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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본측 비협조로 진상규명에 어려움"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12/07] 일제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 전기호 위원장

해방 60주년을 맞은 2005년도 어느덧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또한 한일국교가 정상화된 지 꼭 4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양국은 수교될지 40주년이 되는 올해를'한일 우정의 해'로 선언한바 있는데요. 한일외교의 현주소는 여전히 '과거'에 묶여 있습니다. 과거사로 한일관계가 악화되자 일본 정부는 올 봄 2차대전 중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됐다가 숨진 조선인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밝혔고, 이 결과를 얼마 전 통보해왔는데요 과연 진지한 반성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한일협정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일제하 강제 동원 진상규명위원회가 공식출범했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보상 신청이 시작됐죠 지난 1일부터는 2차 피해 신고 접수에 들어갔는데요.일본강점기의 강제 징용 실태는 어떤지, 그 진상규명은 어디까지 이뤄졌는지. 진정 피해자들의 한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오늘 집중인터뷰에서는 일제하 강제동원 진상규명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전기호 위원장을 초대해 일제강점 가족들의 한을 풀어 줄 방법이,무엇인지 알아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전기호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입니다.

전기호 위원장은 경희대학교에서 노동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노동경제학회 회장,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등을 역임했고 통일운동 및 민주화 운동으로 두 차례 구속된바 있습니다. 오랫동안 일제강점기 재일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연구에 몰두해왔으며 지난 2003년 '일제시대 재일 한국인 노동자계급의 상태와 투쟁'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작년 11월부터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안녕하십니까? 전 위원장님.

전기호 위원장 :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일제강제징용 된 노동자들의 참상이랄까요? 이런 것들이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계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어제 보도에 따르면,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요시쿠마라는 탄광에서 한 탄광에서 사망한 조선노동자가 450명이다.' 라고 하는데요. 그 당시에 많은 분들이 고생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말씀을 듣자니까 요시쿠마탄광이라는 곳이 현재 일본의 아소 다로씨의 증조부가 했었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전기호 위원장 : 네. 맞습니다. 일본보도자료에 의하면 증조부로 나와 있습니다.

박인규 : 요시쿠마라는 탄광 한 곳에서만 일을 했다면 지금 보도에 따르면 아소 다로 일본외상의 증조부가 했었다고 하는데, 그 곳에서 일했던 조선인 노동자가 1만명이라고 하는데?

전기호 위원장 : 그렇게 보도된 것을 저도 봤습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더 많을 수도 있겠네요? 피해가?

전기호 위원장 : 피해 자체는 물론 더 많을 수도 있죠. 그 당시의 탄광이라는 곳이 거의 다가 모든 탄광이 다 그랬습니다만, 제대로 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시설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그 사람들이 탄광을 깨는데 몰두 했기 때문에, 전쟁 수행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에너지가 필요했으니까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탄광에서 많은 재해사고가 일어났죠.

박인규 : 노동자들의 안전보다는 석탄을 많이 캐는 것이 더 급했다?

전기호 위원장 : 네. 그래서 그 당시에 보면, 제가 기록을 보니까 웬만하면 계속해서 일을 하라..이런 노무 관리가 그 당시에 탄광전체에 일반화되어 있었습니다.

박인규 : 어제 보도에 보니까 한 탄광에서 불이 났는데 그 불이 옆의 탄광으로 번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냥 나가버렸다. 그래서 그 안에 있던 노동자 450명이 그대로 죽었다 라는 보도가 나오더라고요?

전기호 위원장 : 저도 보도에서 봤습니다. 그런 일이 충분히 있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그 당시의 경우들을 많이 연구하셨기 때문에, 전 위원장님의 연구로 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라는 말씀이시죠?

전기호 위원장 : 네.

박인규 : 그런데 요시쿠마 탄광에서 450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밝혀 낸 곳이 해당 광업소라든가, 정부가 아니고 일본의 시민단체라고 들었습니다. 강제규명진상네트워크라고 하는데, 일본 시민단체에서도 이런 활동들이 많이 있나요?

