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10명과 멘토 10명, 그리고 취재진까지 모두 34명이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에 오르는 아름다운 산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휠체어 장애인, 시각장애인, 그리고 의족을 착용한 지체장애인들까지 킬리만자로 산을 무려 4700m 이상 올랐고, 그 중에 5명의 장애인은 산악인들조차 힘들다는 5천미터 이상의 높이에까지 오르는 대단한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kbs 3라디오 특별기획 - 희망원정대 2기, 킬리만자로에 가다! 팀의 일원으로 킬리만자로와 아프리카 일대를 다녀온 두 분을 모셨는데요. 무엇이 이들을 그 높은 곳까지 오르게 했을까...지하철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고 자신의 다리를 잃었던 " 아름다운 철도원 " 김행균씨, 그리고 휠체어 육상선수로 이번 킬리만자로 희망원정대에 참여한 문정훈 선수와 함께 합니다.
철도원 김행균씨는, 2003년 7월 25일 영등포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고 대신 다리를 잃었습니다.. 현재 한국철도에 근무 중이며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데요. 이번 희망원정대의 일원으로 참가해서, 장애인들 10명 중의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해내 원정대원들의 칭송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함께 출연한 문정훈씨는, 생후 3개월쯤 척수 바이러스 감염이 원인이 돼 혼수상태에 빠져버렸고 1년간 그런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장애를 인식 못하고 유아기를 보낸 경험이 있습니다. 그 후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고, 휠체어 장애인이 되었지만, 휠체어 육상선수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등, 장애인 육상선수로 활약 중입니다.
박인규 : 두 분, 안녕하십니까?
김행균 : 안녕하십니까?
문정훈 : 안녕하세요?
박인규 : 다녀오신 날이 지난 화요일이시죠? 얼굴이 두 분 모두 건강해 보이시네요? 체력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우선 12월 5일 날 서울을 떠나서 15박 16일 동안 4개국을 다녀오셨다고 하는데..어느 곳을 다녀오신 겁니까? 김행균씨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행균 : 네. 16일동안 사실 긴 여정이었습니다. 제 스스로도 좋은 여행이었고 지난 12월 5일 인천공항을 떠나서 홍콩, 케냐, 탄자니아를 거쳐서 킬리만자로 산 하부에 도착했습니다. 가는 여정도 사실 힘들었고, 비행시간만 해도 20시간이 넘는 시간을 우리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갔는데..사실 산 밑에 까지 가는 것도 너무 힘들었는데 우리 대원 모두 아주 건강하게 돌아오게 된 것에 대해 기쁘고 제 스스로도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
박인규 : 희망원정대 대원 중에.. 10명의 장애인이 가셨고, 멘토라고 해서 말하자면 같이 동행하면서 돌봐주시는 10명이 가셨고..나머지분들이 가셨는데..가신 멘토분들 보니까..의사분도 계시고, 변호사도 계시고, 소설가, 취재하시는 분들도 가셨고..굉장히 다양하신 분이 34명이 가셨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면 여러 가지 사건들도 많았겠어요? 마찰도 있었을지 모르고..
문정훈 : 그렇죠. 굉장히 킬리만자로에 대해서는 저희가 염려가 많았죠. 그러나 가신 분들이 좋으신 분들이 많이 가셔서요. 가는 동안에는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변호사님도 계시고, 가수 분도 계시고..우리 김행균선생님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가고요. 가면서는 킬리만자로에 대한 염려만 가지고 갔었는데 가는 도중에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가니까..굉장히 즐겁기도 하고 서로가 많이 친해졌어요.
박인규 : 킬리만자로가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해발 5895M인데, 문정호씨는 어디까지 올라갔어요?
문정훈 : 저도 얼마나 올라 갈 수 있을지 굉장히 많이 염려를 했었는데요. 저는 휠체어를 탔고 산이라서 평탄한 길이 많이 없을 거라고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정말 저희 장애대원 열 분과 멘토대원 열 분이 저를 친 동생처럼 친구처럼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힘을 더 많이 냈죠. "그래..한 번 가 볼 수 있을 만큼 가보자.."해서 키보산장 4875M까지 갔습니다.
