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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지구별의 맑은 영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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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바이칼, 지구별의 맑은 영혼이여!

김봉준의 '유라시아 문화기행' 〈9ㆍ끝〉

시베리아벌판을 지나더니
갑자기 땅이 꺼지고 물이 솟구친다.
드넓은 지평이 수평으로 뒤집힌 하늘 바다!
바이겔, 샤먼의 바다여!

동서남북, 유럽과 아시아
사방팔방에서 달려온 유목의 길도 더는 떠나기를 멈췄다.
기나긴 시련과 투쟁도 마침내 기쁨의 눈물이 되고 평화의 잉태가 되는
아시아의 천지, 풍요의 바다 샤만의 골에서 엎드린다.

무사히 대장정을 마무리 하고 당신을 만나는 기쁨에
그대에게 엎드려 얼굴을 묻고 입술을 대었다.
그대 속에 손을 담그고 우린 쌀을 씻었다.
그리고 정한수를 떴다.
이렇게 모두 살아서 달려와 그대 곁에 하루 밤 살림을 펼치니
가없는 하늘과 땅과 물과 불의 은혜여,
지구의 살림이여, 감사하나이다.

이제 지금 바로 여기 우리에게
드넓은 하늘, 드넓은 땅이 두 손 모아 맑은 물을 담아 두셨으니
애초에 하나였던 지구의 얼굴을 마침내 우리는 보았다.

바이겔이여, 우리에게 가르쳐 다오
오, 우리 교만한 인류에게
그대 맑은 영혼의 얼굴 보여 다오
인류 영혼의 빛, 지구의 눈물
바이겔이여!

바아칼이다! 대원들을 함성을 지르고 물속에 뛰어들기도 하고 홀로 감회에 젖기도 했습니다. 부산에서 바이칼까지 5700키로 유라시아대장정은 8월 8일 저녁, 흙길과 초원길을 달려서 하늘과 땅이 맞닿은 끝없던 지평선도 이젠 멈췄습니다. 맑고 찬 빛을 뿜는 환한 자연의 빛을 맞이하는 기분입니다. 염분기 있는 바닷가에 섰을 때와 또 다른 맑은 빛입니다. 이 때 기분을 무어라고 쓸까 하다가 서툰 시하나 썼습니다.

우리들처럼 그 옛날 무수한 동아시아의 유목족들도 가축을 몰고 이곳으로 모여들었을 겁니다. 이 바다 같은 호수를 보기위해 남 모르는 아픈 몸을 이끌고 왔으니 더욱 감격스러웠습니다. 혼자 눈물지었습니다. "모진 목숨으로 여기까지 왔구나!" 암 투병 끝에 이런 복을 누렸으니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1.동바이칼은 잔 자갈로 된 호숫가@김봉준

바이칼 호수 첫 야영지는 빠숄리스꽈웨 인근 조그마한 시골 어촌 호수가입니다. 우리 일행은 동·서팀으로 나뉘어 이르꾸츠크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열자, 유라시아 시대를! 만나자, 바이칼에서!"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만큼 우리의 목적지 바이칼은 이번 대장정의 마지막 코스입니다. 여기는 바이칼 호수 서쪽이고 여기서 330km를 더 동족으로 가면 목적지 이루꾸츠크시입니다. 거기서 260km를 동북방향으로 더 가면 알혼섬입니다. 바이칼 호수를 가로지르는 직선거리로는 50km에 불과 하지만 육로로 돌아가야 합니다.

바이칼은 호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서 수평선 아득한 바다 같습니다. 바다처럼 파도가 세찹니다. 여기는 해발 2,000m에 위치한 고산지대입니다. 이 높은 지대에 있는 바이칼은 세계 최대규모의 담수호입니다. 여기는 후빙기 이후 고인류족이 창과 활을 만들어 사냥을 해서 살았던 곳입니다. 수만년 전 것으로 보이는 세석기 돌조각이 무수히 나오는 것으로 보아 지금보다 숲이 무성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사냥감과 낚시감이 풍부하고 따듯한 온천물까지 솟아나는 바이칼은 추운 시베리아에서는 보기 드문 낙원일 것입니다. 이곳이 여러 종족의 발원지로 주목받는 것은 이러한 천혜의 기후조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곳곳에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 유물이 계속 발굴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빠쇼리스꽈웨 바이칼 호숫가를 홀로 걸었습니다. 길게 뻗은 수변 초지를 맨발로 걸었는데 그 추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잎이 짧고 두툼한 잔디 풀은 부드러워서 맨발로 걸을 때 촉감이 좋습니다. 나는 약 2km를 맨발로 걸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바이칼 호수가 있고, 왼쪽은 어촌이 펼쳐지고, 자갈밭과 백사장과 풀 잔디가 나란히 펼쳐지고, 간혹 방목한 소들도 만나고, 수초와 들꽃이 펼쳐지는 곳이었습니다. 맑은 물, 맑은 공기, 맑은 땅, 맑은 하늘이 있는 그곳은 인간에게도 저절로 맑은 영혼이 깃들게 할 것 같습니다. 바이칼은 정녕 지구의 맑은 영혼 그 자체입니다.