전기호 위원장 :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후쿠오카에 있는 요쿠가와데로씨라는 분이 자료를 수집해서 이것을 세계일보에 공개해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상황들을 보면은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강제규명진상네트워크가 오래 전부터 활동을 계속 해 왔습니다. 진상규명네트워크가 그 동안의 많은 자료를 공개하고 많은 부분들을 발표했죠.

박인규 : 일단은 일본의 시민단체도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준다고 하니까 고맙기는 한데, 우리가 일제하에 조선인 노동강제동원실태에 전모를 밝히려면 민간단체의 도움만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역시 일본 정부가 도와줘야 하는데 어떻습니까? 아소 다로 외상 같은 경우는 본인이 아소광업소를 아직도 소유하고 있는 겁니까?

전기호 위원장 : 아소 다로라는 분은, 그 뒤에 아소 시멘트회사와 그 곳의 계열회사들의 실제적인 소유주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문제는, 이분이 지금은 아소 시멘트이지만 아버지 대까지는 아소 탄광을 했는데, 아소 탄광을 물려받았지만 이른바 조선인 노동자의 관한 자료, 강제징용자료는 물려받지 못했다라는 말씀을 하셔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들의 전모를 밝히기가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습니까?

전기호 위원장 : 그렇습니다. 이 분들이 그 당시의 자료를 물려받지 못했다고 해서 자료를 내놓지 않고, 어느 기업도 지금 흔쾌히 그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기업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본정부에 피해자 판정을 위해서.. 예를 들면, 후생연금명부라든지, 공탁금명부라든지, 그 외에도 우편저금명부라든지, 여러 가지 자료들을 제공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도 현재 그것에 대해서 별다른 대답이 없습니다.

박인규 : 제가 걱정스러운 것은, 현재 일본 외상인 아소다로라는 분이 우리는 보통 망언이라고 하는데,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우리가 허락한 것이다.", "강제징용은 없었다.", "조선인이 원해서 온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지금 말씀하신 그런 자료들을 흔쾌히 과연 줄 것인지 걱정 되거든요? 전위원장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전기호 위원장 : 자료를 내 놓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박인규 : 우선 우리로서는 지금 일제하에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강제로 노역에 종사하신 분들이 얼마나 되시는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지금 현재로 대략의 추정치가 얼마나 됩니까?

전기호 위원장 : 대략의 추정치는 국내 동원을 포함해서 년 인원으로 봐서 800만명으로 정도로 추계를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그 중에서 상당수가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 아닙니까?

전기호 위원장 : 그렇죠. 그 중에 국내동원을 빼고는 대부분이 일본으로 가서 강제 동원이 된 분들이고, 그 이외에 일본 전선에 있던 모든 곳에 군인이나, 군소, 군 위안부, 노무자들은 대부분 일본입니다만, 그런 곳에 많이 강제 동원됐죠.

박인규 : 일단은 강제 동원에 어떤 전모나 실태를 밝히기 위한 방법이, 국내에서는 피해자나 그 분들의 가족분들의 신고가 있을 수 있겠고, 국내에 자료가 있든가, 일본에 자료가 있다면 그 것을 통해서 전모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국내에는 별로 없을 것 같거든요? 결국은 일본 쪽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조금 전에 말씀하셨지만, 후생연금명부나, 공탁금명부를 받으면 되는데 안 준다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알기로는 조선인 유골, 조선인 노동자분들의 현장에서 돌아가신 유골, 그 부분들에 대해서 한, 일간의 협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진행이 되고 있습니까?

전기호 위원장 : 지금 한, 일간의 유골협의회가 만들어져서 지금 세 번에 걸쳐서 회담을 가졌습니다. 동경에서 2번 하고, 이번에 서울에서 1번 하고, 총 3번에 걸쳐서 하고 앞으로 이제 1월에 가서 다시금 4차 회담을 갖도록 되어 있습니다. 3차례에 걸쳐서 지금까지 회담을 해 왔습니다.

박인규 : 지금까지 확인 된 유골은 대략 얼마나 되고, 발안된 유골은 얼마나 되고, 통계가 잡혀져 있습니까?