박인규 : 김행균씨는 어떻습니까? 어디까지 올라가셨나요?
김행균 : 저는 산 정상은 못 올라갔고요. 정상 밑에 5600M 고지까지 올라갔었습니다.
박인규 : 많이 올라가셨네요. 본인이 애초에 생각하셨던 것 보다 많이 올라가신 거죠?
김행균 : 저의 목표는 3700M 고지였습니다. 그런데 저 뿐만 아니라 우리 장애인 친구들이 너무나 몸 상태가 좋고 올라갈 의지가 너무 좋아서 제가 같이 올라가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같이 올라갔습니다.
박인규 : 킬리만자로가 적도 열대지방에 있지만, 사진 같은 것을 보면 만년설이라고 해서 매년 눈이 쌓이는데 실제로 눈이 있던가요?
문정훈 : 만년설 많이 봤죠. 김행균님이 말씀해 주시죠? 저보다 더 많이 올라가셨으니까..(웃음)
김행균 : 네. 3700M 고지에서부터 만년설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워낙 공기가 맑아서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산 정상에 하얀 만년설이 보이는데 사실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고, 저 곳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 3700M 고지부터 제 마음에 받아들여져서 힘이 많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박인규 : 김행균씨는 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시다가 다리를 잃으셔서..지금은 의족이신데요. 그렇게 올라가시는데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김행균 : 사실 많이 힘들었습니다. 제 스스로도 과연 올라갈 수 있을까? 제 스스로도 용기가 많이 나지 않았는데요. 저도 모르게 아주 수월하게 큰 상처 없이 올라갔었습니다.
박인규 : 문정훈씨는 어렸을 때 바이러스 감염으로 일 년이나 의식이 없었고, 지금은 상체가 아주 건강하신데 걷지 못하셔서 휠체어를 타고 올라가셨죠? 휠체어를 타고 올라가시려면 상당히 힘들었을텐데..핸드워킹이라고 합니까? 손으로 걷기도 하셨다고 하는데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문정훈 : 솔직히 진짜 많이 힘들었어요. 제가 이제까지 조금밖에는 살지 않았지만..산이라는 걸 그렇게 말로만 듣던 산을 올라간다는 것은 사실 저에게는 큰..그것에 대한 꿈을 많이 꾸었어요. 그러다보니까 어떻게 하면 이 곳을 올라갈 수 있을까..해서 집에서 정말 연습을 많이 했어요. 1차 산행 때도 핸드워킹을 하다가 굉장히 근육통도 심하게..
박인규 : 핸드워킹이라는 것은 휠체어를 놔두고 손으로 걷는 거죠?
문정훈 : 그렇죠. 멘토가 뒤에서 다리를 잡아주고 부축하면서 같이 올라가는데..굉장히 많이 힘들었어요. 솔직히..현지의 외국인들과 의사소통도 잘 안되고 하다 보니까..많이 힘들었어요.
박인규 : 제가 듣기로는 처음에 가시면서 장애인들이시기 때문에 3700M만 가도 다행이다..그 정도만 가자..어떤 분들은 4800M까지 오르신 분들도 계시고..옆에 김행균씨도 계시지만..다섯분이 올라가셨다고 하는데..애초의 생각보다는 많이 올라갔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 그렇게 힘이 나셨는지? 그 곳에 도착하시니 힘이 불끈불끈 나시던가요?
김행균 : 아마 저를 포함해서 4800M를 오른 장애인 친구들이 다섯 명이 됐었습니다. 당시 시각장애인, 저를 포함한 의족을 착용하신 한영종씨, 소아마비이신 강경호씨, 한태석씨..이렇게 다섯 분이 올라가셨는데..저도 놀랐지만 다른 분들이 더 놀라셨어요.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과연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분들의 의지가 일반 다른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의지보다..본인 스스로의 의지도 있었고 아마도 전체적인 대원들의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뭉쳐져서 올라가게 된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멘토 얘기를 해보죠. 멘토라는 의미는 '정신적 스승'이라는 의미인데..이번에 가신 분들은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분들을 도와주시는 역할로 한 분씩 갔단 말이죠. 우선 제가 듣기로는 문정호씨 멘토는 유명하신 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문정훈 : 네. 저도 굉장히 유명한 선수였는데 저보다 더 유명하신 분이 가셨어요.(웃음)
박인규 : 누구셨죠?(웃음)
문정훈 : 가수 안치환씨와 같이 갔었습니다.
