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26일 나란히 한 자리에서 강연을 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열린우리당 서울시당 여성위원회가 두 장관을 연사로 초청한 것은 전혀 특이할 것이 없으나, 마침 두 장관의 연초 당 복귀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당내 경쟁이 본격화된 시점이라 이날 강연에 관심이 쏠린 것이다.
***김복지 "한나라당은 배신자, 위선자" **
미리 배포한 원고로만 보자면, 두 장관의 '강연 대결'은 없었다. 다만, 행보 상의 '스타일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을 뿐이다.
최근 당 안팎의 '재야파' 조직을 다잡고 있는 김 장관은 한나라당에 각을 세웠다. 김 장관은 국민통합 연석회의 참여를 거부한 한나라당을 향해 "시대를 못 읽고 역사를 배신하고 있다"고 맹비난 했다.
김 장관은 한나라당의 감세정책에 대해서도 "감세를 주장하면서 빈곤층을 도와주겠다고 하는 한나라당은 위선자"라고 비판했다.
김 장관은 소득세 감면 주장에 대해서는 "직장생활자와 자영업자 절반이 세금을 안 내는 상황에서 누진율로 과세하는 소득세를 감면한다는 것은 잘 사는 사람을 더 잘 살게 만드는 것"이라고, 법인세 감면 주장에 대해서는 "몇 조씩 버는 기업들에게 이미 2%를 깎아 줘서 올해 조세 수입이 3,4조나 줄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한나라당은 9조에 가까운 돈을 더 깎자고 주장하냐"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같은 김 장관의 한나라당 비판은 부족한 대중성을 보강하는 동시에, 김 장관의 가장 큰 컴플렉스인 '우유부단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같은 날 김 장관을 지지하는 당원 모임인 '국민정치연대'가 창립대회를 갖고 출범을 공식 선언하는 등 부쩍 대충 노출도를 늘려가고 있는 김 장관 측의 최근 행보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에 '유탄을 맞은 격'인 한나라당의 이정현 부대변인은 "장관직도 버거워하는 사람이 대권을 넘보느라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발끈하기도 했다.
***정통일 "'9.19 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 큰 산 넘어" **
반면, 정 장관은 강연의 내용을 남북문제·통일정책 등 자신의 '전문분야'에만 국한시켰다.
정 장관은 "APEC의 무역 자유화가 완료되는 2020년 이전에 남북 경제공동체를 완성해 APEC의 경제중심 역할을 수행한다"는 계획을 밝히며 "이를 위해 향후 5년 내에 호혜적인 산업협력을 확대하고, 교통·물류, 에너지, 통신 등 3대 SOC 사업을 통해 북한 경제의 자생력을 확보한다"고 덧붙였다.
정 장관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걸림돌이었던 북핵문제가 '9.19 공동성명'을 계기로 해결을 위한 큰 산을 넘었다"며 재임기간 중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히는 '9.19 공동성명'의 의미를 한껏 부각시켰다. 정 장관은 "이로써 남북관계는 전쟁이 아닌 평화, 대결이 아닌 화해, 반목이 아닌 협력, '제로 섬'이 아니라 '플러스 섬'의 관계로 전환됐다"고 평가했다.
정 장관의 이같은 모습은 최근 부쩍 가속도를 내고 있는 '강연 정치','인터뷰 정치'에서 이미 드러난 것으로 통일 문제를 자신의 최대 '브랜드'로 삼고자 하는 전략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정 장관은 특히 '2020년 남북경제공동체 완성', '북핵 로드맵 마련' 등 똑같은 얘기를 강연 대상과 상황에 따라 버전을 조금씩 달리 하는 전술을 펴고 있는데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강연 전략을 그가 적극 원용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여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DJ는 똑같은 얘기를 6개월간 해야 이미지가 확실히 굳어지고 아랫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면서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뛰어난 조어 능력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정동영 장관은 DJ의 전략을 따르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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