전기호 위원장 : 유골 자체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박인규 : 좀 전에 말씀 하실 때, 후생연금명부, 말하자면 그런 자료들을 받으면 조선인 노동자가 몇 명인지 알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것을 밝히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그건 왜 그렇습니까?

전기호 위원장 : 후생연금명부라든지, 공탁금 명부라든지, 여기에는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일본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이 분리가 되어 전산처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명부를 주게 되면, 일본 사람들까지도 그 명부에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개인생활침해라고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이 된다는 것이죠.

박인규 : 프라이버시에 위배가 된다?

전기호 위원장 : 네. 프라이버시에 위반되기 때문에, 이것은 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박인규 : 그러면 일본 정부쪽에서 한국인만 대상이 되는 것만을 추려서 줄 수는 없는 모양이죠?

전기호 위원장 : 그렇게 전산처리를 하려면, 굉장히 시간도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텐데, 1950여년인가요? 그 이후 것은 어느 정도는 전산처리가 되어 있는데 그 전 것은 전산처리가 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전산처리를 한다든가 하는 이런 일은 일본정부가 하기를 꺼려 하든지, 너무 시간이 걸린다든지 하는 문제가 있겠죠.

박인규 : 그렇다면 전모를 밝히기가 참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우리 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 1차 접수된 피해 신고가 20만건이라고 하는데 맞습니까?

전기호 위원장 : 20만건이 조금 넘습니다. 20만 6천건이 됩니다.

박인규 : 지금 2차 접수를 받고 계신 거죠?

전기호 위원장 : 그렇습니다.

박인규 : 학계의 추정에 따르면 일본에 있는 조선인 강제징용자 유골이 대략 5~10만이다.. 라고 하는데, 이 추정치는 어디에서 나온 것이고,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죠?

전기호 위원장 : 그 추정치는 역시 추정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차이가 많이 날 겁니다. 그리고 정확한 통계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박인규 : 대략 어림짐작으로 하기 때문에? 20만건이라고 하는 것은 그 분이 강제노역을 했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했는데 행방불명이라는 겁니까? 그 차이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어떻습니까?

전기호 위원장 : 여러 가지가 다 포함이 되어 있는데요. 어쨌든 일제 강제시기에 강제 동원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분들이나 그 분들의 유족들이 그것에 대해서 접수한 것이 20만 6천건으로 1차 접수가 된 것이죠. 그러니까 20만 6천건은 강제동원 전체의 규모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실상으로는..

박인규 : 일단은 자신이 알던 본인의 경험이라든가, 가족들이 신고한 것들이라는 말씀이시죠?

전기호 위원장 : 그렇죠.

박인규 : 그런데 그 20만건을 하나하나 심사해서 조사하시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전기호 위원장 :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각 광역시, 시, 도에 실무 위원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서 접수 된 분들을 1차적으로 조사를 해서 우리 중앙위원회에 올리면, 우리 위원회에서는 다시금 그것을 확인해서 최종적으로 판결을 하지요.

박인규 : 그 작업을 지금 진행하고 계신 겁니까?

전기호 위원장 : 네.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약간은 비약된 얘기이기도 하지만, 사실 진상규명도 중요하지만 피해보상이랄까요? 그런 것들도 중요하다고 보여지는데, 예를 들면 우리 나라 피해자들이 여러 차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했지만 대체로 이긴 경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본쪽에서는 어떤 입장인가요? 일제하에 자신들이 조선인 노동자들을 데려다가 쓴 것에 대해서 보상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인가요?

전기호 위원장 : 그렇습니다. 자신들은 일단 그 당시의 강제동원 됐던 사람들의 문제는, 한, 일 회담에서 다 해결이 됐다고 보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일본 정부나, 일본 기업체들은 보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거죠.

박인규 : 자신들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도 책임이 없다?

전기호 회장:그렇죠.

박인규 : 한, 일 회담에서 모두 끝났다?

전기호 위원장 : 일괄적으로 모두 끝났다고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올해 초에 일본 히로시마고등법원에서 태평양전쟁 중에 강제징용 된 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배상을 해야 한다.라고 판시했는데, 일본정부는 이것을 다시 대법원에 상고를 했거든요? 결국은 보상할 뜻이 없다.라는 것인데 안타깝네요?