박인규 : 같이 가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까? 15박16일을 같이 지내셨으니까..
문정훈 : 그렇죠. 핸드워킹 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거 같고요. 그 다음은 평상시에 제가 생활했던 것..화장실이라든가, 세면..이런 것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핸드워킹은 치환이 형이 제 다리를 잡고 저는 손으로 산을 등정하는데..치환이 형의 거친 숨 소리가 뒤에서 들리더라고요. '안치환씨가 굉장히 힘들구나..'라는 것을 굉장히 많이 느꼈어요. "형, 우리가 좀 쉬자.." 이렇게 서로가 그런 얘기를 해 주었고요. 그런 것들이 있어서 더 많이 올라갈 수 있지 않았나..생각하고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손발이 되어 준다는 것이 힘들잖아요. 화장실이라든가, 씻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었는데..안치환씨도 굉장히 힘드셨을텐데..그런 부분들을 늘 잊지 않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저에게 도움을 주셨다는 것이 전 솔직히 이번에 같이 가셔서가 아니라 정말 남자 대 남자로서 사람 대 사람으로서 굉장히 감사하다고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박인규 : 안치환씨가 틈나면 노래도 불러주고 그러지는 않으시던가요?
문정훈 : 대금을 굉장히 잘 불어 주셨어요.(웃음)
박인규 : 좋은 친구를 사귀셨네요?
문정훈 : 네. 굉장히..
박인규 : 김행균씨 같은 경우는 청년이..김종현이라는 분이 같이 가셨다고 하는데 두 분이 함께 5600M까지 가신 겁니까?
김행균 : 같이 올라가지는 못했습니다. GS 칼텍스에 근무하는 김종현씨가 제 멘토였는데 당시 야간 산행에서 앞, 뒤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깜깜한 상황에서 5천미터정도에서.. 제가 후미를 봤습니다. 제 멘토 종현이가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아서..제가 후미에서 물어봤더니, 아마 종현이가 도중에 고소증을 많이 호소해서..많이 뒤져있다고..한 400M정도에 있으니..저보고 걱정하지 말고 계속 올라가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올라가야 하나..우리 멘토와 함께 가야 하는데..멘토가 걱정이 돼서요.
박인규 : 바뀐 것 같네요?(웃음)
김행균 : (웃음) 잠시 5분 정도 쉬었다가..그런데 엄대장님께서 걱정하지 말고 계속 올라가자고 하셔서..일단은 저는 5600M까지 올라갔었습니다. 5600M부분에서 정상까지 부분이 암석덩이가 상당히 위험해서 아마 일반 분들은 충분히 가능한 지점이었는데 저는 양다리가 모두 불편한 상황이어서 조금은 힘들었습니다. 제 스스로도 올라가다가 사고라도 날까..다치기라도 하면 전 대원의 일정에 차질이 있을 것 같아서 여기서 목표지점을 잡고 멘토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종현이가 오지 않아서 그 곳에서 30분동안 해 뜨는 것도 보고, 추위에 떨면서..
박인규 : 해 뜨는 것을 보셨으면 야간에 가신 거네요?
김행균 : 그 전날 11시 반경에 출발했습니다.
박인규 : 엄대장이라고 하시는 분은, 엄흥길 대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김행균 : 네. 엄흥길 대장님이 당시 등반 대장이셨습니다.
박인규 : 결국 멘토를 하신 김종현이라는 젊은 청년은 못 올라오셨어요? 5600M까지?
김행균 : 제가 일출광경을 보고 5시부터 하산 길에 내려오다 보니까..5000M 지점에서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는 것을 봤어요. 그래서 제가 물어보니까..조금 고소증이 가라 앉았다고 해서..그럼 최선을 다해서 올라가보라고..저는 계속 우리 가이드와 하산을 했었고..
