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12일 국회의장실을 점거하고 사립학교법 개정안 강행처리에 항의하는 농성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은 직권상정 과정 등을 문제 삼아 김원기 국회의장의 해임 건의를 추진하는 동시에 열린우리당 정세균 당의장도 형사고발한다는 방침이다.
***한나라당 20여 명, 국회의장실 '무기한' 점거농성 **
이날 김 의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의장실을 찾아간 이규택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의 '사학법 무효 투쟁 및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본부'는 김 의장이 예정된 일정을 이유로 면담 도중 자리를 뜨자 그 자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이미 '국회의장 불신임안'을 거론하며 "김 의장이 주재하는 회의에는 일체 참석하지 않는다"고 못 박은 한나라당이 이처럼 점거농성에 들어가는 강경수까지 둔 이유는 여러가지다.
김석준 의원은 "국회 경위 등이 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못 들어가게 막으면서 여당의원들은 쥐새끼같이 들여보내준 비겁한 짓에 대해 의장이 해명해야 한다"며 사학법이 처리되던 9일 본회의 운영을 문제 삼았다.
황우여 교육위원장은 "직권상정이라 하더라도 해도 상임위 의장에게 중간보고를 하도록 돼있는 국회법 85조 2항을 지키지 않았다"고, 김기춘 여의도연구소장은 "국회의장이 위헌적 법률을 강행처리한 것은 헌법질서에 대한 정면도전이라 할 수 있다"고 김 의장을 성토했다.
그러나 김 의장은 "의장이 직권상정 요청이 있는 법안에 대해 직권상정하지 않을 권한도 없다"며 처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김 의장은 "1년반 동안 국회를 이끌어 오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해 노력해 왔고 이러한 노력이 사학법 처리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것에 대단히 마음이 아프다"며 무력으로 본회의를 저지한 한나라당에도 유감을 표했다.
***정세균 형사고발 및 대리투표 의혹 제기**
한나라당의 국회의장실 점거는 '무기한'이다. 요구는 통과된 사학법을 철회하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직권상정을 감행한 국회의장을 향해 불신임안, 해임건의안, 권한쟁의심판 청구 등 전방위 공세를 계획한 데 이어, 함께 몸싸움을 벌인 열린우리당 정세균 당의장도 형사고발할 계획이다. 열린우리당이 보좌진과 당직자들을 동원해 한나라당 의원들의 본회의 진입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공무집행 방해'를 명목으로 내세웠다.
이 외에 한나라당은 사학 재단과 연계한 장외투쟁, 사학법 자체에 대한 위헌소송도 준비 중이다. 원내, 원외에서 구사할 수 있는 모든 대응방법을 다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국가정체성 논란으로?**
"국회를 공전시키면서 사학법을 정치투쟁으로 연계시키냐"는 비난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한나라당이 이런 강공 드라이브를 거는 배경에는 이번 문제를 '국가정체성' 논란으로 비화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박근혜 대표가 사학법 통과 직후부터 "사학 투명성이 목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반미, 친북의 이념을 주입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색깔론'과 결부시킨 비난을 퍼부었고, 이계진 대변인도 이날 "투쟁의 목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가정체성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박 대표의 이런 의도가 계획대로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이미 사학법 처리 과정에서 박근혜-강재섭 투톱의 지도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뒷북치기' 식으로 진행되는 강경투쟁에 대해선 당 내에서조차 비판적 견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의장실 점거농성에 대해서도 당 내에선 "법안이 올라가기 전에 의장실을 점거해야지 다 통과된 법을 철회시켜 달라며 농성을 벌이는 것은 뒷북이 아니냐"는 자조가 나온다. 정세균 의장에 대한 고발 조치 역시 실효성보다는 '생색내기'에 가깝다는 평가가 다수다.
예산안 심의까지 거부하면서 '장외투쟁'에 몰두할 경우 맞게 될 국회 공전의 책임도 부담스럽다. 게다가 사학법에 대한 위헌 주장은 당초 "자립형 사립고와 개방형 이사제를 동시에 처리하자"던 한나라당의 주장에 비춰볼 때, 자립형 사립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개방형 이사제가 위헌이라는 '억지' 논리로 비쳐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논란을 예고했던 '대리투표 의혹'도 아직까지는 근거 제시가 미약하다. 한나라당은 "정황상 적어도 열린우리당 의원 5명의 대리투표는 확실하다"고 말하지만, 제대로 된 본회의 촬영본을 입수하지도 못했다.
박 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참다 참다 한 번씩 해내겠다고 나서면 끝까지 확실하게 해내야 한다"며 '비장한 각오'를 당부했지만, 현재로서는 사학 재단 측과 연계한 장외투쟁 외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박 대표는 이번 사학법 후속 싸움이 지난 10.26 재선거에서 재미를 본 '강정구 효과'의 연장선이 되기를 기대하는 눈치이지만, 소장파 모임인 〈수요모임〉에선 "사학법을 국가정체성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며 제동을 걸었다.
이같은 맥락에서 명분이 빈약한 한나라당의 '무리수'는 자칫 "박 대표가 보수의 덫에 걸렸다"는 인상만 남기고 오히려 부메랑을 맞을 개연성이 적잖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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