학번으로 동양화를 전공했다. 내 고향이 경북 경주인데, 어릴 때부터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와 거의 10년 동안 한 방에서 지냈다. 할아버지는 새벽 네 시만 되면 일어나셔서 글을 읽거나 쓰시면서 나에게 먹을 갈도록 시키셨다. 그래서 나는 먹을 갈면서 붓을 들고 글씨를 따라 하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놀곤 했다. 그때부터 동양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지금도 내가 고등학교 때 그린 실경산수화 보면 꽤 멋있다. (웃음)"

- 두 번이나 사극을 연출한 것도 우연만은 아니라는 얘긴가.

"나는 지금 우리의 정신세계와 문화가 온통 서양적인 것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 불쾌하다. 그에 대한 반발심, 또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호기심에서 동양적인 것에 대한 탐구정신을 갖게 됐다. 우리 사회를 서양 문화가 지배하게 된 것은 고작 100년이다. 그 전의 세상에서는 동양적인 것이 주류고, 서양적인 것이 비주류 아니었나."

- 동양적인 정서와 미감을 영화적으로 번안하는 것은 또 다른 작업일 듯하다. 특히 〈왕의 남자〉에서는 미학적인 요소들이 매우 중요한데.

"솔직히 〈왕의 남자〉는 약간 비겁한 영화다. '기술'을 부리고 있지 않나. 서양의 영화적 문법, 소위 말하는 미장센이나, 기술을 통해 영화의 미학적인 측면을 완성하려 했다. 그건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다.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솜씨 있는 콘티뉴이티, 카메라에 비춰지는 피사체에 대해 보다 더 예뻐 보이게 의도적으로 잔재주를 피우는 것, 그런 게 다 기술 아닌가.(웃음)"

- 이야기 측면에서 기술을 부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왕의 남자〉는 셰익스피어에게서 빌려와**

"예컨대 〈왕의 남자〉는 셰익스피어의 문법 구조도 많이 차용했다. 원작자가 소개해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서울대 출판부)이라는 책에서 밑줄 치며 읽은 구절이 있다. 그 책의 서문에 2300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의 원형극장에서 공연했던 비극의 6대 요소를 정리한 게 있었다. 1번, 플롯, 줄거리가 있어야 한다. 2번, 캐릭터, 인물의 성격이 있어야 한다. 3번, 딕션, 다이얼로그가 중요하다. 4번, 스펙터클,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 5번, 사상, 생각할 거리를 포함해야 한다. 6번, 노래, 음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난 '사상'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정말 다시 봤다. 셰익스피어는 세월이 흘러 이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했다. 모든 비극에는 주인공의 성격적 결함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걸 셰익스피어는 '성격은 운명이다(Character is destiny)'라고 했다. 햄릿이나 맥베스, 오델로 모두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고, 비극적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을 관통하는 바로 이 말, 'Character is destiny'를 〈왕에 남자〉에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 잔재주를 부렸다니, 너무 가혹한 말이다.

"솔직히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셰익스피어의 얄팍한 재주를 영화에 좀 써야 돈이 되겠구나 한 거다.(웃음) 〈왕의 남자〉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원작보다 좀더 영화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광대는 매우 주체적인 인물인데, 이는 서양 문학이나 영화에서 표현된 광대와는 전혀 다르다. 가령 〈리어왕〉에 나오는 비겁한 광대들, 또는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류블레프〉에 나오는 광대들은 결코 어떤 인물로서 형성돼 있지 못하며, 작가의 관점을 대변해주는 기능적인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광대들은 세상에 직접적인 관여를 많이 했다. 기본적으로 해학이란 풍자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풍자 없는 해학은 저급한 개그에 불과하다. 우리의 전통적인 놀이문화에 담긴 과감한 풍자와 해학은 정말 내력과 뿌리가 있는 것이며, 그 가치는 셰익스피어가 광대를 만들기 몇 백 년 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다. 그건 내가 창작한 것도 아니고, 몇 백 년 전부터 있었던 걸 그냥 슬쩍 가져온 거다. 그래서 내가 기술자라는 얘기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남자〉에는 기술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양질전화'라고 할까, 기술이 집적되다가 어느 순간 예술적 감흥으로 도약하는 순간이 보인다. 특히 광대놀음을 재연한 장면들에서는 상당한 쾌감이 느껴진다.