박인규 : 김행균씨가 체력이 좋으신 겁니까? 아니면 의지력이 강하신 겁니까?(웃음)
김행균 : 저도 잠시 고소증이 왔었습니다. 그런데 심하지는 않아서 바로 회복이 됐고요. 저보다는 아마 김종현씨가 조금 더 고소증에 민감했었던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문정환씨 같은 경우는 안치환 멘토와 똑같이 올라가셔서 같이 내려 오신 겁니까?
문정훈 : 아니요. 저는 4800M까지 올라갔었는데 저는 그 지점에서 고소증이 왔어요. 그래서 그 지점부터 내려오기 시작했고 안치환씨는 계속 저의 꿈을 갖고 정상까지 올라가라고 제가 부탁을 드렸죠.
박인규 : 그 곳에서 4000M 이상 올라가면 거의 알 수가 없군요?
문정훈 : 그렇죠. 그 때가 되면 멘토대원과 물론 구분은 있지만..저희가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할까요?그 고소가 누구에게 오는 지는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다 같이 내가 너의 멘토가 되어 줄 수도 있고..
박인규 : 말하자면 신이 점지 하듯이..? 저는 사실 제일 높게 올라가 본 곳이 백두산 밖에 없어서 2700M 이상은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런데 그 곳이 풍광이 아름답다고 하던데요? 어떻습니까? 멋있던가요? 위에 올라가 보니까?
김행균 : 네. 한 3000M 이상 올라가니 운해가.. 일출, 석양 때 구름을 감명 깊게 봤습니다.
문정훈 : 저희가 올라가는 중에는 전 대원이 거의 사진을 찍을 정도로..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었거든요. 그러면서 올라갔기 때문에..정말 좋더라고요. 경치라든가 이런 것들은..아까도 말씀 드렸던 만년설도 저희들이 최고봉은 뒷 편에 있어서 못 보고요. 만년설은 많이들 봤어요. 굉장히 아름답더라고요.
박인규 : 비록 정상까지는 오르시지는 못하셨지만, 자신의 체력이상으로 가실 때까지는 모두 가 보신거 같아요. 저 같은 비장애인들도 그런 곳에는 못 가는데..그러한 의지도 극복해 보고 다녀오신 후에는 무엇인가 삶에 대한 자세라고 할지..느낌이 달랐을 것 같아요? 어떤 것을 느끼셨어요? 김행균씨.
김행균 : 저는 가기 전에 사실 중도 장애인으로서 점점 살아가면서 마음이 나약해지는 것을 제 스스로 많이 느꼈습니다. 제 스스로 추스려도 안되고..그런데 이번 산행을 하면서..지금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느냐고..어느 때는 너무 자만심에 빠질 정도로..저에게는 살아가야 할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자신감뿐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일들 모두 할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문정훈씨는 어떠셨어요?
문정훈 : 많이 배웠지만 그 중에 말씀 드리자면, '아름다운 동행' 이잖아요? 장애 대원들이 비장애인만큼 산에 올라갔다는 것이 굉장히 뜻깊게 느껴졌어요.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고요. 장애인이야말로 정신력이 대단하다..고소가 와도 비장애인 못지 않게 정상을 향해 간다는 것이 대단했었고요. 또 우리 장애 대원들을 보면 멘토가 있는데도 멘토역할을 해주시는 장애대원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런 것들을 배울 점이라고 생각하고..저 또한 많이 불편하지만 남들을 위해 무언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많이 얻었기 때문에..이번 산행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는 정말 좋은 추억과 기억이 되지 않을까..더불어서 우리 한국에 많은 장애인들이 있잖아요? 제가 그 분들을 대표해서 올라갔기 때문에 정말 좋은 모습을 다시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생각합니다.
박인규 : 지금부터는 장애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말씀을 나눠보도록 하죠. 김행균씨 같은 경우는 마흔 살이 되실 때까지도 말하자면 비장애인으로 사시다가..어느 날 갑자기 철도에 떨어진 어린 아이를 구하시다가 장애인이 되셨는데..그렇게 중도에 장애인이 되셨다고 해서 중도장애인이라고 하더군요. 지금 두 발에 의족을 하고 계신데 어떻습니까? 걸어 다니시고 생활하시는데는..?