자연이 좋은 곳은 사람이 꼬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은 쓰레기가 쌓일 터이니 이 악순환을 바이칼에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지구 최고의 청정한 담수호까지 망친다면 더 이상 인간은 구제 받을 수 없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니는 곳곳에 벌써 쓰레기더미가 보입니다. 바이칼의 오염을 걱정할 때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일 이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고 서울이나 동경 같은 대도시가 건설하고 생활 오폐수와 산업 쓰레기를 이호수가에 넘치게 하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이야말로 지구의 환경은 종말에가 가까운 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솜털 같은 풀밭을 맨발로 걸으며 지구의 젖가슴을 즈려 밟고 가는 듯한 환상에 젖었습니다. 물위에는 노란 수초 꽃이 색종이를 흩뿌린 듯 퍼져 있습니다. 맨발로 거닐던 그곳에서 풀을 뜯는 소떼를 만나고 농부도 만나고 휴양 온 러시아 가족들도 만났습니다. 동바이칼 해변 길은 행복한 지구와의 데이트였습니다.

수변은 자갈밭, 그 다음은 모래밭, 그리고 다음은 풀밭, 때로는 작은 연못들이 어우러진 최고의 여름관광지입니다. 청정한 자연은 국가의 재산이기 이전에 지구의 자산입니다. 러시아는 이 깨끗한 자연을 보존할 의무가 있습니다.

2. 동바이칼 호숫가 초원지대

대원들은 오랜만에 수영도 하고 수구놀이도 하고 산책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아침이면 서둘러 떠났으나 오늘만큼은 이 자리가 아까워서라도 느긋하게 오후에 떠나기로 했습니다. 이루꾸츠크 도착은 8월 9일 오후로 계획을 조금씩 늦추고 바이칼 호숫가를 즐겼습니다. 점심까지 챙겨먹고 오후 3시 다시 힘찬 출발을 했습니다. 내일 이루쿠츠크로 들어가기 전에 하루 더 바이칼 호숫가에서 야영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두 번째 바이칼 호숫가 야영지는 발카이스크 주변입니다. 마땅한 야영지를 찾지 못해 경찰은 우리를 끌고 앞으로앞으로 자꾸 나갑니다. 요즘 여름 휴가철이라 야영지마다 다른 관광객들이 이미 차지하고 있답니다. 밤늦은 9시가 넘어서 겨우 야영지를 구했습니다. 텐트를 치고 조별로 식사를 마치니 그제서야 하늘은 캄캄합니다. 평화맞이 풍물패가 주관하는 바이칼 천지고사를 여기서 치르기로 했습니다. 시커먼 밤 11시 파도는 거칠고 비는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우리는 바이칼 검은 바다호수를 향해 쌀과 빛의 제단을 차리고 정한수를 떠 놓고 서울에서 가져온 쑥향과 조 껍데기 술로 의례를 올렸습니다. 모두들 시키지도 않는데 꼬박꼬박 삼배를 올립니다. 날더러 단장이라고 제문을 올리라 청하니 전날 빠숄리스콰웨 첫 야영지에서 써두었던 '바이칼이여, 지구의 맑은 영혼이여!'를 음송했습니다. 시제(詩祭)입니다. 사람과 신이 접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나는 시로 제문을 삼았습니다.

조별로 돌아가며 소회를 담은 즉석 송사도 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무사히 여기까지 온 것을 감사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바이칼을 향해 절을 올리는 의례를 하였습니다. 신심이 저절로 우러나게 만드는 것은 바이칼이 거대한 영험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경외해 마지않는 그 무엇입니다. 우리가 자연을 향해 어색함 없이 절을 하는 것을 보면 샤만의 문화는 아직도 우리 뿌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감격의 눈물이 되어 쏟아지는 듯합니다.

8월 9일 이르꾸츠크 가는 날은 흐리고 비 오는 날입니다. 마지막 달려가는 자동차 주행이라 더 조심스럽습니다. 달려가다가 시골 아낙들이 임시장을 펼치고 있는 길가 야시장에 멈췄습니다. 훈제한 오물 생선, 잣, 꿀, 머루, 보드카, 참외 등을 사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먹을거리 풍물을 체험 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햇반과 라면과 미역국에 질려 있었던지라 훈제 오물이 입에 당겼습니다. 비린내 나는 줄도 모르고 한 마리를 다 먹어치웠습니다. 명태보다 물컹거리고 비릿한 맛인데 먹을 만합니다. 머루도 먹고 잣도 먹었습니다. 잣은 우리 잣보다 알이 작아 씹는 맛은 적지만 차 안에서 심심풀이로 오래도록 까먹으며 달렸습니다. 이곳에서는 여름이 짧아 별다른 과일이 없습니다. 잣이 단연 최대의 과일입니다.

우리를 지역마다 릴레이식으로 안내하던 경찰차가 이르꾸츠크 150km가량 놔두고 사라졌습니다. 교대하는 차를 잠시 찾으러갔다 온다더니 1시간 이상 기다려도 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찰 안내 없이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이러다가는 약속 시간까지 도착하기 힘들 것 같아 단장 직권으로 용단을 내렸습니다. 처음 경찰차 안내 없이 달리는 시베리아 길을 지도만 보면서 갔습니다. 우리도 러시아 길에 어느 정도 익숙해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길은 이르꾸츠크로 통한다**

이르꾸츠크로 가는 날 8월 9일 오전 부슬비가 내리더니 행사가 시작되는 오후 4시에는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알렉산드르3세 광장에서 평화맞이 행사를 치르려고 계획했는데 비가 계속 와서 실내장소로 급히 옮기기로 했습니다. 예전에는 한번 정해진 방침은 변경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일본 중국 등 대국과의 행사에서는 통했지만 우리나라 같은 소국(?)과는 처음 이루어지는 급행행정이랍니다. 유라시아대장정팀은 가는 곳마다 종전의 러시아 행정 관행을 뒤흔들고 다녔습니다.