전기호 위원장 : 그렇습니다.

박인규 : 일본에서는 1965년에 한, 일 협정으로 일제하 강제고용은 다 해결 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제가 참 안타까운 것은 해방된 지도 60년이 지났고, 한, 일국교정상수교가 된 지도, 40년이 됐는데도 아직까지 일본에 의해서 끌려가서 고생하신 우리 선조들의 실태나 전모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무엇을 했나.. 그런 생각도 들거든요? 작년에 일제강제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그 배경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전기호 위원장 : 그 배경은.. 그 당시에 피해자들이든지, 유족들이 만든 단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노력을 하고, 일부 변호사들이라든지 다른 분들도 노력을 해서 결국 이 법이 만들어 진거죠.

박인규 : 결국 그 법과 함께? 특히 작년에 한, 일 협상의 뒷 얘기가 나오면서, 일본은 개인 배상을 하겠다고 했는데, 한국정부는 국가배상을 해라.라고 해서 개인들에게 전해지지 않고, 그런 부분도 작용을 한 것 같아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강제동원된 선조들의 실태라고 할까? 전모가 밝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제가 궁금한 것은, 전위원장께서는 노동경제학을 하셨고, 그 중에서도 강제 동원된 제일노동자들의 실태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그 쪽에 관심을 가지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전기호 위원장 : 제가 노동경제학을 전공했는데, 한 10여년 전 인가요? 그 때부터 내가 마지막으로 학회에 있는 동안에 무엇을 연구해야 남들이 하지 않았던 분야 중에서 의미가 있겠는가..이런 부분을 생각하다가 결국은 일제강제하에 일본에 있었던 우리 나라 노동자들에 관해서 연구하는 것이 좋겠다…이렇게하다 보니까 강제동원된 시기 뿐만 아니고 그 전까지도 포함이 됩니다만, 자연적으로 강제고용된 노동자들에 관해서 연구를 하기 시작하고 결국은 그 자료들을 모아서 책을 냈지요.

박인규 : 10년을 연구하셔서 그 책을 내신 것을 알고 있는데요. 그 책을 내시다 보면 강제징용된 분들도 만나보셨을 것 같고, 여러 가지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이 들으셨을 것 같은데, 그 당시에 일본에 끌려가서 강제 노동하신 분들의 어려움이랄까? 소개해 주실만한 이야기가 있습니까?

전기호 위원장 : 그 당시에 노동 조건이라든지, 이런 것은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모두 일일이 말씀드리는 어렵습니다만, 아까 탄광에 관해서 말씀 드렸듯이 탄광의 경우를 예를 들자면 재해예방시설 같은 것들은 거의 없는 상태이고, 탄을 캐는 데에만 모든 것을 집중했습니다. 사람은 보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탄을 캐려면 서서 캐지도 못하죠. 엎드려서 하루 종일 탄을 캐는 일에만 종사하고 경우에 따라서 그 당시에 보면, 휴일이라든가, 공휴일도 반납을 하고 탄을 캐도록 만들었고, 그러면서 그렇게 중노동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의식주라든가, 생활은 아주 형편없었습니다.

박인규 : 일본인 노동자들과는 어떻습니까? 임금차이가 있었습니까?

전기호 위원장 : 일본인 노동자들과는 일반적으로 임금차이가 많이 있었죠. 대체로 우리 나라 노동자들이 일본인 노동자들에 반해서 한70%정도를 받았는데, 그 사람들의 논리로는 일본사람들의 능률이 그 만큼 높아서 그렇게 받았다..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실제로 일본의 노동과학연구소라고 그 곳에서 나온 자료가 있습니다. 그 자료에 보면 일본사람과 우리 나라 사람을 옆에 갱에다가 똑 같은 사람을 들여 보내서 탄을 캐는 실험을 한 적이 있어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들어간 갱하고 일본 사람이 들어간 갱과는 탄을 캐는 능률이 비슷하든지, 오히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조금 더 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제 책에도 인용을 해 놓았습니다만.