김행균 : 상당히 불편하죠. 예전 생활과는 전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불편한데..그렇다고 지금 현재 장애인 복지관에 출퇴근하면서 가장으로서 역할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소 어렵더라도..
박인규 : 지금 출퇴근은 차를 타고 다니십니까?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십니까?
김행균 : 지금 현재 부천에서 거주하고 있는데요. 버스와 전철을 이용해서 서울역까지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전철에서 다리가 너무 힘들고 아플 때..노약자 석에 잠시 앉아 있다가 몇 번 어르신들에게 혼이 난 적이 있어서..그런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박인규 : 차에도 장애인 표지가 있는데..문정호씨 같은 경우에는 3살 때 감염이 되어서 일 년동안이나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고 하는데..지금 보니까 굉장히 몸이 좋으세요? 거의 20년 이상을 장애인으로 살아 오셨는데 사시면서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위해서 이런 것들은 해 주었으면 좋겠다..그렇게 느낀 신 건 없으셨어요?
문정훈 : 많죠. 아마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의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많을 것 같습니다.
박인규 : 그 중에 한가지만 말씀해 주신다면?
문정훈 : 한가지요? 우선 저희 장애인들은 이동의 불편함이 가장 큽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이..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언어 장애인, 휠체어 장애인, 절단 장애인..그 분들의 이동수단이 굉장히 어려워요. 첫째 이동을 해야만 학교도 직장도 다닐 수 있는데..이동의 제약이 크다 보니까..많은 장애인들이 불편한 것 같아요. 저 또한 그렇고요. 저도 오늘 이 곳 방송국에 오는데 참 많이 어려움이 있었죠..우리 김행균형님도 어려움이 많으실텐데..그런 이동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이동..말하자면 지하철을 오르내리거나..얼마 전에 보니까 청계천을 만들었다고 해서 천만명이상이 보러 갔다고 하는데..저도 가 보았더니 휠체어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좁더라고요?
문정훈 : 그렇죠. 장애인들도 정말 문화생활을 즐겨야 하는데..청계천 공사하신 분들도 물론 똑똑하신 분들이 공사하셨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거든요. 굉장히 아름답게 잘 지어졌더라고요. 그런데 역시나..
박인규 : 지금 우리 나라에 장애인이 450만명..10%가 넘는다고 하는데..설계를 할 때 장애인 내지는 그 분들의 실상을 잘 아는 분이 참여했으면 그렇게는 안 됐을텐데..
문정훈 : 그렇죠.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저희로서는 좋죠.
박인규 : 킬리만자로의 산행을 마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희망봉에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곳이 굉장히 좋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경치가 좋던가요? 이름 자체가 봉이니까..어떠셨어요? 김행균씨는..?
김행균 : 남아프리카 공화국 희망봉..저도 말로만 들었던 희망봉이었습니다. 바닷가 남단인데요. 그 주위의 풍광도 아름다웠고..사실 킬리만자로의 등정을 마치고 희망봉에서 새해 소망..그것을 각자 소망을 적어서 풍선을 날리는..그 곳에서 모든 대원들이 사실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각자 소망을 적었고 저도 소망을 적었습니다.(웃음)
박인규 : 소망이 무엇이었는지 제가 여쭤보면 실례가 될까요?
김행균 : 저는..우리 가족..저를 아는 모든 분들..기억에 나는 분들이 행복하라고 하늘 높이..뿌듯하게 날렸습니다.
박인규 : 가족들이 평안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게..문정훈씨는 아직 총각이시죠?
문정훈 : 네.
박인규 : 시드니 장애인 올림픽에서 400M인가요? 메달도 따시고 지금은 마라톤에 도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본인 스스로 행복한 마라토너라고 자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문정훈 : 네. 저는 굉장히 행복하죠.
박인규 : 지금 마라톤 기록이나 성적을 물어보면 어느 정도인가요?
문정훈 : 제가 국내 마라톤 1위입니다. 세계 랭킹은 39위 정도 되고요.
박인규 : 기록이 어느 정도 되세요?
문정훈 : 1시간 33분 정도 됩니다. 풀 코스로요.