과거에는 그만큼 한국이라는 존재가 러시아에서는 미약했습니다. 유라시아대장정은 양국이 공인한 국제적인 행사이다 보니 지방 오지를 다닐 때도 영향력이 커져서 한국인의 교섭력도 그만큼 커지고 있는 샘입니다. 한국의 위신이 높아지면 여기에 사는 고려인(재러한인)의 권익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르꾸츠크 TV방송도 카 퍼레이드 현장을 기록하느라 분주합니다. 방송국 스튜디오에서는 러·한유라시아대장정팀 중에서 고려인, 한ㆍ러 의원, 동·서 랠리대장들이 참석하여 공동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러시아 기자들은 왜 자동차로 러시아를 대장정 했으며 바이칼로 온 이유를 궁금해 합니다. 우리들은 러시아인과 한국인이 함께 2차세계대전 종전 60주년 및 한국 해방 60주년을 기념하여 평화와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서 대장정을 했으며, 바이칼은 아시아 고대문화의 시원지이자 인류문화와 지구자원의 보고라서 공부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동과 서 시베리아에서 온 자동차대장정은 알렉산드르3세 광장 앞에서 극적인 회동을 연출했습니다. 서울에서 전세비행기를 타고 이르꾸츠크로 직접 날아온 200여명의 한국인과 이르꾸추크 시민들이 우리를 지켜보았습니다. 뜨거운 박수소리가 차창의 세찬 비 소리에도 묻어 들어옵니다. 이르꾸츠크 TV 방송이 이 장면을 러시아에 방영했습니다.

8월 9일 오후에 주청사 강당에서 펼친 유라시아대장정 이르꾸츠크 주정부 공식 환영행사는 주지사의 환영사가 주목을 끕니다.

"예전에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고 했었지만 이젠 모든 길이 이르꾸츠크로 통합니다. 유라시아 내륙 길의 교툥 요지입니다. 더군다나 이곳은 관광자원,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입니다. 또 이곳은 고대문명의 발원지입니다. 유서 깊은 이르꾸츠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용기 있는 한·러의 유라시아대정 성공을 축하합니다."

공식 행사에서는 정치인들이 전면에 나섰습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박계동 의원, 이화영 의원은 시베리아의 경제개발과 한·러의 정치 협력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중요한 시대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사실 이번 자동차로 달리는 유라시아 대장정은 한·러의원들이 먼저 주동이 되어 제의한 것입니다. 여기에 MBC방송국과 유란(유라시아 네트워크)이 공동 사무국을 꾸리고 문화예술인들이 가세하면서 구체적인 기획을 하게 됩니다. 협찬에 현대자동차, 삼성, SKC 등이 참여하여 대규모의 대륙횡단이 가능해졌습니다. 바이칼 비행기로 한국에서 날아 온 사람들 200명까지 합치면 300명의 대규모 여행사절단이 되었습니다. 동시베리아 장정 전 구간을 동행한 평화맞이 풍물패, 바이칼 천지굿에 초청된 이애주 춤패, 김매물 만신 굿패, 그리고 현지 러시아 민속무용단, 몽고와 중국에서 온 샤만 굿패까지 합치면 약 500명이 넘는 대규모입니다.

3. 한러유라시아문화포럼을 마치고

우리는 다음날 8월 10일, 당초 계획대로 바이칼 포럼을 정치·경제·문화로 각각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개최하고 각 전문적 관심분야별로 참석하였습니다. 나는 문화포럼에 참석하였습니다. 장소는 이르꾸츠크 국립대학 도서관이었습니다. 3부로 나누어서 1부는 '시베리아 고대문명', 2부는 '시베리아의 현재적 이해', 3부는 '유라시아의 문예부흥'으로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발제와 토론을 하였습니다. '바이칼의 아시아 고대인에 의한 진화'를 발표한 러시아 고고인류학자 슈닌은 바이칼의 고대사를 발굴한 유물을 기준으로 분류했습니다.

현대 바이칼과 관련된 연구가 가장 잘 된 것은 매장자료에 기초한 문화연대표라고 합니다. 바이칼을 방사탄소 연대표기법 자료로 기원전 7,000년 중석기 단계부터 17세기까지 분류해 놓았습니다. 그에 의하면 바이칼 남쪽 해안에서 기원전 6,000년전에 이미 묘지 샤만카(여자 샤만)의 시신 매장형식인 등 쪽으로 구부러진 다리의 시신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오늘날 부랴트족은 2천년 전 프레드 바이칼 영역에 살던 몽고어를 사용하는 종족으로부터 나왔다는 최근 주장을 인정하면서 에벤키족과 고아시아족의 매장양식과 출토 유물에 나타나는 특징을 소개했습니다. 현대에 다수를 차지하는 부랴트족은 에벤키와 그의 조상인 토팔라르족, 야쿠트족, 두빈족 등 시베리아 인종에 의해 정신적 물질적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주채혁 교수(강원대, 역사학)는 우리 민족이 이곳의 유목족에서부터 왔다는 논거를 고려와 조선의 어원에서 찾았습니다. 고려는 몽골어 고리(Qori)와 같고, 이 말은 순록이란 뜻이랍니다. 산야에서 이끼를 뜯어먹고 사는 순록을 주식으로 삼는 유목민족이 고려라고 주장합니다. 고려의 고자는 시베리아 산지대로 순록을 목축하며 살던 부족이란 것입니다. 순록은 스텝-타이가- 유목초지 전역에 걸친 유목가축인데 순록 록(鹿)자에서 고려 려(麗)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조선은 원래 찾을 조(朝), 이끼 선(蘚)이었답니다. 이끼를 찾아가는 순록을 키우는 종족이라는 뜻이지요. 아침朝 깨끗할 鮮자로 조선의 뜻이 바뀐 것은 주자학적 훈고주의 영향이랍니다. 나라의 체면에 짐승을 나라 이름의 상징으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조선 때 이름 개념과 다르게 관념적 의미로 바꿨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북아시아 스텝-타이가-툰드라 지대에 부족은 예외 없이 수조신화(獸祖神話)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시조 국명이 유목사적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논지를 폈습니다.

