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5일 "남쪽의 '남북연합제'와 북쪽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통합해 통일의 제1단계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성남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열린 '문명과 평화 국제포럼'에 보낸 영상연설을 통해 "6자회담 이후 남북한과 미국이 포함된 평화협정을 체결해 한반도에서의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고 영구적인 평화의 기틀을 튼튼히 다져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급격한 통일은 경제적·정신적 재앙될 것"**
김 전 대통령이 남북연합제 통일방안을 공식 언급한 것은 퇴임 이후 처음이다. 이날 연설은 '6자회담 이후' 한반도 통일정책의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평화와 공존을 위한 새로운 시작'을 주제로 한 영상 연설에서 김 전 대통령은 "지금 단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물으며 첫째, 6자회담이 반드시 성공하도록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는 공정한 게임이 되도록 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둘째, (향후) 6자회담을 상설기구화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6자회담 참여국가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기구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세번째로 '통일의 1단계'를 언급했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남북한의 통일문제는 점진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며 "흡수통일은 재앙의 원인이 될 것이다. 북한의 파탄된 경제를 남쪽이 맡아서 책임질 능력이 없다. 반세기 이상 대결하고 동족간에 전쟁까지 한 처지에 급격한 통일은 정신적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남북 관계의 미래는 남북한만의 관계 개선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며 무엇보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정상화 돼야 한다"며 관계 정상화의 최대 난관인 북핵 문제를 6자회담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남북 긴장 완화 ▲이해와 신뢰에 바탕한 남북 민심의 변화 ▲남북간 교류 협력의 진전 등을 꼽았다.
다음은 이날 김 전 대통령의 연설 주요 내용이다.
***평화와 공존을 위한 새로운 시작**
오늘 대한민국 광복 60주년을 기념하는 『문명과 평화 국제포럼』의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이 영광된 자리에 함께하지 못하게 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대신 저의 소회를 몇 말씀 녹화해서 보내는 것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 자리에 폰 바이체커 전 독일대통령이 출석하신 것입니다. 폰 바이체커 전 대통령은 독일 전체 국민과 유럽이 존경해 마지않는 지도자이시며, 또한 세계가 흠모하는 우리 시대의 위인이십니다. 폰 바이체커 전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간 화해 협력을 위해서 많은 교훈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제가 고난에 처해 있을 때마다 저의 안전과 구명을 위해서 힘써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폰 바이체커 전 대통령께서 높고 깊은 예지에서 나오는 주옥같은 교훈의 말씀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폰 바이체커 전 대통령을 진심으로 환영해 마지 않습니다.
***21세기와 새로운 시작**
존경하는 여러분!
21세기는 많은 난관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문명간의 대립, 테러의 횡행, 종교간·종족간의 갈등, 빈부격차의 심화, 그리고 에이즈 등 난치병의 만연 등 매우 심각합니다.
문명간의 대립은 과거 어느 때보다 치열합니다. 이슬람과 유태교, 기독교와 힌두, 그리고 불교 등 다양한 문명·종교간의 대립이 세계 도처에서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평화가 전례 없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전쟁보다는 오히려 테러가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테러는 언제 일어날지, 어디서 발생할지, 누가 공격할지, 어떤 무기를 사용할지 등 알 수 없습니다. 그림자 없는 전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테러는 범세계적 규모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또 하나의 세계대전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 하에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첫째로, 오늘의 세계의 위험하고 냉혹한 현상을 깊이 깨닫고 위기의식과 열정을 가지고 문명간, 종족간, 빈부간, 종교간의 모든 이질적인 분야에서 상호간 대화를 해나가야 합니다. 대화만이 상호이해 속에 화해와 협력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증오와 폭력을 확고히 배제해야 합니다. 증오나 폭력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죄 없는 민중들을 무차별 살상하고 있는 오늘의 테러행위에 대해서는 세계의 모든 이들이 종교, 인종, 문화의 차별을 넘어서 이를 배척하고 근절시켜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빈곤타파의 문제입니다. 빈곤타파는 오늘의 불행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입니다. 빈부격차의 방치는 부자나 가난한 자, 부국이나 빈국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옵니다. 최근의 유럽이나 미국, 기타 아시아 각국에서 빈부격차 문제가 사회적 갈등의 핵심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21세기 세계평화의 최대의 위협인 테러의 저변에는 예외없이 이 문제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내재하고 있습니다. 테러의 근본원인인 빈곤을 방치하면 사태는 앞으로 더욱 파국적이 될 것입니다. 빈부격차의 갈등은 단순히 국가 대 국가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 내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절망으로부터 벗어나 내일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그러한 범세계적인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특히 잘사는 나라, 잘사는 계층들이 사태의 위험성을 직시하고 문제 해결의 선두에 서서 열정을 갖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 아끼고 존중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21세기 공동체의 실현을 위해서 우리는 성의와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합니다.