박인규 : 42.195 KM..휠체어가 뛰는 것보다 빠르군요?
문정훈 : 굉장히 빠르죠.
박인규 : 지금 국내에서는 챔피언인데 아직 세계에서는 39위?
문정훈 : 네.
박인규 : 조금 더 해야겠네요? 세계 기록은 얼마나 되요?
문정훈 : 세계 기록은 1시간 18분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그러면 이번 가서 희망봉에 가셔서 소원도 세계챔피언을 쓰신 겁니까?
문정훈 : 네. 세계챔피언 선수들은 남아공 선수들인데요. 남아프리카 공화국인데..굉장히 저희들보다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많이 좋아졌어요. 외국은요..스폰서라든가..여러 가지들이 좋아져서 장애인 선수들이 운동할 수 있는 여건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직장과 병행 하다보니까..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박인규 : 그럼 국내에서 휠체어 마라톤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가요?
문정훈 : 네. 많이 있습니다.
박인규 : 몇 분이나 계세요?
문정훈 : 지금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은 대략 3~40분 계시고요. 나머지 분들은 마라톤을 즐기시는 분들이 있고요.
박인규 : 그럼 지금 꿈은 세계 챔피언..남아공에 가신 것도 어떤 남아공 마라토너들의 전력 탐색을 위해서 가신 건가요?
문정훈 : (웃음) 글쎄요. 저도 갑자기 희망봉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어서 뜻이 깊었어요. 해외 챔피언 선수가 한국에 와서도 우승을 하고 갔는데..그 선수 생각도 나고요. 굉장히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박인규 : 한 분은 중도장애인이 되셨고, 한 분은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으로 살아 오셨지만 두 분 모두 표정이 너무 밝으셔서..사실 비장애인의 편견인지는 모르지만..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이번에 킬리만자로를 다녀오시고 나서 앞으로의 삶을 이런 식으로 꾸려갔으면 좋겠다라는 다짐이라든가..아니면 사회에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먼저 문정훈씨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문정훈 :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방송으로 특별 기획으로 나간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국민들이 보셔서 장애인들이 정말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구나..하는 것을 느끼셨으면 좋겠고요. 장애인도 비장애인 못지 않게 도움도 줄 수 있고, 행복도 줄 수 있고..그리고 대단한 삶을 살고 있다라는 것을 많은 국민들이 알아 주셨으면 좋겠고요. 많은 장애인들이 이번 방송을 보고 자신감을 갖고 사회에 좀 더 빨리 적응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박인규 : 장애라는 것은 몸이 약간 불편할 뿐이지..다른 것도 없잖아요?
문정훈 : 물론이죠.(웃음)
박인규 : 김행균씨도 말씀해 주시죠.
김행균 : 저는 새해에는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하지 말고 서로 기대면서, 의지하면서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박인규 : 혹시 곧 새해에 되는데..새해에 꼭 이루고 싶으신 계획이 있으십니까?
문정훈 : 새해에는요. 꼭 장가를 가야죠. 제가..세상에서 가장 예쁜 분과 사귀고 있는데요. 그 분과 꼭 결혼할 수 있도록..
박인규 : 챔피언이 되셔야지..
문정훈 : 그러게요. 제가 챔피언이 되어서 청혼을 하려고 했는데..(웃음) 새해에는 좋은 성적을 거둬서 제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를 할 수 있게 좋은 한 해가 됐으면 합니다.
박인규 : 장가가시게 되면 저에게도 연락을 주십시오.
문정훈 : 네. 그럼요.(웃음)
박인규 : 김행균씨는 새해에 특별히 하시고 싶은 계획이 있으세요?
김행균 :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한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인규 :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장애우들이 10%가 넘고 또 문정환씨도 말씀 하셨던 것처럼 약간 불편할 뿐이지 다를 것이 없는데 아직도 우리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 장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너무 인색하지 않았나..그런 생각이 들면서요. 사회에서도 장애인들에 대해서 노력을 하고 장애인 분들께서도 희망을 가지시고 자신있게 살아가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두 분 말씀 감사 드립니다.
김행균 : 감사합니다.
문정훈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에서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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