우실하 교수(항공대 교양학부)는 아시아 유목족의 성수개념은 삼수분화사상이라고 주장하며 성수 3의 제곱수 9는 북방 샤만이즘의 고유한 것이라고 말하며 중국북방에 소수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어원커족(러시아의 에벤키 족과 같음)의 사전에 있는 아리랑 말뜻을 소개했습니다. 에벤키족의 아리랑과 쓰리랑 어원이 우리와 같은 것은 동류족의 유목족이기 때문에 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고대문화사상을 연구하는 것이 단지 고대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로부터의 빛'을 받아 20세기 문명의 한계를 넘어 설 동방의 횃불을 찾자는 것이라며, 서양은 그들 문명의 한계에 이르자 '그리스 로마문명'의 오랜 전통에서 르네상스를 통해 새롭게 재구성 해냈듯이 아시아는 동북아의 '고대로부터의 빛'에서 '동방의 르네상스'가 시작될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이번 유라시아대장정 추진위원회에 고문으로 계시는 김지하 시인은 일찍이 유라시아대장정 팜플렛 서문에 '동방의 르네상스'론을 다음과 같이 펼친 바 있습니다.

"유라시아시대를 열자 함은 내면적 영성과 외면적 생명의 문명, 곧 에코 디지털 문명이니 이것이 동방의 르네상스요, 유라시아를 여는 생명과 평화의 길이다."

이길주 교수(배재대, 러시아학)는 시베리아 유배문학의 효시인 17세기 정교 사제 아바쿰의 〈아바쿰 자서전〉을 소개합니다. 그에게 유배 9년의 시베리아는 온갖 박해 속에서 보낸 지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귀환 명령을 받고 난 후 그의 눈에 비쳐진 바이칼호와 시베리아는 풍요의 땅, 아름다운 자연으로 변합니다. 19세기 도스또옙스끼와 똘스또이 등 러시아 문호들의 작품 속 주인공들도 시베리아 유형을 통하여 거듭납니다. 러시아문학의 한 특징, '유배 속에서 재생의 역설'은 바이칼과 시베리아의 자연에서 찾은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춘원 이광수의 말년작품 〈유정〉도 시베리아와 바이칼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그곳을 약소민족의 부활과 상생의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생명력을 확산시키는 유토피아적 대지로 시베리아를 보았던 것입니다.

이홍규 교수(서울대 의대교수, 바이칼 포럼 회장)는 한국인과 시베리아인들의 유전적 연관성을 DNA 연구를 토대로 설명하면서 한국인의 주류는 전형적인 몽골로이드의 유전형으로 추정된다고 하고 일부는 남방을 통해 온 원주민들의 유전형이라고 소개하고 알타이 언어권 형성도 중앙아시아의 북방문화와 남방계가 융합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유전적 해석과 잘 부합한다고 합니다.

E.I. 리쉬또반느이(이르꾸츠크대학 부총장)은 러시아가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독특한 문화양식을 지닌 중간대륙이라고 설명합니다. 유라시아 개념은 다양한 견해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러시아 국내적 개념으로서 유라시아가 있고 국제적으로는 주변국과의 관련 속에서 본다고 합니다. 국내적으로도 자체적인 유라시아 중심지역들- 카스피해 지역, 중앙아시아지역, 시베리아 지역이 존속한다고 보며 동시베리아도 그 하나로 봅니다. 러시아는 그 자체로도 유라시아이며 반도나 도서 국가까지 그 관계가 연관된다고 말합니다. 역시 대국이니까 슬라브 중심주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슬라브주의는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유라시아성을 담보하기는 빈약한 대슬라브 국가주의에 불과합니다. 이런 까닭에 앞으로 미래 지구촌은 대국들인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의 국가관과 세계관 여하에 따라 크게 좌우할 것입니다. 러시아가 슬라브주의의 한계를 넘어 유라시아 이념을 내세우는 정치철학이 요구됩니다. 지금 러시아 일각에서는 유라시아당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이 정말 잘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념들은 그 광활한 대지들과 그 속에 살아온 다양한 인류족들을 다스리기에는 너무도 이념의 폭과 깊이가 빈약합니다.