***한반도의 새로운 시작**
다음에는 한반도의 현상과 앞날에 대해서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국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전까지는 매우 불안하고 불확실한 상태였습니다. 남북 양측은 극도의 불신과 증오심으로 대결하고 150만의 대군이 서로 총검을 겨누고 있는 세계 최고의 위협지대가 되었던 곳입니다. 그러나 제가 2000년 6월에 평양을 방문하여 이루어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사태는 괄목할 만큼 개선되었습니다.
첫째는 남북간의 긴장이 크게 완화되었습니다. 과거에 휴전선에서 조그만 총기사고만 있어도 불안에 떨던 남북의 주민들이 이제는 매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남북 양측의 민심도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과거의 불신과 증오의 시대로부터 이제 이해와 신뢰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는 6.15 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남북민간인 교류와 식량, 비료 등 대북경제협력의 제공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셋째, 남북간의 교류 협력이 크게 진전되었습니다. 금강산 관광객 115만 명, 이산가족 상봉 1만2000명, 남북간의 민간인 교류도 16만 명을 훨씬 넘어서고 있습니다. 남한의 자본, 기술과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된 개성공단에서는 이미 11개의 공장이 가동되고 있고 북한 노동자 4700명이 500명의 남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협력은 더욱 증진될 것입니다. 이미 남북간의 도로가 개통되었고 철도도 머지않아 개통될 것입니다. 남북을 잇는 철도는 압록강을 지나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가 '철의 실크로드' 시대를 이룩하여 남북한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넷째, 6.15 공동선언은 민족자주의 원칙, 연합제의 제1단계 통일, 각종 교류협력 등에 합의하고 있습니다. 이는 획기적인 일로서 수천 년의 우리 민족의 역사상 우리 민족끼리 자기 운명에 대해서 평화적 해결에 합의한 일은 처음 보는 사례인 것입니다.
남북관계의 미래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겠습니까? 그것은 무엇보다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합니다. 남북한만의 관계개선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관계정상화의 최대 난관인 북핵문제는 6자회담을 통해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6자회담은 핵문제 해결 이후에도 상설기구로 남아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의 중심기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핵문제 해결은 미국과 북한이 주고받는 원칙 아래 동시적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남북한의 통일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점진적 통일과정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남북공동선언문에도 합의되었던 원칙입니다. 흡수통일은 재앙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북한의 파탄된 경제를 남쪽이 맡아서 책임질 능력이 없습니다. 반세기 이상 대결하고 동족간에 전쟁까지 한 처지에 급격한 통일은 정신적 갈등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통일은 양측이 안심하고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여건이 이룩될 때 실현해야 합니다. 10년이고 20년이고 평화적 공존, 평화적 교류, 평화적 통일의 '햇볕 정책'의 원칙 아래 안정된 통일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단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입니까? 첫째는 6자회담이 반드시 성공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주고받는 공정한 게임이 되도록 하는 노력을 우리는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6자회담을 상설기구화해서 한반도와 동북 아시아의 평화를 6자회담 참여국가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기구로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6자회담 이후 남북한과 미국을 포함한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고 영구적인 평화의 기틀을 튼튼히 다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선언한 바와 같이 남쪽의 '남북연합제'와 북쪽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통합하여 통일의 제1단계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국민의 힘을 합해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습니다. 민주화의 꿈도 실현시켰습니다. 월드컵의 꿈도 이룩했습니다. IT 강국도 만들었습니다. 남북화해의 꿈도 일구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아가면서 한반도 번영의 시대를 이룩해야 합니다. '압록강의 기적' 말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 손을 잡고 힘을 합쳐 나아갑시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는 우리의 세기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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