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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의 마법, 그리고 왼쪽 뺨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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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의 마법, 그리고 왼쪽 뺨의 키스"

김민웅의 세상읽기 〈175〉

마법사의 이야기 "해리 포터" 시리즈는 성서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선전되고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은 없으나, 그 책의 열광적인 판매로 해서 저자인 조앤 K. 롤링이 스코틀랜드의 19세기 성채를 저택으로 갖게 된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 고색창연한 성채는 아마도 해리 포터의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는 데 안성맞춤의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대개의 언론들은, 가난한 이혼녀 출신의 여자가 졸지에 갑부가 되었다고 거의 호들갑 수준으로 그녀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소년 마법사와 마법학교의 이야기를 쓰는 동안에 그녀의 손이 마치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드는 마이다스 왕의 손을 닮아버리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그녀에게 가장 부럽게 여기는 바는 역시 그 황금의 손이었나 봅니다.

중세 영국의 귀족사립학교를 떠올리게 하는 해리 포터의 마법학교는 엄격한 규칙과 경쟁, 그리고 승자에게 모든 영광이 돌아가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찌 보면, 중세의 기사를 마법사로 바꾸어 놓고 마녀나 요괴 등과 싸우는 기사들의 무용담을 해리 포터의 마법사 성장기로 꾸며놓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매력은 주인공들이, 중세 기사들은 하지 못했던 마술의 달인이 된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저자 조앤 K. 롤링이 한때 매우 가난하고 어려운 우여곡절의 인생을 살았고, 그 과정이 결국 해리 포터 소설의 자양분이 되었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빈곤과 불운이 마냥 불행한 일만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절박한 갈망이 넘칠 때 인간은 마술 같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세상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경쟁의 압박을 모두 이겨내고 승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소년 마법사 해리 포터는 그런 그녀의 꿈의 결정체이기도 할 겁니다.

올해 한국사회에 유행처럼 등장한 "1억 만들기" 등의 풍조도 따지고 보면 이 마법의 학교에 내미는 입학 원서 같은 것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모든 경쟁자를 따돌리고 결국 최고의 점수를 얻어 영광의 수상자가 되는, 그런 정해진 순서를 자신의 영광으로 삼기 위해서는 마법의 능력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자신을 목표지점으로 몰아가는 그런 학교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해리 포터가 사는 세상도 아니고 더 이상 중세 기사의 무용담이 빵과 집과 학벌, 그리고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게 하는 자산으로 인정받는 형편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해리 포터가 되고 싶어 합니다. 책과 영화가 그토록 인기를 모으는 까닭의 밑바닥에는 꽉 짜여진 위계질서 속에서 최고가 되는 능력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해리 포터의 세계에는 그 마법으로 중세적 질서를 바꾸려는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질서는 마법의 기초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걸 바꾸는 순간, 마법의 위력과 매력은 사라지게 되고 말기 때문이겠지요. 조앤 K. 롤링이 자신의 저택으로 중세의 성채를 선택한 것은 그녀의 열망이 보다 평등하고 보다 공동체적인 세상을 꿈꾸는 것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유난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아우성, 그리고 이들의 아픈 절규가 우리 사회를 흔들었던 올해, 우리가 결국 바라는 마법은 해리 포터의 마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 그걸 불러올 마법의 요체는, 역시 정의가 넘실대고 평화가 춤추며 사랑이 가득 찬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누군가의 익살을 빌려 좀 바꾸어 말하자면, 예수의 말씀대로, 왼쪽 뺨에 키스를 당하면 누가 오른쪽 뺨을 내밀기를 마다하리요? 입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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