"우리 광대들의 전통 놀이가 얼마나 선진화된 것인가를 증명하는 것은 이 영화에서 나의 중요한 임무였다. 우리는 인류의 문화를 진화시키는 데 충실했던 민족이다. 이건 내 개인적인 주장이 아니라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가령 원형무대에 올려진 고전 그리스 연극에서는 이야기를 좀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배우들이 관중과 상당히 인터랙티브한 관계를 맺었다. 한데 문화 변방에 있었던 영국을 봐라. 날씨도 추우니까 마당극을 할 수가 없어서 골방으로 들어가 무대극을 발전시킨 거다. 무대극은 관객과 배우가 막을 쳐놓고 거리감을 두고 보는 거다. 반면 우리나라의 전통극은 마당극이다. 〈왕의 남자〉 첫 신부터 공길과 장생은 관객들과 함께 인터랙티브하게 어우러진다. 무대극의 양식화된 수사와 마당극은 차원이 다르다. 무대극은 마당극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나온 것인데, 왜 우리가 무대극만을 따라 해야 하나.(웃음)"

***원작의 철학적 담론을 탐미적인 분위기로 바꿔**

- 광대들이 왕이나 양반을 풍자하는 대목에서는 성적인 농담이 두드러진다. 원작에서도 있었던 것인가?

"원작은 상당히 현학적이다. 작가가 철학과 출신이고,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도 권력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성적인 것도 역시 성 권력을 파헤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그 친구는 모든 것을 권력의 작용으로 본다. 권력의 피해자라 권력에 대한 적개심이 많은 반골이다.(웃음) 하지만 영화는 현학적이면 망할 것 아닌가. 훨씬 유미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 〈왕의 남자〉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보면, 기존에 우리가 많이 봐 왔던 사극과는 달리 붉은 색이 무척 많아서 화려하고 자극적이다. 한국적인 미감이라기보다는, 중국 쪽에 가깝기도 하다.

"그걸 중국적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물론 우리 영화에서 주조로 사용하는 붉은색을 컬러 차트에서 보면 '차이니즈 레드'에 가까울 거다. 하지만 그건 지금 시점에 봐서 그런 느낌이 드는 걸지도 모른다. 과거 사극들은 조선 시대의 복식사에 대한 연구가 덜 되었을 때 만들어졌던 것이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들을 보면 조선 전기의 치장 문화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화려했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이전의 사극에서 그런 것들을 다루지 않아서 새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왕의 남자〉는 새로운 게 아니라 도외시되었던 것들을 재발견한 것뿐이다."

- 광대 놀이 가운데 〈패왕별희〉 같은 경극 패러디를 넣은 이유는 뭔가.

"경극은 본래 중국 청나라 때 북경에서 집대성한 극이라서 '경극'이라는 이름을 지은 거다.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중국 각지에 있던 것을 모아놓은 거다. 난 〈왕의 남자〉에 그걸 살짝 약탈해온 거다. 하지만 형식만 약탈하고 내용은 약탈하지 않았다. 중국 경극에는 '패왕별희'뿐 아니라 레퍼토리가 무척 많다. 내가 다음 번에는 일본의 노나 가부키를 약탈해 올까 생각중이다. 관객들은 '어, 조선에서 저런 공연을 해?'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본도 얼마나 우리 문화에서 수많은 것들을 약탈해갔나. 이제 우리도 약탈을 할 때가 됐다. 그래서 내가 셰익스피어를 약탈하고, 원래 러시아 전통에 있던 그림자극도 약탈해 응용한 거다. 나는 우리가 약탈의 민족이라고 생각한다.(웃음) 남부 지방에서나 경작 문화였지, 말을 타고 다니던 우리 민족들은 원래 약탈에 능하지 않나. 우리가 왜 온라인 문화가 강한가. 남의 것들 '펌질'하는 게 다 약탈하는 것 아닌가. 우리 기마 민족의 얼을 계승하려면, 문화 컨텐츠에서도 약탈을 해야 한다.(웃음)"

