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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씨와 YTN은 다시 말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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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씨와 YTN은 다시 말해보라

〈진단〉 '황우석 논란'의 진실에 명암 갈린 언론계

'충격과 경악'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언론은 황우석 신드롬의 몰락을 표현하고 있다. 솔직히 그동안 주로 〈프레시안〉을 통해 관련 기사를 읽어 온 필자로서는 충격이라기보다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예상된 결과지만 그래도 믿기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4일 〈YTN〉 보도, 마치 범죄 현장을 보는 듯**

필자는 이번 황우석 줄기세포 의혹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서 받은 또 다른 충격을 말하고 싶다. 지난 12월 4일 〈YTN〉이 단독보도라는 문패를 달고 쏟아낸 일련의 보도다. 마치 범죄가 일어나는 현장을 보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독자적인 취재도,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려는 노력도, 취재원 발언을 비판적으로 되묻는 시도도 전혀 없었다. 애초에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않은 것이 분명한 보도였다.

〈YTN〉 취재팀이 안규리 교수팀과 홀로 동행했을 때부터 나기 시작한 냄새가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공개적으로 〈YTN〉의 미국현지 취재는 진실을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다는 걸 고백하는 보도였다. 현지에 불과 10시간 머물면서 〈PD수첩〉에 인터뷰한 젊은 공학도의 발언을 뒤집은 〈YTN〉은 그 모든 책임을 〈PD수첩〉의 부적절한 취재에 돌리려는 황교수 사단의 정치와 언론 조작에 기꺼이 동참해 온갖 자극적인 용어를 동원해가며 증오를 선동했다.

〈YTN〉은 여론을 '황우석 편이냐, MBC 편이냐'로 나눠 놓고 한 쪽 편을 악의 근원처럼 몰아쳤다. 황우석 기관지 역할을 우쭐대면서 자청한 〈YTN〉은 언론이라기보다는 '필경사(筆耕士)'에 불과했다. 악의에 가득 찬 참주선동의 공범자 얼굴 어디에서도 뉴스 전문채널다운 전문성과 사실 관계를 무섭게 파고드는 언론보도의 기본 상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YTN〉은 이렇게 보도했다. "논문취소와 구속, 그리고 신변보장…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논란의 출발은 '거짓'이었습니다." 이런 '거짓'이 어디 있나? 이렇게 모든 일이 〈PD수첩〉의 무리한 취재 방식에서 나온 해프닝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뉴스전문 채널에서 할 짓인가. 설령 그렇게 믿고 싶은 수천만 명의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보도가 용납될 수 있나?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이 아무리 강력해도 그것이 진실을 가리는 무기로 쓰여서는 안 된다. 그런데 〈YTN〉은 그렇게 했다. 존재 이유를 배반한 사물이 계속 존재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재앙이며 비극이다.

***조선일보 김대중씨, 자신의 색깔론에 국민을 끌어들이려는 기획**

황우석 교수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가장 비극적인 것은 언론다운 언론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이성과 성찰을 거부하는 괴물 같은 거대한 여론의 해일에 눈치보고, 마치 그것이 진실의 잣대인 양 추수하는 언론들의 너절한 떼거리즘은 우리를 질식시킨다. 그 가운데서도 압권은 조선일보 김대중 씨의 글이었다.

이미 오래 전에 그의 글 읽기를 '끊은' 필자가 오랜만에 김씨의 글을 읽는 것은 참으로 고역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말이 하나도 없는 글을 쓴다는 것도 기술이라면 참으로 놀라운 기술이다. 이 사람은 엉뚱하게도 황우석 문제를, 그것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를 '좌우'의 문제로 명쾌하게 분류한다. 참 바보스럽지 않나. 이 '바보'의 기획은 무엇일까.

