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이것 참…. 중요한 도구에 이상이 생겼네요."
전날 임명장을 받은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22일 첫 브리핑을 앞두고 한 쪽 알이 빠져버린 안경을 들고 난감해 했다. 안경 탓일까? 이날 이 대변인은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두 현안인 황우석 박사 논란과 오포 비리에 대해 논란의 한 축을 완전히 간과해 버린 '외눈박이' 논평을 내놓았다.
***"강제 탈취한 것 아니니 생명 공학 발전을 위해…" **
황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 과정에서 매매된 난자가 사용됐다는 의혹을 두고 이 대변인은 "어차피 해야 하는 연구라면, 또 일정 부분 보상을 했다면 현재 방법이 그렇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지석영 선생이 종두법 발견 과정에서 가족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한 일화를 들고 "난치병 환자들의 애타는 심정"을 거론하며 난자 매매와 결부된 윤리 문제는 은근 슬쩍 덮고 넘어갔다.
"법에 맞고 윤리에도 맞으면 참 좋겠지만 환자들은 빠른 결과를 요구하니…"라며 얼버무리는 이 대변인의 머릿속에 이미 생명윤리는 '지키면 좋지만 안 지켜도 그만'인 참고 사항 정도로 밀려나 있는 듯했다.
이 대변인이 기자실을 떠난 뒤 기자가 잠시 아연함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은 "여성의 난자는 자연적으로 생성되고 없어지는 것"이고 게다가 "지나가는 여성을 납치해서 강제로 탈취한 것도 아니니" 생명공학 발전을 위해 양해할 수 있는 부분 아니냐는 이 대변인의 의견이 낯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자에게 생경했던 것은 그보다는 면밀한 사전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논란 중인 사안에 대해, 그것도 완전히 일방적인 주장에 기울어진 의견을 공식 입장이라고 당당히 밝힐 수 있었던 공당 대변인의 자신감이었다.
생명윤리라는 '절대적 가치'와 생명공학의 발전이란 '도구적 수단'이 얽힌 딜레마 속에서 여론의 눈치까지 봐야 하기 때문에 입장 표명을 피하고 있는 대다수 정치인들과는 달리 이 대변인은 마이크를 잡고 "황 박사를 지지한다"며 명쾌하게 '기술 발전'의 손을 들어주었으니 '용감하다'고 칭찬해주어야 할까?
***"아내가 아프니 5천만 원은 꿀 수 있다"고요? **
같은 자리에서 이 대변인은 '오포 비리'에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추병직 건교부 장관에 대해서도 황당한 논평을 내놓았다.
이 대변인은 "추 장관은 부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5000만 원을 꾼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직전에 선거를 치른 상황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오포 비리와 연관된 모든 정권 관계자들을 엄벌해야 한다"며 자체 진상조사단까지 꾸린 당 전체의 입장과 완전히 상반된 것이다.
이 대변인의 첫 일성이 "당 보다는 국민을 위해 대변하고 싶다"였으니, 당과는 다른 '대변'도 가능하다고 넘어가자. 그렇다고 검찰이 조사에 착수한 사안에 대해 "나는 내 부인이 아프다면 6000만 원이라도 꿀 수 있다"는 이 대변인의 다분히 감상적인 이해가 과연 국민을 위한 대변이었을까?
추 장관이 꾼 것인지, 받은 것인지 또 대가성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한 판단도 서지 않았는데, 야당 대변인이 '우리도 가족이 있으니 이해해 주자'며 아량을 베푸는데 기꺼이 박수칠 국민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이 대변인은 한나라당과 여권이 동시에 관련된 이번 비리를 두고 '네 탓 내 탓' 하며 정쟁을 벌이고 싶지 않아 이처럼 '온화한 논평'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직자의 윤리'가 연관된 민감한 문제를 싸우지 않기 위해 덮자는 식은 곤란하다.
이 대변인은 왼쪽 가슴에 단정하게 꽂은 행커치프만큼이나 단정하고 온화한 인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박근혜 대표가 '사고초려'까지 해 가며 이 대변인 발탁에 공을 기울인 것도 그의 '신사적 이미지'를 당의 이미지에 덧대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이 같은 당의 발탁 취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이 대변인은 고민해야 한다. 윤리와 도덕과 상식을 가벼이 여기면서 신사가 될 수 있을까? 향후에도 한 쪽 귀만 열어놓고, 한 쪽 눈만 뜨고 모든 국민을 대변하는 양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발표가 계속돼선 결국 아무도 대변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뿐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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