김영래 재야 학자(좌계학당 대표)는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은 대부분'푸른 하늘' 천신을 최고신으로 삼는 오랜 관습을 지니고 있다고 하면서 고래신화를 중심으로 유라시아 평화의 신화로 풀었습니다. 한국의 신화 책 부도지에 의하면 최초의 인류는 마고지에 살았습니다. 전쟁과 기아, 갈등과 다툼이 없는 지상낙원이었는데 이렇게 된 까닭은 이곳에서 지유(地油)가 흘러나오고 이를 사람이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래 젖'이라고 봅니다. 울산반구대 암각화가 대표적인 증거라고 소개합니다. 동북대륙에 나타나는 동물 고래 신화소에서 평화의 신화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끝으로 서로 질의응답과 토론을 하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한·러 학자들이 모두 바이칼 주변을 고대문화의 발원지로 이해한다는 사실이며, 시베리아는 고대 유라시아문명의 모태라는 점과 미래에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는 유라시아의 지역적 연대의 필요성에 공감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서울에서 초안을 잡아 가져온 '유라시아의 빛'선언을 돌려보며 알혼섬에서 채택하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문화포럼 내용에 대체로 만족합니다. 앞으로 유라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논할 때 보다 다양한 연구가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유라시아학이 나와서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계속되길 바랍니다. 러시아 내적 유라시아성과 구제적 유라시아성은 다릅니다. 러시아와의 친선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각 국가는 자국 중심적 이기주의가 커서 앞으로 유라시아성을 공유해 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유라시아대장정은 평화적 민간교류의 한 방식입니다. 앞으로 한·러 민간 문화교류는 시장공유와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진척되기를 바랍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공동연구·탐사는 물론이고 문화예술교류도 활성화되어 20세기적인 잔재인 냉전시대문화를 실질적으로 극복하는 변화에 기여하길 바랍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대륙과의 문화교류는 지금 첫걸음을 밟고 있을 뿐입니다.

이르꾸츠크 역사박물관이 포럼을 하는 바로 길 건너편에 있어서 우리는 그곳으로 이동해서 박물관 유물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고대 세석기 유물과 토기, 동아시아 민속 유물이 조금 보이다가 러시아 슬라브족의 동방개척시대 유물과 사회주의 시대 유물 등으로 절반 이상이 채워져 있습니다. 동아시아족의 역사는 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박물관을 지배하는 정신문화는 슬라브족의 동방지배를 정당화는 데 치우친 것 같았습니다. 브랴트 공화국이나 치타주의 그것보다 훨씬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4.이르꾸츠크 박물관에서 발견한 불을 지키는 '불의 신상'

***알혼섬의 바이칼 천지굿**

다음날 우리는 바이칼 호숫가를 달리는 환 바이칼 철도를 따라 열차관광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슬류잔까에서 시작해서 뽀르뜨 바이칼까지 연결된 154km 철길입니다. 가파른 해변가를 타고 가다가 작은 역에서 내려서 자연과 풍물을 구경하며 가는 관광인데 한나절 코스입니다. 러일전쟁 때 포로로 잡힌 일본군인들을 부려서 터널을 뚫었답니다. 경치가 수려한 관광코스입니다.

이 다음날, 8월 12일은 알혼섬 가는 날입니다. 우리 대장정의 마지막 코스입니다. 그곳에서 바이칼 천지굿을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하였습니다. 나와 문화포럼에 참가한 일행은 방송국 촬영을 위해 빌린 헬리콥터를 탈 수 있는 큰 행운을 가졌습니다. 바이칼을 높이 올라서 내려다보니 흡사 독수리가 된 기분입니다. 날씨가 맑아 먼 거리까지 잘 보입니다.

가다가 들린 작은 마을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는데 그곳의 오랜 버드나무와 시냇가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청정한 마을 개울가입니다. 알혼섬 맨 끝인 하보이 곶(이빨같이 생겼다하여 이빨 곶)까지 날아갔는데 이곳도 고대부터 샤만의식을 하던 돌탑과 샤만 나무가 있습니다. 고아시아인의 유물이 발굴된 유적지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고대 유적지가 있음직 하다는 곳을 몇 군데 더 내렸으나 별다른 흔적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어느 무덤가에 헬기가 착륙했는데 배산임수의 터에 오래된 묘터가 있었고 그곳에서 돌무더기에 둘러 쌓인 작은 목관과 뼈들을 보았습니다. 작은 목관으로 보아 뼈만 추려서 묻은 2차장 풍습의 고아시아족의 장지입니다. 고대에는 제단이기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다시 헬기로 올라탔습니다. 브랴트 원주민 아이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5. 하보이곶, 돌탑이 즐비하다.

알혼섬은 몇가지 아주 특별한 수식어가 따라 붙습니다 '고아시아족의 발원지' '샤마니즘의 성소', '태초의 원시 자연', '징기스칸의 태생지' 등 바이칼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곳입니다. 알혼섬은 남서에서 북동으로 길게 초생달 모양을 하고 있어서 바이칼과 같은 모양새를 이룹니다. 섬 길이 71.7km, 너비 14km, 해발 높이 1274m이고 이르꾸츠크에서 250km 거리를 달리면 섬으로 가는 선착장에 당도합니다. 알혼섬은 섬 전체가 샤만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곳입니다. 6~10세기경으로 추정되는 고분과 벽화와 샤만의 유물이 아직도 출토되는 곳입니다. 최근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우리가 가는 후조리 마을은 8월 달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게 되었답니다.

우리는 마지막 바이칼 천지굿을 하려고 알혼섬 후조리 마을 호수가에 터를 잡았습니다. 미리 가서 행사를 준비한 박흥주(바이칼 천지굿 연출), 김성진(행사팀장), 전은주(바이칼 사무국)씨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후조리 마을에서 10분을 걸어 나가면 샤만의 바위로 이미 명소가 된 브루한 바위가 있습니다. 부르한 바위는 사회주의체제 전에도 샤만이 매년 여기서 굿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 또 다시 동아시아족들이 모여들어 굿을 하고 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굿을 하기 전에도 몽족인들이 중국과 몽고에서 와서 굿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전기불 밑에서 최초로 굿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름 관광 성수기를 맞아 우리 유라시아 대장정 일행 300여명 말고도 러시아 현지인과 유럽 관광객들로 바글바글 했습니다. 알혼섬 후조리 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큰 굿판이 펼쳐진 것입니다.