- 사극이지만 서구적인 코드가 꽤 있다는 얘긴데, 해외 영화제에서의 성과를 기대하나?

***적어도 유럽에서는 성공가능성이 높은 작품**

"유럽 관객들은 어느 정도 이 영화를 꽤 잘 이해하리라 본다. 1950년대 초에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나 오즈 야스지로, 마루야마 겐지 등이 전세계 영화제 상을 휩쓸지 않았나. 그 방법 중 하나는 서양 것을 약탈해서 자기네 식으로 변형한 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구로사와의 〈거미집의 성〉이다. 그건 〈맥베스〉를 그대로 옮긴 것이고, 〈란〉 같은 영화는 〈리어왕〉을 고스란히 가져온 거다. 서양 관객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내용인데, 전혀 보지 못한 문화 컨텐츠로 만들어낸 것 아닌가. 그건 좋은 말로 하면 오마주고, 나쁜 말로 하면 약탈이다. 하지만 '오마주'라 하면 너무 문화 사대주의적이지 않나?(웃음) "

- 인물들의 관계는 좀 모호하다. 가령 장생과 공길의 관계, 연산과 공길의 관계를 좀더 명확히 그리지 않은 이유는 뭔가.

"그걸 다 드러내면 영화가 너무 단순해진다. 많은 영화가 인물들의 관계에 있어서 분명해지길 강요하는데, 난 그건 상당히 천박하다고 본다. 물론 한두 신만 더 넣으면 인물들의 관계는 더 명확해지겠지만, 그건 영화의 가치를 더 하락시킬 수도 있다. 이 영화에는 인물들간의 관계에 아홉 개의 라인이 있다. 장생과 공길, 연산과 공길, 처선과 장생, 처선과 연산, 연산과 녹수 등등. 대부분의 인물들은 자신의 포지션에서 한 발도 비켜가지 않는다. 각자의 위치에서 모두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만을 하며 다른 사람의 삶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물들의 관계를 좀더 명확히 밝히려 시도한다면, 이들의 팽팽한 균형이 무너지면서 영화가 멜로드라마가 되어버린다. 〈왕의 남자〉가 과연 멜로드라마인가? 물론 멜로드라마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멜로드라마를 만드는 건 나의 목적이 아니었다."

- 장생과 공길의 마지막 줄타기 장면에서 화면 정지되는 프리즈 프레임이 무척 인상적이다. 마치 〈델마와 루이스〉의 엔딩 장면과 같은 깊은 여운을 남기는데. (웃음)

"장생과 공길이 멈춰진 시간 속에서 영원하다는 것을 상징하고자 했다. 가령 〈정무문〉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이소룡이 붕 떠서 이단 옆차기를 하는데 총소리가 마구 들린다. 이소룡은 총을 맞아 죽은 거지만, 총알이 몸에 박히기 전에 박제돼 버린 게 아닌가. 〈왕의 남자〉도 마찬가지다. 중종 반정의 쿠데타 세력이 마구 몰려오는 순간 줄 위에서 공중으로 붕 도약하면서 박제가 되는 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모든 인물들이 서로에게 존재 증명을 하는 대사를 한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등등. 이는 '나'라는 존재를 증명받기 위해서는 '너'라는 존재를 확인해야만 가능하다는 거다. 존재는 관계를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다는 거지. 영화는 비극이지만, 이상한 행복감이 들지 않나?

사진 김정민 프레시안무비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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