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부시 미 대통령의 남미순방 후유증이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정상간의 설전으로 번지며 양국간 심각한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과 네스또르 키르츠네르 아르헨 대통령은 마르 델 쁠라따 정상회담장에서부터 서로 고성이 오가는 충돌을 빚었다. 그 속사정은 이렇다.
칠레와 멕시코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FTAA)을 성사시켜 자국의 통상이익을 극대화시킨다는 복안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부시 미 대통령을 밀었었다. 그러나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키르츠네르 아르헨 대통령의 완강한 반발에 부딪쳐 FTAA가 사실상 무위로 끝나자 폭스 대통령은 "회담장 밖에서의 반미시위와 반부시 정서는 키르츠네르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부추긴 감이 없지 않다"면서 미주정상회담 합의 실패에 대한 책임론까지 들고 나왔다.
이에 발끈한 키르츠네르 대통령이 "남의 나라 걱정은 하지 말고 멕시코 국내문제나 제대로 다루라"고 언성을 높였던 것. 양국 정상의 설전은 이에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 자국언론들을 통해 계속되고 있는 양상이다.
한편 정상회담 중간에 서둘러 자리를 뜬 부시 대통령의 브라질에서의 행보가 남미 언론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브라질리아 현장취재에 나섰던 중남미 언론사 기자들은 부시 대통령이 지난 6일 룰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보다는 브라질의 차세대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오피니언 리더들과의 간담회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 미국이 남미정책 파트너로 브라질을 선택했다는 말로도 들리지만 일견 룰라보다는 브라질 내 차세대 정치인들에게 더 호감을 갖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사실 룰라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마르 델 쁠라따 미주정상회담장에서 드러내놓고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메르코수르 국가 편도 아닌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 차베스와 키르츠네르 등 좌파 지도자들로부터 곱지 않은 눈총을 받았었다.
좌파 성향의 서민층을 주지지층으로 둔 그로서는 드러내놓고 부시 미 대통령을 지지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저간의 사정을 미국 역시 간파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미국은 룰라보다는 브라질의 차세대 정치지도자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을 더 챙기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라는 평가다.
***'남미에는 창, 아시아에는 방패'**
부시 대통령은 브라질 차세대 정치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남미의 정치발전을 위한 종교단체들의 기금운영 방법에 대해 지적하고, 연민의 정을 가지고 종교활동을 해야 한다고 운을 뗀 후 "올바른 정치가는 자신에 대한 국민 지지도나 반대시위에 신경을 쓰지 않아야 한다"며 "참된 정치인은 민주적으로 정치생명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현재 미국에는 민주주의를 열성적으로 전세계에 전파하려고 노력하는 세력이 없다"면서 "브라질은 교육문제에 대해 더욱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은 "나는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되자마자 교육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다루었고 점진적으로 다른 문제를 해결한 결과 미국인들은 내가 누구이며, 내가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에 재선이 된 것 같다" 는 설명을 곁들였다.
부시 대통령은 또 "남미지역을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교육 받고 마약과 테러의 두려움이 없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며 "미주지역 내 통상과 자금이 자유롭게 왕래하여 중국과 인도 등의 경쟁을 물리치는 그런 강력한 아메리카대륙을 건설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이번 미주정상회담에서 자신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FTAA가 이를 위한 것이라는 해명이다.
이를 두고 남미언론들은 초대강국의 대통령으로서 그 '슈퍼파워'를 아메리카 대륙의 평화를 위해 사용하고 싶다는 소리지만 사실 부시 행정부는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에 대해 그 힘을 보여주기 위해 (이라크 등지에서) 얼마나 많은 죽음을 불러왔고 파괴를 했는가를 잊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한 중남미대륙에서는 힘을 앞세운 시장개방공세를 취했던 그가 아시아 태평양지역 정상회담장에는 한국과 일본, 중국 등의 통상압력에는 수세에 몰려 있는 형국이라는 논평을 내놓고 있다. 다시 말해서 똑같은 통상문제를 놓고 남미에서는 창을 들고 공격하지만 아시아에서는 방패를 들고 방어에 나서는 '모순'을 연출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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