6. 바이칼 천지굿 제단에 촛불을 밝히는 장영달 공동추진위원장

굿당을 설치하고 나니 밤이 늦어 어두워졌습니다. 처음 계획은 러시아 샤만인 이 지역 브랴트족 샤만을 불러서 우리 황해도굿과 합굿을 하려 했으나 이곳 샤만도 관광철이라 유럽 일정이 잡혔다고 나가버리는 바람에 다른 샤만을 찾다가 몽골 샤만에게 부탁했습니다. 중국 내몽골과 몽고에서 각기 샤만들이 이곳으로 굿을 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우리의 청을 받아 합굿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합굿이 어려웠는데 오히려 더 큰 굿을 하게 되었습니다. 명실상부한 최초의 동아시아 합굿을 바이칼에서 치른 것입니다. 우리는 유라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며 큰 굿을 치렀습니다. 몽골 샤만들이 먼저 굿을 하고 황해도 김매물 무당이 굿을 하고 이애주 님이 춤굿을 하고 마지막으로 샤만의 띠 줄을 붙들고 대동굿으로 러시아 민속춤과 우리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놀았습니다. 그래도 성이 안 차는 사람들을 이애주 무용가는 이끌고 호수가로 나아가 모두 물속에 텀벙 들어갔습니다. 평화의 아리랑을 부르며... .

7.바이칼 천지굿-몽골샤만굿

8. 바이칼 천지굿- 최초로 펼친 황해도 만신굿

나는 왜 '유라시아의 빛' 천지굿을 기획하였는가. 이때 심정을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살고픈 인생 얼마나 남았는가. 나와 뜻을 같이하던 벗들과 오부진 굿판 한번 벌리러 간다. 우리는 그렇게 천대받고 멸시받던 굿을 공부하는 굿쟁이들이다. 과연 굿은 미혹이고 야만인가. 아니면 생명과 무생명의 영혼을 소통시키는 상생의 문화인가, 살림의 영기화생을 기원하는 평화의 문화는 아닌가. 동아시아 샤만의 큰 굿 한판 푸지게 벌리련다." 나와 오랜 굿쟁이 동지들 박흥주와 김원호, 그리고 이애주 누님은 이런 뜻으로 의기투합해서 유라시아 샤만굿 바이칼 천지굿을 펼친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을 떠나기 전에 정말 마지막으로 부르한 바위에서 송별 굿을 했습니다. 김매물 만신과 이애주 춤꾼이 교대로 한 송별굿은 진정어린 작은 굿이었습니다. 나는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이번에 유라시아대장정 문화협력위원장, 천지굿 예술감독, 동시베리아 단장 등의 일을 한거번에 떠맡느라 심신이 지쳤습니다. 책임감에 짓눌려 제대로 자유로운 여행을 못한 것 같았습니다. 이제 내 역할은 거의 다 끝났습니다. 돌아와서 기행문을 쓰는 것으로 마지막 책임을 놓으렵니다. 그동안 협조해주신 모든 대원들, 그리고 문화포럼과 바이칼 천지굿 등 문화행사를 함께 했던 문화예술인들 그리고 현지 교민들, 러시아 사람들 모두 감사합니다. 그동안 행사 중 크고 작은 불편과 불만이 있었을 줄 압니다. 끝까지 협력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유라시아대장정 추진위를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동서 시베리아를 달려서 이루꾸츠크까지 11,000km를 달렸습니다. 서시베리아 구간 18명(러시아인 8명, 한인 10명) 동시베리아구간 45명(한인40명, 러시아인 5명, 재미동포 1명)이 바이칼까지 마주 달려왔습니다. 두 구간 중에서 자동차 주행거리는 어디가 길까요. 지도상으로 보아서는 당연히 모스크바에서 달려온 서시베리아 구간이 더 길 것으로 보입니다만 자동차 주행기록판은 동시베리아 구간이 약간 더 길었습니다. 한국에서 달려온 구간과 동시베리아의 비포장의 굽은 길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거기다 동해에서 배로 차를 싣고 온 구간은 빠졌으니 동쪽 구간이 더 깁니다. 동시베리아는 5700km가 넘었습니다.

한·러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엄두를 못내는 대장정을 먼저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힘을 만들어낸 한·러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정리를 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합니다. 코사체프 러시아 하원 외교분과위원장, 유보미르 러시아 하원의원, 빅토르 차 한러문제연구원 원장, 한국의 장영달ㆍ박계동ㆍ이화영ㆍ고진화의원, 정태익 전 러시아대사, 무용가 이애주, 김봉태·박정근 유라시아대장정 사무총장, 유정희ㆍ박민진ㆍ김성진 팀장 등에게 이 지면을 빌려 특별히 감사를 드립니다.

9. 서바이칼 호숫가 마을에서 같이 사는 아이들, 아시아족과 슬라브족 아이

험한 동시베리아 구간을 무사히 마친 것은 무엇보다도 랠리전문가- 이광태 부대장, 김영준, 야영전문가- 박승한 랠리대장, 곽민호씨, 자동차정비 전문가- 신동광 현대자동차 정비기사, 그리고 통역을 맡아 안내한 동북아평화연대 연해주 사무팀의 중국 동포 개냐와 러시아 무역사업을 하는 이광식씨, 그리고 지치고 힘들 때마다 힘을 북돋아 주었던 김원호를 비롯한 평화맞이 풍물 팀, 동북아평화연대 연해주 사무국 사람들의 노고가 컸습니다.