박인규 : 말하자면 생산성이 높아서가 아니고, 단순히 일본인이고 식민지 하에 있기 때문에?

전기호 위원장 : 그런데 문제는, 임금의 문제가 아니고 그 당시에는 일본 회사들이 도망을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도망자가 많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임금을 주지 않고, 최소한의 용돈을 담뱃값 정도만 주고, 그 이외에는 나머지 부분은 송금을 한다고 했는데, 받았다는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고, 또 많은 부분을 강제저금을 시켰습니다. 강제 저금된 부분을 받지 못한 것이 공탁이 된 거죠.

박인규 : 그 것이 아까 말씀 하신 공탁금 명부라는 것이 군요?

전기호 위원장 : 그렇습니다.

박인규 : 그것만 알아도 상당히 알 수 있을텐데.

전기호 위원장 : 그것만 내 놓아도 우리가 자료로서는 많이 알 수가 있죠.

박인규 : 그런데 그 부분은 왜 내 놓지 않습니까? 그 부분은 전부 조선인 노동자만 있는 게 아닌가요?

전기호 위원장 : 아니죠. 그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박인규 : 일본인도 포함되어 있습니까?

전기호 위원장 : 네.

박인규 : 어떻습니까? 해방된 지 59년만에 뒤늦게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셨고, 1년 넘게 활동을 하셨는데, 물론 전기호위원장께서는 상근이 아니시기 때문에, 속속들이 아실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위원장을 해 오시면서 진상규명을 하면서 무엇이 참 힘들다? 이것이 가장 큰 장애다? 라고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전기호 위원장 :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참 많습니다. 우선 피해자들이 신고한 피해 조사를 해서 판정을 하는 일 이외에도 진상조사라고 해서 어떤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분이, 이 사건에 관해서 진상을 조사해 주십시요..라고 신청하면 그 진상조사를 우리가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유골에 발굴, 수속, 봉안 이런 문제도 우리 일에 속하고, 그 외에 자료를 수집해서 자료집 등을 만든다든지, 추도공간을 만든다든지, 이런 일들도 우리 일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 인원규모로는..

박인규 : 몇 분 정도가 계십니까?

전기호 위원장 : 90명 정도 입니다. 그 인원으로는 우선 하는 일에 비해서 인원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고,그 다음 실제로 일을 하면서 제일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국가 기록원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로 봐서는 군인후속의 경우에는 50%내외, 노무자의 경우는 8~9%밖에 판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자료가 없기 때문에 판정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박인규 : 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이 시한이 좀 있는 것이죠?

전기호 위원장 : 네. 시한이 있습니다.

박인규 : 언제까지 하게 되어 있습니까?

전기호 위원장 : 금년 3월 25일에 우리가 조사를 시작했는데, 조사 개시일로부터 2년간으로 가게 되어 있고, 그리고 또 1년간 연장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박인규 : 최대 3년이면 일제하강제동원진상이 제대로 밝혀 질 수 있을까요?

전기호 위원장 : 상당히 어렵죠.

박인규 : 그것도 참 걱정이네요.

전기호 위원장 : 네. 그래서 지금은 그 당시 법률을 발휘했던 김원홍위원이 지금 법률을 개정하기 위해서 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전모를 제대로 알아야 밝혀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진상규명문제도 있지만요. 그 때 끌려가서 고생하신 분들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고생을 잊을 수 있는 보상이랄지 그런 것들이 필요할 것 같은데 만약 진상규명이 됐다고 하면, 우리가 그 분들에게 해 드리는 것이 정부책임도 있을 것이고, 해당 기업책임도 있을 것이고, 원론적이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 같은 것을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죠?

전기호 위원장 : 지금으로서는 우리 위원회는 진상규명업무가 주 목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보상관계는 정부에서 다른 분들이 하고 계시기 때문에 제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웃음)

박인규 : 진상규명도 버거우신데 제가 너무 어려운 질문을 드린 것 같습니다.(웃음) 3년밖에는 안되는기간이지만 최대한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더 노력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전기호 위원장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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