지록위마(指鹿爲馬)는 고대 중국 진나라 때 얘기로 그치지 않는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창궐하고 있다. 김대중 씨는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꼴이다. 그리고 이런 글쓰기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그는 짧은 글에서 끊임없는 '오독과 왜곡의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대표적인 오독 가운데 하나가 노무현 대통령 발언과 관련된 것이다. 노대통령은 〈PD수첩〉에 매우 불쾌할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다만 '그렇다고 광고까지 중단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는 발언을 덧붙였다. 이것이 김 씨의 '적극적 오독' 과정을 거치면 '황우석 편이 아닌 〈PD수첩〉 편에 선' 노대통령의 좌파적 면모를 드러내주는 소재로 변질된다. 참으로 비극적인 것은 적지 않은 사람들은 '말(馬)'이라고 부르는 쪽으로 줄을 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한겨레〉,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서프라이즈〉 등의 매체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을 할 때 동원한 것은 '보통사람들'이었다. '도대체 MBC가 저렇게 황교수를 깎아내려서 얻는 게 뭐냐?', "모처럼 세계적 과학자로 발돋움하는 황 교수에 대한 우리의 자부심이 그렇게 못마땅하단 말인가'가 보통사람들의 생각인데, 〈PD수첩〉과 그 쪽 편에 있는 '좌파 매체'와 '좌파 인간'들이 보통사람들을 '마녀사냥' 한다고 너스레- 비판도 아니다 -를 떤다.

사실은 누구도 황 교수나 특정인을 깎아내린 적이 없고, 아무도 그런 자부심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늘어놓은 김씨의 궤변은 비겁하게도 해일 같은 국민 여론에 올라타서 그 곳을 향해 추파를 던지면서, 자신의 색깔론에 대중들이 동참해주기를 바라는 대표적인 선동에 불과하다. 이게 김 씨의 기획이다.

스스로 황우석 교수 사태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좌우 구분법을 들이대면서 "이런 것들(좌파의 이념성향들)이 황우석 사태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일반의 상식으로는 가늠하기 힘들다"고 '중얼거리고' 있는데 당연한 일 아닌가. 김씨 스스로가 상식으로 가늠하기 힘들고 사실과는 전혀 무관한 비유를 들고 나왔으니 말이다.

나는 김 씨가 위에서 언급한 〈한겨레〉, 〈프레시안〉 등 인터넷 매체를 거론하면서 색깔론을 뒤집어 씌우는 글을 읽으면서, 거대한 항모가 쓸쓸하게 침몰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도무지 설득력이 없는 논리로, 과거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매체들을 거론하며 혹세무민의 색깔 공세를 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매체의 생명력이 오래 갈 수가 없다. 김대중 씨의 초라한 칼럼은 그것을 상징해주는 반가운 징후일 뿐이다.

*** '거대한 파도'의 정면으로 나간 〈프레시안〉**

필자는 편집자의 의도에서 벗어날지도 모르는 우려를 가지면서도 여기서 꼭 덧붙이고 싶은 내용이 있다. 절망의 시대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희망은 희망이 아니라 '식상'함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필자에게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특히 언론보도의 경우 〈프레시안〉에서 희망을 봤다"는 얘기는 전혀 식상한 것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로 다가온다.

독재정권과 자본에 맞서 싸운 것이 아니다. 압도적인 국민들의 희망과 기대에 역린하면서 '진실'의 편에 서고자 타협하지 않고 매체를 만든 곳은 〈프레시안〉이 거의 유일하다. 미안하지만 김씨가 예를 든 매체들이 다 〈PD수첩〉 편에 서서, 또는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진실의 편에 서서 보도를 한 것도 아니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서해안 섬마을 어디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몰려올 때는 배를 타고 파도의 정면을 향해 나가면 산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필자는 이번에 〈프레시안〉의 편집진이 보여준 소년 다윗 같은 당당한 모습에서 거대한 파도와 정면으로 맞서는 바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상했다. 〈프레시안〉 사람들과 '왜'라는 문제의식은 놓지 않은 젊은 과학자들과 이성의 힘을 믿고 있던 적지 않은 사람들의 뜻이 〈프레시안〉에서 행복하게 만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건 좌우와 무관한 언론의 상식이자 정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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