대장정 고난으로 잡음도 있었습니다. 비판을 앞세우는 날카로운 지식인들도 있고 전체의 안전과 화목을 위해 묵묵히 자기 일을 수행하던 일꾼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누구는 강력한 지도력과 조직력으로 이끌기를 요구했으나 나는 그렇게 대원들을 지도자 중심으로 끌고 갈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서로 각자 알아서 자기 일을 하면서 하나는 전체, 전체는 하나와 소통하는 '영혼 민주주의'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길고사, 길굿은 진행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2005년 한ㆍ러 유라시아대장정은 21세기 시베리아횡단을 외국인으로서는 처음 자동차로 주파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시베리아 벌판을 가는 곳마다 한·러 깃발을 휘날리며 민간외교사절단의 역할을 했습니다. 러시아 전역에 TV로 소개되면서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MBC방송은 특집 방영을 하면서 21세기 실크로드를 개척했다고 평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한·러 수교 15년이 되었지만 아직 러시아나 한국이나 민간에게는 생소한 두 나라의 거리를 가깝게 좁히는 데 기여한 것이 분명합니다. 특히 고려인이 앞장서서 그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아쉬움도 많고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여러 가지 한계 안에서 그래도 성공적으로 끝을 낸 '유라시아대장정2005'입니다.

***유라시아 길을 되돌아보며**

20세기는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류평화가 무너졌다면 21세기는 민족, 지역, 종교 간에 분쟁으로 평화가 무너지거나,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주의와 서구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팽창에 따른 저항과 갈등이 전쟁과 위기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유라시아의 빛'은 서구 열강의 팽창주의와 종족 간 분쟁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이곳 동아시아에 전운이 감돌지 않도록 민간인들이 앞장서서 평화의 문화를 구상하자는 상징적 행위인지도 모릅니다.

'동방의 르네상스'는 한민족의 꿈이자 동아시아의 꿈일 수 있습니다. 이 꿈은 막연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민족 평화통일의 발판이자 통일의 완성과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와 중국과 같이 다민족이 공존하는 대국들이 모여 있는 이곳 동아시아에서 서아시아처럼 종족 간 분쟁지로 번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종족 간에 문화적 특징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다민족문화의 공생적 시민사회를 형성하려는 서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는 바이칼과 시베리아를 돌아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대혼돈의 시기에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곳은 러시아인, 중국인, 남·북의 한국인, 일본인은 물론 유럽과 아메리카의 젊은이들이 찾아와서 신인류문명을 모색하고 사색하는 순례지, 또는 학습지역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대 아시아족의 자연 친화적 지혜, 칭기즈칸 대몽골의 유목적 문화, 시베리아의 원초적 사유체계인 샤마니즘, 슬라브족의 용맹한 개척정신, 스탈린 치하에서 혹독한 시련을 이기고 생존한 고려인을 비롯한 소수종족의 재생의 정신으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항시 인간의 오만을 꾸짖고 깨우쳐 주었던 시베리아 대자연은 유배가 곧 거듭남이었던 깨달음의 원형지 같은 곳입니다.

러시아의 동방 진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는 이제 시베리아 철도(TSR)가 한반도를 관통하여 부산항까지 닿고, 시베리아 횡단 고속도로는 건설 현장을 달리면서 보아 왔듯이 2010년이면 완공될 것이고, 이르꾸츠크 앙카라스크 유전에서 연해주 핫산까지 가스관이 이미 와 있고, 이것이 북한을 통과하여 남한과 일본으로 이어져 유라시아의 유통·에너지 프로젝트는 완성될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경제지도를 바꾸어 놓기에 충분한 초대형 프로젝트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여기에 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북한이 이 프로젝트에 합류한다면 동북아경제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 올 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평화통일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동아시아는 한반도의 평화보장 위에서 만이 이 거대한 경제협력 시스템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도 앞으로 있을 동북아경제시대에 주도권을 쥐기 위한 힘겨루기 측면이 강합니다. 미국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확대하려 합니다. 러·중·일도 뒤질 새라 경쟁이 치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입장은 특히 주목됩니다. 러시아는 한반도의 통일을 일관성 있게 지지하면서 연해주에서 동아시아 어느 민족보다도 고려인과 한인의 진출을 바라고 있습니다. 얼마 전 푸틴이 노대통령의 요구대로 중앙아시아에서 다시 이주해온 고려인에게 영주권을 주기로 한 것도 큰 진전입니다.

러시아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실지회복을 바라고 있어 국경분쟁 소지를 경계하고 있으며, 일본은 북방도서지역 분쟁이 남아 있고 2차세계대전의 전쟁 당사국이라서 의심을 늦추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작고 중립적인, 그리고 고려인이 자국민으로 거주하고 있는 코리아에 대해서만은, 적어도 연해주에서는 우호적입니다. 한국인에게만 50년 토지임차를 허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동북아의 정세는 냉전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평화질서를 찾아야만 하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그래야 동아시아 국가는 서로 윈윈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륙으로 통하는 물류유통망과 시베리아 에너지와 지하자원 확보는 동아시아 4대국이 모두 바라는 바입니다. 여기에 미국이 핵협상을 주도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놓지 않으려는 시기로 매우 중차대한 시점입니다. 이곳은 어느 한 쪽의 패권이 일방적으로 관철되기 어려운 군사강국들의 지역입니다. 대륙 간의 교류가 언젠가는 활성화 될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언제 누가 어떤 방향으로 영향력을 쥐고 끌고 갈지에 따라 동아시아의 운명이 결정되리라 봅니다.

이런 시대적 전환기에 대륙으로의 물꼬를 한·러가 먼저 주도적으로 터 나가보자는 뜻에서 유라시아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감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은 이에 미치지 못합니다. 대륙과의 소통은 북한 돕기나, 북한 바로알기와 다른 것입니다. 냉전의식의 덫에 걸려서 20세기 내내 해양문화와의 교류에만 치중한 나머지 우리는 섬나라처럼 살았습니다. 분단 60년은 대륙과 단절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문화의 뿌리가 대륙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실증사학을 내세운 사학계 거두 이병도 박사가 타계 직전 과거에는 단군조선을 사실이 아닌 신화로만 간주하다가, 친구인 재야사학자 최태영 박사와 국사찾기협의 회원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참회하고 "단군은 실존의 우리 국조이며, 역대왕조가 단군제사를 지내왔으나 일제 때 끊겼고, 삼국사기 이전의 환단고기 등 고기의 기록을 믿어야 한다."고 1986년 모 일간 신문 머리기사에 실린 사실이 있답니다. 조선의 중화주의, 일제 식민주의, 해방 후 사대주의의 결과는 대륙문화 암흑기였습니다.

유라시아대장정 동시베리아 길은 동해로 돌아서 흥안령산맥 북쪽으로, 다시 동진하여 바이칼에 이르렀으니 옛 고조선의 외곽 지역을 빙 돌아서 온 셈입니다. 반만년 전 고조선 초기 국경은 북으로 대황(흑룡강 흥안령 산맥), 서는 설유(몽고 훈육), 남은 해대(중국 산동성), 동은 창해(한반도 동해)까지였다고 규원사화는 전하고 있으며, 그 후에 영역의 부침이 있었습니다. 조선의 수도는 왕검 단군 때 세 번 옮겼으며(백악산 아사달〈길림성 돈화, 소밀성〉. 요녕성 환도산성. 장당경〈황해도 문화현〉) 그 후로 2세 부루 단군 때(환도산성), 22세 색불루 단군 때(요동 험독현 창려), 34세 오루문 단군 때(낙랑홀, 지금 평양), 44세 구물 단군 때(장당경) 각기 천도하였습니다. (환단고기, 규원사화 참조) 우리는 고조선과 근친한 동이족들의 유적들도 살피면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하나의 문화권인 샤마니즘 문화가 있었던 사실도 확인하게 되었고, 동이족의 후예가 아직 거기 살고 있음도 알았습니다. 

10. 단군상. 필자가 빚어서 〈세계 생명문화포럼2004〉에서 전시

유라시아대장정 2005는 4월부터 사무국과 추진위로 출발하여서 오는 12월 23일 대장정에 참여한 회원들 뒤풀이로 마감할 것입니다. 서시베리아 구간 기행문은 그곳을 여행한 누군가 정리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제가 지나온 동시베리아구간 기행문은 이것으로 끝마치렵니다. 유라시아 문화기행은 아쉽지만 반쪽인 동시베리아 구간 기행문으로 마감하렵니다.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한해가 또 저물고 시베리아는 다시 흰 눈보라로 변했을 겁니다. 나는 저 시베리아 대륙을 향해 두 손 모았습니다. 내가 누웠던 바이칼 호수가도, 마고차의 비행장 활주로도, 아무르강도, 우정마을도, 핫산 앞바다도 이제는 꽁꽁 얼어 있을 것입니다. 시베리아의 자연과 문명이 다른 지역보다 청정하게 느끼는 것은 동토의 계절이 길어서 '냉동의 신선'을 오래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 신선한 땅이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자 지구의 소중한 자원으로 다시 떠오릅니다. 부디 시베리아가 인류문명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지구의 특별한 성지로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인류와 자연의 영혼이 오래된 내일로 이어져 간직되기를 빌면서 끝으로 그곳을 향해 시제(詩祭)를 올립니다.

시베리아 벌판을 향해 엎드려 빕니다.
바이칼, 맑은 물의 영혼이여, 시베리아, 대지의 영혼이여,
웅혼한 모습 거룩한 용모를 보여 주시니
나는 가없는 복을 받았습니다. 다시 돌아와서도
그대 맑은 영혼을 간직하며 살렵니다.

그대, 샤만의 영혼이 단군의 굿과 다르지 않음을,
그대, 자작나무 숲의 정령이 진밭골 숲의 새소리와 다르지 않음을,
그대, 거대한 호수의 얼굴이 섬강의 서기와 다르지 않음을
깨우쳐 준 시베리아 대지의 영혼에게 시제를 올립니다.

그대들 맑은 영혼이 내 안의 영혼과 태초부터
하나로 통하고 있음을 알았나이다.
살아 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와 비존재가
생명과 무생명이
서로 영혼이 소통하는 것이기에 하나임을 알았나이다.
이 길이 그 길과 다르지 않았나이다.

저무는 해에 지구별을 우러러 빕니다.
나 여기 지구별에서 살고지고 하는 것만으로 감사하나이다.
거룩합니다.
바이칼이여, 지구의 맑은 영혼이여!
지구별이여, 우주의 푸른 영혼이여!

강원도 원주 문막 진밭화실에서
을유년 동지 섣달
김봉준 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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